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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하거나 탐스럽거나

작지만 알찬 자동차. 크고 화려한 자동차. 둘을 놓고 고른다면 답이 빤할까. 둘을 비교하면 그럴지도 모른다. 비교하지 않고 순서대로 타보면 또 다르다. 저마다 이유가 있고 역할이 나뉜다. 전기차 중에서 작고 알차거나 크고 화려한 두 차종을 연이어 타봤다.

UpdatedOn January 1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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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 EV3

누구나 살 만한 전기차가 나타났다.

5%. 2023년 한국의 전기차 보급률이다. 전기차 ‘캐즘’이 있지만, 어쨌든 꾸준히 늘어나는 중이다. 정부 목표는 2025년까지 보급률 20% 달성. 목표가 높아 보이지만, 언젠가 그 숫자는 현실이 될 거다. 기아 EV3는 그 목표에 도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전기차다. 전기차 시장의 성장을 이끌 모델이니까.

적당한 가격에, 괜찮은 구성. 언제나 이런 자동차가 판매를 이끌어간다. 지금 국내 대표 전기차는 현대 아이오닉 5와 기아 EV6다. 두 차종이 국내 전기차 시장을 본격적으로 열었다. 무엇보다 전기차의 매력에 눈뜨게 했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E-GMP를 적용해 전기차의 장점을 극대화한 점이 주효했다. 크기에 비해 월등히 넉넉한 공간. 최신 기술을 적용한 첨단 편의 장치. 전기차이기에 즐길 수 있는 기능. 돈을 내더라도 먼저 접하고 싶게 했다. 물론 테슬라에 비해 훨씬 낮은 문턱도 중요했다.

EV3는 그 너머를 바라본다. 이젠 사정이 달라졌다. 돈을 좀 내더라도 전기차를 타고 싶은 사람은 다 샀다. 아이오닉 5와 EV6가 충실한 만큼 가격도 어느 정도 높다. 진입 장벽이 있다는 뜻이다. EV3는 그 장벽을 낮춘다. 일단 가격이 적절하다. 보조금 받으면 3000만~4000만원대. 자동차를 구입할 때 고려하는 금액대란 뜻이다. 이젠 경차도 2000만원 하는 시대니까. 그러면서 구성이 괜찮다.

전기차이기에 크기 대비 공간이 쾌적하다. 첨단 편의 장치도 빼놓지 않았다. 완충 시 주행거리도 높은 편이다. 딱히 아쉬울 게 없다. 아니, 일상 영역 두루두루 쓰기에 딱 알맞다. 그러니까 살 만한 전기차. EV3가 제시하는 매력이다.

모두의 전기차

간결하다. 그동안 기아 모델 디자인 중 기교를 덜 부렸다. 그래서 심심한가 하면 아니다. 얇게 그린 주간주행등이 미래 감각을 조성한다. 매끈한 면에 적용한 간결한 디지털 그래픽. 이런 인상이 SF 영화 속 이동 수단처럼 느껴진다. 주인공이 타는 매끈한 차 말고 도시를 알아서 오가는 이동 수단 말이다. 흔히 말하는 모빌리티의 보편적인 형태. 먼 미래에는 심심한 디자인일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모빌리티가 알아서 오가는 미래가 아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지금 더 미래적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전기차로서 차별화하는 인상이다.

간결한 인상은 측면으로도 이어진다. 휠 하우스와 하단에는 플라스틱을 적용했다. 보통 험로 주파성을 강조한 SUV가 이런 형태로 처리한다. 이것저것 튀는 것에 대비한 실용적인 형태다. EV3로 험로를 달리진 않을 테다. 그냥 이미지를 차용했다는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다. 보다 활동적인 느낌을 강조하는 정도.

뒷문 도어레버는 C필러 쪽에 숨겨 달았다. 2도어처럼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다. 작은 차를 보다 스타일 좋게 보여줄 때 많이 쓴다. 나름대로 신경 썼다는 뜻이다. 후면도 간결하지만 리어램프에 멋을 좀 부렸다. 얇게 처리해 전면 주간주행등의 느낌을 잇는다. EV3는 간결함을 기본 삼아 몇몇 디테일에도 공을 들였다. 누군가 열광할 디자인은 아니지만, 대부분 호감을 느낄 디자인이다. EV3의 역할을 생각하면 절묘하다.

