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뉴진스는 어떻게 될 것 같아요?” 요즘 K-팝 업계 인사들을 만나면 기자들은 종종 이런 질문을 던진다. 정말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묻기도 하고, 뭐라도 아는 게 있나 기사거리를 찾으려 물어보기도 한다. 그냥 물어볼 때도 있다. 화제가 떨어졌을 때 최소 10분 정도는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고마운 만능 아이템이다. 일간지에서 대중음악 분야를 맡아 취재하고 있는 터라 반대로 같은 질문을 받는 경우도 많다. 그럴 때면, 딱히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해당 사건 취재 당시 자문을 구한 모 변호사의 말을 대신 한다. “부부간에도 신뢰가 파탄 나서 혼인 관계를 이어갈 수 없다면 이혼을 인정하잖아요. 누구 책임이 더 큰지는 법정에서 따질 테고. 하이브(또는 하이브의 자회사이자 뉴진스 소속사인 어도어)와 뉴진스 관계는 끝났다고 봐야죠.”
연예계에서 의리 같은 낭만은 희귀해졌다. 의리는 돈 앞에서 한낱 공허한 단어로 휘발된다. 연예인이 소속사의 가치를 넘어설 정도라면 더욱 그렇다. 소속사의 유일한 아티스트인 뉴진스는 데뷔 2년 만에 어도어의 브랜드 가치를 뛰어넘었다. 뉴진스가 자리를 비운 지금 어도어는 기획자도 프로듀서도 아닌 하이브 최고인사책임자(CHRO)가 이끄는, 소송이 주 업무인 기묘한 회사가 돼버렸다. 어도어를 깡통으로 만든 뉴진스는 순식간에 소속사와 결별을 선언할 수 있는 위치까지 올랐지만, 그렇다고 소속사에 의존적인 신인 그룹 티를 완전히 벗은 건 아니다. 월드 투어를 하려고 해도 2시간의 공연을 채울 만큼 곡이 많지 않아 ‘푸른 산호초()’ 같은 커버 곡을 동원해야 하는 처지다. 일본 도쿄돔을 가득 채울 수 있는 월드 스타이면서도 스스로 커리어를 만들어갈 수 없는 미성숙한 신인 그룹. 이런 부조화의 양면이 뉴진스의 두 자아다.
법정 다툼과 새 출발
뉴진스의 두 자아가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하이브 같은 탄탄한 자본력과 시스템,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 같은 뛰어난 프로듀서의 지휘도 필수적이다. 하이브와 헤어지겠다고 한 이상 그 역할을 대신할 회사가 간절한데, 민희진이 그런 환경을 만들어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우선 뉴진스에겐 어도어와 잘 헤어져야 하는 숙제가 있다. 하이브와 결별한 민희진도 소송에서 풋옵션을 잘 챙기고 경업금지 문제까지 해결해야 한다. 경업금지란 일정 기간 동일 업종에서 창업하거나 일하는 것을 막는 조항이다. 여기까지도 험난한 과정인데 그게 전부는 아니다. K-팝은 물론 엔터테인먼트 업계 1위인 하이브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려 든다면 활동에 장애가 생길 수도 있다.
법이 전속계약 해지를 인정하지 않더라도 뉴진스 멤버는 결코 어도어와 함께 일하지 않을 테니 결별은 자명하다. 그보다 중요한 점은 결별의 방식과 그 이후일 것이다. 법조계는 이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지 궁금했다. 전속계약표준계약서에 따른 계약이라면 이미 판례도 많을 테고 엔터테인먼트 전문 변호사들의 의견은 하나로 모일 거라 생각했다. 뉴진스나 민희진과 관련해 하이브·어도어 내에서 벌어진 일은 웬만한 건 모두 공개됐고, 갑자기 판세를 뒤집을 만한 사실이 나오진 않을 터라 법을 아는 이들은 비슷한 판단을 내리겠지, 추측했는데 전화 몇 통으로 깨졌다.
