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보다 실제가 훨씬 더 예쁘다. 그런데 사람들은 화면만 볼 수밖에 없다. 몰라봐서 화나겠다.
많이 나아졌다. 잘 나올 때도 있다. 잠 못 자니니까 촬영할 때 붓고…. 노력하긴 하는데 어쩔 수 없으니까 쿨하게 받아들인다.
영국 간다고 들었다. 보통 쉴 땐 휴양지에 간다.
휴양지는 쉴 때마다 많이 갔다. 잡지 촬영할 때 많이 가기도 했고. 에든버러와 런던에 갈 거다.
가서 꼭 하고 싶은 게 있나?
음, 운명적인 만남? 하하하. 제일 하고 싶은 것이긴 한데, 그건 쉽지 않으니…. 영화에나 나올 얘기지만, 짠 하고 나타났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인생의) 영화 한 편 찍고 오고 싶은 거군.
하하, 아니다. 그냥 쇼핑이나 하겠지. 영국의 스트리트 패션을 좋아한다. 직접 가서 보고 싶다. 유럽에 가면 쇼핑도 할 수 있고, 문화재도 볼 수 있고, 자연에서 놀 수도 있어서 좋다. 생각보다 좁기도 하고. 걷는 거 좋아한다.
영국 날씨는 안 좋을 수도 있겠다.
날씨는 뭐, 내 마음이 별로 안 좋으니까, 우울하니까 어울린다.
왜 우울한가?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이하 <하이킥>)이 끝나서 우울한 건가?
뭔가 하나가 없어져버렸으니까. 캐릭터와 이별하기도 했고.
시트콤은 기존에 하던 연기와 달라서 끝나니 소감이 남다르겠다. 하나의 캐릭터지만 그 안에서 다양한 역할, 다양한 미션을 수행해야 했으니까.
진짜 그 말이 맞다. 미션 수행하듯 했다. 아, 이걸 어떻게 해, 하면서. 늘 내 한계는 어디인지 감독님과 나 스스로 시험했다. 이거 진짜 못할 것 같은데, 하다가 겨우겨우 넘기고.
가장 당황스러운 미션이 뭐였나?
빨간 머리로 염색하고 나오는 거와 춤추는 거! 셔플 댄스에 관심이 없었다. 난 유행 같은 것에 관심 없다. 그런데 셔플 댄스를 갑자기 추라는 거다. 못하는데 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개그 따라 하는 것도 어렵고. <개그콘서트>도 잘 안 보는데.
고생했다. 그래도 시트콤을 하면서 얻은 게 많지 않았나? 잃은 것도 있겠지만.
웃음을 많이 잃었다. 촬영이 너무 힘들었다. 7개월 동안 쉬는 날 없이 하루에 한두 시간 잤으니까. 집에서 씻고만 나오기도 하고, 3일 밤샐 때도 있었다. 그러다 보면 성격이 파탄 난다. 대신 얻은 건 음, 젊은 남자 팬들, 하하하. 팬층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나이 드신 아저씨 팬들이 많았는데 이젠 초·중·고 젊은 남자 팬이 많아졌다. 사인회 하면 느낀다. 예전과 달리 여자 팬이 열 명도 안 되게 줄었다, 하하. 여자들이 날 싫어하나? 이런 생각까지 했다.
그래도 남자 팬이 많아지니 좋지 않나?
좋긴 하다. 왜 나는 젊은 친구들한테 인기가 없을까, 고민했으니까. 남자들의 로망, 이상형, 이런 말을 너무 듣고 싶었다.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서….
그러고 보니 데뷔한 지 7년째다. 늦다면 늦은 거다. 왜 날 몰라주느냐고 괴로워한 적이 있었나?
내색하진 않아도 많았다. 비교되기도 하고, 나보다 어린 친구들 잘되는 거 보면 부럽기도 했다. 그때마다 부러워하다가도, 신경 쓰지 말자, 내게는 나만의 길이 있고 나도 언젠가 잘되겠지, 하면서 질투하기보단 인정했다. 내가 부족하니까 안 되겠지, 하기도 하고. 질투할 시간에 날 더 돌아봤다.
시트콤이 들어오자, 이제 때가 왔다고 생각했겠다.
그럼! 시트콤 너무 하고 싶었는데 오디션 다 떨어져서…. 재미있어 보이잖나. 그동안 김병욱 감독님 시트콤을 다 봤다. 그런 분과 함께해서 너무 즐거웠다. 다만 막판에 너무 고생해서 힘든 기억밖에 없어 좀 아쉽다. 초반처럼 좀 더 신나게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여건상 이렇게 길게, 많이 한 건 처음이라 잘 적응하진 못했다. 그게 아쉽다.
