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s
1970년대 록스타들의 빈티지한 보헤미안 룩들이 등장했다. 데이비드 보위, 믹 재거, 로드 스튜어트가 선봉에 섰다.
드리스 반 노튼은 2011 F/W 파리 런웨이에 데이비드 보위를 오마주한 모델들을 포진시켰다. 붉은 기 도는 머리를 곱게 빗어 넘긴 모양새와 피크트 숄더, 플리츠 팬츠, 오버사이즈 더블브레스트 재킷은 그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찌는 팝스타 믹 재거와 로드 스튜어트를 그대로 코스프레한 모델을 내세워 런웨이를 거닐게 했다. 바지 밑단이 서서히 넓어지는 세미 벨보텀 팬츠는 이번 시즌 구찌의 상징이다. 그뿐 아니다. 1970년대 풍 스타일링을 보인 곳은 살바토레 페라가모, 존 바바토스, 버버리 프로섬 등 여럿이다. 그러니 이번 시즌 뭐니 뭐니 해도 남성복을 뒤흔드는 제일의 키워드는 1970년대다. 대표적으로 글램 록을 꼽을 수 있는데, 이번 시즌을 강타한 1970년대 무드는 데이비드 보위의 후기 스타일이라 생각하면 좋겠다. 무슨 말이냐면 데이비드 보위의 스타일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1960년대 비틀스라는 걸출한 영국 밴드의 단정한 모즈 룩이 한바탕 트렌드를 휩쓸고 지났을 때 데이비드 보위는 긴 머리에 여성스런 블라우스와 드레스 차림으로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기 시작했다. 프릴이나 리본이 달린 시폰 블라우스, 벨벳 스키니 진 팬츠, 배기 팬츠 등 양성적인 비주얼의 패션은 보수적인 기성세대에게 불온한 존재로 인식되기에 딱이었다. (그는 훗날 자신은 양성애자라 인정하기도 했지만.) 그후 그는 ‘스타 지기더스트’라는 외계인 이미지에 빠져 더 중성적이며 퇴폐적인, 뭐라 정의할 수 없는 스타일로 변모한다. 모든 사람들을 열광케 했고 펑크와 디스코의 발전에 더없는 공을 세웠으나, 정작 그의 스타일은 이 시기 두어 걸음 뒤로 향했다. 창백한 피부,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 수트 차림의 젠틀맨으로 변신한 거다. 숨 막힐 듯 카리스마 넘치는 또 다른 자아로 탄생한 것. ‘Thin White Duke’라 스스로 부른 시기다. 이번 시즌 디자이너들이 추구하는 1970년대는 데이비드 보위의 이 시절을 형상화하고 있다. 그는 동시대의 스타 믹 재거와 로드 스튜어트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믹 재거는 롤링스톤스의 보컬로 커다란 입과 악마의 혀라 불리는 혓바닥 놀림, 그리고 화려한 여성 편력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로드 스튜어트는 층층이 레이어드된 헤어스타일과 거친 허스키 보이스, 파괴적인 무대 매너로 1970년대를 주름잡은 록스타다. 이들의 스타일은 모즈와 로커가 대세이던 시기, 데이비드 보위의 영향으로 급부상하던 글램 록을 섞은 형태를 보였다. 물론 시기적으로 다양한 변화를 겪긴 했으나, 전형적인 모즈 룩에 프릴 블라우스나 스카프, 통 넓은 바지 등 글램 록을 접목한 스타일이 대표적이다. 이번 시즌의 1970년대 스타일을 따라가려면, 데이비드 보위, 믹 재거, 로드 스튜어트의 스타일을 참고해야 한다. 넉넉한 아우터, 니트 베스트 등 모던하되 빈티지함이 섞인 것들이 키 아이템이다.
Super Nomad
한파에 대비해 노마드 무드가 급부상하였다. 그 원류에는 러시아 출신 발레리노 루돌프 누레예프가 있다.
