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개가 넘는 미세 돌기가 달린 콘돔이나, 어둠 속에서 빛나는 야광 콘돔 같은 이색 콘돔은 피임보다 페티시의 영역에 가깝다. 이번 기사를 준비하며 사람들에게 어떤 콘돔을 쓰는지도 물었지만, 언제 끼는지를 물었다. 끼고 안 끼고를 묻진 않았다. 우선 끼고 생각해볼 문제니까. 콘돔을 제일 많이 쓸 듯한 남자에게 물어봐야 될 것 같았다. 염재승에게 전화를 걸었다. 염재승은 경상남도 양산 출신으로 군대 동기다. 그는 내가 아는 남자 중 섹스를 가장 많이 한다. 많이 했고, 많이 하고, 많이 하고 싶어 한다. 구릿빛 피부, 다운펌이 필요 없는 축복받은 반곱슬, 180cm가 훌쩍 넘는 키, 떡 벌어진 어깨에 붙어 있는 정교한 삼각근, 단단하고 긴 다리. 그리고 더 큰 거기. 염재승은 일개 남자들처럼 매 순간 ‘섹스’를 외치지 않아서 더 있어 보였다.
염재승에게 콘돔을 언제 끼냐고 물었을 때 그는 게임 <배틀 그라운드>를 하고 있었다. “나는 무조건 삽입 전에 낀다. 아빠 꼴 나기 싫다.” 단순하면서 당연한 답변이었다. 은근 걱정이 많은 편이네? “걱정을 한다기보단, 더 많이 하고 싶으니까 당연히 끼는 거지.” 없는 경우는 어떻게 해? “조심해야지.” 안 한다는 뜻일까? “여자가 눈앞에 벗고 있는데 어떻게 안 하노.” 나는 질문을 이어갔다. 어떤 콘돔을 주로 써? “그냥 스탠더드, 기본형. 그런 말 있지 않나. 심플 이즈 더 베스트. 쓰잘데기 없이 돌기 달려 있고 그런 거 싫다.” 느낌이 별로여서일까. “촉감이 별로라기보다는, 그냥 그런 콘돔 자체가 싫다.”
그는 콘돔을 삽입 전에 낀다고 했다. 여기서 ‘삽입 전’이라면 발기된 바로 그 순간을 말하는 걸까 궁금했다. “딱히 그건 아니고. 전희 과정이 딱 끝나면 그때 끼지.” 전희 과정과 삽입을 확실히 구분 짓는 편인가? “그런 편이지. 그래야 나도 편하고 여자도 편하니까. 급할 땐 젤을 사용하기도 하고.” 염재승은 군대 휴가를 나올 때마다 만날 여자들이 있었다. 심지어 매번 뉴 페이스였다. 첫째 날엔 대학 동기, 둘째 날엔 아는 누나, 셋째 날엔 전 애인, 다른 날엔 전전 애인. 어떤 날엔 친구의 애인. 그는 만나는 모든 여자와 자는 건 아니라고 말했다. 바로 이 지점이 염재승이 섹스를 많이, 오래 할 수 있는 비결 같았다. 콘돔도 섹스를 잘할 수 있는 비결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질문을 이어갔다. 요즘도 섹스 많이 해? “요즘은 일주일에 한두 번? 가끔 내가 건재함을 느끼고 싶으면 세 번 하기도 하고.” 그럼 콘돔은 주로 어디서 사? “편의점, 스탠더드로. 나 게임 중이니까 이따가 또 전화하재이.”
박진석은 대학 동기의 결혼식에서 4년 만에 만난 학교 선배다. SNS 플랫폼을 운영 중인 그는 일과 휴식 사이에 경계를 두지 않는 바쁜 청년이다. 박진석에게 요즘 쓰고 있는 섹스 칼럼을 보여줬다. 그는 내용이 너무 마일드한 거 아니냐며 자신이 좋은 인터뷰이가 되어주겠다고 언제든 물어보라고 했다. 섹스 칼럼의 인터뷰이를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섹스에 대해 깊이 고찰하는 남자는 별로 없고, 흔쾌히 섹스 질문에 대답해줄 여자를 찾는 건 더 어렵다. 그래서 박진석이 더 반가웠다. 여자의 대답이 필요한 주제가 있고, 남자의 대답이 필요한 주제가 있다. 콘돔은 남자의 주제라 생각했다. 박진석과는 강남구청역 인근 맥줏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일요일 오후 4시에 500cc 맥주를 마실 일은 잘 없지만, 32세 남자와 콘돔 이야기를 하려면 알코올이 필요할 것 같았다.
언제 낍니까? “여자가 끼자고 할 때 낍니다.” 먼저 끼는 경우는 없습니까? “거의 없습니다. 보통 연애를 시작하고 얼마 안 된 여자나, 원나이트 상대가 끼자고 하죠.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 저도 방지 차원에서 매번 동의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문제는 어떤 문제일까. “안에 쌀 수도 있는 경우?” 조절을 잘 못하시는 편인 건 아닙니까? “저 조절 잘합니다. 그러지 못할 뻔한 경우도 있었지만요.” 도저히 참지 못하게끔 하는 상대분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나요? “저는 물이 많이 쌓여 있을 때 유독 사정이 빨라지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흥분된다는 거죠. 빼야 된다는 걸 알면서도 1초라도 더 넣고 싶죠. 그러다 실수할 뻔한 적이 있습니다. 아주 드문 경우지만요.” 콘돔을 어떻게 끼십니까? “저는 콘돔을 잘 안 쓰다 보니 아직도 착용하는 데 조금 서툽니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끼워달라고 합니다.”
여자한테 끼워달라고 하면 끼워줍니까? “반반입니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분위기만 잘 만들면 끼워줘요.” 콘돔을 미리 준비하기는 하십니까? “항상 구비해두는 편은 아닙니다. 콘돔이 필요한 관계라면 사둡니다. 아까 말했듯, 원나이트나 처음 섹스할 때가 그런 경우죠.” 만일 콘돔 준비가 안 됐는데, 상대가 콘돔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어떻게 하십니까? “키스를 하는데 상대가 콘돔 있냐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없었거든요. 그래서 하던 걸 끊고 나가서 사 왔습니다.” 그러면 바로 섹스를 재개하기 어렵지 않습니까? “그렇죠. 하지만 괜찮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요. 관계 도중에 콘돔을 챙겨야 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콘돔이 침대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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