미래 모빌리티 느낌은 실내에서 더욱 증폭한다. 역시 간결하다. 일단 선과 면이 차분하다. 장식이 적고 단정하다. 대시보드에 직물 소재를 덧대 따뜻한 느낌도 조성한다. 간결하지만 차갑지 않은 인테리어다. 소재 자체가 고급스럽진 않지만, 각 소재를 달리해 심심함도 덜었다.

인테리어의 핵심은 역시 디스플레이. 가로로 긴 디스플레이를 툭 얹었다. 계기반과 중앙 디스플레이를 합친 형태다. 구획은 세 개. 왼쪽은 계기반, 오른쪽은 인포테인먼트를 보여준다. 가운데도 있다. 공조 정보를 나타낸다. 디지털 디스플레이가 버튼을 삼킨 이후 공조 장치를 확인하거나 조절할 때 한 번 더 단계를 거쳐야 해 불편했다. EV3는 그 불편함을 줄였다. 사소하지만 은근히 운전자를 배려한 디자인이다. 최신 모델답다.

공간은 쾌적하다. 열에 아홉은 오, 넓네 하면서 흐뭇해할 정도다. 자동차는 크기와 공간을 계속 키워왔다. 그런 흐름에서도 이 정도면 패밀리 카의 기본은 해낼 수 있다. 기본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공간은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누군가는 준중형 실내가 너무 좁지만, 누군가에겐 쾌적하다. 불편하지 않은 선에서 해낼 기본. EV6의 공간은 패밀리 카의 기본도 품는다.

공간, 출력, 편의 장치, 주행거리, 가격 등 걸리는 부분이 없다.
지금 전기차를 사려고 할 때 고려할 기본 조건을 충족한다.
타보니 역할에 충실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이모저모 알차다.

구성의 묘

시승한 모델은 EV3 롱레인지 모델이다. 배터리 용량은 81.4kWh. 차 크기 생각하면 오버스펙이다. 덕분에 완충 시 501km나 달릴 수 있다(17인치 휠 기준). 소형 전기차는 주행거리가 짧을 수밖에 없다는 말, EV3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스탠더드 트림만 해도 완충 시 350km 달릴 수 있다. 일상부터 여행까지 쓰임새의 기본을 충족한다. 그런 점에서 롱레인지는 다다익선, 스탠더드는 합리적. 출력은 두 트림 모두 동일하다.

전기모터 출력은 150kW. 단순 환산하면 201마력 정도다. 배터리 무게가 있더라도, 어떤 상황에서도 아쉬울 출력은 아니다. 시승하면서도 출력이 아쉬울 상황과 맞닥뜨리진 않았다. 그렇다고 짜릿함의 영역을 넘나들진 않는다. 그렇게 타라고 만들지도 않았다. 한 번 느껴볼까 싶어 가속페달을 깊게 밟아보기도 했다. 초반 응답성은 민첩하지만, 그 이상의 쾌감은 적었다.

오히려 재미는 쾌적한 출력이 차체 움직임과 맞물렸을 때 차올랐다. 하체는 탄탄한 중심에 부드러운 외피를 두른 성향이다. 차체 움직임도 긴장하고 다잡기보다 적당히 풀어놓았다. 일상의 여러 상황에서 안락함을 염두에 둔 설정이다. 적당히 중력과 원심력을 느끼며 달리는 재미가 있다. 더 많은 사람을 만족시켜야 하는 소형 SUV답게 모나지 않고 둥글둥글하다.

전체적으로 EV3는 구성의 묘가 돋보인다. 어느 하나 부족하지 않은데, 접근성도 높였다. 공간, 출력, 편의 장치, 주행거리, 가격 등 걸리는 부분이 없다. 지금 전기차를 사려고 할 때 고려할 기본 조건을 충족한다. 타보니 역할에 충실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이모저모 알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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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스 엘레트라 R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로터스는 잊어라.