2011 F/W 존 갈리아노 쇼는 한 편의 뮤지컬 같았다. 성큼성큼 무대 위를 걷는 야성적인 모델들이 곧 눈앞에 내려설 것 같은 광경 말이다. 그들은 두꺼운 패딩과 털 코트를 입고, 그 안에는 얇은 티셔츠와 레깅스를 매치했다. 한마디로 이 쇼의 주제는 러시아 출신의 전설적인 발레리노 ‘루돌프 누레예프의 여행’이었다. 극동 지방인 러시아의 기후에 맞게 퍼나 패딩 등의 두꺼운 소재를 이용한 아우터들과 누레예프의 직업이 떠오르는 발레리노 의상들을 대거 선보였다. 러시아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누레예프는 특유의 기교와 힘을 이용한 무용으로 명성을 떨쳤는데, 프랑스로 망명한 뒤 서구 발레 역사에 한 획을 긋는다. 열아홉 살 연상이었으나 당대 최고 발레리나인 마고 폰테나와 함께한 공연은 아직까지 그 누구도 능가하지 못하는 천상의 조합으로 꼽힌다. 또 발레리나의 그림자 역할에 불과하던 발레리노를 어엿한 주연으로 인식시킨 그의 무대는 전설로 칭송되고 있다. 하지만 그는 남들과 융화할 수 없을 만큼 불같은 성격의 악동이기도 했다. 자신을 쫓아다니며 사진 찍던 앤디 워홀의 카메라를 깨부수고 그것을 주우려는 워홀의 손을 밟아버린 것은 유명한 일화다. 1993년 에이즈로 사망하였기에 더 이상 그의 공연을 볼 순 없으나, 존 갈리아노는 자신의 쇼에서 루돌프 누레예프를 환생시켰다. 1960년대 런던을 무대로 전성기를 누리던 그의 일대기를 한눈에 펼쳐 보인 거다. 두꺼운 아우터들로 노마드 무드를 조명한 건 존 갈리아노뿐만이 아니다. 이상기후로 인한 한파에 대비하고자 하는 디자이너들의 몸부림이 세차다. 이번 시즌 에트로, 라프 시몬스, 구찌 등은 기존보다 두어 배는 두터운 소재와 퍼를 이용한 아우터를 다양하게 제안했다. 장 폴 고티에, 버버리 프로섬, 닐 바렛, 에르마노 설비노 등은 퍼를 이너웨어로 사용하는 창의성을 보였다. 그러니 올겨울 바람 한 점 들어올 구멍 없겠다.
Masculine Men
남자를 남자답게 만드는 건 역시 수트다. 넓은 어깨와 중후함이 무기인 남자의 스타일 표본을 꼽자면 역시 브라이언 페리다.
돌체&가바나의 쇼를 프런트로에서 흐뭇하게 바라보는 이가 있었으니, 주름이 깊게 파인 중년 남성이 된 팝스타 브라이언 페리였다. ‘록시뮤직’이라는 밴드의 리더이자 솔로로도 큰 성공을 이룬 뮤지션이다. 록시뮤직은 3장의 앨범을 영국 팝 차트 1위에 올려놓았고 10장의 앨범을 톱10 안에 진입시킨, 1970년대를 풍미한 거물급 밴드다. 그는 그룹 활동을 하면서 1973년부터 솔로 활동을 병행했고, 록시뮤직의 해체 후 지금껏 현역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1970년대면 데이비드 보위와 믹 재거 등 글램 록 무드가 한창이던 시절이건만 그는 항상 남성미 풍기는 깔끔한 수트 스타일로 대표되었다. 수트 차림이라 하여 그 시절 트렌드였던 모즈 룩처럼 소년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기름을 발라 모두 넘긴 헤어스타일의 풍채 있는 이탤리언 남성 이미지에 가까웠다. 그래서인지 브라이언 페리의 스타일은 1970년대 록스타들과는 매우 다르다. 그는 흰색 셔츠에 보타이를 매고 섹시하게 살랑이며 노래한다. 물론 가죽 바지와 재킷을 매치하는 등 록 스타일을 가끔씩 혼용하긴 했으나, 거의 대부분 수트 차림의 단정한 신사 모습이었다. 메트로섹슈얼적인 남성 모습에 지친 사람들에겐 이런 그의 모습이 신선했을 거다. 이번 시즌 돌체&가바나는 그의 매력적인 신사의 모습을 재현했다. 컬렉션장은 그의 노래로 가득했으며 런웨이는 스리피스 수트, 더블벤티드 재킷, 박시한 코트, 와이드 팬츠 등으로 채웠다. 이번 시즌 1940년대의 중후한 남성상이 다시금 주목받으며 수트 실루엣은 변화했다. Z 제냐, 준 지, 랑방 등은 그동안 몸에 딱 맞는 실루엣을 강조했던 수트 트렌드를 떠나, 어깨를 강조하고 루스한 실루엣의 클래식한 수트로 회귀하고 있다. 남성성이 강조될수록 섹시함은 극대화된다.
