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과의 역할과 의미를 알아본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했다. 우리는 사회의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 상황 속에서 ‘나’라는 존재를 규정받는다. 집에서는 누군가의 사랑스러운 자식이자 형제이고 회사나 학교에서는 성실한 직원이자 학생이 되기도 한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밝고 유쾌한 사람이 되는 등 나름의 평가를 받고 존재가 규정된다. 그리고 이런 규정은 관계 속에서 어떻게 행동하느냐, 즉 자율의지에 따라 계속 변한다. 결국 우리는 남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본질까지 짐작당하는 셈이다. 실존주의자 장 폴 사르트르도 얘기하지 않았던가.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고.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 격으로 언급되는 프란츠 카프카는 소설 <변신> 속에서 ‘보이는 나’의 모습을 극단적으로 ‘변신’시켜 ‘보이는 나’, 즉 실존을 잃어버린 인간이 어떠한 최후를 맞는지 보여준다. 소설은 주인공인 그레고르 잠자가 어느 날 눈을 떴는데 벌레로 변해 있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원래 그는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는 누군가의 아들이자 오빠인, 그저 평범한 한 집안의 구성원이었다. 그가 흉측한 벌레로 변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집안 식구들은 모두 경악한다. 가족은 처음엔 그레고르를 돌봐주지만 얼마 가지 못한다. 집안을 책임지는 듬직한 아들이었던 그레고르는 결국 가족에게마저 (비록 벌레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자신이 그레고르라는 본질을 부정당하며 공격당하고, 죽음에까지 이른다.
난해한 작품답게 수많은 해석이 존재하지만 가장 보편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그레고르는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잃어버리는 순간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는 듬직한 아들’이라는 실존을 상실한다. 실존을 잃은 그는 결국 가족에게마저 자신의 본질을 부정당하고 가족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죽게 되는 과정조차 비참해 그의 본질이 부정당하는 모습이 더욱 극적으로 그려진다. 여기서 죽음을 비참하게 만드는 데에는 ‘사과’가 관여한다. 그레고르는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맞고 이로 인해 생긴 상처 때문에 죽음에 이른다. 누가 사과에 맞아 죽음에 이를 것이라 상상이나 하겠는가. 고작 사과 때문에라니. 너무나도 별것 아닌 이유이기에 죽음은 더욱 비참하게 느껴진다.
사과는 흔하고 대중적인 과일인 만큼 여러 이야기에서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부정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가 은근히 많다. 가장 대표적으로 성경 속 아담과 이브의 선악과만 해도 그렇다. 인류의 불행은 어떻게 보면 사과에서 시작되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파리스의 심판은 어떤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는 황금 사과의 주인을 심판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그리고 단 한 번의 선택이 나비 효과를 일으켜 트로이 전쟁까지 발발하게 만든다. 동화 백설 공주에서도 공주를 위험에 빠뜨리는 건 다름 아닌 빨갛고 탐스럽게 익은 사과. 독사과 하면 영국의 컴퓨터 과학자이자 수학자인 앨런 튜링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당시 범죄자로 취급받던 동성애자인 그는 화학적 거세를 당하고 젊은 나이에 청산가리를 넣은 사과를 한 입 베어 물고 죽음을 택한다. 그리고 ‘사회는 나에게 여자로 변하도록 강요했으므로 나는 가장 순수한 여자가 선택할 만한 방식으로 죽음을 택한다’라는 말을 남긴다. 애플 초창기 시절 한 입 베어 문 사과 로고를 두고 동성애와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말이 많았는데 이런 일화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과일인 사과, 하지만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꼭 부정적인 사례를 꼽는 것이 아니라면 만유인력 법칙을 발견하는 데 힌트가 된 뉴턴의 사과도 있지 않은가.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나는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고. 어쩌면 흔하다는 사과의 특성 덕분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에서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들을 ‘흔하기 때문에’ 그냥 지나쳐버린다. 그러나 오늘부터는 사과를 먹으며, 또 너무 익숙해 그냥 지나쳐버리는 것들이 ‘흔한 덕분에’ 가질 수 있는 의미를 생각해봐도 좋겠다. 흔함과 무의미함은 다른 영역이니까.
<변신>
프란츠 카프카 지음 | 민음사
20세기 문학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대표작. 그의 작품 중 국내에 가장 널리 알려지고 사랑받는 작품이다. 이야기는 주인공인 그레고르 잠자가 어느 날 일어나 보니 벌레가 된 것을 발견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충격적인 첫 구절만큼 소설은 난해한 편이지만 인간 존재의 부조리함, 인간 소외 등에 대해 심도 있게 고찰해 현재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명작으로 꼽힌다.
다양한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과의 역할과 의미를 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