로터스가 달라졌다. 전기모터 품고 거대해졌다. 무엇보다 고급스러워졌다. 요즘 자동차 흐름으로 보면 당연한 변화다. 하지만 로터스에겐 천지가 개벽할 변화다. 로터스는 경량 스포츠카를 만들어왔다. 아니 초경량 스포츠카가 더 정확하겠다. “무게를 줄이면 모든 구간이 빨라진다.” 창업주 콜린 채프먼의 말이다. 출력을 높이기보다 무게를 더는 방식으로 스포츠카의 짜릿함을 구현했다. 그 방향성이 한마디로 극단적이다. 수동변속기만 고집하다 겨우 자동변속기를 달아줬다.

경량화를 위해 에어컨과 오디오도 옵션으로 빼둘 정도였다. 그 결과 1톤 남짓한 차체 무게로 면도날처럼 트랙을 날카롭게 저몄다. 그런 로터스가 거대해지고 고급스러워졌다. 로터스의 세상은 확실히 뒤집어졌다고 볼 수 있다.

변화는 로터스가 전기차 브랜드로 전환하기로 결정하면서부터다. 전기차는 배터리 무게 때문에 가벼울 수 없다. 더 이상 경량 스포츠카라는 방향성을고집할 수 없다는 뜻이다. 커지고 무거워지면 출력을 높여야 한다. 그러면서 커진 실내를 채울 고급스러움도 필요하다. 예전처럼 마니아에게만 팔 수 없으니 많은 이가 선호할 SUV가 적절하다. 더구나 로터스를 인수한 지리자동차는 볼보와 폴스타도 품고 있다.

그들의 감각도 더할 수 있다. 로터스가 첫 모델로 대형 전기 SUV 엘레트라를 선보인 배경이다. 초경량 스포츠카 브랜드에서 만든 거대한 전기 SUV. 어떻게 보면 극단적인 성향은 유지한다고 해야 할까. 정반대로 극단적이지만, 그래서 더 변화하겠다는 의지가 도드라진다. 아무튼 로터스는 새 도약을 꿈꾼다. 그 첫걸음이 엘레트라다.

새로운 로터스

크다. 누구나 보면 크다고 느낄 덩치다. 전장만 해도 5m 하고도 103mm다. 폭은 2m가 넘는다. 덩치에 비해 전고는 1636mm로 높지 않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날카롭다. 대형 SUV이긴 한데 근육질 덩치보다 매서운 위압감이 앞선다. 해머보다 거대한 도의 날카로움이랄까. 특히 전면 인상이 매섭다. 주간주행등은 삐죽 솟은 뿔 같다. 길고 각지게 그렸다. 하단은 범퍼가 헤드램프를 품어 깔끔한 디자인이다. 그럼에도 아래쪽을 주간주행등과 반대로 뾰족하게 마무리했다. 위아래로 뾰족한 인상을 풍긴다.

부메랑처럼 꺾인 이 각은 엘레트라를 관통하는 디자인 요소다. 보닛 안쪽을 파고드는 각도 한 번 꺾었다. 그 각이 만드는 음영이 도드라진다. 측면도 앞문에 깊은 음영을 넣었다. 후면 역시 램프 주변으로 각지게 꺾어 멋을 부렸다. 스포츠카 만들어온 로터스의 미적 감각을
반영한 결과다. 예전에는 곡선으로 뾰족하게 했다. 이젠 각을 살려 뾰족하게 한다. SUV 형태를 고려한 변화다. 크기에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면 로터스가 보인다. 형태가 달라져도 로터스의 감각이 스몄다. 로터스 엠블럼을 확인하지 않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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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셔리의 진면모는 실내에 있다. 과거 로터스는 없어도 너무 없어 놀랐다. 엘레트라는 많아도 너무 많아서 놀라게 한다. 실내는 최신 럭셔리 자동차의 방향성을 그대로 반영한다. 하나 더 나아간 점은 전기차다운 첨단 감각. 가운데에 커다란 디스플레이를 달았다. 테슬라가 떠오르는 크고 반듯한 직사각형 디스플레이다.

