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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3인 3색

에디터가 갔다. 누구는 클럽에, 누구는 병원에, 누구는 예비군 훈련장에 갔다. 클럽과 병원과 예비군 훈련장은 하등 연관성이 없다. 하지만 통하는 무엇이 있다. 모두 어딘가로 가서 무언가를 느꼈다. 그 자취를 기록한다.

UpdatedOn December 23, 2011



“클럽 가자!” 후배 Y는 에디터를 보고 2.5초 머뭇거린다. 축구 게임 <2012 위닝일레븐>에서 접전을 벌인 직후였다. 에디터는 바르샤로 Y의 AC밀란을 잡았다. 게임은 이겼을 때 그만둬야 제맛이다. 재경기를 하시겠습니까? 항목에 커서가 머문다. 검지만 놀리면 다시 격전의 15분이 시작된다. 복지부동. 클럽을 향한 에디터의 각오, 느꼈으리라. Y는 체념한 듯 일어선다. 게임 패드를 만지작거리던 Y의 손이 어른거린다. “가요!”


후배 Y는 에디터가 편하게 클럽을 가자고 할, 유일한 인물이다. 고등학교 친구들은 클럽보다 성인 나이트클럽이 어울린다. 혹은 동네 호프집에서 닭다리나 뜯는 게 적절하다. 대학교 친구들은 순수 주당이다. 오직 술과 안주, 그리고 대화에 만족한다. 이러니 클럽에 같이 갈 사람이 없다. Y가 유일하다. 공적 반, 사적 반 Y와 몇 번 클럽에 가기도 했다. 그때 알았다. 우린, 가면 알아서 잘 논다. 서로 신경 쓰지 않고 따로 또 같이. 에디터가 클럽 갈 때 Y를 찾는 이유다. 하지만 잘 논 지도, 어느덧 몇 년이 흘렀다.


황금투구의 전설. 에디터가 클럽의 존재를 알게 된 계기였다. 클럽 이름이 황금투구란다. 이집트 파라오와 호형호제하지 않을까 싶은 이름이었다. 지금은 없어졌다. 황금투구는 명월관으로 바뀌고, 명월관은 지금까지 홍대 클럽의 원로로 남아 있다. 대학 친구 왈, “그곳에 가면 삿갓 쓰고 도포 입은 사람이 춤추기도 해. 그것도 전자음에 맞춰.” 삿갓과 도포, 전자음과 춤은 쉽게 연결되지 않았다. 홍대와 신촌을 지역 기반으로 삼는 친구는 덧붙였다. “종업원이 망아지 타고 뛰어다니고, 광복절에는 테이블 위에 올라가 태극기를 휘두르기도 해.” 경기도를 지역 기반으로 삼던 에디터에게 그곳은 전설이었다. 그렇게 자유로운 곳이 있었다니. 당시 에디터는 나이트클럽만 알던 시기였다. 어떤 면에서  순수하던 시절이었다.
나이트클럽은 집단 군무의 장이었다. 무대를 보지 않고 좌석을 보고 열 맞춰 춤을 췄다. 좌석을 봐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냥 봤다. 무대 딱, 끄트머리에서 좌석을 보는 게 좋았다. 어떤 댄스 음악이든 춤 동작을 맞출 수 있었다. 누가 똑 떨어지게 추는가, 하는 점이 춤 좀 추는 기준이었다. 그러면서 함께한다는 기쁨이 있었다. 그때는 집단이 주름잡던 시대였다. 옷이 하나 유행하면 모두 교복처럼 입었다. 춤과 노래도 한 번 유행하면 일치단결했다. 나이트클럽은 에디터에게 그랬다. 집단의 시대였다.


클럽은 달랐다. ‘전설적인 광경’을 목도할 수 있는 개성의 장이었다. 클럽은 다분히 개인적이었다. 열 따윈 없었다. 딱히 춤추는 법도 없었다. 그냥, 흔들었다. 누구는 제자리에서, 누구는 넓게 돌아다니며. 나이트클럽을 주름잡던 춤은 기억의 저편으로 고이 날려 보내야 했다. 자기 마음대로 추는 개인의 시대가 열렸다. 당시 사회 전반이 그랬다. 1990년대 후반, 학생운동은 결집력을 잃었다. 학회에 들어 경청하기보다는 끼리끼리 (취미로) 뭉친 소모임이 등장했다. 시위에 나가는 건 의무보다 선택이었다. 교육 방향 또한 개성과 창의력을 우선했다. X세대를 넘어 Y세대가 등장했다. 그리고 나이트클럽은 시들고, 클럽이 떠올랐다. 명백히 개인의 시대였다.


