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예를 갖추고 있다는 최고의 표현이 수트라면, 그보다 한 단계 아래는 재킷이다. 수트 차림이 너무 과할 때, 또는 미처 수트를 입지 못했을 때 재킷으로나마 격식을 갖추는 거다. 그러니 재킷을 입은 남자는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나는 당신을 존중합니다’라고 온몸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기에. 재킷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이러하니 재킷의 계절, 봄이 왔다 하여 어느 장소에서든 재킷을 입는 건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길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놀이공원엔 재킷보다는 보머류가 어울리고, 등산이나 바닷가 여행엔 재킷보단 점퍼류가 낫다는 것. 그렇지만 재킷의 시작은 지극히 캐주얼하다는 것을 아는가. 그 시초는 스포츠 재킷이다. 일부 상류층이 스포츠를 즐길 때마다 주로 입었던 옷으로 일반인도 레저를 즐길 때 입으면서 유행하기 시작한 것. 그러니 재킷은 충분히 자유로울 수 있다. 여기 남자들처럼 구깃구깃한 느낌을 살려, 소매도 무심히 둘둘 걷어 올리고, 라펠도 자유자재로 세워서 ‘막’ 입으면 그만이다.
이번 시즌엔 재킷의 용도를 넓히기 위한 디자이너들의 노력이 엿보인다. 남자들을 오징어처럼 흐물흐물하게 허물어트리는 이번 시즌 리조트 무드가 재킷이라고 비껴갈 리가 없다.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면과 리넨 소재의
질감을 살린, 길이가 긴 재킷으로 편안한 느낌을 한껏 과시했다. 사파리 스타일 재킷들은 통 넓은 바지와 매치하여 여유로운 남자의 내음을 한껏 풍겼다. 에르메스는 재킷 형태를 자유자재로 변형하여 점퍼와도 같은 편리한 응용법을 선보였다. 바닷바람을 맞으면 살포시 날리는 실루엣은 이미 ‘몸뚱아리’를 저 바다 위에 얹어놓는다. 우영미는 지퍼 장식을 달아 때로는 점퍼처럼 입을 수 있는 재킷을 내놓았다. 컬러풀한 셔츠와 패턴 티셔츠, 낙낙한 니트 톱 어떤 것과도 잘 어울린다. Z 제냐는 니트 소재의 정형화되지 않은 장점을 이용하여 부드러운 실루엣을 살린 재킷을 런웨이에 올렸다. 재킷과 카디건의 경계라고나 할까. 그러니 그 얼마나 가볍고 편안한 착용감을 주겠나. 미쏘니와 아이스버그는 패딩 소재를 이용해 윈드브레이커 역할을 톡톡히 할 재킷을 자랑했다. 가방 안에 구깃구깃 집어넣었다가 꺼내 입어도 구김을 신경 쓸 필요 없는 재킷이다. 무심한 남자들에겐 안성맞춤.
이 봄 남자들에게 희소식은 재킷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 이렇게 정형화되지 않은, 매일 입어도 좋을 재킷들이 난무하니 하루도 빼놓지 않고 재킷 스타일링을 한다 해도 불편함이 없을 것이다. 말하자면 점퍼 같으면서 카디건 같기도 한, 입은 듯 안 입은 듯한 재킷들이 한가득이란 말이다. 봄날에 찾아든 반가운 소식, 바로 ‘daily jacket’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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