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He’s got style!
김성근과 김경문과 로이스터가 빠져나간 뒤로 프로야구는 마치 매뉴얼 북에 따라 움직이는 무생물 같았다. 신출내기 감독들의 몰개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끊이지 않았고, 그런 우려는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2013년 시즌에는 김경문과 김응용이 돌아온다. “야유를 두려워하면 경기를 망친다”는 사실을 아는 명감독 가운데 재야에 묻힌 이는 이제 김성근뿐이다. 김성근은 심지어 그들과도 다르다. 지지하는 이들은 치밀하다고 찬양하고, 비난하는 이들은 독하고 조잡하다고 증오한다. 그리고 그러면서 모두 그를 지켜본다.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개성이 강한 감독, 그가 돌아오면 그야말로 ‘스타일의 완성’이다.
2 변칙이 주는 쾌감
개인적으로 메이저리그보다 우리나라 리그를 더 좋아하는 까닭은, 변칙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가 1백 년 넘는 역사 동안 시나브로 만들어놓은 원칙들을,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무시하곤 한다. 정석이 빠져나간 빈틈을 메우는 것은 임기응변과 권모술수. 김성근은 그 어지러운 세계의 태산북두 같은 인물이다. ‘선발 5이닝’이나 ‘마무리 1이닝’ 따위의 원칙은 그에게 국민교육헌장이나 마찬가지다. 지키면 좋지만 굳이 지킬 필요는 없으며, 대부분의 경우 안 지킨다. 필요하다면 1회라도 선발을 내리고, 9회가 아니라도 마무리를 올린다.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나름대로 확실한 근거가 그 변칙을 뒷받침하며, 정석이 파괴됐을 때를 대비한 백업 플랜까지 구축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는 김성근이 세계 최강이다.
3 월요일까지 즐겁게 해줄 남자
김성근이란 인물의 캐릭터는 정말 흥미롭다. 투수의 어깨 보호를 위해 외과 서적을 탐독할 만큼 철저하면서도, 생각을 여과 없이 토해내는 어린애 같은 면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특정 팀을 모래알 같다고 말해 물의를 일으키는가 하면 자신의 퇴진을 둘러싸고는 후임 감독과 프런트를 싸잡아 비난하기도 한다. 무제한 연장 제도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투수의 대타 기용이나 3루수의 투수 기용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해치워버린다. 옳고 그름은 접어두더라도 최고(最古) 노장으로서 근엄함 따위를 찾아볼 수 없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가 돌아온다면 기자들은 바빠질 것이고, 팬들은 야구 경기가 없는 월요일마저 즐거울 것이다.
4 신생 팀에 주는 선물
신생 팀의 전력이 일정 수준에 오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기간이 오래 걸릴수록 리그는 산만해질 것이다. 김성근은 그 심심함을 최소한으로 줄여줄 몇 안 되는 대안이다. 싸웠다 하면 매만 맞던 태평양 돌핀스와 쌍방울 레이더스를 단숨에 강팀으로 바꿔놓은 지난 역사가 증언한다. 김경문 감독은 NC 다이노스를 빠른 시간 안에 강팀으로 변모시킬 것이다. 그럼으로써 리그를 흥미롭게 만들 것이다. 제10구단도 그래야 한다. 자칫 10구단이 오랫동안 수렁에서 허우적대기라도 한다면 “거봐라, 한국은 아직 멀었다니까” 하는 비아냥거림이 창궐하리라는 사실, 생각하면 끔찍하지 않은가. 10구단을 반대한 쪽에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가 돌아와야 한다.
5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김성근 감독은 1942년생, 우리 나이로 올해 72세다. 일본에서 명감독으로 꼽힌 노무라 가쓰야는 라쿠텐 골든이글스 감독 자리를 끝으로 2009년에 지휘봉을 놓았다. 노무라 감독은 1935년생이다. 메이저리그의 명감독 바비 콕스는 2010년에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감독에서 은퇴했다. 콕스 감독은 김성근 감독보다 한 살 많다. 이렇듯 다른 나라의 예를 비춰보면 김성근 감독이 현역에서 활약할 기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하루빨리 떨이하자는 게 아니라, 더 늦췄다가는 더 이상 그 치밀한(또는 지독한) 야구를 볼 기회가 없어질지 모른다는 의미다. 야구를 ‘쪼끔’ 하는 남자는 프로야구 복귀를 서둘러야 한다.
6 앞장서서 붉은 띠를 동여매야 할 이
한국 프로야구 리그는 야구 선진국의 리그들과 비교하면 아무래도 기형적이며, 때문에 팬들의 바람과 배치되는 사태가 종종 벌어진다. 김성근은 그런 KBO의 행정과 재벌의 구단 운영에 가장 비판적인 감독이다. 특유의 독설로 점잖은 위쪽 양반들을 대놓고 휘감는다. 젊은 감독이라면 눈치 관계상 곧이곧대로 말하는 데 한계가 있을 터. ‘제 뜻을 시러펴디 못할 노미’ 많다면, 답답할 것 없는 누군가가 입을 열어줘야 한다. 산전수전 다 겪은 김성근 감독은 그 누군가 리스트의 가장 위쪽에 자리한 인물이고, 현역에서 그 일을 해준다면 효과는 더 빠르고 탁월할 것이다.
7 선수들까지 독해진다
김성근 밑에서는 선수들도 독해진다. 매 경기 전쟁처럼 임한다. 물론 그 때문에 여러 사람이 머리를 박박 미는 부작용도 있다. 선수들이 페넌트레이스를 한국시리즈 마지막 경기처럼 이 악다물고 플레이하는 쪽과, 그저 좋은 게 좋다는 쪽, 당신은 어느 쪽을 원하는가. 나는 앞쪽이 좋다. 그렇게 되는 가장 빠른 방법은 김성근을 경기장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지금은 LG로 돌아간 최동수 선수의 증언에 따르면, 2010년 SK에 트레이드됐을 때 김성근은 대여섯 명의 코치 군단을 이끌고 선수를 맞아 기량 향상을 논의했다고 한다. 인천으로 쫓겨간 늙은 타자는 다음 시즌 3할4리라는 타율로 그에 보답했다. 선수가 제정신이라면 그런 감독에게 땀과 열정을 바치게 돼 있다. 나는 그런 그의 지휘 아래 선수들이 다시 독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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