‘맨발로 걷는 삶’을 위해 화려한 도시 생활과 커리어를 뒤로하고 산속으로 들어간 문성희 씨. 맨손으로 땅 일구고 거친 밥에 채식 위주의 자급자족 생활을 한 지 10여 년, 자연에 가까운 삶을 살던 그녀는 깨달음을 통해 속세로 돌아와 ‘끼니의 생명력’을 알리며 ‘평화가 깃든 밥상’을 전파하고 있다. 최근 자신만의 자연 요리 비법을 담은 책 <문성희의 쉽게 만드는 자연식 밥상>을 낸 그녀의 뜰을 찾았다.
온전히 자연에 가까운 삶
직접 손바느질한 새하얀 저고리에 햇빛 아래 반짝이는 은발, 일순 얼굴 가득 퍼지는 미소에 눈이 시리다. 온통 초록으로 일렁이는 그녀의 뜰 안에서 순백의 그녀와 마주 앉아 자연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마음에 평화가 깃든다. 이곳은 충북 괴산의 미루마을, 10년간 지내던 산속에서 내려와 파주 헤이리에서 ‘평화가 깃든 밥상’ 강의를 하던 그녀가 2년 전 새로 자리 잡은 아담한 시골 마을이다. 요즘 바쁘지 않으냐는 질문에 “바쁘지 않게 살려고요”라고 대답하는 그녀의 삶은 그러나 매일매일 새로움으로 가득하다.
매일 새벽 동이 트면 텃밭에 나가 아침 이슬 앉은 채소 뜯어 아침상에 올린다. 땅이 언제 품고 있었는지도 모르게 새롭게 올라오는 풀들을 보며 대지의 생명력에 감탄한다. 봄이 되면 뒷산에 올라 소쿠리 가득 아카시아꽃 따고 항아리에 소복이 쌓아 향긋한 효소를 담근다. 햇볕 아래 익어가는 장독대의 뚜껑을 열어 ‘이놈들 잘 익고 있나’ 확인하고 묵은장에 박아둔 버섯과 나물 꺼내 쓱쓱 닦아 맛을 본다. 그녀만의 자연식 요리를 배우려는 이들이 줄을 이어 찾아 ‘살림 밥상’ 강좌도 꾸준히 열린다. 북적대는 도시 손님들이 돌아가고 햇살이 기울어진 오후, 그늘에 앉아 한 땀 한 땀 손바느질을 하고 있자면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는다. 시골의 밤은 다시 평화로운 적막으로 물든다. 사계절의 드라마가 깃든 그녀의 삶은 그 자체로 충만하다.
겨울의 대지가 봄의 씨앗을 품고 있듯이…
자연 속 그녀의 삶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봄에 고개를 내미는 새싹을 보고 사람들은 갑자기 생겼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겨우내 대지가 싹을 품고 있었던 거잖아요, 그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제 안에도 ‘자연에 가까운 삶’을 살고자 하는 씨앗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 씨앗에 싹을 틔우는 순간이 있다고 생각해요.”
잘나가는 요리 선생님으로 도시 속에서 살면서도 그녀는 마음 한구석 충족되지 않는 것이 있었다. 마치 남의 옷을 입은 듯 무언가 불편했다는 그녀, “이 음식들이 생명을 살리는 음식인가? 내가 자연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는가?” 끊임없이 되묻다 결국 요리 학원을 닫고 속세의 모든 것을 접기로 결심한다.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읽으며 자연에 가까운 삶을 동경하던 그녀는 부산의 깊은 산속, 등 굽은 노인 가족과 함께 밭을 일구고 땔감을 구해 사는 것으로 자연의 삶을 시작했다. “어느 곳에도 속박되지 않은, 맨발로 걷는 삶을 향해 갔어요.”
