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탈이라. 그런 점에서 저는 유튜브 광고를 들으면서 하는 걸 좋아해요, 사람들의 목소리가 나오는.
그래서 저는 호텔보단 모텔을 선호해요. 격한 섹스는 왠지 호텔보다는 모텔이 더 잘 어울리지 않아요? ”
종종 섹스 칼럼의 인터뷰이가 되어주는 박희연은 최근 연봉 협상이 잘되어 회사를 더 다니기로 했다. 지난번 통화에서는 곧 퇴사할 거라고 말했지만, 1년은 채워볼 생각이라며 말을 바꿨다. 박희연은 현실적인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박희연에게 섹스할 때 어떤 노래를 듣냐는 질문 대신, 배경음악이 필요한지 물었다. “사람이 좋으면 노래 같은 건 필요 없죠. 숨 쉬는 소리가 노래니까요.” 상당히 낭만적으로 들리는 답변이었다. “좋은데 노래를 틀 겨를이 어디 있어요. 네가 나 좋아하는 걸 내가 알고, 나도 널 좋아하는 걸 네가 안다? 그럼 노래 고르는 시간은 낭비라고 생각해요.” 아, 좋아하면 노래는 필요 없는 건가요? “노래의 역할은 상대가 누군지에 따라 달라져요. 좋아하는 남자와 있을 땐 노래가 더 좋은 섹스를 하게 도와주죠. 약간 어색한 남자와 할 때는 시작할 수 있게 도움을 주고요.” 좋아하는 노래의 장르가 있습니까? “여자가 노래를 먼저 트는 건 없어 보여서 그냥 남자가 트는 노래를 들어요.” 남자가 틀어주는 음악이 내가 선호하는 장르다? “그런 셈이죠. 그래도 너무 작정한 남자는 부담스러워요.” 시가렛 애프터 섹스 노래 같은 건가요? “맞아요. 끈적해 죽겠는 노래. 키스를 더 격정적으로 해야 할 것 같고, 섹스도 더 질펀하게 해야 될 것 같아요. 일단 틀었으니 듣긴 하지만, 계속 그런 노래만 틀면 제가 다른 노래를 추천하죠.”
박희연은 남자가 먼저 리드할 수 있게 이끌었다. 그는 남자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게 해주는 여자였다. “노래에 맞춰서 하는 남자와 섹스한 적도 있어요. 노래 박자에 정확히 맞춰서.” 빠른 노래였나요? “맞아요. 테크노풍 음악이었는데 나름 좋았어요. 박자 맞춰서 피스톤 운동을 하는데 전 좋더라고요. BPM이 좀 빠른 편이었거든요.” 빨리 하는 걸 좋아하는 편인가요? “정확히 말하자면 빠른 섹스가 아니라 격한 섹스를 좋아해요. 그런 의미에서 섹스할 때 클래식은 안 들어요. 격한 섹스에 방해된다기보단, 클래식을 망치는 느낌이라서요.” 이야기를 듣다 보니 박희연에게 섹스는 어떤 의미일까 궁금해졌다. “저는 섹스가 아직까진 일탈 같아요. 클래식 음악은 일상에 가깝죠. 그래서 아직은 클래식과 섹스를 한 공간에 두고 싶지 않아요.” 내게는 클래식 들으면서 하는 섹스야말로 더 일탈 같았다. “일탈이라. 그런 점에서 저는 유튜브 광고를 들으면서 하는 걸 좋아해요, 사람들의 목소리가 나오는. 그래서 저는 호텔보단 모텔을 선호해요. 격한 섹스는 왠지 호텔보다는 모텔이 더 잘 어울리지 않아요? 좋은 호텔 중에는 유튜브가 안 되는 곳이 더러 있더라고요. 모텔은 적어도 유튜브는 볼 수 있어요.”
