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랏 엠
플랏 엠(Flat M.)은 지난 10년간, 서울이 품은 문화 적 경계의 최전선에서 공간의 가능성을 넓혀온 공간 디자인 스튜디오다. 서울 곳곳에 진보적인 공간들을 만들어온 플랏 엠은 10년 전, 선정현 대표가 우연한 기회에 사업자 허가를 얻으며 시작됐다. “플랏 엠의 초창기에는 트렌디한 걸 만들었어요.
그게 트렌디한 줄 모르고요. 이제는 전혀 아니에요. 트렌디한 건 절대 안 하고 싶죠. 요즘은 지금 한국에서, 서울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서울다운’ 공간이 뭘까. 공간도 클래식이 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해요.” 그리고 지난해. 플랏 엠의 이름은 다시금 크게 들려왔다. 플랏 엠이 만든, KBP의 새로운 메인 오피스 겸 쇼룸인 메종 키티 버니 포니가 공개되면서다.
“KBP의 김진진 대표가 사이 건축과 저희를 만난 첫 모임에서 바우하우스 사진 하나를 보여줬어요. 대지 위에 공실 한 채가 놓여 있었죠.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했어요. 쇼킹하지 않나요? 듣자마자 흥분되는 프로젝트였어요.”
플랏 엠은 검증되지 않은, 전례 없는 작업들과 아이디어로 승부해야 하는 제약 많은 프로젝트를 즐긴다. 그리고 대개, 문화적 경계를 뚫고 도전적인 일을 벌이는 사람들에게는 돈이 많지 않다.
“그래도 저희는 그런 그룹들과 함께 일해왔어요. 재미있으니까. 주위 동료들이 왜 플랏 엠은 아파트나 대기업 프로젝트 같은 걸 하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하는데, 대기업이라서 아파트라서 안 하는 게 아니에요. 경계의 최전선에, 선두에 있는 일이라면 다 하죠. 10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고, 변할 수 있는 기회도 생겼었지만, 고심 끝에 플랏 엠의 기준을 이렇게 세웠어요.”
이들은 도전적인 공간들을 단단하게 완성해낸다. 최근에는 아주 작은 의상 쇼룸 겸 사무실을 완성했다. 어느 날 어떤 젊은이가 스튜디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이 시작이었다. “소규모 사무실도 하냐고 묻더니, 돈이 별로 없다고 했어요.”
클라이언트가 제시한 금액은 플랏 엠이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작은 사무실 프로젝트를 했을 때 든 비용보다도 적었다. 하지만 플랏 엠은 달려들었다. 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업이 바로 소규모 사무실이니까. “예산이 적으면 제약이 많아요. 그런데 해보니까 오히려 더 재미있네요. 플랏 엠이 문을 연 지 10년 지났는데, 다시 10년 전과 같은 규모의 프로젝트를 여전히 흥미로워한다는 것도 재미있고요.”
그라브
그라브(Grav)의 존재를 추적하게 만들었던 건 방배동에 위치한 베이커리, 메종 엠오(Maison M.O)다. 건물 1층 모서리에 세운 두 면의 통유리로 파사드를 대신한 메종 엠오는 문을 열고 들어설 필요도 없이 투명하게 안이 보였다. 가게 전체가 거대한 쇼케이스 같았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면 몸을 돌리지 않고도 바로 보이는 또 다른 쇼케이스 안에 셰프가 섬세하게 세공한 케이크와 빵이 놓여 있었다.
내부는 단순했다. 녹색 베이커리 테이블과 쇼케이스, 셰프의 작업대, 서너 명이 앉을 수 있을 법한 작은 테이블과 의자들이 전부다. 그것만으로도 가득 찼다. 그라브는 안목과 취향, 생각의 분모가 (암묵적으로) 비슷한 디자이너 3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셋이지만 마치 하나인 것처럼 같은 관점으로 가장 동시대적인 공간을 고민한다. 새로운 것을 만들면서도 균형이 잘 잡혀 있는 공간을 추구한다. 그런 그라브의 세계에서, 공간은 드러나기보다 배경이 된다.