동일한 사안을 보고 판단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다양한 의견을 들었다. 정반대의 결말을 예상하는 상반된 목소리도 있었다. ‘콩쥐가 이긴다’는 말을 듣기 무섭게, 팥쥐의 승리를 점치는 확신이 이어졌다. 변호사 A의 이야기다. “엄연히 계약이 존재하는데 뉴진스가 강조하는 수준의 ‘부당한 대우’를 이유로 계약 해지를 주장하면 계약이 무슨 의미인가요? 기획사 입장에선 거액의 투자비를 쏟고 인력을 투입해서 겨우 그 자리에 올려놓았는데 전속계약 해지 주장이 그렇게 쉽게 받아들여지면 이제 누가 그런 모험을 하겠습니까.”
물론 좀 더 많은 엔터테인먼트 전문 변호사들은 중립적인 자세를 취했다. 변호사 B는 뉴진스와 어도어 간의 소송 결과에 따라 앞으로 유사한 갈등을 양산할 수도 있다며 근심 어린 투로 말했다. “뉴진스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계약 해지 요건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기존 판례에 비춰 단정하긴 어려워요. 전속계약 관련한 분쟁의 원인은 대체로 수입 정산 문제가 대부분인데, 구체적이고 명확한 위반 사유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번 사안은 달라요. 뉴진스와 어도어의 문제라기보다 하이브와 민희진의 싸움과 연계된, 간접적이고 추상적인 내용이 많아요. 이게 해지 사유가 될지는 선례가 거의 없다고 봐야죠. 그만큼 독특한 사안입니다.”
뉴진스가 하이브를 떠나 순조롭게 새 출발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법조계에선 최소한 전속계약 해지는 별 문제 없다고 보는 듯하다. 앞서 말했듯 ‘신뢰 관계 파탄’이 근거다. 뉴진스 멤버들도 그룹 이름을 NJZ로 바꾸고 새 출발을 선언했다. 그러나 위약금은 다른 문제다. 뉴진스 또는 NJZ 멤버들은 어도어가 잘못했으니 위약금을 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그렇게 깔끔하게 정리하긴 힘들어 보인다. 표준전속계약서대로라면 수천억원에 이를 수도 있다. 멤버 1인당 1000억원이라면 매일 1000만원씩 갚아도 30년 정도 걸리는 무시무시한 금액이다.
법은 생각만큼 자비롭지 않지만, 또 무지막지하게 잔인하지도 않다. 위약금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는 이야기다. 변호사 C의 설명을 들어보자. “판사 마음대로입니다. 위약금 규모가 클수록 계약서대로 판결을 내리는 경우는 드뭅니다. 위약금이 지나치게 높다고 판단하면 판사가 깎는 거죠. 뉴진스 멤버들이 수천억원의 위약금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냐면서 줄여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그걸 조정하는 기준이 없어요. 판사가 누구냐에 따라 금액이 크게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걸 그룹 전성기가 대체로 데뷔 5년 안팎이란 점을 고려하면가장 화려하게 빛나야 할 시기에 법원을 오가며 싸워야 한다는 부담이 크다.”
뉴진스와 NJZ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뉴진스는 어떻게 될까.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우리가 알던 ‘뉴진스’는 이미 사라졌다고 할 수도 있다. 법원이 전속계약 해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어도어에 묶이더라도, 계약을 해지해 자유의 몸이 된다고 해도 그 ‘뉴진스’는 돌아올 수 없을 거다. 단지 상표권 문제만은 아니지만 뉴진스와 NJZ의 이름이 다르다는 것도 무척 중요하다. 이건 비스트·하이라이트의 경우와도 사정이 다르다. 데뷔한 지 2년여밖에 되지 않은 그룹이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공중에 붕 뜬 상태로 이름까지 바꾼 채 안갯속으로 뛰어들지 않았나.
NJZ로 변신한 다섯 멤버는 3월 23일 데뷔곡을 공개하며 새 출발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새 소속사도 생길 것이라고 예고했다. 아마도 민희진 ‘대퓨’님과 함께하는 듯하다. 어도어는 전속계약이 유효하다면서 언론사에 NJZ가 아닌 뉴진스라는 공식 명칭으로 써달라고 했다. 법원 판단이 나오기 전까진 매번 두 이름을 함께 써야 할 처지다. 이들의 독자적 활동과 함께 소송도 곧 시작한다.