박희연은 왜 하필 광고에 매력을 느끼는 걸까 궁금해졌다. “누가 보고 있는 것 같아요. 광고가 툭 끊긴 애매한 순간에도 섹스를 한다는 사실이 더 에로틱하게 느껴져요. 그런데 요즘은 너무 바빠서 그런지, 아니면 전자파를 많이 쐐서 성욕이 줄어드는 건지 몰라도 섹스를 안 한 지 매우 오래 됐어요.” 그러기엔 박희연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는 꽤 많은 남자들이 올라왔다. “섹스한 남자, 앞으로 할 남자, 하고 싶은 남자는 태그해서 안 올려요. 제 스토리에 올라오는 남자들은 정말 좋은 친구인 거죠. 히히.” 박희연을 만나고 이틀 뒤, 마포의 한 곱창집에서 군대 동기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내가 사기로 했으니 이렇게 모였지, 약속 잡고 만나기 가장 어려운 지인이 군대 전우다.
나는 불판 위에 곱창을 올리며 질문을 건넸다. 섹스할 때 노래 들어? “음악이 필요한가? 하기도 바쁜데.” 선임이었던 최영욱은 나보다 다섯 살은 많게 생겼지만 실제로는 한 살 동생이다. 내가 처음 최영욱을 만났을 때 그는 중대의 ‘실세’였다. 테스토스테론이 넘치는 20대가 모인 내무반에서 ‘실세’가 되려면 위압감 같은 게 있어야 한다. 최영욱의 위압감은 그의 유머와 덩치에서 나왔다. 그는 깊게 생각하지 않고 지금 해야 하는 말, 해야 하는 일, 해야 할 운동이 있다고 느껴지면 그냥 하는 인간이었다. 섹스도 그렇게 했다. “나는 섹스할 때 뭐 있으면 방해돼. 나는 딱 뭐다? 침대, 여자, 콘돔. 끝.” 지금 내 주변엔 글을 쓰거나 콘텐츠 만드는 일을 하는 남자들이 많다. 그들 대부분은 섬세하고 예민하다. 그런 내게 최영욱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 남자 유형이었다. 상대방이 먼저 노래 틀면? “그럼 그냥 틀고 하지. 어차피 섹스할 때는 안 들리겠지만. 여자친구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둘 다 ‘테토’라서 노래 같은 건 안 틀어.”
“노래를 틀고 하면 좋은 점이 하나 있긴 해요.
섹스가 끝났을 때 노래가 몇 곡이나 흘렀는지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대충 10곡 정도 지났으면 30~40분 한 거니까.”
최영욱은 혼자 소주 한 병을 비운 채 한 손으로 곱창을 굽고 있었다. “노래 틀 시간에 열 번 더 움직이지.” 최영욱은 지루였다. 기본 한 시간이다. “나랑 하면 다들 죽지. 좋아서는 아니고 힘들어서.” 최영욱이 섹스하는 걸 본 적 없어 모르지만 그는 왠지 둔감할 것 같았다. 테크닉도 없을 것 같았다. 일단 넣고 보는 남자. 그런 부류를 싫어하는 여자도 있지만, 좋아하는 부류도 있다. 여자가 힘들어서 못 할 것 같다고 하면? “그냥 안 하지. 여자가 힘든데 억지로 하는 걸 보면 나도 딱히 하고 싶진 않음. 여자의 행복이 내 행복이니까.” 만약 처음 하는 상대, 혹은 연인이 아닌 상대와 할 때 어색함은 어떻게 풀까? “나는 파트너랑 해본 적이 없음. 여친이랑만 해.” 그는 의외로 순정남이었다.
