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Editor 유지원
2024년 12월 3일.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술을 한잔 마셨다. 대학교 친구들로 구성된 자리였다. 일본에서 공부하는 친구가 있어 다섯 명이 모두 모인 건 오랜만이었다. 각자의 근황을 주고받으며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헤어진 시각은 오후 10시. 대화는 카카오톡으로 이어졌다. 자주 보면 좋겠다는 이야기와 함께 내년에도 보자, 다시 일본 가기 전에 만나야 한다는 얘기가 오가던 무렵이었다. ‘얘들아 계엄령 뜸’. 오후 10시 30분, 난데없는 카톡이 왔다. 채팅창은 물음표로 뒤덮였다. 너무도 낯선 단어에 이게 무슨 소리인지 단어를 인지하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포털사이트를 열었는데 접속이 느렸다. ‘아 전쟁 났구나. 진짜 북한군이 쳐들어왔구나. 러시아에 군사 물자 보낼 때 짐을 싸둬야 했는데.’ 자취를 시작해 집에 TV가 없는 상황이 야속했다. 이럴 때 실시간으로 가장 빠르게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건 ‘X’다. 계엄령을 검색하고 최신 탭에 들어갔다. 글의 업데이트 속도가 빨라 스크롤이 미친 듯이 올라갔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기도 전에 생각보다 행동이 먼저 나갔다. 동생이 전화를 받아 엄마가 씻고 있다고 말했다. “야 TV에 속보 떴어? 당장 뉴스 틀어봐. 계엄령 터졌대. 네이버 뉴스는 들어가지지도 않아.” 당황한 동생이 황급히 TV를 켜는 소리가 들렸다. “헐 진짜네. 언니 이러면 어떻게 해야 해?” “나도 보고 알려줄게. 일단 끊어봐.” 계엄령이라니 교과서로나 보던 단어다. 그게 어떤 것인지, 어떻게 되는지, 무얼 해야 하고 무얼 하면 안 되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뉴스 사이트에 접속할 수 있었다. 전쟁이나 비상사태에서 비롯된 계엄령은 아니었다. 안도와 함께 황당함이 치밀었다. ‘그럼 계엄을 왜 해?’ 미친 건가. 발표된 긴급 담화 영상을 보아도 이해가 되지 않기는 매한가지였다. 1979년 10월 26일 비상계엄 이후 45년 만에 선포된 것이었다. 커뮤니티에서는 45년 만에 선포된 비상계엄의 원인이 ‘대통령 마음 상해죄’ 혹은 그의 ‘순애’ 때문이라며 비꼬았다. 그 짧은 시간에 애니메이션 <주술회전>의 등장인물 옷코츠 유타의 명대사인 ‘무례하긴 순애야’를 대통령 사진에 입힌 ‘짤’이 올라왔다. 역시 해학의 민족이다.
황당한 상황이지만 무서운 마음은 들었다. 하필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있던 차였다. 언론, 출판이 통제된다던데 용산에 있는 잡지사에서 일하는 나는 어떡하나. 민주당이 국회로 의원들을 긴급 소집하고 국회 출입문이 폐쇄됐다. 뉴스는 국회를 비추고 이재명 대표가 담을 넘는 영상을 실시간으로 봤다. 진기한 광경이었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금방 해결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뉴스를 보고 있을 때 헬기에서 무장한 계엄군이 내렸다. 뉴스를 보고 국회로 향한 일반 시민과 군인의 실랑이가 이어졌다. 상황이 급변하는 듯 보였다. 12시 50분, 190명의 의원이 모여 본회의가 열렸다. 그로부터 10분 뒤 재적 190인, 찬성 190인으로 비상계엄 해제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바뀌는 건 없었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2시간여 만의 무효. 뭐든지 빠른 대한민국이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계엄 이후 남은 건 의문이었다. 대체 무슨 그림을 그렸던 걸까? 본인만이 알 터였다.
