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조르주 심농의 메그레 반장 시리즈에 푹 빠져 있다. “겨울에는 코냑 한 통, 그리고 심농 소설과 함께 지내는 게 최고다”라고 갈파했던 루이스 세풀베다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헤밍웨이, T. S. 엘리엇, 앙드레 지드, 발터 벤야민 등 당대의 순수 지성들을 매혹시켰던 장르 소설의 거장, 심농의 글에는 짜릿한 재미는 물론, 그 깊이의 끝을 알 수 없는 지성이 펄펄 살아 뛴다. 어쩌면 추리소설이라는 대중 장르 안에 저리도 인간사의 핵심을 꿰뚫는 고답한 통찰력이 깃들 수 있는 것인지. 결정적 증거 따윈 관심도 없고, 그가 왜 그런 범죄를 저질렀는지를, 그라는 인물은 도대체 누구인지를 인문학적으로 고찰하는 과정이 더 중요한 형사라니.
그의 매혹 넘치는 문체도 그렇지만, 오래된 흑백사진 속, 품이 낙낙한 롱 코트와 중절모, 멋스러운 지팡이로 무장한 채 파이프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는 심농의 모습에서 그야말로 ‘격조’라는 단어의 내밀한 속뜻을 절감한다. 뼛속 깊이 내재된 지성이 하나의 패션 스타일과 합일되어 눈앞에 노출되었을 때의 그 짜릿함이란.
따져보면 오스카 와일드는 또 어땠나. 이른바 ‘컬처 셀러브리티’의 원조로 꼽히는 그는 소설 속 분신, 도리언 그레이의 기품 넘치는 댄디즘을 그대로 자신의 일상에 체현했다. 예술의 비도덕성과 무익성을, 즉 예술지상주의를 만방에 선포한 뒤 빅토리아 시대의 엄숙함을 깨기 위해 스스로 ‘유미주의 복장’을 한 채 사교계에 화려하게 등장하곤 했던 것이다. 몇 년 전, 깃털 바지와 검은 실크 스타킹 차림에 긴 망토를 휘날리며 정면을 주시하고 있는 흑백사진 속 그 자취를 쫓기 위해 더블린 시내의 메리언 광장을 찾았을 때 저절로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더랬다. 나체의 여인상을 지긋이 바라보는 시니컬한 표정과 붉은색과 녹색이 세련되게 뒤섞인 아란 스웨터, 무엇보다 이방인의 시선을 단번에 잡아끄는 선명한 디테일의 스트레이트 팁. 과연 오스카 와일드는 사후 제작된 동상마저도 남달랐다.
그렇다면 스콧 피츠제럴드는? 1920년대 재즈 룩을 완연히 체현한 그의 스타일은 최근 우디 앨런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 그대로 재현된 바 있다. 그리하여 재즈시대 복식사의 교본으로까지 불리는, 김욱동이 옮긴 민음사판 <위대한 개츠비>의 한 대목. ‘얇은 리넨 셔츠, 두꺼운 실크 셔츠, 고급 플란넬 셔츠가 떨어질 때마다… 산홋빛과 능금빛 초록색, 보랏빛과 옅은 오렌지색 줄무늬 셔츠, 소용돌이무늬와 바둑판무늬 셔츠들에는 인디언 블루 빛깔로 그의 이름 머리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데이지는 갑자기 소리를 내며 셔츠에 머리를 파묻고는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너무나 아름다운 셔츠들이에요.’
여기에 굳이 트루먼 카포티까지 덧붙일 필요는 없을 테다. 완벽하게 붙여서 빗어 넘긴 화사한 금발과, 카랑카랑한 미성과, 큼직한 뿔테 안경이 이미 과거의 허상으로 가라앉고 난 다음에도, 심지어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하기 하루 전까지도 여전히 글을 쓰고 있었던 카포티는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까지 벽에 걸려 있는 자신의 분신, 블랙 턱시도를 한없이 주시하고 있었으니.
어쩌다 보니 이야기가 문인(文人)으로 한정된 채 흘렀지만, 기나긴 인류사를 되짚어보면 남다른 지성에 합일되는 자질, 여기에 자신만의 스타일을 올곧게 결합한 멋진 남자들은 밤하늘의 별보다도 더 많았다! 7년이라는 세월을 숨 가쁘게 내달려온 대한민국 최초의 남성 패션지 <아레나>가 목이 쉬도록 끊임없이 설파, 주입시켜온 가치 또한 이에 상응한다. 블랙칼라 워커, 당신이 지닌 남다른 지성과 품성과 품격, 그리고 그 모든 자질을 감싸 안고 표출하는 당신만의 스타일을 우리는 항상 응원하고 지지, 보족한다는 것.
그리하여 <아레나>는 매년 12월이면 화룡점정을 찍는 마음으로, 멋진 남자가 능히 갖춰야 할 그 모든 자질을 스타일(Style)과 열정(Passion)과 확신(Confidence)과 지성(Intelligence), 창조성(Creativity) 등으로 나눠 그에 합당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남성들을 한자리에 모아 축하하고 그 미덕을 장려해왔다. 해마다 ‘역대 최고의 시상식’이라는 타이틀이 남부끄럽지 않았던 그 역사에 또 하나의 빛나는 결실이 맺혔다. 배우 이병헌, 가수 이승철, 영화감독 최동훈, 미술가 박찬경, 프로듀서 신원호라는 올해 최고의 남성들은 물론, 20년간 남자보다 더 남자의 스타일을 잘 알고 그를 사랑해왔던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우영미 선생까지 특별히 이 영광스러운 자리를 함께하게 되었다. 여기에 당신이 깜짝 놀랄 또 다른 카리스마까지 현장에서 선뵐 예정이다.
자, 이제는 숨 가쁘게 달려온 2012년의 고단과 압박을 잠시 내려놓을 때다. <아레나>는 이 빛나는 대한민국 대표 블랙칼라 워커들을 한데 모아 밤새도록 격려와 환호와 박수를 칠 준비를 완벽하게 마쳤다. 당신 또한 그 박수와 환호성을 기꺼이, 그리고 즐겁게 함께해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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