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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치의 서울 맛집 이야기

겨울철 야생 요리 '산골면옥'

On October 03, 2013

어머니의 고향이 강원도 평창인 덕분에 나는 어릴 적부터 도시 아이들이 경험할 수 없었던 시골에 대한 다양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동네 사내들을 따라 산과 강을 쏘다니며 천렵과 수렵을 했던 경험은 음식기자라는 직업에도 많은 도움이 됐다

어머니의 고향이 강원도 평창인 덕분에 나는 어릴 적부터 도시 아이들이 경험할 수 없었던 시골에 대한 다양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동네 사내들을 따라 산과 강을 쏘다니며 천렵과 수렵을 했던 경험은 음식기자라는 직업에도 많은 도움이 됐다. 어머니의 고향에서는 요즘처럼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날에는 어김없이 토끼 사냥을 나섰다. 산에 눈이 소복히 쌓이면 멀리서도 토끼가 움직이는 것이 한눈에 들어온다. 간밤에 쌓인 눈 위에서 총총걸음으로 움직이는 토끼를 발견하면, 남자들은 일사분란하게 토끼보다 높은 곳으로 돌아가 토끼를 몰기 시작한다.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모는 것은 금지다. 그럴 경우에는 사람이 절대 토끼를 달음질로 따라잡을 수 없다. 하지만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몰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길고 튼튼한 토끼의 뒷다리는 내리막 달음질에서 불리한 상황을 맞기 때문이다. 토끼몰이는 생각보다 순식간에 끝난다. 마을 젊은이들이 한데 모여 각자의 역할을 맡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데, 이는 활동량이 적어지는 농촌의 겨울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렇듯 겨울철에는 토끼, 꿩, 멧돼지 같은 야생동물이 종종 마을 젊은이들에게 잡혀 동네잔치가 벌어지곤 했다. 그중에서 비교적 자주 먹던 것이 토끼 요리였는데, 내가 먹어본 토끼 요리는 두 가지 정도다. 하나는 토끼 고기를 잘 손질해 된장국물을 베이스로 감자, 대파 등의 야채를 넉넉히 넣고 푹 고아내는 형태의 ‘토끼탕’, 또 하나는 소주에 반나절 정도 재운 뒤 처마에 매달아 겨울바람에 반건조해 굵은소금을 뿌려 구워 먹는 ‘토끼구이’가 그것이다. 자주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시골 마을에서는 제철 별미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유럽에서는 지금도 가을부터 겨울까지 게임 시즌을 맞이한다. 공식적으로 사냥을 허가하는 이 시즌에는 멧돼지, 사슴, 토끼, 꿩 등 야생동물들이 사냥꾼들의 손에 잡혀 식당의 셰프들에게 전달된다. 이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셰프는 팔을 걷어붙이고 ‘옳거니, 게임 시즌이 왔구나’ 하며 각자의 필살기를 살려 맛나게 요리를 한다. 단골 미식가들에게는 ‘게임 요리’가 시판되었다는 것을 미리 알린다. 유럽에서 게임 시즌의 요리를 제대로 만들어내는 셰프에게 높은 점수를 쳐주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야생의 육류를 손질하는 방법에서부터 맛을 내는 과정까지 셰프 각자가 저마다의 노하우를 가지고 이를 대단한 ‘자긍심’으로 여기고 있다.

요즘 한국에서는 겨울 제철 육류 요리라는 개념이 약하다. 대부분 농가에서 기른 돼지, 소, 닭 등이 주재료로 사시사철 사용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에서도 겨울 야생의 ‘터프한 맛’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 이 식당의 이름은 ‘산골면옥’. 51년째 운영되고 있는 장수 맛집이다. 간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집의 주요 메뉴는 면 요리, 그중에서도 막국수다. 간판에도 ‘산골면옥’이라는 식당 이름보다 ‘춘천막국수’라는 메뉴가 중앙에 떡하니 적혀 있어 지인들 사이에서는 ‘춘천막국수집’으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단골들은 겨울철이 되면 ‘막국수’보다 특별한 요리를 찾는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는 토끼, 멧돼지, 꿩 등을 이용한 요리가 그것이다. 토끼, 꿩, 오리는 탕 요리로, 멧돼지는 구이 요리로 낸다. 닭고기 요리도 유명한데, 한 마리를 통째로 삶은 다음 접시에 올려 호쾌하게 낸다. 그중 토끼탕은 이 식당의 별미 중 별미다. 된장과 고춧가루를 중심으로 담백하게 맛을 낸 것이 특징으로 감자와 대파, 말린 통고추 등을 더하는 것은 그 옛날 어머니의 고향에서 먹었던 ‘토끼탕’과 비슷한 스타일이다. 다만 그 위에 미나리를 듬뿍 넣어 시원하게 맛을 잡은 것이 특별했다.
토끼 고기는 원래 손질을 잘못하면 노린내가 심하게 나는 편인데, 이 집은 노린내도 안 난다. 가격도 저렴하다. 1마리를 통째로 사용해 내는 탕은 3만5천원으로 서너 명이서 충분히 먹을 수 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토끼 요리 먹는다고 하면 다짜고짜 ‘야만인’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겨울철 토끼 요리가 고급 메뉴로 손꼽히며 유럽의 미식가들은 ‘토끼스튜’를 최고의 별미로 친다. 우리나라로 치면 토끼탕이다. 그렇다고 토끼탕을 꼭 맛보라는 것은 아니다. 이런 음식도 서울에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소개하고 싶었을 뿐이다. 맛의 즐거움은 ‘모험심’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니까.

전우치
음식칼럼니스트, 에디터, 신문기자, 방송작가, 여행기자, 영상 디렉터, 프로젝트 디렉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해온 콘텐츠 제작 전문가다. 클럽컬처매거진 , 패션 매거진 의 편집장을 거쳐 현재 크리에이터스 매거진 의 편집장을 맡고 있다.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 제작 경험을 바탕으로 <호화대반점> <포장마차프로젝트> 같은 새로운 형태의 음식 프로젝트를 기획, 진행하고 있다.

어머니의 고향이 강원도 평창인 덕분에 나는 어릴 적부터 도시 아이들이 경험할 수 없었던 시골에 대한 다양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동네 사내들을 따라 산과 강을 쏘다니며 천렵과 수렵을 했던 경험은 음식기자라는 직업에도 많은 도움이 됐다

Credit Info

글&사진
전우치
에디터
강윤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