“그 짧은 시간에 애니메이션 <주술회전>의 등장인물 옷코츠 유타의 명대사인
‘무례하긴 순애야’를 대통령 사진에 입힌 ‘짤’이 올라왔다. 역시 해학의 민족이다.”
이후 대통령 탄핵을 위해 거리에 모인 사람들은 소녀시대의 노래를 부르고 LED 응원봉을 들어 올렸다. ‘강아지발냄새연구회’ ‘민주묘총’ ‘전국 집에누워있기 연합’ ‘원고하다 뛰쳐나온 로판작가 모임회’ 등 각자의 상황이 적힌 깃발을 흔들었다. <씨네21> 취재팀은 ‘영화 120분 넘어가면 힘든 사람들’이라 적었다. 2016년 박근혜 정부 퇴진 시위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시위는 하나의 ‘놀이’처럼 느껴졌다. 다 함께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한곳을 향해 뜻을 모으는 상황이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앞으로도 일궈온 민주주의 안에서 목소리를 내는 일이 자유로우리라 믿는다. 또한 자랑이 되어주리라 믿는다. 그렇게 다이내믹했던 2주는 2024년 12월 14일 2차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며 종지부를 찍었다.
또 만나버린 세계
Editor 주현욱
12월 3일 화요일은 내게 중요한 날이었다. 저녁 11시에 네이버 웹툰 <캐슬>이 공개되니까. 한창 스토리가 최종 국면으로 치닫는 중이라, 매주 알람까지 맞춰두고 기다리던 차였다. 이날 저녁도 친구를 만나 명동에서 제육볶음을 먹고 <캐슬> 이야기를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방금 막 헤어진 친구에게서 ‘그 카톡’을 받았다. 온라인 기사를 캡처한 사진 한 장이었다. 헤드라인만 적혀 있는 속보였고 거기에는 일곱 음절이 적혀 있었다. ‘尹, 비상계엄 선포.’ 대한민국이 최종 국면으로 치닫는 걸까. 유튜브에서는 국회 앞 현장이 라이브로 송출되었고, 잠들어 있던 ‘단톡방’이 하나둘 깨어났다. 서울 시내에 탱크가 돌아다니는 사진(가짜였다)도 나돌았다. 집에 도착할 무렵,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야간투시경을 착용한 군인들이 국회 앞에 도착하기 시작했다. 현장에 있던 민간인과 가벼운 몸싸움이 일었고, 머지않아 국회 창문이 깨졌다. 문득 ‘다들 얼마나 추울까’ 싶어 창문을 열어보니 헬기 소리가 밤하늘을 메우고 있었다. 문득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그래서 내일 출근하나?’ 그저 출근만 문제가 아니었다. 다음 날은 낮부터 ‘롤렉스 차는 남자’ 인터뷰이 촬영이 세 건이나 잡혀 있었다. 밤늦은 시간이라 ‘혹시 모르니 촬영을 미루자’는 말도 하기 애매했다. 그렇게 휴대폰을 부둥켜 잡고 새벽 1시까지 비상계엄이 해제되기를 기다렸다. 여전히 잠들기는 불안했다. 언제 또 제2차 계엄을 시도할지 모른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래도 잠은 자야지. 새벽 3시에 침대에 누우며 생각했다. 일단 출근하자.
