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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잘 내리는 법

매일 커피를 마신다. 프랜차이즈 커피의 간편함을 포기할 순 없지만, 나만의 커피도 마셔보고 싶다. 거창한 에스프레소머신보다 공들인 핸드드립 커피 한 잔이면 족하다. 어떻게 하면 잘 내렸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까? 한국커피협회에 전화를 걸었다.

UpdatedOn April 07, 2025

이런 모습을 상상해본다. 아침이다. 그녀는 아직 침대에 누워 있다. 깰까 봐 조심스레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거실 커튼을 여니 햇살이 반짝인다. 물을 끓이고, 원두를 그라인더에 간다. 여과지에 커피 가루를 담아 물을 붓는다. 은은하게 퍼지는 커피 향이 거실을 채운다. 고소하고 향긋하다. 절로 눈을 감고 음미하게 하는 향. 이내 그녀의 기척이 침실에서 들린다. “향 좋은데?” 커피를 두 잔에 나눠 담아 침실로 향한다. “좋은 아침!” 그렇게 우린 갓 내린 커피를 함께 홀짝인다. 하얀 이불에 비친 햇살이 바삭, 커피 맛을 더한다.

언젠가부터 핸드드립 커피에 관심이 간다. 요리는 못 해도 맛있는 커피 한 잔쯤은 내리고 싶은 마음. 앞선 상상을 현실로 재현하려면 일단 커피 내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물론 정보야 인터넷에 수없이 많다. 많아서 오히려 혼란스럽다. 흩뿌려진 정보를 찾다 보면 의욕은 휘발되고, 캡슐 커피에 손이 간다. 이번에도 실패다. 그렇게 도돌이표를 오간 지 벌써 여러 해다.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기보다 전문가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누구한테 물어봐야 할지 고민하다가 그냥 한국커피협회에 전화를 걸었다. “커피 잘 내리는 법을 알려주세요.”

수화기 너머 구원투수가 등판했다. “프리퍼커피의 조영주입니다.” 여과지에서 떨어지는 커피 방울처럼 청량한 목소리가 들렸다. 조영주는 여러 직영점을 운영하는 커피 회사 프리퍼커피의 실장이다. 직책보다 뒤따른 호칭에 더 솔깃했다. ‘국가대표 바리스타.’ 그는 2020년 월드브루어스컵의 브루잉(Brewing) 부문 한국 대표로 참가했다. 브루잉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핸드드립을 말한다. 그러니까 핸드드립 커피에 관해서 명확한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이다. 한국커피협회가 추천한 전문가. 진리로 가는 길이 열렸다. 그에게 간단하고 명료한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핸드드립 커피에 관심이 있지만 복잡한 건 싫어하는 남자라도 의욕이 생기게. 그의 말을 정리해 커피 잘 내리는 법을 전한다. 묻고 따지지 말고 외우자. 이 정도 노력은 기울여야 상상 속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다. 


“처음부터 궁극의 한 잔을 완성하진 못할 거다.
커피 내리는 법은 수학 공식처럼 똑 떨어지지 않는다.
앞서 설명한 문장과 문장 사이에도 수많은 경우의 수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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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 1 원두 고르는 법

뭐든 재료가 중요하다. 원두는 크게 두 종류다. 아라비카(Arabica)와 로부스타(Robusta). 아라비카는 풍부한 향미와 산미가, 로부스타는 향미보다 쓴맛이 강하다. 한눈에 아라비카가 좋아 보인다. 흔히 커피숍에서 파는 원두는 거의 다 아라비카다. 로부스타는 보통 기업의 원재료로 쓰인다. 쓴맛은 나면서 싸니까. 우린 아라비카에서 고르면 된다. 원산지에 따라서도 향미가 달라진다. 에티오피아냐, 케냐냐 하면서. 더 들어가면 복잡해지니 이럴 땐 원두마다 제공하는 향미 노트를 참고하는 게 좋다. 향미는 취향으로 갈리니까. 무엇을 선택하든 중요한 건 로스팅 날짜다. 원두는 시간이 지날수록 향미가 줄어든다. 2주 안에 소비할 양만큼 구매해야 본연의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로스팅 정도에 따라 맛도 달라진다.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라이트 로스팅은 밝고 다채로운 향과 산미를 강조한다. 미디엄 로스팅은 균형 잡힌 맛과 향, 다크 로스팅은 구수하고 쓴맛을 강조한다. 이 역시 취향이다. 취향이야 여러 조합으로 맛보며 찾으면 되니 기억해야 할 것은 두 가지다. 아라비카와
로스팅 날짜.  

