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의 술잔엔 눈물이 반이다, 시인 김현승이 그랬다. 그래, 아들을 생각하는 김종학 화백의 편지에도 눈물이 반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겉모습은 무덤덤하기 그지없다. 보통의 아비와 아들의 관계가 그러하듯, 문장엔 형용사 하나 없고 말은 참 짧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편지글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낸 편지 묶음이 공개되는 일이 흔치 않다는 데, 아니 이런 편지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5월을 맞아 공개하는 화가 김종학의 책에는 그가 자식들에게 보낸 연서가 가득하다. 설악의 화가라 불리는 그는 편지마다 이 땅의 풍경을 담았다. 자필 편지를 둘러싼 그림은 대가의 필력을 그대로 보여준다. 아버지의 그림은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지만 글로 표현하지 못하는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한가득이다. 글을 읽으며 실없이 웃게 되는 건 무뚝뚝한 이 시대 아버지의 순진한 외사랑이 느껴져서다. “사랑하는 홍석아. 넌 꿀 먹은 벙어리냐. 엽서라도 써서 회답을 좀 보내봐라. 자기가 할 일을 내일로 미루거나 안 하는 습관은 좋지 못한 습관이다. 그럼 건강에 조심하고, 열심히 공부하도록. 설악산에서 아버지가.” 답장을 안 하는 아들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이 순진하고 솔직한 문장이 그 증거다. 이 책이 소중한 건 누구에게나 아버지가 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있는 그 아버지가 이 책을 보는 내내 떠오르기 때문이다. 5월이라 그런가, 더더욱 살가운 책이다. 책 제목은 <김종학의 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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