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서울에서 쇼를 진행한 이후, 거의 6년 만에 다시 서울을 방문했다. 2025 S/S 컬렉션을 서울에서 선보이기로 결정한 이유가 있나?
한국에 다시 오고 싶은 마음이 컸다. 2006년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가 문을 연 이후, 서울을 네다섯 번 찾았는데, 늘 새로운 변화로 가득한 흥미로운 곳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특히 서울의 역동적인 에너지에 깊이 매료됐다.
이번 쇼는 잠실 한강공원에서 펼쳐질 예정이다. 이 장소를 고른 이유도 궁금하다.
에르메스의 보드워크 테마는 이번 컬렉션의 감성을 담아, 해질 무렵 산책하기 좋은 해변의 여유로운 분위기를 떠올리게 한다. 흐르는 물이 있는 잠실 한강공원에서 컬렉션의 테마를 강조하고 싶었다.
당신의 컬렉션에는 항상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2025 S/S 컬렉션은 어떤 이야기를 상상하며 만들었나? 개인적으로, 해변의 모래가 밀려오는 파도에 씻겨 내려가듯 점점 옅어지는 패턴과 바닷물에 발을 담그기 좋은 발목 길이의 바지에서 한여름의 바캉스 장면이 떠올랐다. 이런 연출에 담긴 의도를 설명해줄 수 있나?
이번 컬렉션을 구상하며 가장 먼저 떠올린 이미지는 어느 여름 해 질 무렵, 바닷가에서 시간을 보내는 남성의 모습이었다. 그 장면을 상상하다 보니 나머지는 자연스럽고 순조롭게 이어졌다. 바다는 시간의 흐름,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새로움의 은유이기도 하다. 밀려왔다가 다시 빠져나가는 물결의 움직임이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지워지는 것, 끝내 남아 있는 것 등, 바다에서 착안한 다양한 은유를 컬렉션 전반에 반영했다. 또한 올해 에르메스 테마가 ‘창작의 시작, 드로잉’이라, 이를 컬렉션에 담고 싶었다.
파리 쇼에서 룩의 패턴이 모델들의 몸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타투를 그린 연출도 흥미로웠다. 이번 쇼에서도 동일하게 타투를 연출할 것이라고 들었는데, 이 콘셉트에 담긴 의도를 설명해줄 수 있나?
프랑스어에는 ‘무언가를 피부 속에 지닌다’라는 관용적 표현이 있는데, 무언가를 매우 좋아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이처럼 에르메스 디자인을 연필 스케치 느낌의 타투로 피부에 연장함으로써, 에르메스의 헤리티지를 피부 안에 새기고 지속적으로 이어가고자 하는 의지를 표현했다. 에르메스 디자인을 해석하는 독창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했으며, 동시에 여름의 계절감, 남성성 을 반영하는 새로운 시도이기도 했다.
소재, 실루엣을 포함해 에르메스를 말할 때 ‘여유’라는 단어를 빼놓을 수 없다. 당신이 생각하는 여유란 무엇인가?
인생에서 너무 심각한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유로운 마음가짐은 삶을 헤쳐나가는 데 꼭 필요한 주문이기도 하고. 특히 남성복 디자이너로서 편안함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다. 어떤 소재로 만든 옷이든, 입었을 때 자유롭게 움직임이 가능하고 편안해야 한다. 캐시미어, 트위드, 리넨, 코튼 등 고급 소재의 감각적인 질감과 정교한 재단이 조화롭게 어우러질 때 비로소 자연스럽고 여유로운 스타일이 완성되며, 이는 곧 에르메스가 추구하는 캐주얼 시크의 본질이라 생각한다.
젠더리스, 젠더 플루이드 등 성별의 규정에 대한 논의가 여전히 활발하다. 이런 흐름이 디자인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나? 당신이 머릿속에서 그리는 에르메스의 남성상은 어떤가?
에르메스의 남성은 다양한 개성을 지닌 여러 인물들로 구성된다. 나는 국적이나 문화적 배경에 관계없이, 전 세계 모든 남성을 위한 컬렉션을 디자인한다. 중요한 것은 국적이 아니라, 옷을 입는 사람들의 개성과 그것을 일상에서 어떻게 해석하고 활용하는지다. 에르메스는 오래도록 지속 가능한 옷과 오브제를 만들기 때문에 품질이 매우 중요한 요소다. 이를 위해 나를 포함한 모든 디자이너는 제작 방식에 깊은 주의를 기울인다.
