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나 도쿄
한정현, 스위밍꿀
새하얗게 쌓인 눈 위에 적힌 글씨처럼 보이는 표지. 표지가 예쁜 책은 사진만으로는 아쉽다. 따스한 햇살이 드는 날 카페에 가지고 나가자. ‘저 사람이 읽는 책은 뭘까?’ 주변인의 궁금증을 자아낼 것이다. 차가운 겨울에 마시는 따뜻한 차 한 잔과 같은 책, <줄리아나 도쿄>. 작가 한정현의 첫 장편소설로 2019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책은 한주와 유키노의 서사를 중심으로 시대의 아픔을 조명한다. 폭력 피해자들이 서로의 아픔을 껴안아 가까워진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고통으로 시작한 연대란 얼마나 끈끈하고 애달픈지 이야기한다. “모두의 인생에는 무언가를 견디게 하는 빛이 있을 것이리라,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간절히 믿고 소망하게 됐다. 그 빛이 번지는 그 순간을 함께했으면 좋겠다고 바라게 됐다. <줄리아나 도쿄>는 내내 그런 마음을 품으며 쓴 글이다.” 작가는 모든 문장을 용기와 위로를 전하는 마음을 담아 적어 내렸다고 말했다.
꿈꾸는 불법자들
최고야, 프로파간다
글과 그림의 배치와 구성부터 책의 주제까지 텍스트힙 북으로 완벽하다. 파란 색실로 엮여 제본된 디자인마저 인상적이다. 책장에 꽂아두기만 해도 ‘와 너 이런 책도 읽어?’ 하는 반응을 자아낼 수 있을 것이다. <꿈꾸는 불법자들>은 영국 체류권(ILR)을 얻기 위해 14년 이상 불법 체류 상태로 보내는 이들을 인터뷰한 책이다. 그들의 꿈과 목표를 알기 위해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10년 전 영국왕립예술학교의 학위 논문으로 발표됐고, 이후 한국어로 번역해 발간했다.
인터뷰이가 자필로 적은 글과 대화 중 직접 그린 그림으로 인터뷰를 구성했다. 답변은 모두 지워져 있기도 하고 아주 옅게 보이기도 한다. 책은 제한된 자유 속에 불법 체류자로 살아가는 이들을 조명하며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사색하게 한다. 의도적으로 엷은 종이에 인쇄한 책은 평범한 일상 속 감춰진 소수자의 이야기를 표현한다.
겨울 데자뷔
최유수, 민음사
눈이 시리게 아름다운 겨울의 풍경 사진과 정제된 문체. 독서 인증샷은 모호성과 함축성이 빛나는 시를 올릴 때 가장 돋보인다. 새벽 시간을 노려 촉촉한 감성이 젖어들 때 업로드하자. 책의 제목을 묻는 메시지가 쇄도할 것이다. <겨울 데자뷔>는 <사랑의 몽타주> <무엇인지 무엇이었는지 무엇일 수 있는지>의 작가 최유수의 여행 에세이다. 황량한 시베리아로 떠난 작가는 겨울 풍경을 바라보며 ‘이동하는 인간’ 내면에 깃든 사유를 담았다.
시와 산문이 섞여 있는 구성으로 최유수 특유의 담백하게 정제된 문체가 돋보인다. 그의 글은 고요한 바다에 잠겨 있는 듯 느껴지는데 직접 촬영한 사진이 이에 감상을 더한다. 연결된 소설이 아니기에 어느 페이지부터 읽어도 짙은 감성을 느낄 수 있다. 작가 본인이 직접 꼽은 책 속 문장은 ‘Everything comes full circle. 모든 시작은, 제자리로 되돌아오는 여정의 시작이다’. 149쪽에 적혀 있다.
우아한 언어
박선아, 위즈덤하우스
겉멋처럼 보이고 싶지 않다면 제격이다. 직접 말하지 않아도 한 장을 찍어 올리면 ‘내 일상의 이야기’처럼 보일 수 있는 친근한 문장들로 이뤄졌다. ‘힙’이란 만들어낸 것이 아닌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멋으로 보여야 하는 법. 박선아는 <나일론> 매거진 피처 어시스턴트를 거쳐 <어라운드> <안그라픽스>에서 에디터로 근무한 작가다. 현재는 누데이크의 아트디렉터로 일한다.
오랜 기간 예술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작가는 ‘아름다움을 탐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눈의 근육이 있다’고 말한다. <우아한 언어>는 오랜 취미였던 사진과 함께 ‘사진’을 둘러싸고 있는 자신의 단상을 담아냈다. 친근한 문체와 공감 가는 내용은 여기저기 밑줄을 부른다. 크기도 작아 가방에 넣어두고 이동할 때 잠깐 읽기 편하다. 책 표지에 적힌 문장들은 목차를 나열한 것. 작가 본인의 관점뿐 아니라 듣거나 경험한 타인의 이야기도 섞여 있어 폭넓은 사고를 가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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