비상계엄 선포 다음 날 아침은 신기할 정도로 평화로웠다. 평소보다 도산대로에 차가 없긴 했지만, 나 혼자 밤새 요란스러운 꿈을 꾼 듯 거리의 사람들은 태연해 보였다. 그럼에도 뒤숭숭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교란, 내란, 붕괴, 약탈, 반국가 세력, 척결, 망국, 나락, 마비, 전복. 모두 몇 시간 전 대통령 입에서 나온 단어들이다. 밥때가 되니 배는 고팠다. 이른 점심시간 가로수길에서 팬케이크를 먹으며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도대체 이 모든 게 무슨 상황이었을까? 지금 이 기사를 쓰는 때는 12월 15일 오후다. 하루가 급박하게 상황이 뒤바뀌었고, 최대한 마감 기한에 맞춰 원고를 늦게 쓰려고 했다. 지난 12일간 매일같이 상상했다. 만일 비상계엄이 성공했다면? 지금 이 기사를 쓸 수 있을까? 다음 달 <아레나> 마감은 어떻게 되는 걸까? 나라가 뒤집혔는데 롤렉스가 무슨 의미고, 롤스로이스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제 오후부로 대통령의 권한은 정지됐다. 2차 계엄의 가능성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마찬가지다.
크리스마스와 <오징어 게임> 시즌 2를 공개하는 날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지만, 여느 연말처럼 거리마다 설레는 분위기는 영 찾아볼 수 없다. 잡지사의 시간은 한 달 일찍 흐른다. 지난 11월에 발행한 <아레나> 12월호에는 ‘올해의 잔상 50’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올 한 해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추려 주목한 기사다. 그 기사를 쓰면서 ‘올해는 정말 많은 일이 있었구나’ 싶었다. 파리 올림픽, 칸예 웨스트의 내한, 지드래곤의 컴백, 민희진 기자회견,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페이커의 롤드컵 우승까지. <아레나> 12월호가 발행되고 사흘 뒤, 배우 정우성에게 아들이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나는 그게 올해 마지막 빅 뉴스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우성 뉴스 이후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그간의 모든 뉴스를 집어삼킬 만한 일이 터진 것이다.
“내게 투표권이 생긴 이후로 세 명의 대통령이 나왔다. 그중 첫 번째는 탄했됐고,
세 번째는 탄핵 심사 중이다. 다시는 안 올 것 같던 세계가 너무나 빨리 우리 앞에 찾아왔다.”
지금은 아무도 정우성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비상계엄 이후 IPTV로 <서울의 봄> 시청자가 1000% 넘게 올랐다고 한다. 나도 이참에 다시 한번 봤다. 영화 속 사건으로부터 45년 뒤, 또 한 번의 비상계엄이 선포됐다.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닙니까’라는 대사는 한동안 농담처럼 할 수 없을 것 같다. 내게 투표권이 생긴 이후로 세 명의 대통령이 나왔다. 그중 첫 번째는 탄했됐고, 세 번째는 탄핵 심사 중이다. 다시는 안 올 것 같던 세계가 너무나 빨리 우리 앞에 찾아왔다. 이번 여의도 촛불집회에 모인 참가자들은 탄핵소추안 가결 직후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불렀다고 한다. 계엄 이후 어떤 시대, 어떤 세계가 기다리고 있을까. 내가 바라는 건 한 가지다. 교과서에 나올 법한 일들은 이제 그만. 근현대사 교과서에서 외워야 할 사건들은 이미 차고 넘친다.