“녹화할 때 캠코더로 같이 찍었다. 그렇게 두세 번씩 미리 보고, 본방 사수하고, 다시 보기로 또 보고, 인터넷으로 보고, 대여섯 번씩 모니터했다. 나중에 어느 정도 캐릭터가 잡히고 나선 못했지만, 중반까진 그렇게 했다. 열심히 했다. 후회 없이.”
젊은 배우들이 많이 나온 것도 장단점이 있었을 듯하다. 은근히 비교되잖나.
처음엔 많이 긴장했다. 다들 어리고 푸릇푸릇한 친구들이니까. 나도 나름 어린데 선생님을 맡으라는 거다. 난 대학생 역일 줄 알았는데. 교복도 입고 싶었는데. 그들의 파릇파릇함을 내가 따라갈 수 없으니까 초반엔 긴장했다. 지원이는 CF로 되게 예쁘게 나온 친구고 진희는 영화계에서 떠오르는 샛별이었다. 그 친구들에게 포커스가 많이 갔다. 제2의 신세경이 되느냐 마느냐. 반면 나한테는 별로 관심도 없었고. 그냥 어, 단아한 친구인데 왜 저걸 하지? 어떻게 할까? 잘할 수 있을까? 못하겠지? 약간 이랬던 거 같다. 초반에 어떻게 승부할까 고민해서, 뭐라도 튀어야 하니까 앞머리도 잘랐다. 그들의 어리고 푸릇푸릇한 걸 따라갈 순 없으니 성숙하고 여성스러운 걸로 승부하자고 캐릭터도 잡았다. 많이 긴장했다. 그러다가 좀 반응을 얻고 나서 귀여운 것도 하면서 조금씩 바꿔나갔다. 나중에는 그냥 인정했다. 그래, 너희들 어리고 예뻐.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기술이 사실을 인정하는 거더라. 하지만 알면서도 잘 안 된다.
나도 잘 안 된다, 하하하. 그건 워낙 오래 겪었던 일이기 때문에 그냥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거다. 그 시간에 날 더 돌아보는 게 중요하다. 녹화할 때 캠코더로 같이 찍었다. 그렇게 두세 번씩 미리 보고, 본방 사수하고, 다시 보기로 또 보고, 인터넷으로 보고, 대여섯 번씩 모니터했다. 나중에 어느 정도 캐릭터가 잡히고 나선 못했지만, 중반까진 그렇게 했다. 열심히 했다. 후회 없이.
그렇게 하면 배우로서 자신의 장단점이 보이겠다.
일단 장점은 그리 예쁘게 생기지 않아서 편해 보이는 것? 옆집 아이 같은데, 옆집에 은근히 없고.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보면 어, 얘가 이렇게 예뻤네? 할 때도 있고. 그래서 남자분들이 좋아한 거 같다. 표정이 다양한 것도 장점이다. 이번에 다양한 내 표정을 많이 지었다. 정극에서는 신경을 뺏기니까 그렇게 많이 못했다. 이번엔 편하게 막 했다. 단점은 편하게 표정을 지을 때 너무 못생겨 보인다는 거다. 관리하려 했는데 잘 안 되더라. 그러면서 남자 팬들이 좀 떨어져 나갔다, 하하.
표정이 확확 바뀌긴 한다. 지금 앞에서 말할 때도.
그 정도로 못생겼는지는 몰랐다.
못생겼다는 건 아니다. 푸근하다. 어려웠다가, 에이 그러지 마 나 어렵지 않아, 라고 말해주는 느낌이다. 강아지 같다고 할까.
하하하. 난 고양이상이고 싶은데.
영화 <영도다리> 장면이 노출 연기로 뉴스로 나오더라. 그런 거 보면 자신이 인기 있구나, 싶겠다. 우선 황당하겠지만.
노출 얘기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동이> 할 때는 좀 걱정했다. 매우 단아한 이미지로 나오는데, 그때 영화가 개봉하면서 노출 마케팅을 하기도 했으니까. 그때는 좀 민폐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아무 느낌 없다. 또 하나 나왔구나, 정도.
초월한 사람 말투다. <하이킥>을 통해 수행이라도 한 건가?
나한테는 비슷한 의미다. <하이킥> 하면서 잠 못 자 진짜 괴로웠다. 예민해져서 화나는데 대본은 봐야 하고, 그런데 대본 볼 시간은 없고, 졸린데 잘 수도 없고. 다른 사람들도 많이 예민해졌다. 그래서 오해도 많이 받았다. 처음에 잘 웃어서 좋게 보셨는데, 나중에는 웃지 말라고 화내기도 했다. 나중에는 웃고 싶어서 웃는 게 아니라 진짜 신경이 이상해져서 웃게 됐다. 그러다 점점 덜 웃으니까, 이젠 변했다는 얘기도 듣고. 말이 많은 곳이다. 연기가 풀리지 않아 나 자신에게 짜증냈는데, 왜 저렇게 힘들어하냐고 말 나오고. 안 좋게 보는 분들도 좀 있었던 거 같다. 내 진심은 그게 아닌데, 오해도 많이 받아 서럽고 억울했다. 밖에서는 팬이 많이 좋아해줬지만, 현장에선 느낄 수 없는 밖의 얘기다. 난 만날 여기 있는데, 이 사람들한테 사랑받지 못해서 더 힘들었다. 그래도 감독님은 많이 좋아해주셨다. 감독님과 몇몇 사람들 덕분에 버텼다. 대다수를 얻진 못했지만 몇몇 사람은 얻었다. 내 사람이 생긴 거 같다.
