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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갈등

한 잔 더 마시고픈 마음. 줄어드는 게 아쉬워 멈추고 싶은 마음. 위스키를 마시다 보면 이런 갈등에 고민할 때가 있다. 물론 모든 위스키가 그렇진 않다. 듀어스 더블더블 21년은 내내 이런 갈등 속에 머물게 했다.

UpdatedOn February 1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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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블렌디드 위스키 용량 500mL 테이스팅 노트 포도, 캐러멜, 꿀

카테고리 블렌디드 위스키 용량 500mL 테이스팅 노트 포도, 캐러멜, 꿀

“듀어스의 정체성이 더블 에이징인 만큼 그보다 더한 수고를 들였으니 자랑할 만하다.”

듀어스 더블더블 21년

이름이 특이하다. 듀어스 더블더블. 듀어스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보통 브랜드 창업자 이름이니까. 듀어스 역시 1864년 스코틀랜드에서 위스키를 만든 브랜드 창시자 존 듀어에서 왔다. 듀어스는 그가 만든 위스키라는 뜻이겠다. 뒤에 붙은 더블더블이 핵심이다. 더블을 두 번이나 반복했다. 보통 이름 뒤에 뭔가 더 붙일 땐 특징을 강조한다. 맛이나 방식이나 에디션이나.

더블더블은 방식에서 기인한다. 듀어스는 블렌디드 위스키로는 드물게 더블 에이징 공법을 내세운다. 숙성한 원액을 블렌딩한 후 오크통에서 6개월간 다시 숙성하는 방식이다. 추가 숙성으로 풍미를 더욱 살렸다. 남보다 뭐든 노력해야 눈에 띄는 법이다. 듀어스는 한 번 더 숙성하는 수고를 들였다. 그렇게 차이를 만들었고, 브랜드 정체성으로 내세웠다.

그렇다면 더블더블은? 직관적으로 더블의 곱. 두 번을 넘어 네 번 숙성했다는 뜻이다. 우선 기본 숙성한 원액, 즉 수많은 몰트위스키와 그레인위스키을 각각 블렌디드 몰트위스키와 블렌디드 그레인위스키로 만들어 따로 숙성한다. 그다음에 그 두 가지를 블렌딩해 추가 숙성. 마지막으로 셰리 캐스크에서 피니시 숙성. 이렇게 각기 다른 캐스크 네 개에 따로 또 같이 단계적으로 숙성해 풍미를 더했다. 이 과정은 병을 담은 상자 뒷면에 일러스트로 잘 설명해놓았다.

듀어스의 정체성이 더블 에이징인 만큼 그보다 더한 수고를 들였으니 자랑할 만하다. 마시기 전부터 흐뭇해지는 지점이다. 나 역시 더블더블의 뜻을 찾는 과정에서 호기심이 더 생겼으니까. 그렇게 공들여서 어떤 풍미를 만들려고 했지? 박스에 흥미진진한 예고편이 담겼다. 뭐든 공정이 늘어나면 가격도 올라가는 법이다.

그러니까 듀어스 더블더블은 다른 듀어스 제품보다 프리미엄 라인업이다. 게다가 라인업을 여는 제품이 듀어스 더블더블 21년이다. 보통 숙성 연수를 표기하는 엔트리 제품이 10~12년이다. 시작부터 고숙성 제품이 포진한 셈이다. 프리미엄 라인답게 병도 마름모 형태로 특이하다. 용량도 500mL로 적다. 용량이 적으니 병도 아담하고, 각진 병의 촉감도 사뭇 생경하다. 박스에서 꺼낼 때 커다란 호박색 보석을 꺼내는 기분이다. 대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시간을 압축한 향

마개를 열고 향을 맡았다. 매번 처음 향을 맡으며 첫인상을 가늠한다. 잔에 따르기 전부터 향긋함이 번졌다. 유독 마개 따는 소리가 경쾌했는데, 향도 표정이 한층 밝아질 정도로 향긋했다. 싱싱한 과실의 달콤함이 가볍게 살랑거리며 코를 간질였다. 잔에 따르고 더 천천히 음미하니 향이 흥미롭게 달라졌다.

