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를 2006년 3월에 창간했다.
그해 8월쯤이었나 보다. 신생 매체의 이미지를 확 뒤엎어버릴 기획이 필요했다. 수십 년이 지나도 원형 그대로 보전할 가치가 있는 게 필요했다. 기자들을 닥달했다. 며칠 후 기자들 중 일부가 ‘아레나표 시상식’을 발의했다. 의견은 올해의 ‘남성 시상식’으로 좁혀졌다. <아레나>는 일 년 내내 잘난 남자들을 다룬다. 당시의 업적이 최고조에 달한 남자들을 만나고 인터뷰하고 사진에 담는다. 그중 왕중왕을 가리자. 그게 포인트였다. 그래, 그러자. 이 기획을 지면에 갈무리하는 것만으로는 특별할 게 없었다. 연말 시상식을 표방한 지면 기사는 체할 정도로 많으니까. 우린 그게 아니었다. 진짜 시상식을 하자는 거였다. 조명 팍팍, 효과음 팍팍, 박수 팍팍! 우리가 직접 수상자를 선정해서 그 모두를 한자리에 불러 모으자, 그들에게 수상 소감도 듣고, 그들을 축하하는 공연도 하고, 업적 영상물도 상영하고, 근사한 사회자도 섭외하자. 그리하면 이 사회에 귀감이 될만한 인물들을 강력하게 재조명할 수 있을 거다. 반대가 많았다. 일차적으론 섭외 문제, 그다음은 돈 문제. 아, 그 반대던가? 여하튼 스튜디오에 불러 사진 한 컷 찍기도 어려운 유명인들을 한자리에 모은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거다. 게다가 시상식 흉내라도 내려면 억대가 훌쩍 넘는 돈이 드는데 그걸 어디서 충당하느냐는 거다. 아, 듣고 보니 그렇군, 끄덕끄덕. 하지만 우린 지금 남들이 따라 하지 못할 콘텐츠를 기획해보자고 머리 싸매고 고민하는 중 아니었나. 그 말은 곧 난이도가 엄청나다는 뜻 아니던가. 초심으로 돌아갔다. 해보기로 했다. 직관적인 판단이었다. 앞뒤 재고 자르고 하다 보면 용기가 사그라질 거다. 일단 한번 시작해보자는 맘으로 길을 나섰다. 섭외하고 돈 구하러 길에 섰을 때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10월 초였다. 아마 우리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 거다. 누가 포기하자고 확 뻗어버리면 슬쩍 묻어갈 텐데…. 으슬으슬 한기가 들었다. 그런데 돈이 구해졌다. <아레나>의 생각, 그러니까 사회문화를 이끈 올해의 남자를 한자리에 모은다,에 마음이 동한 브랜드를 만난 거다. 그게 아우디와 아르마니였다. 대관령 첫 얼음 소식이 들리던 10월 말. Audi, Armani 그리고 Arena는 동지가 됐다. 세 개의 이니셜 ‘A’가 뭉치게 된 건 우연한 일이었다. 그게 신기해서 우리끼리 킬킬대며 그랬다. 와우,‘A’어워즈 가족이 되신 걸 축하해요. 그게 이 거대 콘텐츠의 공식 명칭이 됐다. 돈이 구해졌고 이름까지 정했다. 아, 이제 뒤돌아설 수 없는 거다. 남은 섭외 문제는 오로지 편집부의 몫. 날이 지나치게 추워졌다. 코끝이 시리던 11월 하순의 새벽. 이런 전화를 받았던 것 같다. 김인식 감독이 행사 당일 시간 맞출 수 있답니다. 휴, 다 이루었다.
그로부터 보름 후인 2006년 12월 11일, 첫 번째 에이어워즈가 있었다.
그러니까 첫 책 나오고 10개월 만의 일이었다.
또다시 에이어워즈가 열린다. 이번이 6회째다. 2011년 12월 22일 저녁 7시.
수상자 인터뷰는 이번 호에 미리 실었다. 세 달에 걸쳐 촬영한 결과물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건 없다. 섭외가 늘 징글맞게 꼬이는 것도, 트리플 ‘A’ 형제가 늘 함께하는 것도. 달라진 게 있다면 이번엔 독자 여러분에게 도움을 청한다는 것뿐. 까놓고 말하겠다. 독자 여러분을 많이많이 초대할 여건이 안 된다. 장소가 좁다. 그건 재정 규모와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많은 독자들과 함께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도 해본다. 박원순 시장의 취임식에서 느꼈듯 우리가 뭐 꼭 한자리에 앉아서 행사를 지켜봐야 할 필요가 있을까. 같이 고민해 보면 어떨까.
내 메일 주소는 sha-hyun@hanmail.net 그 어떤 제안도 모두 모두 대환영이다.
약속하겠다. 어찌됐든 창간 10주년이 되면 체육관이라도 빌려 한자리에서 보자, 에이어워즈를.
우리 다 함께 A-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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