한참을 말없이 듣던 후임 구영준이 입을 열었다. “나도 냅다 갈기는 편.” 구영준에게는 최영욱과 비슷한 면이 있다. 그도 할 일이 생기면 언제나 묵묵히 해냈다. 알고 보니 두 사람의 MBTI는 같았다. ‘ENTP’. 나는 사회에 나와 일을 시작하면서 괜히 감정적이거나 토라지는 사람을 싫어하게 됐다. 삐지는 동료가 생기면 일이 중간에 멈춘다. 나는 일을 한 번 시작하면 끝날 때까지 잡고 있는 스타일이라 그런 사람들이 싫었다. 그래서 구영준, 최영욱과 아직까지 연락하는 것 같다. 앞접시에 곱창을 올려주며 구영준에게 물었다. 너는 노래를 튼 적이 있긴 해? “어렸을 땐 틀었지. 뭔가 분위기가 잔잔하면 좋을 것 같아서. 예전에는 그게 좋았는데, 지금은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
섹스 전 노래는 효과가 떨어진다고 판단한 걸까? “나는 아무 소리도 없는 게 좋아. 노래는 필요 없어.” 좋아하는 소리가 있어서일까? “여자한테서 나는 소리. 내가 만드는 소리. 그게 좋아.” 성취욕이 있는 남자네. “남자들은 다 그렇지 않을까? 나는 인위적인 거 질색이야. 억지로 만드는 분위기도 싫고. 그래서 노래도 안 들어.” 억지의 기준이 궁금해졌다. “억지로 하게 되면 몸이 먼저 반응해. 어렸을 땐 여자가 눈이 풀려 있거나, 정신이 나가 있는 느낌이 들면 진짜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그냥 느껴지는 대로 생각해.” 혈기왕성한 20대 솔로 청년이라면 ‘섹스를 위한 음악’ 이야기가 애초에 무의미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구영준이 말을 이었다. “여자친구랑은 이미 무드가 만들어져 있어. 아무리 욕구가 없어도 2~3주 동안 안 하면 당연히 하고 싶어지지.” 그는 현재 본가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그럼 어디서 할까? “에어비앤비. 가끔 모텔 대실할 때도 있고. 에어비앤비는 하룻밤 자고 나오는데, 대실하면 그냥 저녁에 나와. 아침도 먹어야 되고, 써야 할 돈들이 많아지니까.”
“노래가 들리나요?” 이혜지는 섹스할 때 트는 음악이 있냐는 질문에 반문했다. “섹스할 때 노래 듣는 사람이 있을까요? 오히려 노래가 들리면 안 좋은 섹스가 아닐까요? 차라리 주제를 바꿔보세요. ‘섹스하기 전 트는 플레이리스트’로.” 글 쓰는 일을 하는 이혜지다운 의견이었다. “노래를 틀고 하면 좋은 점이 하나 있긴 해요. 섹스가 끝났을 때 노래가 몇 곡이나 흘렀는지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대충 10곡 정도 지났으면 30~40분 한 거니까.” 그 플레이리스트는 누가 만듭니까? “아티스트를 정해서 듣진 않아요. 그냥 좋아하는 노래 틀어놓으면 똑똑한 유튜브나 애플뮤직이 알아서 비슷한 노래를 틀어줘요. 보통 파트너와 번갈아가면서 틀죠. 저는 주로 자기 전에 듣는 음악을 틀어요. 섹스하고 바로 자야 되니까. 그런 노래가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주기도 하고요.”
이토록 인터뷰이의 의견이 하나로 통합되는 칼럼은 처음이다. 섹스할 땐 노래가 들리지 않는다. 섹스할 때 중요한 건 분위기가 아니라 섹스 그 자체. 한 번 잡힌 분위기, 이미 시작된 섹스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이혜지의 말대로 ‘섹스하기 전 트는 플레이리스트’ 혹은 ‘섹시한 분위기 만드는 노래’로 주제를 바꿔야 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오른손잡이 슈터가 슛을 망치는 방법 중 하나는 왼손에 더 신경 쓰는 거다. 왼손은 거들 뿐. 마찬가지다. 노래는 거들 뿐이다.
* 기사에 등장한 모든 인물의 이름과 직업은 가상으로 바꿨습니다.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