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소호에 위치한 그의 스튜디오는 아담하고 소박했다. 그의 명성에 비하면 좁고 허름하다고 하는 것이 맞겠지만, 그의 활동들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그에게 걸맞는 스튜디오다. 조나단 반브룩은 1990년부터 그래픽 디자인, 산업 디자인, 서체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작업을 해왔다. 그는 모리 아트센터와 사치 갤러리 같은 세계적인 미술관 및 문화예술 기관을 위한 상업적 프로젝트와 영국의 아티스트 데미언 허스트와 함께 작업한 프로젝트로 유명하다. 데미언 허스트의 작품집 <나는 나의 남은 일생을 도처에서 모든 사람과 일대일로 항상, 영원히 지금처럼 보내고 싶다(I Want to Spend the Rest of My Life Everywhere, With Everyone, One to One, Always, Forever, Now.>의 북 디자인은 뉴욕아트디렉터즈 클럽의 ‘베스트오브쇼’상과 도쿄타입디렉터즈클럽, 뉴욕타입디렉터즈클럽 등에서 수많은 상을 받았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상업 프로젝트와 함께 그가 독자적으로 진행하는 비영리 프로젝트를 거의 동일한 분량으로 진행한다는 점이다. 애초에 돈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다. 자신도 한때는 기업의 디자이너로 일했지만 소비자의 맹목적인 브랜드 숭배의 폐해와 대기업의 보이지 않는 횡포를 깨닫고 이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슈들을 포스터로 제작해 발표하고 있다. 반브룩의 작업은 다른 사람의 설명이나 해석이 필요없다. 그가 제시하는 명제는 언제나 쉽고 명확하다. 이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있어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는 얘기다. 전 세계적으로 널리 ‘카피’되고 있는 그의 유명한 서체 ‘메이슨’은 그리스의 건축 양식과 르네상스 시대의 필사체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그는 중세의 필사본이나 석판, 교회 벽화, 18. 19세기의 레터링 등에서 형태를 채집한 뒤, 여기에다 현대적 컨텍스트를 부여하여 당당한 ‘컨템포러리 서체’-프로토 타입에서부터 엣소셋, 나일론, 인피델 등 -로 부활시킨다. 그의 서체는 동일한 서체가 매우 다른 맥락과 상황에서 사용된다. 예를 들면, 메이슨 서체는 유럽 고도시의 고풍스런 호텔의 로고 타입에 쓰이는가 하면, 게임 소프트웨어의 타이틀 로고에 등장하기도 한다. 반브룩은 이 세상을 캔버스 삼아 자신의 그래픽 문법인 모순어법과 아이러니를 실제 상황으로 보여주기 위해 자신의 서체 보급을 위한 회사인 바이러스(Virus)를 세웠다. 이런 점에서 그의 작품이 짧은 아이디어에 기초한 ‘패러디’와 차별된다. 그의 작품은 순간적인 포착이 아니라 역사성이 내재해 있다. 물론, 작품 속 그의 얘기가 절대 선은 아니다. 북한에 대해 말하는 것 또한 어디까지나 이방인의 시선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자신의 생각을 그래픽화하는 방법이다. 그는 ‘포스터’라는 방식, 과거 통치자들이 정치적 선동을 이끌어내는 데 있어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했던 이 매체를 사용한다. 실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보다는 비유적인 메시지로 전달, 상황을 악화시키기보다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자신의 생각을 퍼뜨린다. 바로, 긍정의 바이러스인 셈이다. ‘바이러스’라는 당신의 회사에 대해 얘기해달라. 회사 설립의 계기가 있었다고 들었다. 처음 에미그레(Emigre)라는 회사의 의뢰로 서체 디자인을 했다. 그리고 그 서체의 이름을 ‘MANSON’이라고 지었다. 미국의 악명 높은 연쇄 살인범인 찰스 맨슨의 이름에서 따왔는데 에미그레 측이 우리에게 통보도 하지 않고 ‘MASON’으로 바꿔버렸다. 다분히 의도적인 이 행위로 인해서 내가 만든 서체를 보급하기 위해 따로 회사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반브룩은 자신의 매킨토시에서 에미그레와 주고받은 서신을 캡처해놓은 사진을 에미그레 쪽에서 말 바꾸기한 증거라며 보여줬다). 바이러스(Virus Foundery)는 그런 필요로 설립한 회사다. 디자이너가 자신의 서체를 지킬 수 있는 회사를 생각했다. ‘바이러스(Virus)’라고 이름 지은 이유가 있는가. 바이러스 하면 병과 연관 짓거나 컴퓨터를 파괴하는 컴퓨터 바이러스를 생각한다. 그 의미 그대로다. 유기체인 바이러스가 기계와 모순되는 것도 재밌다고 생각했다. 1950년대에는 공산주의를 공산주의 바이러스라고 부른 것처럼 정치적인 혼란을 의미하기도 한다. 어떻게 해서 그래픽 디자이너가 됐는가. 