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삭하게 부서지는 껍질 속 가벼운 크림색 살결이 졸깃하고 부드럽게 씹히는 먹으면 먹을수록 구수한 맛 ‘바게트’. 단시간에 만들어내 싱겁고 퍽퍽하기만 한 대량생산 바게트와는 차원이 다른 천연 발효종 바게트를 배우는 행복한 시간.
바게트의 재발견
베레모를 비스듬히 쓰고 한쪽 팔에는 무심히 바게트를 끼워 넣은 파리지앵. 어린 시절에는 질깃하고 퍽퍽하기만 한 그 빵을 즐겨 먹는 것도 일종의 멋이려니 생각했다. 나이가 들고 ‘제대로 된 바게트’를 만든다는 베이커리에서 바게트를 한 입 베어 문 순간 지구 반대편 파리지앵의 마음을 한순간에 이해할 수 있었다. “오늘도, 내일도 계속해서 먹고 싶다!”
바게트만큼 간단한 재료와 조리법을 가진 빵도 없지만 또 바게트만큼 만드는 이에 따라 그 맛이 하늘과 땅 차이를 보이는 빵도 없다. 프랑스에서 바게트는 기본적으로 밀가루와 이스트, 소금, 물만을 넣어 만드는 것으로 규정해놓았다. 산업화가 이뤄진 뒤에 나온 빵이기에 산업용 이스트가 본래 레서피에 포함되어 있다. 파삭한 겉껍질의 쿠페를 힘차게 뚫고 나오려 하는 속살은 웬만한 전문가가 아니라면 이스트의 힘 없이 내기 어렵다. 대량생산하는 맛없는 바게트는 ‘이스트’나 ‘천연 발효종’의 차이가 아니라 빨리 만들기 위해 반죽과 숙성 시간을 단축했기 때문일 확률이 높다. 바게트는 반죽과 숙성을 충분히 해 풍부하고 균일한 기공과 깊은 풍미가 나야 제맛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도 1950~1960년대 공장에서 대량생산되는 퍽퍽하고 맛없는 바게트 때문에 본래의 위상이 떨어지기도 했다. 이에 프랑스에서는 일반 바게트와 구분되는 ‘정통 바게트’에 대한 규정을 만들었는데 이는 ‘프랑스산 밀가루만을 사용할 것’, ‘화학 첨가물을 사용하지 말 것’, ‘전통 방식으로 만들 것’, ‘수작업으로 모양을 낼 것’ 등이다.
스트레이트법, 폴리시법, 르뱅법
바게트를 ‘전통 방식’으로 만든다는 것은 무엇일까? 바게트를 만드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이스트를 사용하는 정석 ‘스트레이트법’, 물과 밀가루에 소량의 이스트를 넣어 저은 반죽을 미리 만들어두었다가 본반죽에 넣어 사용하는 ‘폴리시(중종)’법, 천연 발효종을 사용하는 ‘르뱅법’, 저온에서 하루 이상 오랫동안 발효시키는 ‘저온 발효법’ 등이 그것이다. 즉 프랑스에서 이야기하는 ‘전통 방식’이란 이스트를 최소한도로 사용하고, 사용하더라도 충분한 시간 발효를 거쳐 천천히 만들어 풍미를 더하는 방식을 말한다. 그중 이스트를 넣어 ‘전 반죽(폴리시)’을 만드는 폴리시법은 일반 스트레이트법에 비해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이스트의 양이 적게 들어가고 속살이 촉촉하고 차지게 되어 바게트를 만들 때 사랑받는 방법이다. 스트레이트법은 가장 널리 알려진 규격화된 방법으로, 폴리시법이나 르뱅법 등으로 만든 바게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볍고 부담 없는 식감을 낸다. 아예 이스트를 넣지 않는 르뱅법으로 만든 바게트는 특유의 고소한 풍미가 일품이다. 본래 ‘오월의 종’에서는 이스트를 폴리시와 액종르뱅을 섞어 반죽하는 ‘폴리시+르뱅’의 혼합법을 사용하지만 르뱅만을 이용한 바게트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에디터의 요청에 의해 ‘100% 액종르뱅 크랜베리호두바게트’ 만드는 방법을 공개했다.
※액종르뱅 만들기
물에 세척해 기름기를 제거한 건포도 100g에 미지근한 물 600g을 부어 소독한 유리병에 담고 상온에 두어 3~4일간 하루에 한 번씩 뚜껑을 열어 가스를 빼며 상태를 보아가며 건포도 액종을 만든다. 유리병에 작은 기포가 가득 올라오고 향긋한 발포의 풍미가 올라오면 액종이 완성된 것. 이 액종의 액체만 걸러내어 액종 200g에 밀가루 150g을 넣고 날가루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만 잘 섞어 그릇에 담고 랩으로 밀봉해 구멍을 내거나 밀폐 용기에 담아 상온(18-24℃)에서 하루 동안 숙성시킨다. 반죽이 부풀어 오르고 복잡한 향을 풍기면 반죽에서 180g을 떼어내 밀가루 250g과 물 200g을 더해 새로 반죽하는 리프레싱 과정을 거친 뒤 다시 하루 동안 숙성시킨다. 반죽의 발효력이 불충분하다 싶으면 하루 더 리프레싱을 반복한다. 반죽이 활발한 발효력을 지닌 상태를 보이면 이것으로 최종 단계의 원종을 만든다. 반죽 180g, 밀가루 250g, 강력분 30g, 소금 4g, 물 250g을 넣고 잘 섞은 뒤 이것을 상온에서 하루 숙성시킨다. 완성된 최종 단계 원종은 냉장고에서 3~4일간 보관하며 사용 가능하고, 매일 리프레싱을 반복할 경우 잘 보존만 하면 평생 사용할 수도 있다. 빵을 만들기 전날 냉장고에서 최종 단계의 원종을 꺼내 원종 50g, 밀가루 200g, 통밀가루 40g, 물 200g을 넣고 잘 섞어 상온에서 하룻밤 숙성시키면 액종르뱅이 완성된다.
