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떨 때는 건포도가, 또 어떨 때는 초콜릿이 앞서기도 했다.그 과정에서 은은하게 꿀의 달콤함도 번졌다.”
부티크 싱글 몰트위스키. 아벨라워에 관해 설명할 때 항상 붙는 문구다. 부티크는 우리가 떠올리는 그 의미의 부티크 맞다. 규모가 크지 않아도 개성이 또렷한 질 좋은 무엇. 원래 그런 의류를 취급하는 점포를 칭했지만 이젠 개념이 확장했다. 아무튼 아벨라워는 부티크를 지향한다. 싱글 몰트위스키 자체가 개성이 특징이다. 거기에 부티크라고 더 세밀하게 차별화한 셈이다. 물론 누구나 원하는 명칭을 붙일 수 있다. 중요한 건 그 명칭에 걸맞게 어떤 노력을 기울였느냐다.
그냥 붙인 말이 아니었다. 우선 위스키 재료의 핵심인 보리를 선택할 때부터 까다롭다. 증류소 15마일 이내에서 생산한 최상급 보리만 사용한다. 또 다른 재료인 물 역시 증류소 근처 천연 샘에서 길어 사용한다. 아벨라워 증류소가 스페이사이드 지역에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스페이사이드 지역은 스카치위스키의 성지라 불린다. 스코틀랜드 북동부의 스페이강을 품은 지역. 물과 기후가 위스키 생산에 이상적이다. 지역색을 담은 화사한 향과 맛 역시 특별하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위스키 양조장이 스페이사이드에 모여 있는 이유다. 아벨라워는 그 스페이사이드에서 더 지역을 좁혀 자기만의 한정된 기준을 적용했다. 스페이사이드 안에서도 아벨라워만의 개성을 더 뾰족하게 하겠다는 의지다.
숙성 방법에도 남다른 기준을 세웠다. 아벨라워는 더블 캐스크 방식으로 숙성한다. 숙성에 사용하는 캐스크는 셰리 캐스크와 아메리칸 버번 캐스크. 보통 더블 캐스크라 하면 기본 숙성 후 다른 캐스크에서 추가로 숙성한다. 아벨라워는 각 캐스크의 특징을 깊게 받아들이기 위해 각각 따로 숙성해 합친다. 마지막에 합치는 단계를 매링(Marrying)이라 부른다. 이 방식을 거치면 각 캐스크의 특징이 더욱 선명해진다. 보다 세밀하게 조율해야 하지만, 그만큼 섬세한 맛을 표현할 수 있다.
이처럼 아벨라워를 병에 담으려면 보리부터 숙성 방법까지 까다로운 기준이 많다. 이 모든 기준은 품질을 높이고 개성을 살리려는 아벨라워만의 방식이다. 부티크라 굳이 따로 부를 이유가 된다.
꽃밭과 과수원
아벨라워에 대한 정보는 여기까지. 기본적인 정보는 알아야 하기에 찾아봤다. 부티크 싱글 몰트위스키라는 정보를 바탕에 깔고 박스를 개봉했다. 아벨라워 12년의 박스는 네모가 아닌 원통형. 와인색이 살짝 도는 짙은 갈색이 차분하고 고급스럽다. 박스를 개봉하면 독특한 형태의 병이 드러난다.
보통 위스키 병과는 사뭇 다른, 중세 시대 약병 같은 형태다. 길이가 짧아 전체적으로 뭉툭하면서 매끈한 유리 표면이 도드라진다. 라벨 역시 어떤 약병인지 표시하는 표식처럼 작다. 이런 형태가 양가적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소량 생산품 같은 소박함과 그래서 더 희소성이 도드라지는 특별함. 부티크 하면 떠오르는 화려함과 결이 다르다. 하지만 아벨라워가 지향하는 부티크의 결은 짐작할 수 있다. 대량생산 시대의 특별한 한 병.