“자연에서 살다보니 끼니가 생명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실감했어요. 사람이 자연에서 먹을 것을 구하고 그것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순리인데 현대의 식생활은 자연과 동떨어져 있지요.” 슈퍼마켓에 진열된 부드러운 잎채소와는 다른 빳빳한 풀 잎사귀와 쌉쌀한 뿌리, 정미하지 않은 잡곡 등 거친 음식을 꼭꼭 씹으며 그녀는 음식 안에서 꿈틀대는 생명력을 느꼈다. 깨달음을 얻은 그녀가 다시 속세로 내려온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산속에서의 10년이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어요. 그런데 ‘왜 행복한가?’ 생각해보니 어떤 관계나 물질에서 벗어난 완전한 자유 덕인 거예요. ‘정말로 자유롭다면 어떤 관계나 물질 안에 있더라도 스스로 자유로워야 하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이라면 무릇 부대끼고 사는 것인데 혼자 행복하자고 이렇게 사는 것도 비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지요.”
지구를 살리고 생명을 살리는 ‘살림 음식’ 전도사
그녀가 자신의 철학이 담긴 음식을 제자들에게 전하고 함께 연구하는 ‘살림음식연구원’은 현재 ‘살림마스터’ 과정의 3기 배출을 앞두고 있다. “제가 만드는 음식을 뭐라고 부를지 고민하다가 ‘생명을 살리는 음식’이라는 의미에서 ‘살림 음식’이라 부르게 되었어요. 평화를 뜻하는 ‘샬롬’과도 비슷하고요.” 그녀는 스물네 살, 부산에서 어머니가 운영하던 요리 학원 일을 돕다 요리 강습을 하는 것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당시에는 흔치 않은 직업에 재능도 받쳐주어 두각을 드러냈고 자신의 직업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 산속으로 들어갔을 때에는 감사함을 생각할 틈도 없었어요. 오로지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자’에 온 집중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산에서 내려와 자연식을 전파하고 사람들이 찾아오자 또 다른 깨달음이 찾아왔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싶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내가 누군가의 멘토가 되어 생명이 깃든 음식, 그러한 삶을 전하는 것이 소명이라 생각해요. 이제는 개인적인 내 삶에 대한 감사가 아니라 생명이 깃든 음식을 전파하는 소명을 지닌 만물의 일부라는 것에 감사를 느낍니다.”
매일 아침 텃밭에 장 보러 가다
작은 텃밭이지만 옹기종기 싹 틔우고 앉아 있는 잎들은 그 종류만 20가지가 넘는다. “이거는 당귀, 향긋한 제피 잎도 따고… 여기 있는 상추는 따로 씨를 뿌리지도 않았는데 작년에 심었던 것이 겨우내 땅속에 홀로 웅크리고 있다가 알아서 피웠어요, 대견하죠?” 알록달록 어여쁘게 피어난 꽃들도 관상용으로만 생각했는데 하나하나 다 먹을 수 있는 것이다. 텃밭 한 바퀴 종종걸음으로 돌았을 뿐인데 소쿠리가 싱싱한 푸성귀로 한가득이다.
“저는 이 텃밭으로 장 보러 오는 거예요. 자연이 거저 주는 선물이 얼마나 멋진가요!” 그녀의 텃밭에서 자라난 채소들은 군데군데 벌레 먹어 송송 뚫려 있지만 맛만은 도시의 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저 호미로 땅 몇 번 뒤적거릴 뿐인데 저 혼자 알아서 자라난단다. 지천에 널린 것들을 다 채취해 요리하려면 바쁘겠다는 기자의 우문에 그녀의 현답. “우리 집에서는 요리할 게 없어요. 먹을 만큼만 뜯어서 있는 그대로 먹어도 얼마나 맛이 있는데, 또 부러 특별히 요리할 일이 있나요? 맛나게 익은 장 곁들이는 것만으로도 봄 한철이 배불러요.”