다섯 가지 교훈
Editor 김종훈
카톡에 메시지 알림 숫자가 갑자기 치솟았다. 지인들 단톡방이었다. 이 밤에 또 무슨 잡담을 보냈나. 습관처럼 채팅창을 열었다. 가장 먼저 본 메시지는 이랬다. ‘미쳤나 봐요.’ 야밤에 보낸 메시지치고는 자극적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단어가 눈에 띄었다. ‘비상계엄.’ 채팅창에 답을 달기 전에 뉴스를 검색했다. ‘윤석열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 2024년 12월 3일 10시 45분쯤이었다. 그 순간 딥테이크가 떠올랐다. 가짜 뉴스의 캡처본이 아닌 이상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 상식. 그 이후로 상식과 비상식이 끊임없이 충돌했다. 국회에 헬기 탄 군인이 낙하하는 모습. 국회의사당 유리창을 깨고 들어가는 군인들. 그걸 막는 보좌진들. 국회 앞에 모인 사람들. 비상계엄 해제요구결의안 가결. 탄핵소추안 본회의 상정. 국민의힘 탄핵 반대 당론. 투표에 불참한 국민의힘 국회의원들. 대통령의 담화문. 정치인들의 말. 그리고 2024년 12월 14일 오후 5시 2차 탄핵소추안 찬성 204표로 가결. 12일 동안 수많은 일이 일어났고, 매 순간 상식과 비상식이 떠올랐다. 명감독이 연출한 영화도 이렇게 손에 땀을 쥐게 하지 못할 시간들. 그 12일을 보내며 내내 한 문장이 떠올랐다. ‘역사는 반복된다.’ 계엄은 이제 역사책에서나 볼 단어라고 생각했다. 그땐 그랬지, 하는 안도와 그렇게 발전해왔지, 하는 뿌듯함을 느끼게 하는 활자화된 기록. 하지만 활자는 주술처럼 현실로 되살아났다. 닳고 닳은 관용구로 알던 ‘역사는 반복된다’는 문장이 피부로 와닿은 뉴스가 됐다. 다시 역사가 반복됐으니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 그동안 우린 그래 왔으니까. 비상계엄부터 탄핵까지 지켜보다 보니 배울 점도 많았다. 욕만 하다가 이 지면을 채울 수 없다. 이번에 얻은 교훈을 떠올려본다.
하나,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술을 좋아할 수 있다. 숙취 때문에 늦잠 잘 수 있다. 부인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상상 이상으로 클 수 있다. 자기 사람으로 주변을 채울 수 있다. 자기주장만 옳다고 우길 수 있다.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승부수를 던질 수 있다. 그럼에도 하면 절대 안 되는 건 분명 있다. 비상계엄은 그런 선이었다. 놔두면 전쟁도 하겠어.
둘,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비상계엄 해제요구결의안이 가결되고 국회가 비상계엄을 해제했다. 그 순간,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무너졌다. 악수를 뒀고, 그 대가를 치러야 했다. 잘못을 저지르면 벌을 받는다. 상식이다. 하지만 첫 번째 탄핵소추안 표결이 무산됐다. 비상식이 상식을 지워버렸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었다. 끝난 줄 알았는데 새로운 국면이 시작됐다.
“다시 역사가 반복됐으니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
그동안 우린 그래 왔으니까.”
셋, 트라우마는 강렬하다. 국민의힘이 당론으로 탄핵 반대를 정했다. 제정신인가 싶었다. 더 살펴보니 지난 박근혜 탄핵 때의 트라우마가 영향력을 미쳤단다. 대통령이 어떤 잘못을 했든 알 바 없고, 일단 탄핵은 안 된다는 공포에 질린 생존 본능. 그런 사람들이 여럿 모였다. 더욱 똘똘 뭉칠 수밖에 없다. 구덩이에 머리 박은 타조처럼. 트라우마가 이렇게 무섭다.
넷, 극한 상황에서 사람은 가면을 벗는다. 첫 번째 탄핵소추안이 무산된 후 국민의힘의 행보는 당의 존속에 집중했다. 무엇보다 당의, 아니 자기 이익을 바라봤다(물론 근시안적으로만 봤지만). 내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의 상식으로는 가능했다. 탄핵하면 정권을 넘겨야 한다는 셈법이 강하게 작용했다. 벼랑 끝에서 자기 살 길을 우선했다.
다섯, 확실히 세상이 달라졌다. 12일 동안 일어난 일은 비극이다. 21세기에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나라. 대통령이 또 탄핵 심판을 받게 된 나라. 더욱 깊은 대립으로 치닫는 나라.
