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뉴스는 들어도 들어도 적응이 안 된다. 매번 빛에 놀란 조리개처럼 마음이 화들짝 움츠려든다. 무섭고도 일관된 협박처럼 들린다. 세상은 말이야, 네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나쁜 길로 빠질 수 있어. 나쁜 길. 얼마 전 인터넷 뉴스에서 읽은 ‘물길’이란 단어가 마음을 쓰윽 훑고 지나간다. 바다에서 수구를 하던 19명의 대학생들 중 4명이 물길 속에 사라졌다. 바다 밑바닥에는 물이 한곳으로 빠져나가는 길, 물길,이 있어서 평평하다고 안심하는 순간 깊은 수렁에 휩쓸릴 수 있다는 기사였다. 평지라 안심했는데 내 발밑에 깊고 깊은 수렁이 있다? 늦은 밤 컴퓨터의 푸른빛이 출렁, 일렁인다. 지난달 영국에서 20년 간 사라졌었던 학생 체벌이 부활한다는 기사를 신문 한켠에서 발견했을 때도 그랬다. 정말이지 세상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나쁜 길로 빠질 수 있는 건가. 결국 나쁜 뉴스다.
이달도 어김없이 나쁜 뉴스는 계속됐다.
이번엔 ‘쇼핑 폭동’이라는 타이틀이다. 살다 살다 쇼핑 폭동이란 말은 첨이다. 쇼핑 중독이면 몰라도 폭동이라니, 이건 또 뭔가. 반전이다. 이번엔 플래시몹 시위다. 쇼핑백 대신 몽둥이를 들고 물건을 쓸어 담는 데모. 런던에 사는 20대 청년들이 시위를 하기 위해 모인 곳은 광장이 아니다. 모월 모시 모 쇼핑몰 앞. 그게 그들의 새로운 집결 암호다. 낭창한 목소리로 잡담을 나누며 맥북과 최신 휴대폰과 라프 시몬스의 백팩을 구경할 나이다. 그들이 쇼윈도를 부순다. 전리품을 손에 들고 길을 걷는다. 그리곤 아무렇지 않게 버린다. 물건을 취하면 도적질인데 그게 또 그렇지가 않다. 누군가는 눈에 잘 띄는 곳에 물건을 올려두기도 하고 누군가는 세일문구를 붙여 길 한복판에 전시한다. 이쯤 되면 묘하게 비틀린 진짜 시위다.
쇼핑이 사회의 계급을 나누는 잣대가 된 건 꽤 오래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카스트 제도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쇼핑의 수준과 쇼핑 한도에 따라 등급이 매겨진다. 우량, 보통, 블량. 이번 사태는 불량 등급이 주축이 됐다. 아니 불량이 될 수밖에 없었던 청년 실업인들로부터 시작됐다. 쇼핑의 본질은 자아실현이다. 돈을 쓰고 싶어 환장한 몇몇을 뺀 대부분의 사람들은 쇼핑에 앞서 고민에 빠져든다. 생필품일 경우에는 가격대비 질을, 사치품의 경우라면 자기만의 시험대를 통과할 수 있는지 재고 또 잰다. 나의 정체성에 맞는 물건인지 나의 스타일에 맞는 물건인지 나의 개성을 드러내는 데 한몫해 줄 건지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품위를 지닐 건지…. 쇼핑을 통해 누구나 물건을 거느린다. 그 물건들은 충실한 심복이 되어 개인의 취향과 안목과 개성과 정체성을 일사분란하게 그려낸다. 그렇다. 그렇게 사람들은 쇼핑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증명한다. 또는 계급 상승을 꿈꾼다. ‘아무리 어려도 좋은 품질을 느낄 수 있다’고 디자이너 토마스 마이어가 그랬단다. 그래, 나도 그랬다. 열 살의 나이에도 양철 사각 도시락과 둥근 보온 도시락의 차이를, 말표 운동화와 프로스펙스 스니커즈의 차이를 알고 있었다. 상위 물건을 소유하지 못했을 때의 헛헛함이 작은 가슴에도 탱탱하게 맺히곤 했다. 그런 의미에서 소유할 권리를 영영 거세당했다고 느끼는 이들의 박탈감은 욕구불만 그 이상일 거라 쉬이 짐작할 수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직구를 던지게 되었을 거다. 침묵 시위나 피켓 시위 대신 돌과 방망이로 쇼윈도를 내리꽂는 방식을 택하게 되었을 거다. 은유적인 방식은 허공을 돌고 돌아 앞으로 어떤 쇼핑의 기회도 허락하지 않을 거란 결론에 도달했을 거다. 그러니 누구보다 강하고 빠른 직설로 자신들의 상황을 알리자, 했을 거다. 그렇게 쇼핑몰이 시위 집결지가 되고 쇼윈도는 피켓이 돼버렸다. 아, 그렇게 또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나쁜 길로 빠져들게 되었다.
마음이 흠짓 놀라 문장을 주절주절 이어붙이고 나서 드는 생각. 우리 역시 비겨가지 못할 거란 생각. 청년 실업률(이 단어는 언제 봐도 편치 않다)이 8% 대에 육박하는 우리에게도 언제든 불어 닥칠 수 있는 게 쇼핑 폭동이란 생각.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평지라고 생각했던 발 밑 땅이 꿈틀한다. 10년 전, 조지 부시 대통령의 담화문을 기억한다. 911테러 수습 이후 뉴욕을 비롯한 전미국민에게 마지막으로 남겼던 말. “여러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쇼핑을 즐깁시다(Go back shopping)”. 그게 평화의 메시지였다. ‘쇼핑을 즐깁시다’... 여기서 무리한 결론 한 가지. 그런 의미에서 <아레나> 9월호는 평화 사절단? 쇼핑의 권세를 흐드러지게 누리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신상품을 쏟아부었으니 말이다. 혹여 지갑 사정이 안된다 해도 다음 문장으로 분노만큼은 거두시길. ‘지구에 사는 사람 중 12%만이 컴퓨터를 가지고 있고,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은 10%뿐이며, 당신이 침대와 옷장을 가지고 있다면 전 세계인의 75%보다 부유한 것이다.’ 이게 내가 생각해 낸 팔짝 뛰게 좋은, 당신의 분노를 거두어 줄 뉴스다. 어떤가. 내 알량한 마무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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