이끌림이 만들어낸 밥상
그녀의 수업에는 노부인과 딸, 이제 막 시작한 부부, 오랜 지기 등 오순도순 손잡고 함께 오는 이들이 많다. ‘살림 음식’을 맛보고 느낀 기쁨을 함께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요리 학원에서 새댁으로 수업을 들었던 이가 이제 그 딸이 시집을 가게 되었다며 딸을 데리고 오기도 해요. 그런 인연으로 이어져가는 것이 인생 아닐까요?” 그녀는 전국에서 자신을 알고 찾아오는 것을 ‘이끌림’이라고 이야기한다. 서점에 갔다가 문득 눈에 띈 책 표지를 보고 왔다는 이, 우연히 잡지를 펼쳤는데 그녀의 이야기가 나왔다는 이 등등… 그녀를 찾아오는 이들에게는 모두 같은 울림, 이끌림이 있다. 함께 공명하는 사람, 자연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는 요즘이다. 그녀의 밥상도 이끌림이다.
“사실 제 음식은 굉장히 단순해요, 어렵지도 않고요. 텃밭에 새순이 돋고 장터에 제철 채소가 나오면 그 자리에서 냄새를 맡고 ‘아 오늘은 이것으로 뭘 해 먹을까?’ 즉석에서 떠올라요.” 손님맞이도 마찬가지다. 따로 준비하지 않아도 자신과 같은 울림을 지닌 이들을 맞으면 식탁에 올릴 음식들이 속속 떠오른다. 자연에 이끌리고 사람에 이끌리는 삶이다. 화려했던 그녀의 젊은 시절을 봤던 이들은 가끔은 도시의 삶이 그립지 않으냐, 심심하지 않으냐 묻기도 한다. “저는 나들이도, 여행도 가고 싶은 마음이 별로 안 들어요. 문을 열고 나가면 자연이 펼쳐지는데 무엇이 부족한가요?” 인터뷰를 하던 그녀가 멀리 뒷산에 홀로 솟은 나무 하나를 발견하고 탄성을 자아낸다. “저 나무는 오늘 처음 보네요, 저기 보이죠? 정말 늠름하게 생겼네. 오늘부터 저 나무와 연애 시작해야겠어요.”
23가지 곡물가루와 텃밭샐러드 / 도토리가루 참나물·더덕잎전유어 / 아카시아효소 치자비빔국수
“매일 아침 텃밭에서 이슬 맺힌 각종 잎사귀를 한 소쿠리 가득 뜯어 생명의 기운 가득한 샐러드를 만들어 먹어요. 여기에 산뜻한 과일 한두 개 잘라 넣고 기운 북돋아주는 호두를 통으로 넣고요, 햇볕과 바람에 말려 거칠게 간 23가지 유기농 곡물가루 뿌리고 쌀조청에 감식초 약간 곁들여 먹으면 잠들어 있는 몸 속에 신선한 대지의 기운이 가득 들어차지요.”
“이제 많이 자란 참나물은 나물로 먹기에는 빳빳하고 향이 강하지만 고소하게 전으로 부쳐 먹으면 별미예요.몸 속에 쌓인 나쁜 기운을 해독해주는 도토리가루를 묻혀 먹으면 쌉싸름한 맛이 식욕을 돋워요. 잘 익어 맛이 든 집간장 살짝 찍어 먹는 것만으로도 순식간에 밥상이 축제가 됩니다.”
“아카시아 내음 가득한 효소 양념장을 곁들여 산뜻하게 즐기는 초여름 국수예요. 몸에도 좋은 치자국수 삶고 텃밭에서 딴 채소를 곁들여 후루룩 먹으면 입안이 산뜻하게 정리되어 햇살 내리쬐는 오후의 간식이나 식사의 마지막 입가심으로 좋아요. 화려한 꽃은 씨앗을 안고 있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향도 짙고 맛도 강해 많이 먹을 수는 없어요. 그저 한 송이 따 요리에 곁들여 그 빛깔과 향을 즐깁니다.”