원래 잘 참는 성격인가? 아니면 즉각 표현하는 성격인가?
원래 잘 참는다. 그런데 참다 보니 어느 순간 연기를 못하겠더라. 솔직해야 연기하는데, 다 참으니 어떻게 연기하나. 그게 참 어렵다. 우리나라는 연기도 잘하고 사람도 좋기를 바란다. 좋은 여자이기도 바라고. 내 나이에 그걸 다 충족시키기란 너무 힘들다.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벌써 스물여섯이더라. 어리고 여자인데 왜 나한테 가혹하게 할까, 생각하다 보니까 애로 볼 나이가 아닌 거다. 그 사람들 눈에는 내가 이미 애로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내 인생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으로 보이겠다고, 이번에 느꼈다.
“난 만날 여기 있는데, 이 사람들한테 사랑받지 못해서 더 힘들었다. 그래도 감독님은 많이 좋아해주셨다. 감독님과 몇몇 사람들 덕분에 버텼다. 대다수를 얻진 못했지만 몇몇 사람은 얻었다. 내 사람이 생긴 거 같다.”
기부나 봉사단체 홍보대사도 하는 걸 보면 애로 보이진 않는다.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나?
예전에는 그냥 나 살기 바빴다. 그때 도와주신 분들이 몇 분 있다. 그런 걸 겪으면서 많이 느꼈다. 살 만한 세상이구나. 내가 많이 갖진 못했지만 예전보다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나는 벌면 다 쌓아놓는다. 잘 안 쓴다. 이제는 나한테 쓰지만, 어느 정도 있어야 신경 안 쓰고 편히 연기할 수 있다. 이제 여유가 좀 생기니 나도 도와야 할 거 같았다. 나도 받았으니까. 그런 걸 떠나, 사실 내 만족이다. 그 사람들 좋은 것도 있지만, 그건 잠깐이다. 나쁘게 살다가 나도 좋은 일 한 번 했구나, 생각하는 거다. 살면서 나쁜 생각도 많이 하잖나. 치유되는 듯하다. 그러면서 많이 배운다. 순수해지고 깨끗해지는 것 같은 느낌?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연애도 해야지?
하고 싶다, 하하하. 처음에는 제대로 할 때까지 일만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이킥> 때는 그랬다. 물론 연애할 수도 없는 빡빡한 스케줄이었지만. 그래서 오는 사람 다 막았다. 난 별로면 그냥 끊는다. 그게 그 사람을 위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러면 안 되겠더라. 박 선생을 연기하며 느꼈다. 평소에 애교도 부리고, 웃는 얼굴로 편하게 해주면서 너무 가로막으면 안 된다고. 이성 관계가 싫더라도, 보통 남녀 사이에서도 ‘밀당’을 해줘야 하는 거 같다. 너무 편하게 생각해서 막 대하거나, 내가 거절당한 거 같아서 막 대하기도 한다. 아, 정말 어렵다. 연기 외에 가십에 시달리기 싫어서 관계를 끊었는데, 사람 관계 자체가 나빠지기도 한다.
<하이킥>을 통해 사회생활의 단면을 배웠다. 좀 씁쓸하겠다.
씁쓸한 건, 그런데도 아무도 없는 거다. 어느 날 지석 오빠가 물어봤다. 진짜 연락하는 사람 없냐고. 없다고 했더니 왜 그렇게 사냐고 하더라. 불쌍해 보였나 보다. 집에 가서 생각해보니 이러면 안 되겠더라.
맞다. 꼭 연애하지 않더라도 누굴 생각하는 마음이 삶의 윤활유가 된다.
잘 지낼 수도 있는데, 너무 다 끊어버렸다. 그땐 그게 편해서 그렇게 했다. 연기만 하고 싶고, 속닥대는 거 듣기 싫어서. 내가 자처한 거지만, 참 외롭다.
이번에 영국 가서 진짜 영화처럼 인연을 만나야겠다.
만났으면 좋겠다. 나 일 안 하면 착하다. 일 안 하면 박 선생과 똑같다. 아, 일 초반이나 짧은 일을 할 때도 그렇다. 작업 기간이 두세 달인 미니시리즈 하면 괜찮다. 세 달까지는 진짜 천사였다. 지금 악마가 된 지 얼마 안 돼서 이렇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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