어도어가 뉴진스의 다섯 멤버를 상대로 낸 ‘기획사 지위보전 및 광고 계약 체결 등 금지 가처분 신청’의 첫 심문 기일은 3월 7일, 전속계약 유효 확인 소송의 첫 공판은 4월 3일이다. 법이 하이브의 편을 들든 뉴진스의 편을 들든, 가처분 신청은 본안 소송으로 이어질 테고, 소송은 3심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하이브는 나쁜 선례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나 명분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라도 끝까지 매달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멤버들은 NJZ로 활동하더라도 최소 2, 3년간 소송으로 불안정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 가처분 신청 결과가 어도어에 유리하게 나오면 NJZ 활동을 멈춰야 하니 더 큰 타격을 입는다. 최종적으로 법원이 하이브 편을 들어주면 위약금과 손해배상도 물어줘야 하는데, NJZ 활동이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도 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다. 체급만 문제가 아니다. 법적 분쟁은 시간 싸움이기도 하다. 걸 그룹 전성기가 대체로 데뷔 5년 안팎이란 점을 고려하면 가장 화려하게 빛나야 할 시기에 법원을 오가며 싸워야 한다는 부담이 크다.
뉴진스가 하이브-민희진 간 갈등에 뛰어들면서 ‘라이트 팬덤’을 상당수 잃은 것도 악재다. 일반 팬들 중에선 이들의 태도에 반감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이브와 진흙탕 싸움을 통해 ‘천재’ 또는 ‘악녀’ 중 하나가 돼버린 민희진과 일심동체가 된 순간 뉴진스 역시 ‘용감한 아이돌 투사’와 ‘건방진 배반자’라는 이분법적 시각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됐다. 뉴진스라는 순수의 시대는 막을 내린 것이다. 최종적으로 승소하더라도 해피 엔딩을 장담할 순 없다. 동방신기가 두 팀으로 쪼개진 뒤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를 떠난 세 멤버가 겪은 어려움을 대입해보면 상상하기 쉽다.
뉴진스 사태는 K-팝 세계화의 어떤 징후다. 산업이 성장하며 생태계 내부 권력 구도도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대형 기획사들이 멀티레이블 시스템을 만들며 분산된 권력은 언제든 조직의 기둥을 흔들 수 있고, 소속 그룹은 데뷔 2, 3년 차에도 회사와 맞먹는 권력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전통적인 직업윤리가 있는 사람이라면 입사 3년 차 사원이 어떻게 회장에게 전문경영인의 해고를 취소하라고 요구할 수 있냐고 묻겠지만, 그 경영인과 3년 차 사원의 가치 합계가 회사의 총자산보다 높다면 말이 달라진다.
뉴진스는 어떻게 될까, 라는 질문은 K-팝 산업은 어떻게 바뀔까, 라는 궁금증으로 이어진다. K-팝 업계 풍경에 대해 한 기획사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요즘엔 2, 3년 차라고 해도 소속 가수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월드 투어를 다니는 팀이다 보니 지방 행사는 안 하려고 하죠. 회사가 강요할 순 없어요. 하이브와 민희진 사태 이후 회사를 불신하거나 무시하는 멤버들도 늘어난 것 같아요. 몇 년 새 많이 바뀌었어요. 앞으론 더하겠죠.”
K-팝은 사람이 곧 IP라서 어려운 산업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산업을 아무리 고도화하고 시스템화한다 하더라도 사람을 다루는 일이 쉬워질 리는 없다. 아니, 그동안 사람을 너무 쉽게 다루려 한 건 아니었나 되돌아봐야 한다. 회사와 연예인 사이의 신뢰는 인간적인 선의가 아닌 철저한 제도와 시스템에서 나온다. ‘개저씨’ ‘놀랄 만큼 못생겼음’ ‘무시해’ 같은 볼썽사나운 잡음으로 신뢰를 저버리는 시스템이라면 제2의 뉴진스 사태가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수 없다. 뉴진스 이후 K-팝은 어떻게 될까. 답은 결국 K-팝 내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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