STEP 2 그라인더 고르는 법

원두를 갈아야 핸드드립 커피를 내릴 수 있다. 그냥 갈면 되는 거 아냐? 싶지만, 어떻게 가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가루라도 다 같은 가루가 아니다. 우선 그라인더 날에 차이가 있다. 그라인더는 크게 두 가지 날이 있다. 플랫 버(Flat Burr)와 코니컬 버(Conical Burr)다. 날의 형태가 달라 분쇄 결과물도, 맛도 달라진다. 플랫 버는 평평한 날 두 개가 원두를 균일하게 분쇄해 깔끔하고 균형 잡힌 맛을 표현한다. 반면 코니컬 버는 원뿔형 날이 원두를 다양한 입자로 분쇄해 복합적인 향미를 표현한다. 날의 형태에 따라 맛까지 달라질지 몰랐다. 게다가 분쇄한 가루 크기에 따라 용도도 다르다. 에스프레소용이라면 밀가루 크기로 곱게 갈아야 한다. 핸드드립용이라면 설탕 크기가 적당하다. 혹자는 그라인더 가격이 커피 맛을 좌우한다고 한다. 고급 그라인더일수록 맛을 잘 표현한다는 뜻이다. 거기까지 가면 너무 복잡하니 기억해야 할 것은 역시 두 가지다. 취향에 맞는 날을 선택해 설탕 크기로 원두를 갈기.

STEP 3 여과지, 드립백, 철제망 차이

커피 가루를 담아 물을 부으면 핸드드립 커피를 마실 수 있다. 이때 뭐에 담아야 할까. 세 가지 선택지가 있다. 여과지와 드립백 그리고 철제망이다. 각각 나름대로 장점이 있다. 우선 종이 필터인 여과지로 추출한 커피는 맛이 깔끔하다. 드립백을 사용하면 향미가 다소 약하다. 대신 컵에 걸쳐 사용하므로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간편하게 즐길 수 있다. 철제망을 사용하면 맛이 덜 깔끔해도 보디감이 높아진다. 매번 세척하는 것이 귀찮지만 반영구적으로 사용한다는 장점도 크다. 커피 맛만 놓고 본다면 역시 여과지가 최선이다. 하지만 다른 방식도 상황이나 취향에 따라 장점이 분명하다. 맛이냐, 편의성이냐, 다회성이냐. 하나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 각 방식의 차이를 알아두고 때 맞춰 활용하면 더 효율적이다. 

STEP 4 물의 온도와 양

커피와 물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 물의 온도나 양이 커피 맛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일반적으로 물 온도는 90~95℃가 적당하다. 온도가 너무 낮으면 추출력이 떨어져 원두의 향미를 온전히 표현하지 못한다. 반대로 온도가 너무 높으면 원두의 안 좋은 향미까지 추출해낸다. 떫거나 쓴맛이 강하다면 물이 너무 뜨거워서 그럴 가능성이 높다. 커피 가루와 물의 비율은 세 가지가 대표적이다. 1:12(커피 가루 20g, 물 240mL), 1:15(커피 가루 20g, 물 300mL), 1:17(커피 가루 20g, 물 340mL)이다. 커피 가루 용량은 20g으로 같고, 결국 물 용량 차이다. 이 세 가지 비율을 기억해 하나씩 해보며 자신에게 맞는 맛을 찾아야 한다. 세 비율 사이에서 물을 더하고 빼면서 자기만의 비율을 만들 수도 있다. 이쯤 되니 숫자가 많이 나온다. 숫자를 기억하고 지키려면 정확함과 섬세함이 필요하다. 저울이나 온도계 같은 도구도 필요하다. 궁극의 한 잔으로 가는 길은 수많은 귀찮음을 이겨내야 한다.
 

STEP 5 핸드드립 커피 내리기

고지가 멀지 않았다. 결국 이 단계에 오기 위해 지난 네 단계를 습득한 셈이다. 기본 정보는 알아야 하니까. 이제 본격적으로 내리는 방법을 습득할 때다. 친절하게도 조영주 바리스타가 추천 방법을 전했다. 커피 가루는 20g, 분쇄 입자는 설탕보다 조금 더 굵게, 추출 시간 2분 30초, 총 물 주입량 180mL, 물 온도 95℃. 첫째, 물 40mL를 붓고 60초간 천천히 뜸을 들인다. 둘째, 물 100mL를 가운데부터 천천히 부어준다. 셋째, 물 40mL를 가운데부터 바깥쪽까지 빠르게 부어준다. 넷째, 추출한 커피에 물 100mL를 부어 희석한다. 추출할 때 2분 30초보다 시간이 더 걸린다면 커피 가루를 더 굵게, 덜 걸린다면 더 가늘게 분쇄해 입자 크기를 조절하면 좋다. 희석하는 물의 양도 개인 기호에 맞춰 조절할 수 있다.

드디어 핸드드립 커피 한 잔을 내렸다. 처음부터 궁극의 한 잔을 완성하진 못할 거다. 커피 내리는 법은 수학 공식처럼 똑 떨어지지 않는다. 앞서 설명한 문장과 문장 사이에도 수많은 경우의 수가 있다. 그 사이마다 또 고유한 맛이 존재한다. 그래서 핸드드립 커피가 매력적이고, 궁극의 한 잔으로 가는 길은 다채롭다. 조영주 바리스타도 이 점을 강조한다. “즐기셨으면 좋겠습니다. 정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 말고, 매력 요소를 하나씩 천천히 즐기면서 기호에 맞는 커피를 찾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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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김종훈
Advice 조영주(프리퍼커피)
Image 게티이미지뱅크

2025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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