하지만 이번 일을 겪으면서 새삼 느낀 바도 있다. 역사는 반복됐지만 어쨌든 세상은 발전해왔다는 점이다. 스마트폰으로 생중계하는 시대에 친위 쿠데타는 불가능했다. 그동안 발전시켜온 시스템과 성숙해진 정서가 결국 파국을 막았다. 여전히 사람들은 불의에 일어설 줄 알았다. 화염병에서 촛불로, 다시 응원봉으로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는 방식이 달라졌다. 언제나 세상은 좋은 쪽으로 나아간다. 그러려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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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03일
◦ 22:23 대통령 윤석열, 비상계엄 긴급 담화
◦ 22:48 계엄군, 국회 진입 -
2024년 12월 04일
◦ 01:01 국회, ‘비상계엄 해제요구결의안’ 가결(재석 190, 찬성 190)
◦ 04:17 대통령 윤석열, 비상계엄 해제 선언
◦ 14:40 야 6당, 대통령 탄핵소추안 제출 -
2024년 12월 05일
◦ 08:31 대통령 윤석열, 김용현 국방부 장관 사의 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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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07일
◦ 07:00 국회, ‘김건희 특검법’ 및 ‘대통령 탄핵소추안’ 본회의 상정
◦ 21:26 김건희 특검법 부결(찬성 198, 반대 102), 대통령 탄핵소추안 불성립(투표 참여 198) -
2024년 12월 12일
◦ 09:41 국민의힘 대표 한동훈, 대통령 탄핵 찬성 의견 발표
◦ 10:00 대통령 윤석열, 대국민 담화 발표 -
2024년 12월 14일
◦ 16:06 국회, 2차 ‘대통령 탄핵소추안’ 본회의 상정
◦ 17:02 국회, 대통령 윤석열 탄핵소추안 가결(찬성 204, 반대 85, 무효 8, 기권 3)
대통령의 말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대통령으로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국민 여러분께 호소드립니다. 지금까지 국회는 우리 정부 출범 이후 22건의 정부 관료 탄핵 소추를 발의하였으며 지난 6월 22대 국회 출범 이후에도 10명째 탄핵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 (중략) 지금 대한민국은 당장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풍전등화의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12월 4일 비상계엄 해제 수용 담화
“바로 국무회의를 통해 국회의 요구를 수용하여 계엄을 해제할 것입니다. 다만, 즉시 국무회의를 소집하였지만 새벽인 관계로 아직 의결정족수가 충족되지 못해서 오는 대로 바로 계엄을 해제하겠습니다. 그렇지만 거듭되는 탄핵과 입법 농단, 예산 농단으로 국가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무도한 행위는 즉각 중지해줄 것을 국회에 요청합니다.”
12월 7일 제3차 대국민 담화
“이번 비상계엄 선포는 국정 최종 책임자인 대통령으로서의 절박함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중략) 국민 여러분, 또다시 계엄이 발동될 것이라는 얘기들이 있습니다마는 분명하게 말씀드립니다. 제2의 계엄과 같은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저의 임기를 포함하여 앞으로의 정국 안정 방안은 우리 당에 일임하겠습니다.”
12월 12일 제4차 대국민 담화
“저를 탄핵하든, 수사하든 저는 이에 당당히 맞설 것입니다. (중략) 피와 땀으로 지켜온 대한민국, 우리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에 모두 하나가 되어주시길 간곡한 마음으로 호소드립니다. 저는 마지막 순간까지 국민 여러분과 함께 싸우겠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이번 계엄으로 놀라고 불안하셨을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국민 여러분에 대한 저의 뜨거운 충정만큼은 믿어주십시오.”
12월 14일 제5차 대국민 담화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오늘 국회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는 모습을 보면서, 처음 정치 참여를 선언했던 2021년 6월 29일이 떠올랐습니다. 이 나라의 자유민주주의와 법치는 무너져 있었습니다. 자영업자의 절망, 청년들의 좌절이 온 나라를 채우고 있었습니다. (중략) 저는 지금 잠시 멈춰 서지만, 지난 2년 반 국민과 함께 걸어온 미래를 향한 여정은 결코 멈춰 서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저는 결코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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