자세한 레서피는 <에쎈> 2013년 3월호를 참고하세요.
에디터 K, 나 홀로 재도전!
이스트 없이 르뱅만으로 만들어본 바게트는 일반적인 바게트만큼 많이 부풀어 오르지는 않았다. 보통 ‘르뱅 바게트’라 해도 ‘100% 르뱅 바게트’라는 말이 없는 한 대개 아주 소량의 이스트는 첨가해 부풀기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촬영 시간에 쫓겨 발효 시간을 충분히 내지 못한 이유도 작용했다. 이스트 없이 르뱅으로만 바게트를 만든다고 하더라도 24시간 이상 저온 발효를 한다면 부푸는 힘과 내상 등이 더 좋아질 수 있다. 하지만 겉의 크러스트는 바삭하고 속살은 기분 좋은 밀도로 자꾸만 손이 가는 매력 있는 아이가 나왔다. 하지만 업장용 오븐과 가정용 오븐은 확실히 다르다. 특히나 바게트는 오븐의 영향을 크게 받는 빵이지만 집에서 가정용 오븐을 이용해 다시 한번 만들어보았다.
폴리시법으로 시도
일반 스트레이트법으로 비전문가가 가정용 오븐으로 수준 높은 바게트를 굽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폴리시법’이나 ‘장시간 저온 발효법’을 사용한다면 시간은 더 걸리지만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고 쫄깃한 풍미 좋은 바게트를 얻을 수 있다. 에디터는 하루 전날 물과 밀가루, 소량의 이스트를 넣어 폴리시를 만들어놓는 폴리시법으로 집에서 바게트를 구워보았다. 전날 만들어놓은 폴리시에 밀가루와 몰트액, 소금과 물 등을 넣어 반죽했는데 홈베이킹을 할 때에는 재료에서 물의 비율을 높이는 것이 실패 확률을 낮춘다고 해서 물의 비율을 대폭 늘렸더니 반죽이 지나치게 질어 모양을 잡기 힘들었다. 1차 발효까지는 성공적으로 부풀었지만 너무 진 반죽이라 그런지 성형을 할 때 반죽 자체에 힘이 없어 모양이 퍼지는 경향을 보였다. 결국 2차 발효까지 끝나고 팬에 옮겼을 때 반죽이 힘없이 늘어져 제대로 된 기공이나 바게트 모양을 기대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예열된 오븐에 반죽을 넣고 스팀 기능을 주기 위해 스프레이를 충분히 한 뒤 밑불과 윗불을 모두 켜고 240℃에서 8분, 온도를 220℃로 줄이고 컨벡션 기능으로 10분가량 구웠다. 하드 계열(저배합 반죽)의 빵을 구울 때 컨벡션 기능을 사용하면 오븐 스프링(빵이 부푸는 현상)이 제대로 일어나지 않아 처음 빵이 완전히 부풀 때까지는 컨벡션 기능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빵이 더 이상 부풀지 않을 때 컨벡션 기능으로 전환한 것은 가정용 오븐의 부족한 스팀 기능을 완화해 빵 표면의 껍질을 조금이라도 더 바삭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였다.
결과는?
구워져 나온 빵은 엄밀히 말하면 ‘바게트’라고 할 수는 없었다. 모양이 바게트와 치아바타의 중간일 정도로 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겉은 꽤나 바삭했고 단면을 잘랐을 때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기공이 꽤나 보였으며 홈베이킹에서 가장 흔히 나타나는 실수 중 하나인 ‘떡 같은 질감’은 없었기 때문에 ‘절반의 성공 아닐까’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잘라서 먹어보니 내가 만든 ‘내 자식’이라 그런지 고소하고 물리지 않는 매력이 있고 샌드위치 빵으로도 잘 어울렸다. 언젠가는 집 안에서 ‘바게트의 노래’를 들을 수 있게 되기를!
바삭하게 부서지는 껍질 속 가벼운 크림색 살결이 졸깃하고 부드럽게 씹히는 먹으면 먹을수록 구수한 맛 ‘바게트’. 단시간에 만들어내 싱겁고 퍽퍽하기만 한 대량생산 바게트와는 차원이 다른 천연 발효종 바게트를 배우는 행복한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