Monochrome Amish
디테일이나 실루엣이 인위적이지 않고 소박한 아미시 무드는 데이비드 린치의 어두운 작품 세계와 만나 신비한 분위기로 전개된다.
루이 비통의 이번 시즌 컬렉션은 대놓고 데이비드 린치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다. 그의 영화 <블루벨벳> OST로 사용된 로이 오비슨의 ‘In Dreams’가 퍼져나오자 쇼장 구석구석은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처럼 어두우면서도 섬뜩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어두운 검은색을 중심으로 디테일을 생략한 깨끗한 테일러링은 형광에 가까운 주황색과 섞여 런웨이 위에 데이비드 린치의 작품을 얹어놓은 듯했다. 대부분 검은색을 중심으로 신비한 색조들을 사용한 그의 영화와 그림을 떠올리게 한 것이다. 어둠 속에서 인간의 내면은 더욱 빛난다는, 그의 철학이 담겨 있는 것. 데이비드 린치는 1977년 <이레이저 헤드(머리가 큰 아이의 울음소리에 시달리던 남자가 결국 그 아이를 살해하는 이야기로 한 남자의 광기와 악몽을 그린 영화)>로 입봉하였다. 이 영화로 그는 ‘컬트 무비’라는 신조어를 만들며 마니아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다. <엘리펀트맨> <로스트하이웨이> <멀홀랜드 드라이브> <아일랜드 엠파이어> 등 초현실주의 영화들은 데이비드 린치를 컬트 영화의 대부로 우뚝 세웠다. 그가 표현하는 초현실주의는 검은색 모자와 펑퍼짐한 수트를 입고 문명의 이기를 거부하며 살아온 보수적인 교파 아미시와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아미시는 데이비드 린치의 작품 속 세계처럼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삶 속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번 시즌 아미시 무드는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루이 비통은 여밈을 없애고 단순한 절개법을 적용한 의상들을 검은색 위주로 풀어내었다. 디올 옴므는 겨울임에도 얇은 소재와 넉넉한 실루엣의 옷을 레이어드해 전원 느낌을 살렸고 디스퀘어드2는 아미시의 아이템들, 서스펜더와 모자를 이용해 속세를 등진 신비함을 표현했다. 질 샌더 또한 허리선이 들어가지 않은 직선 라인을 추구했다.
British Origin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배경이 되는 영국. 이번 시즌 브리티시 룩은 지루함과 정통을 벗어던졌다. 그의 냉철한 풍자처럼.
미하라 야스히로의 쇼는 영국적인 감성을 담되 따뜻함보다는 냉소적인 뉘앙스를 풍겼다. 매년 F/W 시즌이 되면 브리티시 요소를 쇼에 잔뜩 풀어냈으니 놀라울 것 하나 없으나, 그의 이번 쇼 런웨이는 기존과 달랐다. 그 이유는 이러하다. 영감의 원천이 오스카 와일드이기 때문이다. 그의 차갑고도 냉철한 이성이 모국인 브리티시 감성과 접목한 거다. 오스카 와일드는 영국을 대표하는 시인이자 소설가로 1854년에 태어나 1900년 4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후기 빅토리아 시대에 가장 성공한 극작가일 뿐 아니라 탁월한 말솜씨와 재치로 유명했으며 작품은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로 넘쳐났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원더미어 부인의 부채> <살로메> 등의 작품뿐 아니라 아이들을 위해 쓴 동화 <행복한 왕자>는 사랑의 고귀함을 아름다운 문체로 그려낸 걸작이라 극찬받는다. 이번 시즌, 브리티시 감성은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처럼 격식과 고루함을 버렸다. 미하라 야스히로는 영국 이튼 스쿨의 학생복을 변형하여 한쪽 어깨는 케이프처럼 늘어뜨리기도 하고 무릎길이의 바지와 니삭스를 매치하기도 하는 등 새로운 브리티시 룩을 제안하였다. 전체적으로 세련되고 모던한 느낌이다. 겐조 옴므는 클래식한 브리티시 룩을 컬러와 패턴의 변주를 통해 캐주얼하게 선보였으며, 버버리 프로섬은 전형적인 브리티시의 상징인 타탄 체크 등의 패턴과 다양한 컬러를 믹스해 신선함을 주었다. 그러니까 이번 시즌엔 할아버지의 옷장에서 찾아낸 빈티지함 대신 세련된 브리티시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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