그래픽은 정교하고 반응성 또한 쾌적하다. 실내 편의 장치는 전부 디스플레이에서 조작할 수 있다. 이젠 익숙한 방식이다. 그럼에도 정교함과 반응성은 신선하다. 반면 계기반 디스플레이는 간결하게 줄였다. 이 또한 역시 첨단 자동차다운 방향성이다. 미래적인 느낌을 조성한다. 운전할 때 필요한 정보야 헤드업 디스플레이에서 볼 수 있으니까. 물론 헤드업 디스플레이는 크고 또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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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도 구성이지만 질감이 고급스럽다. 과거 로터스는 실내에 알루미늄을 드러낼 정도로 경량화를 추구했다. 이젠 두툼한 가죽을 빈 곳 없이 둘렀다. 두툼한 가죽 씌운 시트 역시 럭셔리를 지향한다. 기어 노브는 장식처럼 작다. 컵홀더도 두 개나 있다. 컵홀더 따윈 없고 큼직한 기어 레버만 있던 로터스는 옛 이야기가 됐다.

무엇보다 스피커 23개로 구성한 KEF 레퍼런스 사운드 시스템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엔진음과 배기음만 즐기던 로터스가 사운드 시스템에 신경 썼다. 섬세하면서 웅장한 소리가 일품이다. 럭셔리는 시각, 촉각, 청각까지 고려해야 한다. 넉넉한 공간에 질 좋은 가죽을 두르고 첨단 장치를 적용한 로터스. 엘레트라는 그 화려한 변화를 증명한다.

전통 자동차 브랜드가 만든 전기 SUV 중에선 가장 크고 강력한 녀석이다.
시장 선점. 로터스가 지금 엘레트라 R을 선보인 이유랄까.

강력한데 안락한

시승한 모델은 엘레트라 R이다. 엘레트라는 S와 R 두 가지 트림이 있다. S만 해도 최고출력 612마력을 뿜어낸다. R은 무려 918마력.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2.95초 만에 도달한다. 리어 모터에 2단 자동변속기도 탑재했다. 고속에서도 뒷심 부족하지 않게 출력을 즐기게 한다. 트랙 행사에서 엘레트라 R을 타봤다. 급격한 코너에서도 좌우로 기울어지지 않았다.

덩치 큰 SUV의 롤링을 제어하는 일은 쉽지 않다. 얼마나 자세를 잘 다잡는지 척도가 된다. 그만큼 스포츠 주행의 재미도 높인다. 출력이야 숫자가 증명하지만, 움직임은 숫자로 드러나지 않는다. 숫자의 감흥은 이런 움직임이 바탕이 돼야 온전히 만끽할 수 있다. 엘레트라
R은 만끽하게 했다. 비록 단 두 바퀴만 돌아봤지만, 한계까진 아득히 남았다는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엘레트라 R은 더 몰아붙이라고 종용했다. 그렇게 짜릿함을 고조했다. 예전과 방식은 달라도 엘레트라 R 역시 트랙에서 짜릿함을 즐기게 했다. 누가 로터스 아니랄까 봐.

예전 로터스를 도심에서 타면 힘들다. 오직 빠르고 민첩하게 달리는 데만 집중했으니까. 너무 좁고, 노면 충격을 적나라하게 전달하며, 시끄러웠다. 엘레트라 R은 다르다. 무지막지한 출력을 품어도 대형 SUV의 안락함이 깔려 있다. 트랙에서 롤링을 다잡은 서스펜션은 도심에선 너그럽게 노면을 품는다. 보통 차체를 다잡으면 일상에선 피곤할 수 있다.

엘레트라 R의 서스펜션은 그 양쪽을 능숙하게 대응한다. 이런 능숙함이야말로 로터스의 변신을 환영하게 한다. 더 많은 사람에게 다가가겠다는 얘기니까. 게다가 아직 엘레트라 R만큼 안락하고 강력한 전기 SUV가 드물다. 테슬라 모델 X 정도다. 전통 자동차 브랜드가 만든 전기 SUV 중에선 가장 크고 강력한 녀석이다. 시장 선점. 로터스가 지금 엘레트라 R을 선보인 이유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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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김종훈
Photographer 신동훈

2025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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