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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하는 사람들 (4)

셰프는 철인이다, 유의융

On July 15, 2015

비좁고 더운 주방 안에서 하루 종일 불과 씨름하며 꿋꿋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때론 강철 같은 체력이 필요하다. 팔이 떨어질 만큼 무거운 웍을 다루면서도, 치솟는 불길 앞에서도 여유 만만한 중식 셰프 유의융은 철인 3종 경기 아마추어 선수다.


일요일 새벽 5시, 아직 푸르스름한 하늘에서 갑자기 장대 같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한강잠실공원의 잠실대교 밑에 사람들이 비를 피해 모여 있었다. 아직 추운 날씨에 반바지와 민소매로 이뤄진 딱 붙는 운동복을 입은 이들은 제각각 준비운동을 하거나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중에 유의융 셰프도 끼여 있었다. 오늘은 철인 3종 경기 연습을 하는 날이다. 수영, 사이클링, 마라톤까지 3가지 종목을 쉬지 않고 마쳐야 하는 극한의 운동이니 경기에 나가기 위해서는 그만큼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일반인들은 듣기만 해도 기겁할 코스지만 유의융은 오히려 그 극한의 매력에 이끌렸다. 사이클링의 매력에 빠져 자전거를 타다 철인 3종 경기를 접하고 그때부터 열혈 마니아가 된 것. 그 후 4년 동안 유의융은 꿀 같은 아침잠을 버리고 매주 빠짐없이 일요일 새벽 운동에 나섰다.

철인 3종 경기는 개인 스포츠지만 연습만큼은 팀으로 하는 것이 보통. 그도 그럴 것이 그 어떤 운동보다도 인내심을 요하는 초지구력 운동이다 보니 서로 기운을 북돋아주기도 하거니와 부상 위험이 높아 챙겨줄 이가 있어야 안전하기 때문이다. 잠실대교 아래는 그런 아마추어 선수 팀의 집결지로 일요일 새벽마다 이곳엔 우리나라에서 가장 ‘강한’ 이들이 모인다. 이날 유의융 셰프가 속한 팀은 산악 사이클 연습이 예정되어 있었기에 사람들의 표정엔 근심이 가득했다. 다른 종목은 몰라도 사이클의 경우 비 오는 날은 미끄러질 위험이 높기 때문.

빗줄기가 잦아들자 팀 내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유의융 셰프가 도로에서라도 연습하겠다며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다. 운동복이 젖어 몸이 차가워졌는데도 꿋꿋이 자전거를 타는 그의 뒤로 한강이 펼쳐진다. 그런데 그 순간 한강의 풍경이 이상하다. 빗줄기에 가려 무섭게 일렁이는 잿빛 물속으로 스윔슈트를 입은 이들이 하나둘 뛰어들기 시작한다. 그 모습에 어안이 벙벙한데 “원래 물속이 더 따뜻해서 괜찮아요”라며 유의융과 팀원들은 덤덤하게 이야기한다.

도대체 이들은 어떤 종족이기에 일요일 새벽 5시에 모여 한강을 왕복하고 자전거로 팔당댐까지 갔다 돌아온 뒤 다시 마라톤을 달리는 걸까. 수영, 사이클링, 러닝을 차례대로 쉬지 않고 실시하는 철인 3종 경기이니 일반 사람들은 ‘원래 운동 꽤나 하던 젊고 힘 있는 체육인’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이곳에 모인 이들의 평균연령은 대략 40대 전후에 50~60대도 꽤나 눈에 뛴다. 그리고 모두 수영이나 마라톤, 혹은 자전거 등 한 종목만 하던 ‘일반인’들이다.
 


실제로 철인들이 입을 모아 하는 얘기가 ‘철인 3종 경기는 생활 스포츠’라는 것, 해외에서는 이미 생활 스포츠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4~5시간을 들여 풀코스로 연습하는 것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다른 날에는 가볍게 조깅하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수영을 하는 등 집 근처에서 매일 할 수 있는 운동이라는 것. 그리고 수영이나 사이클을 어느 정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고 한다. 철인 3종 경기를 꾸준히 하면 심폐지구력이 좋아지고 기초체력이 향상돼 일상생활에 도움이 된다.

“중국집 주방은 어떤 곳보다도 힘들어요. 무거운 웍을 다루고 불질이 생명인 요리니까 하루 종일 철과 불 사이에서 씨름하는 일이지요. 주방 일을 하다 보면 나머지 일상을 제대로 영위하기가 힘들어요. 피곤이 쌓이니 일 끝나면 집에 가서 늘어지고, 주말에도 온종일 누워 있기 일쑤예요. 그러니 버텨내는 게 아니라 이겨내야지요. 그러려면 기초체력은 필수구요.”

사이클을 끝낸 유의융은 신발을 바꿔 신고 체온 보호용 저지를 입고 곧바로 마라톤 태세로 전환한다. “올림픽 선수들은 수영에서 사이클, 사이클에서 마라톤으로 전환할 때 8~10초 만에 운동복을 갈아입고 준비해요. 솔직히 잠깐이라도 틈이 나면 앉아서 쉬고 싶지만 이겨내야죠.” 유의융은 지난달 수원 광교에서 열린 대회에 참가해 완주했다. “너무 더워서 정말 죽을 뻔했어요. 같이 나가는 팀원들도 대회를 앞두고 함께 모이면 나가기 싫어 죽겠다, 벌써부터 힘들다고 하소연하면서 에너지 보충을 위해 억지로 밥을 우겨 넣어요.”

아무리 마니아라도 힘든 건 힘든 거니까. “지난번엔 세계 최고 규모의 철인 3종 대회인 하와이 대회에 나갔거든요. 근데 뛰는 곳이 모래밭이라 발이 푹푹 빠지는데 정말 어찌나 힘들던지….” 그렇게 힘들었던 일화를 얘기하는 유의융의 표정은 한껏 상기되어 있었다.
 

비좁고 더운 주방 안에서 하루 종일 불과 씨름하며 꿋꿋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때론 강철 같은 체력이 필요하다. 팔이 떨어질 만큼 무거운 웍을 다루면서도, 치솟는 불길 앞에서도 여유 만만한 중식 셰프 유의융은 철인 3종 경기 아마추어 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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