이와 마찬가지로 젠더 플루이드는 특별한 이슈라기보다, 개개인이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섬세하고 여성적인 면모를 드러내고 싶어 하는 반면, 어떤 이는 전형적인 남성성을 표현하고자 한다. 이는 판단의 영역이 아니라 각자의 선택이다. 나의 역할은 다양한 남성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소화할 수 있는 옷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때로는 많은 여성 고객들이 내가 디자인한 코트나 블루종을 구매하는데, 이렇게 성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현상을 좋아한다. 물론 일부 브랜드는 이 경계를 전면적으로 다루기도 하지만, 내게 중요한 것은 옷의 스타일, 재단 방식, 원단의 선택이다. 옷을 소화하는 것은 착용자의 몫이며, 그 선택권은 전적으로 개인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에르메스는 전통과 혁신의 균형을 중요하게 여기는 브랜드다. 이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가?
에르메스가 유서 깊은 전통을 이어간다는 점은 매우 행운이라 생각한다. 브랜드의 깊고 강력한 뿌리는 장인정신에서 비롯되며, 190년 동안 지금까지 소중히 보존되고 있다. 창의적 작업 과정에서 전통을 기반으로 혁신을 추구하는 태도는 열광할 수밖에 없는 요소다. 에르메스는 꾸준하게 가죽에 대한 풍부한 노하우와 다양한 처리 기법, 뛰어난 소재를 활용해 탁월한 품질을 구현해왔다. 전통과 혁신, 두 가지의 균형을 일부러 맞추려 하기보다는 두 요소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며 시대를 초월하는 창조로 이어지는 과정 자체가 나에게는 큰 즐거움이다.
에르메스는 최고의 럭셔리 브랜드지만 리버서블 등 실용성도 매우 눈에 띄는 브랜드다. 당신이 생각하는 럭셔리란 무엇인가?
내가 생각하는 럭셔리는 시대가 요구하는 실용성과 감성, 정교한 재단, 소재와 색감에 부합하면서도 오랜 세월 지속되는 옷을 의미한다. 유행처럼 쉽게 소모되지 않고,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가치 있는 옷이 진정한 럭셔리라고 믿는다. 오늘날 럭셔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정의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제품에 담긴 정성과 지속 가능성이라 생각한다. 에르메스는 소비와 낭비를 지양하며, 도덕적 정직함, 탁월한 제작, 장인의 노하우 같은 뿌리 깊은 가치를 바탕으로 한다. 이런 점에서 에르메스의 럭셔리는 매우 예외적이며 특별하다.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건, 럭셔리는 로고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 로고는 품질이나 재단, 소재의 우수함을 대변할 수 없다.
40년 가까이 에르메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했다. 에르메스란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가?
에르메스는 나에게 ‘꿈’을 상징한다. 창작의 자유를 점점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에, 이곳은 창의성을 존중하고 아름다움에 대한 애정을 간직한 공간이다. 창의성과 혁신을 위한 탐구를 통해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이곳은 내게 유일무이하고 뛰어난 하우스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에르메스가 나아갈 방향이나 목표는 무엇인가?
지난 190년간 걸어온 방향을 향해 나아가면 된다. 이미 에르메스는 스스로 가야 할 길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장인정신, 탁월한 제작 노하우, 제품에 담는 정성, 고객과 품질에 대한 존중 등은 창립 이래 꾸준히 지켜온 본질적인 가치이며, 앞으로도 변함없이 지속될 전통이라 믿는다. 또한 재창조와 혁신을 거듭하며 기발함과 유머 감각을 지켜나가는 것 역시 중요하다. 이번 행사에서 에르메스를 이루는 근간을 발견할 수 있으며, 나는 앞으로도 우리가 지켜온 핵심 가치가 꾸준히 이어질 것이라 확신한다.

기존 컬렉션과 함께 선보인 서울 에디션 익스클루시브 룩.
©Hyuk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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