그렇게 클럽은 에디터에게 문화 충격을 줬다. 나이트클럽에서 배운 춤을 버린 대신 리듬과 비트를 몸에 담는 법을 배웠다. 어색했지만, 배우지 못할 것도 없었다. 에디터는 몸치가 아니었다. 클럽데이 때는 성지순례하듯 클럽을 돌았다. 힙합 클럽도, 하우스 클럽도 상관없었다. 오직, 홀로 음악에 몸을 섞을 수 있다면 그뿐이었다. 너도 나도 춤만 췄다.


그러다 한참 클럽을 잊었다. 사는 게 바빴다. 직장 생활의 ‘가나다라’를 익혀야 했다. 직장인의 술자리를 경험하기도 바빴다. 클럽은 추억이 됐다. ‘그땐 놀 줄 알았지. 암요!’ 이런 얘기나 오갔다. 동창 모임에선 에디터의 춤사위를 평하곤 했다. 아, 즐거운 추억이여.


그 사이, 클럽이 변했다. 변했다고 들었다. 잡지 바닥에 있으니 보였다. 강남역에도 클럽이 있었던가? 보니, 있었다. 압구정에선 사람들이 오렌지로 저글링하는 대신, 새로 생긴 클럽에 갔다. 두 글자, 세 글자 이름의 클럽이 거론됐다. 과거의 클럽과는 성격이 다른 이름이었다. 홍대에서 강남으로 힘이 이동한 거다. 그 가운데 이태원도 나름의 영역을 구축했다. 클럽 삼국지가 펼쳐졌다. 위·촉·오처럼, 각 지역마다 성격이 달랐다. 오다 가다 클럽 후기를 보며 알았다. 과거 전설적인 광경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대신 또 다른 전설이 시작됐다. 에디터가 아닌, 그 이후 세대의 전설이.


어떤 전설이 새로 탄생했는지 궁금했다. 황금투구의 전설을 듣고 클럽에 끌린 에디터이기에 사명감도 있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괜찮다. 스스로 역사의 현장을 확인하고 싶었다. 너무 거창한가? 그렇다면 이렇게 말하련다. 요즘 어떻게 노는지 무척 궁금했다. 하여 후배 Y를 찾은 거다.


Y는 클럽 ‘앤써(Answer)’로 인도한다. 오늘 파티가 있다는 말도 곁들인다. 클럽 이름이 ‘앤써’라…. 이 클럽은 에디터에게 어떤 답을 줄까. 클럽 입구엔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할리우드 유명 클럽에서 본 광경이다. 사람들의 복장은, 할리우드만큼 화려하진 않지만 날씨와 어울리지 않게 화려하다. 홍대 클럽도 줄을 서긴 했다. 하지만 입구에 붉은 안내선은 없었다. 입구에 선 사람들은 재잘대며 차례를 기다린다. Y는 앤써 관계자를 안다. “선배, 따라와요.” 재잘대는 사람을 지나 바로 문을 통과한다. 인맥으로 그냥, 입장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뒷목을 간질인다. 클럽 안으로 들어가니, 크다. 무대도 크고, 춤추는 스테이지도 크다. 장소가 큰 만큼 사람들도 많다. 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무대를 향해 춤추고 있다. 규모부터 홍대 클럽과는 다르다. 규모의 경제학인가. 자본은 자본을 부른다. 규모가 큰 압구정 클럽은 사람들을 불렀다. 후배 Y도, 에디터도 불렀다.