그라브에게 공간이란 그 공간이 담아내는 사람이 주가 되는 장소다. 어쩌면 가장 먼저 그려지는 것은 사람일 테다. 공간 안에 속해 있는 사람이나 물건이 주인이다. 그래야 사람이 공간 속에서 편안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그라브는 과감히 비워낸 부분들로 공간 속에 몇 개의 프레임을 만든다. 그 덕에 그라브의 공간이 완성되고 난 직후의 모습은 휑하다. 그곳에 놓일 물건들과 사용자가 들어서야 비로소 완성된다.
“서울 풍경 중에는 산만함이 서려 있는데, 그럴수록 저희는 내부를 간결하게 하고 싶었죠. 그렇다고 간결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는 아닙니다. 공간의 균형감과 리듬감을 재미있게 표현하는 것 역시 즐겨요.” 그라브는 공간감, 가구, 식물 등의 개체들이 어우러져 서로 작은 리듬을 이뤄내도록 공간을 만든다. 일부 공간의 균형을 조금 깨트려 새로운 리듬을 유입시키기도 한다. 그렇게 완성된 그라브의 공간은 간결하지만 지루하지 않다. 은유적인 위트, 키치함이 공간 속에 조화롭게 어울린다.
스튜디오 사막
스튜디오 사막(Studio Samak)은 실내 디자인을 전공한 이동일이 대학 3학년 때 완성한 프로젝트로부터 자라났다. 프로젝트 이름은 아티풀 매니악(Artiful Maniac). “학교에서는 하지 말라는 걸 했어요. 인테리어 디자인에 맞지 않는 디자인이었죠. 저는 공간을 예술 작품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예술과 디자인 서적을 판매하는 서점을 계획한 작업물이었다. 낡은 건물의 외관을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하고, 내부에는 파격적인 오브제를 들였다. 이동일은 결국 이 프로젝트를 포트폴리오로 들고 간 자리에서 처음으로 일을 땄다.
비현실적인 프로젝트로 실질적인 일을 획득한 것이다. 이는 이동일이 자신의 동기 2명과 함께 스튜디오 사막을 연 시초가 됐다. 그는 지금 스튜디오 사막을 구성하는 디자이너들을 총괄하는 디렉터다. “공간은 체험이에요.” 이동일은 말한다. “위대한 건축가가 만든 건물, 예술가가 만든 아트워크 앞에 서면 압도되는 것처럼 스튜디오 사막이 만든 공간에 접목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런 기운, 오라가 공간에 표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스튜디오 사막은 건대입구, 송파구 성내동과 같이 서울 내 다양한 지역의 프로젝트를 해왔다. 때로는 타 도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실험적인 걸 중시해요. 지역적인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죠. 지금은 송파구 성내동, 한국체육대학교 앞에 실내 동물원 작업을 하고 있어요. 전주에도 게스트 하우스 작업을 하고 있고요.” 스튜디오 사막의 공간 디자인은 그 범위가 넓다. 인테리어 디자인과 스타일링, 아트 디렉션, 브랜드 아이덴티티 디자인, 프로덕트 디자인과 오브제 스타일링까지 다양하다.
공간에 어울리는 가구는 물론이고 식물과 소품들, 벽에 걸 아트워크까지 직접 제작해 적용하기도 한다. 다양한 오브제로 그려내는 공간의 변주는 스튜디오 사막의 특기다. “공간을 디자인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취향을 디자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공간은 삶을 영위하는 큰 틀이니까.
일부죠. 오브제를 넣어주는 것 역시 공간에 정체성을 불어넣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최근에는 자재에 관한 연구나 조형, 형태적 연구를 위한 디자인 랩도 준비하고 있다. 스튜디오 사막의 정체성을 연구하는 랩이다. “사무실 아래층에 시공할 준비를 하고 있어요. 1층에는 전시장이 있고요. 1백 퍼센트 저희가 후원해서 아티스트들의 전시를 열어주는 공간이에요. 지금 디자이너가 9명이고, 회사는 조금씩 커지겠지만 스튜디오로서의 정체성을 계속해서 견지하고 싶어요. 작은 스튜디오로 시작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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