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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의 작은 아파트 지하상가, 별다른 표식도 없이 M 자 하나 휑하니 붙어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거친 인상의 사장이 정해지지도 않은 요리를 툭하니 건네는 독특한 식당이 밤을 밝히고 있다. 반드시 예약을 해야만 하고 오늘의 메뉴가 무엇인지 미리 알 수도 없으며 시끄럽게 떠들어도 안 되는 불편한 술집, 묘하게도 그 곳에서 지친 마음 풀린다.
내가 어딜 봐서 심야식당 사장을 닮았다는 거야?
목에 두른 수건에 걸걸한 인상, 한눈에 봐도 포스 있어 보이는 주인이 얼굴을 찌푸린다. ‘본의 아니게’ 한국의 심야식당으로 불리게 된 데에 불만이 있는 듯하다. “심야식당이 유행한다고 부러 그렇게 콘셉트 잡고 그런 거 다 잡스러워.” ‘<심야식당> 작가가 팬 미팅을 이곳에서 했다면서요?’ 물어보려다 괜히 머쓱해져서 고개를 주억거린다. “근데 정말 시끄럽게 떠들면 쫓아내요?” “술집에서 시끄럽게 게임하고 그런 게 제일 싫어.” 참 싫은 것도 많은 사장이다. 이곳은 예약을 하지 않으면 올 수 없고 남자끼리만도 올 수 없다. 정 남자끼리 오고 싶다면 어떻게든 한 명이라도 여자를 찾아야 할 판이다. 스피커에서 끊임없이 오래된 레게 뮤직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니 레게 음악은 좋아하나 보다. “사장님 남미 가서 살아도 어울리겠어요.” “어, 나 여행 좋아해. 남미 가고 싶지. 그런데 멀어서 원….” 여행을 좋아한다더니 가게 곳곳에 세계지도가 붙어 있다. 틈이 나면 여행을 간다는 사장, 2년 전에는 처음 가게를 찾은 커플 손님과 쿵짝이 맞아 다음 날 셋이 속초로 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걔네들이 이번에 결혼하잖아.” 이 사장님… 이제 보니… 거친 ‘척’해도 은근히 정 많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날마다 바뀌는 메뉴
이곳은 정해진 메뉴가 없다. 그렇다고 그날의 메뉴 중 골라서 주문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1인당 만오천원을 내면 사장이 그때그때 서너 가지 정도의 메뉴를 내준다. 시작은 직화로 바싹 구워 맥주를 부르는 북어포, 두세 번째는 매일 바뀌는 푸짐한 메인 요리, 마지막은 과일 등의 간단한 후식이다. 메인이 푸짐해서 웬만하면 저녁을 안 먹고 오는 편이 낫다. 그런데 너무 맛있다고 해서 추가 주문할 수도 없다. 더 달라고 하면 다른 손님은 어쩌냐며 혼낸다. 게다가 예약하면서 오늘의 메뉴를 물어볼 수도 없다. 가르쳐주지 않으니까.
“가만, 뭐 해주지? 뭐가 좋을까? 뭐가 맛있을까?” 잠시 고민하던 사장이 휘리릭 팬을 볶더니 불 맛 가득한 삼겹살볶음을 낸다. 참 술맛 나는 곳이다. “맛있어?” 감추려 해도 또 어김없이 드러나고 마는 사장의 머쓱한 마음 씀씀이.
1 맥주를 부르는 북어포 직화구이
2 중화풍 삼겹살 양배추 볶음. 손 맛 좋은 사장이 뚝딱 만들어 내놓는 그 날의 안주는 매번 바뀐다.
거칠지만 소박한 정공법
막집 M, 3년 전 학동사거리 근처에서 ‘막집 포차’란 이름에 같은 콘셉트로 운영되다가 최근 지금의 자리로 옮기고 상호도 바꿨다. 전보다 더 찾기 힘들고 가게 이름도 전보다 더 모호하다. 하지만 이미 속 깊은 단골들이 드나드는 이곳은 손님을 모을 필요가 없다. ‘포차’라는 이름을 없앤 것은 ‘포차’라는 이름 아래 자신의 가게와 음식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생각이 불편해서다. 요리를 전문적으로 해본 적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파는 음식’에 대한 생각만은 확고하다. “돈만 벌려고 다 조리된 냉동식품 사다가 튀겨서 소스만 범벅해서 내고 그러잖아. 안 그랬으면 좋겠어, 좀.” 안 해본 직업이 없다는 사장, 그러면서도 음식을 생각하는 마음이 각별해 언젠가는 자신의 ‘술집’을 갖는 것이 소망이었다. 독특한 운영 방식이 먼저 들어오는 곳이지만 음식을 만드는 데에는 수식도 꾀도 없는 정공법이다. 매일 아침 시장에 가서 제철 재료를 장 본다. 그것을 가지고 무슨 요리를 할지 고민해서 그날의 메뉴를 정한다. 여행 가서 신기한 향신료나 식재료를 보면 사 와서 가게에서 새로운 요리를 해본다. 뭐, 기차고 대단한 요리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없다. 술을 좋아하는 애주가이니 술맛 나는 안주를 알고, 그것을 만들어낼 뿐이다. “메뉴를 정해놓으면 재료 샀다 남으면 냉동실에 집어넣고 그러잖아. 그게 싫더라고.” 매일 신선한 재료를 장 봐서 그때그때 요리하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 투박한 외모 뒤에 숨어 있다.
그때그때 바뀌는 안주 덕분에 이곳에선 매일 작은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어떤 날은 푸짐한 샤부샤부가, 어떤 날에는 매콤한 중국식 훠궈가 나오기도 하고 닭을 사다 튀겨주기도 한다. 손님 중 생일을 맞은 이가 있으면 다 같이 케이크를 나눠 먹는다. “사장님, 작년 크리스마스엔 뭐 하셨어요?” “뭐 하긴, 여기 있었지.” 아파트 상가 지하의 작은 술집, 언제나 찌푸린 얼굴의 주인장이 희뿌연 담배 연기 사이로 좌석을 응시하고 있을 것만 같은 그곳. 하지만 또 어느 날인가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리고 말 것 같은, 꼭 거짓말 같은 그곳의 술 홀짝이는 밤.
info
메뉴 안주 1인당 1만 5천원, 술 별도
영업시간 오후 6시~새벽 2시(일요일 휴무)
위치 서울시 강남구 논현동 22 신동아아파트 상가 지하1F 5호
문의 02-512-2113(예약 필수)
강남의 작은 아파트 지하상가, 별다른 표식도 없이 M 자 하나 휑하니 붙어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거친 인상의 사장이 정해지지도 않은 요리를 툭하니 건네는 독특한 식당이 밤을 밝히고 있다. 반드시 예약을 해야만 하고 오늘의 메뉴가 무엇인지 미리 알 수도 없으며 시끄럽게 떠들어도 안 되는 불편한 술집, 묘하게도 그 곳에서 지친 마음 풀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