몸을 살리는 문성희식 자연 밥상 차리기
채식과 자연식으로만 차린다
생명이 깃들어 있는, 자연에서 거둔 재료만으로 식탁을 차린다. 고기와 생선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그것들을 사육하는 과정도 과정이거니와 조리하는 과정에서도 화석연료를 많이 사용하게 되고 음식물 쓰레기도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재료의 맛을 그대로 살려 요리하다 보니 특별한 조미료도 복잡한 조리법도 필요 없다. 푸성귀는 큼직큼직하게 썰어 씹는 맛을 더하고 쓰고 남은 재료는 찢거나 가볍게 손질해 국물 내는 데 활용하니 버리는 것도 없다.
철 따라 장과 발효액 담그기
집에서 간장과 된장, 각종 산야초 발효액과 매실·아카시아 발효액을 만들어 사용한다. 햇살과 바람으로 익힌 양념이라 그 자체에 생생한 맛과 기운이 들어 있다. 방풍, 당귀, 쑥 등 야생 나물 꾸덕하게 말려 각종 장에 묻어놓고 삭혀 먹는 발효 장아찌는 일 년 내내 고마운 밥반찬이다. 오뉴월에는 아카시아꽃 발효액과 매실 발효액을, 가을에는 과일 잼과 유자청을 담가 주스로, 간식으로, 요리 양념으로 요긴하게 사용한다. 잘 발효한 장과 발효액은 면역력을 키워주고 에너지를 높이는 최고의 천연 양념이다.
산, 들, 텃밭에서 거둔 채소가 주재료
평소 장에 갈 일이 별로 없다. 대부분 산과 들, 텃밭에서 직접 거둔 채소를 먹는다. 농약은 물론이거니와 별다른 비료도 주지 않고 저 혼자 자란 식물들은 땅에 뿌리박고 생명을 키워낸 야생성이 살아 있어 그 자체로 초록빛이 한층 짙고 신성한 에너지를 담고 있다.
호두, 잣 등으로 영양을 보탠다
노상 먹는 각종 채소와 산야초만으로도 영양을 충분히 섭취하지만 부족한 단백질과 지방 약간은 호두와 잣 등의 견과류로 보충한다. 견과류는 껍질을 까거나 잘라두면 산패되기 때문에 호두도 껍질째 통으로, 잣도 고깔을 떼어내지 않고 보관한다.
통째로 먹는다
과일이나 뿌리채소는 껍질째 먹고 뿌리도 버리지 않는다. 늙은 호박의 씨앗도 버리지 않고 잘 말려 간식으로 먹거나 요리에 활용한다. 껍질에는 생명을 보호하는 항산화 물질이 풍부하고 뿌리는 생명의 버팀목이며 씨앗은 생명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을 질기고 맛없다며 연약한 속살만 먹다 보니 우리의 몸도 연약해진다.
‘거친 욕망’이 들어가지 않은 먹을거리
‘거친 욕망’이 들어가지 않은 먹을거리란 그것을 키우고 나누는 마음에 ‘함께 살고자 하는 마음’이 깃든 것이다. 단지 팔기 위해 환경을 오염시키고 먹는 이의 건강을 생각하지 않은 먹을거리가 거친 욕망이 담긴 먹을거리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고자 애쓰는 양심 농부들이 키운 먹거리를 사용한다.
‘맨발로 걷는 삶’을 위해 화려한 도시 생활과 커리어를 뒤로하고 산속으로 들어간 문성희 씨. 맨손으로 땅 일구고 거친 밥에 채식 위주의 자급자족 생활을 한 지 10여 년, 자연에 가까운 삶을 살던 그녀는 깨달음을 통해 속세로 돌아와 ‘끼니의 생명력’을 알리며 ‘평화가 깃든 밥상’을 전파하고 있다. 최근 자신만의 자연 요리 비법을 담은 책 <문성희의 쉽게 만드는 자연식 밥상>을 낸 그녀의 뜰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