여느 때처럼 마개를 열었다. 여느 때와는 달리 향이 순식간에 퍼졌다. 마개를 열었을 뿐인데? 향수를 뿌린 듯 명확하게 향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과실의 달콤한 향보다는 꽃향기에 가깝다. 잔에 따르고 맡아보니 향은 더욱 풍성해졌다. 꽃밭이다. 머릿속에서 꽃밭이 펼쳐졌다. 난 한 마리의 벌이 된 기분으로 향기를 쫓아 더욱 깊숙하게 잔에 코를 박았다. 꽃밭을 지나치자 과수원도 펼쳐졌다. 달콤한 과즙이 혀에 닿는 듯한 과실의 향. 꽃밭에서 과수원까지 향만으로 충분히 즐겁게 했다. 이것이 부티크인가.
스페이사이드 지역 싱글 몰트위스키는 대체로 화사하다. 그동안 마셔온 몇몇 싱글 몰트위스키가 증명해왔다. 아벨라워는 그 화사함이 더욱 선명하고 진하다. 향긋한 위스키. 아벨라워의 첫인상은 명확했다. 입이 촉촉해졌다. 침이 고였나 보다.
부티크의 맛
아벨라워 12년의 색은 꽤 진하다. 황금색보다 호박색, 그보다 짙은 갈색으로도 보인다. 색이 짙다고 깊은 맛을 보장하진 않는다. 그럼에도 짙으면 깊은 맛을 낼 거라는 기대감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 정도는 15년 이상 숙성한 위스키의 색인데, 하면서 마셨다. 짙은 꽃과 과실의 맛에 빠져들었다, 라고 하면 좋겠지만 첫 모금은 색에서 느낀 감흥과는 사뭇 달랐다. 맑고 가벼웠다. 향에서 느낀 감흥과도 또 달랐다. 향긋함을 예상했는데 매운맛이 번졌다. 마지막에 꿀의 달콤함이 언뜻 살아났다가 이내 사라졌다. 첫 번째 만남은 향만 남았다.
첫 만남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동안 여러 위스키를 시음하면서 깨달은 바가 있으니까. 위스키는 처음에 모든 걸 보여주지 않는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 오늘과 내일이 또 다르다. 혀의 상태가, 공기와 닿은 시간이 위스키가 속내를 내보일 시기를 결정한다. 그 과정에서 접하는 감흥을 합치면 어느 정도 풍미의 형체가 드러난다. 예상대로 두 번째 만남은 또 달랐다.
향은 더 짙어졌다. 꽃과 과실에서 캐러멜의 달콤함으로 확장했다. 때로 건포도의 눅진한 향도 뒤섞였다. 맛 역시 첫 모금에서 느낄 수 없던 다채로움이 퍼졌다. 매운맛은 여전했지만, 뒤로 새콤달콤한 과즙이 번졌다. 때로 초콜릿의 진한 달콤함도 스쳤다. 어떨 때는 건포도가, 또 어떨 때는 초콜릿이 앞서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은은하게 꿀의 달콤함도 번졌다. 점점 형체가 그려졌다. 아벨라워는 마실수록 화사하고 달콤했다. 그렇다고 마냥 달달하지만은 않았다. 첫 만남의 매운맛은 여전히 건재해 피니시까지 이어졌다.
아벨라워 12년은 그제보다 어제, 어제보다 오늘 더 풍성해졌다. 물론 하루이틀 사이에 추가 숙성될 리 없다. 점점 진하게 풍미를 전했다는 얘기다. 안주로는 건포도나 말린 블루베리가 제격이었다. 건포도류는 아벨라워 12년에 담긴 과일의 풍미를 길게 가져간다. 반면 초콜릿의 달콤함은 향과 맛을 희석했다. 육포는 맛의 결이 아예 달랐다. 고기와 과일을 같이 먹으면 좀 그렇잖나. 견과류의 고소함은 풍미를 정리해주긴 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아벨라워 12년의 흥취를 돋우는 안주는 건포도류였다. 포도와 잘 어울리는 위스키. 그러고 보니 아벨라워는 ‘프랑스 1위 싱글 몰트위스키’다. 부티크 싱글 몰트위스키라서 인기가 많나 했는데 이렇게 포도와 연결된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코냑의 맛과도 통하는 부분이 있다. 그러니까 화려한 화사함. 부티크 맞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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