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내 안의 음란마귀>라는 책을 냈다. 뽈랄라수집관을 운영하는 현태준 작가와 함께, 지난 20세기에 경험한 온갖 성인문화에 대한 추억을 담은 책이다. 친구네 집에서 찾은 도색 잡지와 포르노 비디오, 미성년자관람불가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에 숨어 들어간 이야기, 빨간 책이라 부르던 야한 만화와 소설 등등.
아이일 때는 모르는 것들을 왕성한 호기심으로 섭렵한다. 음란한 것은 영화나 소설에만 있지 않았다. 단정하고 우아한 세계의 이면에는 다른 모습이 있다. 추한 것 같지만 찰나에 매혹되고 무한의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렇게 성장했다. 그건 나의, 우리의 중요한 부분이다.
<내 안의 음란마귀>를 기획할 때 제목은 <19금의 사생활>이었다. 2000년에 낸 책 <18금의 세계>에서 도래한 제목이었다. 1998년 일본 문화 개방 즈음에 <18금의 세계>를 공저했다. 그런대로 책이 팔리고 화제가 되자 모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일본 성인문화를 다룬 책을 내자는 것이었다. 일본 AV, 에로 망가, 핑크 영화 등을 약간 보기는 했지만 책을 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출판사에서 좋은 조건을 내걸었다. 일본에 가서 취재하고 자료를 살 경비를 제공하겠다는 것이었다. 스즈키 고지의 <링>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출판사가 한창 고무되어 있을 때였다.
당시 일본 문화에 대한 나의 관심은 최고조였다. 영화제 수상작이나 영화사 명작만이 아니었다. <쉘 위 댄스>의 수오 마사유키는 <변태 가족, 형의 새각시>, <큐어>의 구로사와 기요시는 <간다천음란전쟁>이라는 핑크 영화로 데뷔했음을 알게 되었다.
뉴욕 유학생인 통신원에게, 성인 애니메이션 <우로츠키 동자>가 영화제에서 대단한 화제를 일으켰다고 들었다. 야하기도 하지만 기발한 상상력에 서양인이 경악했다는 것이다. 일본 출장 갔을 때, 만화 <시티 헌터>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마이 시티’ 백화점 5층 서점에서 에로 망가를 사오기도 했다.
그래서 제의를 받아들였다. 나가노 브로드웨이의 만다라케를 가고, 신주쿠의 비디오 마켓을 뒤지고, 아키하바라의 5층 건물 전체가 AV숍인 곳도 들어갔다. 1990년대 말의 일본은 한국과 많이 달랐고, 신기했다.
제목은 일찌감치 정했다. <18금의 세계>. 자료를 한참 뒤지고 있는데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하나무라 만게츠의 소설 <게르마늄의 밤>이 청소년불가 판정이 난 것이다. 처음부터 성인용으로 출간하면, 비닐 씌워야 하고 서점 판매대에 놓지 못할뿐더러 광고도 할 수 없다. 즉 홍보에 막대한 지장이 생긴다.
하지만 사후 검열로 청소년불가 결정이 되면 더 문제가 된다. 책을 회수하여 비닐을 씌우고 다시 배포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형사 고발을 당해 출판사 대표는 경찰서에서 진술까지 해야 한다. <게르마늄의 밤>이 아쿠다가와상을 받은 문학성 높은 소설이고 어쩌고는 소용이 없었다.
불똥이 <18금의 세계>에 튀었다. 절대로 청소년불가가 될 만한 책을 내지 말라는 것이다. 아니 그러면 ‘18금의 세계’를 어쩌라는 것인가. 야한 영화나 소설 정도가 아니라 진짜 성인문화를 다루자는 기획은…. 출판사에서는 수위를 낮춰달라고 했다.
그러다 보니 일본에서 사온 자료의 90%가 무용지물이 되었다. 한국에서 성인용으로 구분하는 만화나 소설, 영화 정도만을 다루자고 했다. 만화라면 이케가미 료이치의 <크라잉 프리맨>과 히로카네 겐시의 <시마 과장> 정도.
핑크 영화는 국내의 호스티스 영화나 <매춘> 등도 있으니 약간 다룰 수 있었다. AV는 아웃. 아예 한국에서 법적으로 가능한 성인문화를 다룬다고 했으면 별 문제 없었겠지만, 타의로 수위를 낮춰 진행하다 보니 지지부진했다.
완성한 원고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목은 맘에 들었지만 정작 나온 책은 어디 가서 내 책이라고 말도 하기 힘들 정도였다. 출판사는 <18금의 세계>를 내고 얼마 뒤 정리 수순을 밟았다. 조용히 묻혀갔다. 그런데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제목이 강렬하고, 표지도 선정적이라서. 그뿐인 책이라 보고 나서 욕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게 늘 마음의 부담이었다. 매년 일본에 갈 때 성인문화 자료들을 잔뜩 사왔다. 언젠가 진짜로 ‘18금의 세계’를 파고들어 책을 써보겠다고 다짐했다.
<내 안의 음란마귀>는 그런 다짐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작년에 낸 <나의 대중문화 표류기>는 성장기에 접한 대중문화에 대한 자전적 에세이다. <내 안의 음란마귀>는 그 책에서 슬쩍 빼낸 어두운 면을 쓴 것이다. 본격적으로 성인문화를 다룬 것은 아니지만, 그 시절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이야기.
그리고 현태준 작가의 키치적 만화가 흥을 돋운다. 이렇게 쓰고 보니, 이번 칼럼은 거의 책 광고인 것도 같다. 하지만 십수 년 동안 성인문화에 대해 언젠가는 본격적으로 말하고, 써야겠다는 생각은 늘 했다. 아니 시간이 갈수록 절실해졌다.
케이블 TV에서 영화 보면 짜증만 난다. 19금 붙이고 심야에 방영하면서도, 흉기와 담배를 블러로 처리하고, 욕을 묵음 처리한다. 등급제는 대체 왜 실시하는가. 어차피 다 자르는데. 시간이 흘러도 한국은 여전히 위선적인 선비들의 아닌 척하는 사회다.
누구는 어렸을 때 <은하철도 999>에서 메텔의 샤워 장면을 보고 흥분한 후, 청소년이 불건전한 것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검열관이 되었다 말한다. 측은하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면서 위선적인 도덕만을 강조하는 사회가 되고 있다. 그게 싫다. 그래서 <내 안의 음란마귀>를 냈다. 더 많이 어른의 세계와 비정상적이고 상식적이지 않은 이상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욕망을 드러내도 이상하지 않고, 변태라도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인정받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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