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의 옆집엔 누가 살까? 경호원? 아니. 글 쓰는 작가들이 산다. 정말? 그렇다니까. 작가들이 모여 산다. 연희문학창작촌이라고 불리는 집이다. 누가 지었을까? 오세훈 전 시장께서 지으셨다. 물론 직접 벽돌을 나르진 않았고, 추진 사업 중 하나였다. 그 양반이 한 일 중 맘에 드는 게 없는데, 이건 조금 마음에 든다. 그런데 악명 높았던 대통령의 옆집이라니. 나름 아이러니 아닌가. 전두환은 독재자였다. 뜻 있는 문학가들은 저항했고 고문당했다. 오래전 역사 같지만 독재자는 살아 있고 옆집에 작가들이 산다. 연희동에 입주하려는 작가들은 많다. 이제 아무도 잡혀가지 않는다.
몇 번 그곳에 간 적이 있다. 한 번은 이유 없이 갔고 한 번은 ‘낭송의 밤’ 행사를 구경하러 갔다. 작가들이 하도 많이 와서 낭송을 누가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소설가 백가흠이었나? 시인 오은? 둘 다 했나? 또 한 번은 친한 작가랑 술 마시러 갔다. 그리고 몇 번을 더 갔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소나무다. 나무들이 정말 많다. 그게 모두 소나무인지는 모르지만 앞으로도 그곳을 생각하면 소나무가 떠오를 것 같다. 길도 예쁘다. 나무와 나무 사이로 난 길을 말없이 걸으면 얼굴에 가득 핀, 심지어 등에도 핀 여드름이 사라지는 것 같다. 애인이 생기면 와야지, 여러 번 생각했다. 생각만….
애인 말고 몸이 산처럼 큰 사진가랑 갔다. 9월의 어느 화요일 오후였다. 서울에 이렇게 아늑하고 깊은 곳이 있다고 알려주고 싶은 마음, 그걸 제대로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물론 많았지만 여름의 끝, 노곤한 몸을 소나무 가지 어딘가에 걸어두고 싶은 마음이 열 배, 아니 백배는 컸다. 사진가는 사진을 찍고 나는 걸었다. 입주 작가인, 시 쓰는 김언과 소설 쓰는 김혜나랑 만나기로 했는데 둘 다 급한 일이 생겼다며 갑자기 약속을 취소했다. 하지만 누구라도 이곳에 오면 혼자 걷고 싶어질 것이다. 바람난 애인을 만난 게 아니라면. 우리에겐 종종 혼자 걸어야 하는 많은 이유들이 있는데 도시에선 그것들을 잊는다. 하지만 나무와 청명한 공기와 햇살과 고요는 그 이유를 알려준다. 우리가 여전히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도.
연희문학창작촌은 매년 3월에 입주 신청을 받는다. 등단한 문인 중 활발한 창작 활동 실적이 있는 작가를 뽑는다. 시민들과 소통한 실적이나 계획이 있는 작가를 우선 선정한다. 선정된 작가는 3개월간 머물 수 있다. 3.3㎡당 월 5천5백원의 관리비를 받는다. 몇만원 안 되는 형식적인 돈이다. 방은 17개고, 침실과 집필실이 따로 있다.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공간도 있고 주방도 있다. 지난 5월에 연희문학창작촌에서 국제 문학 교류 낭독회가 열렸을 때
르 클레지오가 참석했다. 그는 이곳에 반해버렸다. “입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물었다. 물론 영어로. 연희문학창작촌의 실장이자 시인인 안현미가 대답했다. “콜!”
르 클레지오는 정말 전화를 할 것 같다.
이곳을 걸으면 르 클레지오라도 글을 더 잘 쓰게 될 테니까. 가지처럼 잎처럼 문장이 자랄 것만 같다.
르 클레지오를 안내했던 안현미가 창작촌 자랑을 하러 왔다. “은희경 선배가 산문집 원고를 거의 여기서 썼잖아.” 7월에 나온 산문집 <생각의 일요일들>을 말하는 거였다. 제목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썼구나. 은희경 작가도 시간이 나면 이 길을 걸었을까. “김애란도 장편소설 연재를 여기 있을 때 했다니까. 완전 많이 팔렸잖아.” 6월에 나온 김애란의 첫 장편소설 <두근 두근 내 인생>은 줄곧 종합 베스트셀러 상위에 올라 있다. 이 책으로 김애란은 ‘문단 아이돌’을 넘어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의 반열에 섰다, 고 적으면 부끄러워하려나?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김애란도 곧 이곳에 올 예정이다. 연희문학창작촌에서 3개월을 보낸 이후 그녀는 여전히 연희동 어딘가에 작업실을 구해 글을 쓰고 있다. 오랜만에 얼굴이나 보자고 부른 건데 저기, 몇 단락 아래서 <아레나>를 위해 기꺼이 싫어하는 사진 촬영을 한다.
