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필모그래피를 쌓아가야 하는 시기잖아요.
장르를 떠나서 역할을 맡는 것 자체가 감사하죠.
다만 지금 제 나이에만 맡을 수 있는 역할을 많이 해보고 싶어요.”
드라마 <보물섬>이 한창 방영 중이죠. 이번에 맡은 ‘지선우’는 비행 청소년에 가깝잖아요. 열아홉 살 차우민은 어떤 학생이었어요?
저는 뒤늦게 입시 연기 준비하는 학생이었어요. 1년 내내 연기 학원 연습실에서 보냈어요. <보물섬>에서 맡은 선우는 일탈을 자주 하지만, 나쁜 사람으로 보이진 않았으면 했어요. 내면에는 순수한 면을 간직한 소년이거든요. 시청자도 그런 선우의 모습을 느끼시길 바라면서 작품을 준비했어요.
중학교 때는 수영, 고등학교 때는 유도를 열심히 했다고 들었어요. 운동선수를 꿈꿨을 것도 같은데.
오히려 너무 좋아해서 직업으로 삼아야겠다는 마음은 없었어요. 어떤 운동이든 프로가 되려면 이 악물고 연습해야 되잖아요. 내가 좋아하는 운동은 평생 취미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아요. 그러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배우를 준비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죠.
배우 입시를 준비한 계기가 있었나요?
사실 다른 친구들에 비하면 입시 준비를 늦게 시작한 편이에요.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만 해도 배우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거든요. 지금도 명확하게 기억나는 일이 하나 있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제가 게임을 별로 안 좋아해요. 한 번은 아버지가 먼저 용돈 주시면서 “친구들이랑 PC방 가서 놀기도 해봐”라고 하셨어요. 등 떠밀리듯 갔는데 역시나 재미가 없더라고요. 그러다 뜬금없이 ‘연극영화과’를 검색해봤어요. 입시 연기 학원이 좌르륵 뜨길래 하나하나 들어가봤죠. 그게 시작이었어요.
은연중 연기에 대한 호기심은 늘 있었나 보네요.
어머니가 시네필이세요. 초등학생 때부터 이런저런 영화들을 정말 많이 보여주셨는데, 지금은 영화 취향이 완전히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그때 왜 이 영화를 보여줬을까?’ 싶은 작품도 있어요. 그저 재미있는 영화를 보여주기보다 세상에는 다양한 영화가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으셨던 게 아닐까 생각해요.
그중 특히 기억에 남는 영화가 있다면요?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기쿠지로의 여름>. 초등학생 때 처음 봤는데, 어머니랑 배를 잡고 웃으면서 봤어요. 지금도 여름이면 종종 다시 보는 작품입니다. 지브리 영화들도 정말 좋아하는데, 이것도 어머니의 영향이에요.
그랬던 아들이 배우가 됐으니 무척 뿌듯하시겠어요. 이번 <보물섬>에서 스스로 만족스러웠던 장면을 하나만 골라볼까요?
모터사이클을 타는 장면이요. 제 연기가 마음에 들었다기보다, 스스로를 이겨냈다고 느낀 촬영이었거든요. 촬영 전 연습할 때 모터사이클을 타다 넘어져서 크게 다쳤어요. 기어 조작이 익숙하지 않아 처음 출발할 때 앞바퀴가 들린 거죠. 넘어지면서 오른쪽 팔 전체가 심하게 쓸렸어요. 한동안 모터사이클은 쳐다보는 것도 힘들었는데 어떡해요. 그래도 촬영은 해야죠. 속으로는 바들바들 떨었지만 두려움을 잘 이겨내 촬영한 장면이에요.
오늘 촬영할 때 머릿속에 떠오른 문장을 써달라고 급하게 부탁드렸어요. 그런데도 미리 준비해온 것처럼 척척 써내려가서 내심 놀랐습니다.
평소 좋아하는 책들의 첫 문장은 외워두는 편이에요. 정확히는 첫 문장에 빠져서 그 책을 좋아하게 되는데요. 처음 적은 문장은 파울로 코엘료의 <11분> 첫 문단에 나옵니다. ‘우린 삶의 매 순간 한 발은 동화 속에, 또 한 발은 나락 속에 담근 채 살아가고 있으니 그냥 이렇게 시작하도록 하자.’ 두 번째로 쓴 문장은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첫 문장이에요. ‘완벽한 문장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완벽한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러 책들 중에서도 그 두 권을 고른 이유가 궁금하네요.
한동안 라틴 문학에 빠져 있었거든요. 그때 가장 좋아한 작가가 파울로 코엘료였어요. <11분>은 따뜻하면서도 냉정하고, 이성적인 듯하면서도 로맨티시스트 같은 면이 공존하는 책이라 좋아합니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첫 장편소설이에요. 늘 제 ‘인생 책’으로 소개하는 작품인데요. 우리가 흔히 아는 ‘하루키 문체’가 만들어지기 전에 나온 작품이에요. 그만큼 날것의 맛이 있다고 할까요. 지금도 종종 읽어보는 소설입니다.
책 읽는 취미는 언제 생겼어요?
책을 쌓아놓고 읽기 시작한 건, 회사에서 운동 금지령이 떨어진 후였어요. <밤이 되었습니다>에서 맡은 역할 때문에 살을 찌워야 했거든요. 운동을 못 하니까 그 시간에 책을 읽게 되더라고요. 그 후로 살은 뺐지만 책은 꾸준히 읽고 있습니다. 매번 읽을 책을 사기보다, 한 번에 여러 권을 사놓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 읽어요. 이번 달에는 <노르웨이의 숲> 개정판과 <논어여설>을 읽어볼 계획입니다.
사진 찍는 것도 무척 좋아한다고 들었어요. 뜬금없는 질문인데 스마트폰 배경화면은 뭐예요?
핀터레스트에서 받은 일러스트인데요. 가로등 아래 한 남자가 서 있는 그림이에요.
사연 있는 남자처럼 보이는데요. 특별히 이 그림을 고른 이유가 있나요?
저 같다고 느꼈어요.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데 막상 외로움을 많이 타고, 일할 때는 열심히 하지만 때로는 한없이 게을러지거든요. 왠지 이 남자도 나랑 비슷한 사람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늘 촬영 모니터링을 하면서 ‘선역도 악역도 잘 어울리겠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앞으로 맡아보고 싶은 역할이 있다면요?
한창 필모그래피를 쌓아가야 하는 시기잖아요. 장르를 떠나서 역할을 맡는 것 자체가 감사하죠. 다만 지금 제 나이에만 맡을 수 있는 역할을 많이 해보고 싶어요. 영화 <스물> 같은 청춘물에 출연해보고 싶습니다.
차우민이 생각하는 좋은 배우는 어떤 배우인가요?
사람 냄새 나는 배우 아닐까요? 저희 아버지께서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어요. 어떤 직업이든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한다. 직업인으로서 충실한 배우가 되어야겠지만, 인격적으로도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제가 닮고 싶은 배우분들 인터뷰를 찾아보면 다들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배우도 결국 수많은 직업 중 하나일 뿐이라고. 그 선을 지킬 줄 아는 배우가 좋은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20대 중반을 지나고 있어요. 30대가 됐을 때 어떤 모습이길 바라나요?
팬 미팅에서 팬분들께 마지막 인사로 이렇게 말씀드렸어요.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배우가 되겠습니다. 배우이자 한 사람으로서 부끄럼 없는 어른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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