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하지 않은 옷은 싸구려로 보인다.
이달 <아레나> 197페이지 서른아홉 번째 줄에 나오는 문장이다.
유나이티드 애로우즈의 디렉터 가모시타가 한 말이다.
그래, 익숙하지 옷은 싸구려로 보인다.
싸구려를 입었는데 싸구려로 보이는 건 억울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비싼 걸 입었는데 싸구려로 보인다면 가슴 칠 노릇이다. 그 이유를 그는 ‘익숙하지 않아서’라고 단정한다. 옳다. 나 역시 옷을 입는 품새, 패션지 용어로 치환하자면, 스타일링의 기술이란 ‘익숙함’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똑같은 화이트 티셔츠 한 장에도 표정이 백만 가지다, 라는 내가 자주 써먹는 말이 있는데 이 역시 같은 맥락이다. 누군가의 화이트 티셔츠는 순박하고 누군가의 것은 천격스럽고 누군가의 것은 결연하고 누군가의 것은 강인하고 또 누군가의 것은 쿨하다. 그건 입는 자의 익숙함 즉 무형의 기운이, 티셔츠라는 스타일링 도구 즉 유형의 객체에 캐릭터를 부여할 수 있음을 뜻한다. 즉 싸구려가 아닌데 싸구려로 보이는 억울한 일이나 싸구려로 보이지 않으나 실상 싸구려인, 경탄할 일이 수시로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이다.
돈 쓰고 억울한 일 당하지 않으려면? 답은 간단하다. 자신의 정신, 캐릭터를 옷에 부여하면 된다. 익숙해지면 된다.
난 코디가 안티, 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대신 그 문장을 모니터에서 발견할 때마다 생각한다. 코디가 무슨 죄냐. 입는 자가 익숙지 않아서인데. 어울리고 아니고의 문제를 떠나서 해당 연예인은 아직 그 옷과 친해질 만한 기회가 없었던 거다. 옷이란 건 주름살과 같다. 많이 웃는 이는 눈가에 자잘한 주름이 부채꼴로 퍼지고, 많이 우는 사람은 미간에 세로로 주름이 파인다. 어울리지 않는 옷이란 많이 웃는 이에게 미간의 세로 주름을 가져다 박고, 많이 우는 자에게 눈가의 부채꼴 주름을 갖다 박는 꼴이다. 국산 중형차 한 대와 맞바꿀 수 있을 만큼 비싼 시폰 드레스를 갖다 입혔는데도 ‘코디가 안티’란 악플에 시달린다면 입는 자가 반성해볼 문제다. 나의 익숙함, 나의 소화 능력이 어디까지인가, 하는 문제의식을 가질 때란 말이다. 옷을 잘 입는다는 평을 듣는 연예인들은 대체로 영민하다. 얻어 입은 듯, 한 모습은 절대 보이지 않는다.
김혜수를 두고는 그런 말이 돈다. 어떤 옷이든 몸에 맞춘다, 는. 의미심장한 말이다. 심지어는 손바닥만 한 사이즈의 협찬 원피스를 그녀가 덜컥 입고 나올 때가 있다. 글래머인 그녀에게 도저히 맞지 않을 거라 여겼던 옷도 그녀의 손을 타면 맞춤복이 된다. 물론 컬렉션에 나왔던 종이 인형 같은 스타일은 아니다. 치마 길이는 좀 더 짧아지고 족히 20cm 정도 돼 보이는 폭넓은 벨트로 허리를 감싼 모습이다. 어떤 옷도 그녀가 평소 입는 모양새로 변화한다. 익숙하다. 이승연의 스타일리스트는 협찬 의상을 그녀의 집에서 피팅한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옷과 섞기 위함이다. 절대 주는 대로 넙죽 받아 입지 않는다, 는 게 그녀의 철칙이다. 얻어 입은 것처럼 보이지 않는 것. 다시 말해 익숙해 보이는 것이 목표다. 프로다.
익숙함은 스타일 기법이란 실마리를 푸는 무조건적인 정답 되시겠다.
표면적으로는 시그니처 룩을 찾으라는 말이 되겠고
형이상학적으로 말하자면 몸이 뿜어낼 자기 확신의 오라를 가꾸라는 말도 되겠다.
자신만의 시그니처 룩을 찾는 게 어렵다면 입었을 때 나와 가장 닮은 옷이 뭔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미 나와 한몸 같은 옷이 있는 사람은 복 되다. 적어도 어디 가서 싸구려로 보인다는 말을 들을 일은 거의 없을 거다. 그런 말을 듣기가 죽기보다 싫다면 옷에 어울리는 태도를 입으면 된다. 비싼 몸이 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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