청소년기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궁금하다. 열여섯 살에 대학에 갔다. 가정환경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넉넉하지도 못했고 이른바 결손가정이었다. 어머니는 세 번 결혼을 했고 나는 개성이 다른 세 사람을 아버지로 받아들여야 했다. 어린 나이에 이런 상황은 정서적으로 상당한 압박감을 준다. 또, 부모와 교감을 나누고 소통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감 형성에도 좋지 않다. 어머니는 자동차 공장에서 일하면서 가정을 돌봤는데 전업주부인 친구 어머니들과 달리 제대로 된 식사를 챙겨주지 못했다. 당연히 어머니는 요리 솜씨가 별로다. 식생활의 질은 수입이나 삶의 기대치와 절대적으로 관련이 있는 것이다. 가정에 머물면서 요리를 해주는 대부분의 친구 어머니들과 달리, 우리 어머니는 자동차 공장에서 정규직으로 근무하면서 식구들을 돌봐야 했다. 그래서 매일 아침·저녁을 정성스레 준비할 만한 시간이 없었다. 말하자면, 우리 어머니의 형편없는 요리 솜씨는 노동 계급에 대한 이 사회의 착취 행위인 ‘작업’에서 연유된 것이라 하겠다. 특히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가 된 계기나 이유가 있는가. 어려서부터 내가 가지고 싶어 했던 힘은 시각적인 것이었다. 글자를 디자인한 것은 이런 시각적인 힘을 믿어서다. 글씨의 모양이 아름답지 않은가. 돌을 쪼아서 새겨놓은 글씨들과 트로얀의 기둥이나 교회에 조각된 글씨 같은 것들은 뭐랄까, 작업하는 사람의 정신이 새겨져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내가 만든 타이포그래피는 나의 정신을 반영하고 있다. 서체를 디자인할 때는 그것을 쓸 사람들을 생각하는 게 아니고 서체와 그 자신 사이에만 존재하는 진행 과정에 몰두한다. 당신은 ‘인정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 영향력 있는 작업을 할 수 있는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가 됐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혔던데 어떤 의미인가. 나는 정치인이 아니다. 법을 바꿀 힘이나 권력은 나에게 없다. 하지만,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을 본다면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 알려야 한다. 다국적 기업은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피해를 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 누구로부터도 통제를 받지 않는다. 이건 마치 강대국의 권력 같은 것이다. 이런 얘기들을 하는 데 있어서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는 내게 효과적인 직업인 셈이다. 영국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사는 것은 어떤가. 내가 태어나고 살아온 곳이 영국이다. 당연히 내 정신적인 바탕은 영국이다. 나에게 영국적인 것이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영국 안에서 쓰여진 영국스러움이 의미가 있다. 영국은 그래픽 디자인을 하는 사람에게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곳이다. 결코 틀에 갇혀 있지 않는 세계의 디자이너들이 런던에 있다. 나로서는 대단히 도전을 많이 받는다. 그래픽 속에 담 당신의 삶의 방식에서는 어떻게 드러나는가. 나이키를 신거나 입지 않고 스타벅스에도 가지 않는다.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서 회사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오려고 한다. 해외로 나가야 해서 할 수 없이 비행기를 타는 경우를 제외하면 비행기를 타고 움직이지도 않는다. 불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특별히 그렇지 않다. 가족에게도 이해를 시켰다. 디자이너로서 당신이 하는 작업들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사람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모든 시각 예술이 기본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들이다. 그것은 존재의 고통, 내가 느끼는 아름다움,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 사람들이 저지르는 행위에 대한 부끄러움, 더 나은 세상에 대한 믿음, 그리고 주위에서 목격되는 부정 등이다. 