향에 시간이 쌓인다고 해야 할까. 처음에는 화사함이 가볍게 맴돌았는데, 어느 순간 농축된 향으로 밀도가 달라졌다. 갓 딴 포도가 순식간에 건포도로 변했달까. 시간을 압축해 느끼게 하는 향이라니. 처음 맡은 화사함이 농밀한 향긋함으로 돌변한 셈이다. 잔에 따라 본격적으로 공기를 접한 결과다. 앞선 가벼움보다 숙성된 농밀함이 원래 향이라고 할 수 있다. 마개에서 맡은 향보다 잔에 담아 맡으니 더 진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그 변화가 선명하게 다가와 마시기 전 흥미를 더했다. 21년의 시간을 이렇게 주장하는 것인가. 고숙성이 보여준 마법 같은 찰나였다.

향이 향긋하면 맛도 달콤할 거라 생각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이럴 땐 반전이라기보다 배신당한 기분이 먼저 든다. 위스키란 그런 거지 하면서 넘어간 적이 많다. 이번에는 배신당한 기분이 들지 않게 향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한 모금 머금었다. 어떤 맛이든 기꺼이 반기리라는 호기와 함께. 첫 모금이라 알코올이 먼저 스쳤지만, 이내 달콤함이 맴돌았다. 숙성된 과실, 특히 포도의 진득한 달콤함이 선명했다. 배신하지 않았다. 향과 이어지는 맛. 정확하게 말하면 향의 여운을 보다 증폭하는 맛. 괜히 더 반가운 그런 맛. 달콤함이 혀를 맴돌다가 이내 매운맛도 번졌다. 그러고 나서 코로 내쉬면 다시 달콤한 향이 피어올랐다. 하나의 주제로 기승전결이 확실하다. 부드러운데도 자기 목소리가 분명하다.

혀끝의 초콜릿

흔히 블렌디드 위스키의 특징으로 부드러움과 균형을 꼽는다. 블렌딩을 통해 균형 감각을 중시한 까닭이다. 반명 싱글 몰트위스키는 분명한 목소리를 낸다. 성격 차이는 있어도 제각각 지향하는 방향성을 향해 내달린다. 듀어스 더블더블 21년은 블렌디드 위스키다. 그럼에도 개성이 분명하다. 부드러운데도 목소리가 선명하다. 셰리 계열 싱글 몰트위스키처럼 숙성된 포도의 농밀함을 전한다. 이런 맛의 근원으로 두 가지를 떠올릴 수 있다. 우선 피니시로 숙성한 올로로소 셰리 캐스크의 개성. 다른 하나는 21년이라는 고숙성이다. 숙성 연수가 길어질수록 다채로움보다 밀도가 생긴다. 개성의 밀도를 높인 시간의 힘이다.

듀어스 더블더블 21년을 마실수록 두 요소가 한층 선명해졌다. 오래 숙성한 셰리 계열 싱글 몰트위스키를 마시면 초콜릿이 혀끝에 녹아내린 것처럼 달콤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듀어스 더블더블 21년도 마실수록 농축된 달콤함이 혀를 간질였다. 진한 초콜릿을 먹을 때 너무 달면 쓰다고 느끼기도 하잖나. 뾰족하게 찌르는 달콤함이랄까. 그런 셰리 계열 위스키의 감칠맛이 풍성했다. 홀짝홀짝 마시다 보니 다음 잔을 따르는 속도가 빨라졌다. 46도로 알코올 도수가 높은데도. 500mL라서 양이 적은데도. 점점 병에 든 술이 줄어들어 아쉬웠다.

듀어스 더블더블 21년은 다양한 안주가 다 잘 어울렸다. 밀도 높은 달콤함이 맛의 중심을 이룬 덕분이다. 우선 초콜릿. 앞서 말했듯 둘은 공통점이 있다. 점도 있는 달콤함이 잘 어울린다. 맛을 증폭하기보다 비슷한 질감을 오래 음미하게 한다. 원래 위스키와 초콜릿은 잘 실패하지 않는 조합이니까. 다음은 캐슈너트.

고소함과는 결이 다르니 부딪칠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향긋함을 중화하면서 자연스레 장면을 전환했다. 때로 매운맛을 선명하게 하거나 매캐한 풍미를 돋우기도 했다. 딱 알맞은 안주라고 하긴 힘들다. 그럼에도 다른 이야기를 풀어내게 한다는 의외성을 부여한다. 가장 잘 어울리는 안주는 블루베리다. 예상한 바다. 핵심 풍미에 숙성된 포도의 달콤함이 담겨 있다. 그만큼 블루베리는 눅진한 과실 풍미를 증폭했다. 블루베리와 함께 마시면 술이 줄어드는 속도가 더 빨라진다. 아껴 마시고 싶은 마음과 한 잔 더 마시고 싶은 마음. 시음 내내 듀어스 더블더블 21년은 갈등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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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김종훈
Photographer 박원태

2025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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