안현미와 몇 걸음 걷다 보니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끌림, 홀림, 울림, 들림이라고 4개의 방향으로 적혀 있고 옆에 각각 괄호를 치고 1동, 2동 3동, 4동이라고 적혀 있다. 그러고 보면 연희(라고 줄여서 부른다) 곳곳에 예쁜 말들이 있다. 작가들이 운동하고 노는 체력단련실의 이름은 ‘연희 놀이터’다. 놀이터 안에는 러닝머신, 벤치프레스, 탁구대, 축구 게임기 등이 있다. 생뚱맞게 샌드백도 걸려 있다. “소설가 한창훈이 달아달라고 해서.” 다시 안현미가 말했다. 홀림동 벽엔 작가들의 글에서 발췌한 멋진 문장들이 새겨져 있다. 빛나는 문장들 사이에 크고 선명하게 ‘연희와 연애하다’라고도 적혀 있다. 이쯤 되면 이게 다 누구 솜씨인지 궁금해질 수밖에. “나 시인이잖아.” 안현미가 말했다.
아… 작가에게 맡겨놓으니까 서울시에서 지은 것도 이렇게 예쁠 수 있구나.
연희문학창작촌 자리에 2000년대 초반까지는 서울시 시사편찬위원회가 있었다. 서울시의 역사를 기록하는 곳이다. 쟁쟁한 소나무들은 모두 그때부터 지금까지 같은 자리에 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이곳은 여전히 역사를 기록하는 중이다.
커피와 빵을 사들고 선글라스를 머리에 꽂고 김애란이 왔다. 대한민국에 둘도 없고 셋도 물론 없는 김애란이다. “책이 엄청 많이 팔렸던데요.” “네.” “돈 좀 벌었어요?” “네.” “앞으로 더 팔릴 것 같던데.” “그러면 좋겠는데.” 속으로 생각했다. 김애란도 이 인기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구나. 왜냐면 늘 부끄러워했으니까. 쏟아지는 관심이 어리둥절하다는 듯, 심지어 그런 관심이 눈앞에 선명해 누구라도 알아볼 수 있는데 정작 본인은 뭔지 모르는 듯 이야기했었다. 중요한 건 아니지만 그런 김애란이 이 글을 쓰는 사람과 동갑이다… 치. 안현미가 말했다. “그래, 여기서 썼다니까.”
김애란에게 사진을 찍자고 말했다. 그래도 연희에 왔는데 작가를 한 명은 찍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김애란이 대답했다. “이러려고 불렀어요?” 그건 아니지만 ‘여기서 썼으니까’. 김애란이 야외무대 관중석에 앉았다. 길고 힘차게 뻗은 나무들 사이였다. 연희의 슬로건은 ‘세계문학 잉태를 꿈꾸는 서울 속 문학 둥지’다. 김애란이 나무만큼 자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을 찍고 김애란은 다시 소설을 쓰러 갔다.
멀리서 빨간색 니트 셔츠를 입은 외국인 여자가 걸어왔다. 물어보니 오늘 입주한 독일의 번역가라고 했다. 이름은 하이케 리.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겁이 났다. 독일 사람이랑 대화를? 가까이 오자 안현미가 말을 걸었다. 둘은 대화가 됐다. 한국어로. 아, 한국 문학 작품을 독일어로 번역하는 작가가 한국어를 못할 리 없잖아. 한국어로 대화를 나눴다. 그녀는 이곳의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고 했다. 조용하고 아늑하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떠드는 건 새들과 우리 셋뿐이었다. 그녀는 연희에 있는 동안 이호철, 김원우의 소설을 번역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렇게 좋은 친구를 기록하는 건 의무라는 생각이 들어서 사진을 찍자고 했다. 그녀는 낮은 둔덕을 세 번이나 올라갔다 내려갔다. 헤어질 때는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다.
누구나 이곳에 올 수 있다. 연희문학창작촌은 시민과 연계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지금은 ‘2011 가을 학기 시민 문예교실 연희문학학교’ 기간이다. 12월 6일까지 매주 화요일 오전과 오후에 다양한 수업이 열린다. 시창작교실, 소설창작교실도 있고 그 외에 작가들과 문학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강좌들이 있다. 매달 마지막 주 목요일 저녁에는 문학 낭독회가 진행되는데 10월 27일에 열리는 ‘10월 낭독회’로 올해 일정은 끝난다. 9월 29일부터 10월 3일까지 5일간 입주 작가와 함께하는 가을 문학 축제 ‘그 안’이 열린다. 이홍섭 시인, 박형준 시인의 ‘낭독극장’, 연희문학창작촌 입주 작가 강은교 시인, 장이지 시인의 집필실을 들여다보는 ‘작가의 방’, 지역 네트워크 파티 ‘놀러와’, 릴레이 소설 쓰기 ‘너도 작가다’ 등이 계획돼 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연희문학창작촌’을 치고 웹사이트에 들어가면 세세한 일정을 알 수 있다.
걷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도 연희는 문을 연다. 가을에 이곳을 걷는 건 어떤 느낌일까? 걸어봐, 걸어봐, 유혹하고 싶다. 두 가지만 유의하면 된다. 떠들면 안 된다. 작가들이 글을 쓰거나 자고 있으니까. 그리고 주말엔 개방하지 않는다. 주말엔 누구라도 쉬어야 하니까.
걷다 보니 머리 위에 있던 해가 낮아졌다. 사라지는 여름을 기록하던 사진가가 커다란 몸을 의자에 내려놓고 있었다. 이제 아무도 잡아가지 않는다. 문학적인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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