이 과정과 함께 내가 지속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디자인에 대한 인식을 깨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독자인 BCW는 당신처럼 창의적이면서 문화예술에 관련된 직종의 사람들이다. 이런 계통에 있는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재능’에 관해서 고민한다. 당신은 언제 스스로의 재능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됐는가. 재능에 관해서는 항상 회의적이다. 나는 재능이 없다고 생각한다. 당신처럼 세계적인 그래픽 디자이너가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다니 이상이 너무 높은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 사실이다. 재능의 문제는 언제나 고민하게 되는 주제다. 디자이너란 무엇하는 사람인가. 복잡한 철학을 단순하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의 작품은 쉽고 재미있다. 그런데, 문제에 대한 진지한 접근 대신 단순히 상황과 이슈를 희화화해서, 웃고 넘기는 것에 그치게 하고 마는 것은 아닐까.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전혀 관심 갖지 않는 것보다는 한 번이라도 웃고 즐기게 만들어서 관심 갖도록 하는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다국적 기업을 싫어하는 이유라도 있는가. 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해서인가 아니면 다국적 기업에 대해서만인가. 다국적 기업은 세계를 평준화한다. 이 평준화는 평범함을 평준화하는 것을 말한다. 내가 했던 작업 중 하나인 글로버날라이제이션(Globanalizaion)은 이런 폭력적인 평준화를 비꼬는 것이다. 세계화를 뜻하는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의 ‘Globa’와 ‘lization’ 사이에 나트륨을 뜻하는 원소기호 ‘NA’를 삽입해서 글로버날라이제이션(Globanalization)을 만들었다. 여기서 중앙의 ‘banal’은 ‘평범한’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다국적 기업의 폐해도, 세계화의 병폐에도 관심을 기울일 시간이 없다. 모두들 자기 개인의 문제만으로도 벅차다. 당신이 일반인들과 달리 이런 거시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있는가. 사람들은 모두 카드 대금 지불하느라 허덕이면서 살아간다. 때문에 사람들은 신념이 아닌 경제적인 논리에 맞춰서 살아간다. 하지만, 그래서는 아무런 해결책도 기대할 수 없다. 아무런 발전이 없는 것이다. 디자인에 관해서 우리는 개인적인 차원이 아닌 좀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책임에 대한 문제는 디자인을 하는 행위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총체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하나의 현실적인 문제인 것이다. 일하는 방식을 바꾸기 어렵다면, 당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한 사람의 소비자 입장에서 소비해보라. 즉, 소비자로서 문제가 있는 회사의 제품을 구입하지 않는 것이다. 숭고한 자선사업에 참여할 필요도 없다. 그래픽 디자인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디자인 작업을 하면서 그 누구보다도 이 질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답은 ‘아니다’이다. 그래픽 디자인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나로서는 두려운 일이었다. 내가 하는 일로 세상을 전혀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나라는 존재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내 작업이 곧 내 인생’이라는 생각을 해왔다. 그런데, 나는 이 표현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작업이 곧 내 인생’이었던 것이 아니라 ‘내 삶이 바로 내 작업’이었던 것이다. 일상생활의 활동과 디자인을 분리시켜서는 안 되며 분리시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좋은 디자인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나부터 바뀌면 세상이 곧 바뀌는 게 아니겠는가. 앞으로의 계획은? 2007년에 런던에서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
|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