“우리 위로 가요.” “위?” 2층도 있다. 올라가는 길목엔 검은 수트를 입은 남자가 서 있다. 근데 뭐, 하며 지나간다. 그러자 에디터를 잡는다. 왜? 팔목에 감은 입장권을 보여주니 풀어준다. 알고 보니 1층과 2층 입장권이 달랐다. 에디터는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표를 받았다. 다행이다. 1층 표를 지닌 다수를 지나 위로 올라간다. 2층엔 춤출 공간보다 소파와 테이블이 많다. 2층 표를 지녀도 앉진 못한다. 좌석에 앉으려면 술을 시켜야 한다. 대충 30만~40만원 정도 내야 한다. 서 있기로 한다. Y와 술 마시러 온 건 아니니까. 2층 난간에서 1층을 내려다본다. 무대에서 레이저를 쏴댄다.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그걸 2층에서 본다. 턱을 괴고 난간에서. 뱃속에서 괜한 우월감이 스멀거린다. 쓴웃음이 나온다.
“자리 잡았어요!” 후배 Y는 아는 사람도 많다. 클럽 관계자가 앉을 자리를 그냥 준단다. 심지어 술도 있다. 호사라고 생각하고 앉는다. 2층은 아니고, 1층이다. 오히려 좋다. 어떻게 노는지 보기엔 1층이 더 좋다. 사람들이 춤추는 곳 바로 옆이다. 명당이다. 시야 좋고, 춤추러 튀어나가기도 좋다. 그럼에도 춤추는 스테이지와 구별된다. 약 20cm 정도 높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그 위에서 춤추느냐, 아래에서 춤추느냐. 처지가 갈린다. 인정하진 않지만, 모두 인정하는 눈빛이다. 그러면서 다시 춤을, 춘다.


쇼가 시작된다. 트랜스젠더 쇼다. 내용이 있는 듯한데, 잘 모르겠다. 그냥 괴롭힘당하다가 당당해진다. 그러다가 상품을 뿌린다. 춤추던 사람들이 더 열광한다. 협찬품이다. 자잘한 상품은 던지고, 큰 상품은 뜸 들인다. 큰 상품을 받기 위해선 무대 위로 올라가 춤춰야 한다. 경쟁을 뚫고 한 여자가 올라간다. 추고, 또 춘다. 상품을 받아 기쁨의 춤을, 또 춘다.


다시 디제잉이 시작된다. 이제 에디터도 춤추러 깊숙이 들어간다. 관계자의 애인과 그 애인의 친구들이 춤추고 있다. 앞서 인사하긴 했다. 그 옆에서 춤춘다. 그러면서 주변을 둘러본다. 누구는 춤만 추고, 누구는 춤추고 곁눈질도 한다. 그 곁눈질을 따라가 본다. 곁눈질은 여자에게 머무른다. 곁눈질로 끝나진 않는다. 몸도 곁눈질을 따라간다. 그러면서 붙는다. 여자는 처음에는 받아주는 듯하나, 이내 튕겨낸다. 튀어나간 남자는 다른 여자에게 붙는다. 그런 과정이 반복된다. 핀볼처럼 남자는 이리저리 튕긴다. 핀볼로 전락하지 않은 남자도 있다. 둘 중 누가 더 나은 남자인지는 모르겠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여자가 붙는다. 있지만, 극소수다. 대체로 남자가 움직인다. 여자는 취사 선택만 할 뿐이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 나온 존 내시의 ‘균형이론’은 통용되지 않는다. 미녀 한 명을 두고 다투기보다는 다른 두 여자를 택해 평화를 찾을 일은, 이곳에는 없다. 누구보다 먼저 붙는 데 열중한다. 정글의 법칙이다.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남성성을 과시하는 번식기. 이곳에서 남성성은 뭘까. 정글에선 힘이라면, 클럽에선 자본이다. 2층에도 올라갈 수 있으며, 자리도 있으면 더 좋다. 절대적이진 않다. 하나 가능성은 늘어난다. 자리가 있으면 술도 한 잔 권하기 편하다. 자리에 앉아 쉴 때 상대와 밀착해 얘기할 기회도 생긴다. 가장 중요한, ‘자세’가 나온다. 여러모로 우위에 있다.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물론, 다른 것도 보인다. 춤만 추는 사람도 많다. 그럼에도 그렇지 않은 사람이 유독 보인다. 과거 클럽과는 수위가 달라서다. 그땐 자리에 연연하지 않았다. 오직 춤추는 데 열중했다. 이러다 살 빠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지금 클럽은 주객이 전도됐다. 잿밥을 먹기 위해선 돈도 좀 든다.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다. 이렇게 새로운 역사가 흘러가고 있다는 거다. 홍대 클럽이 개인의 시대였다면, 압구정 클럽은 자본의 시대다. 지금 세상의 시대이기도 하다. 집단의 시대에서 개인의 시대로, 또 자본의 시대로 변했다. 그 사이, 갓 20대였던 에디터는 서른 중반이 되었다.


한 아이가 나이를 묻는다. 일순 당황했지만(왜?), 이실직고한다. 나이를 듣자 그녀가 답한다. “동안이시네요!”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클럽 밖으로 나오니 어느새 동이 터온다. 내 마음은 조금 어둑해진다. ‘앤써’의 답이 뭔지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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