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에 따라 방송은 변한다. 어릴 적 예능은 무작위로 번호를 눌러 노래에 도전하거나 인형 탈이 달린 커다란 헤드셋을 쓰고 입 모양을 보며 단어를 맞히는 형식이 주를 이뤘다. 머리가 조금 더 큰 후 예능은 전철보다 빨리 달리기에 도전하거나 야외 취침을 내기로 까나리 액젓을 마셨다. 영원할 줄 알았던 지상파 3사의 독점이 끝나고 종합편성채널로 흐름이 옮겨가는 듯 보이더니 돌연 천지가 개벽했다. OTT 서비스가 생겨나고 유튜브 시대가 열렸다. 새로운 뉴 미디어 전성시대가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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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얼앤위트 김현석 PD
"장치를 더하기보다는 최대한 덜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이건 나와 같이 작업하는 팀원 모두 동일한 취향을 공유하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카더정원>은 싱어송라이터 카더가든의 유튜브 채널이지만 감독은 콘텐츠 제작사 비주얼앤위트의 김현석 PD가 맡는다. 1991년생인 그는 처음부터 웹을 기반으로 방송 일을 시작했다. 대표 작품은 아이돌판 무한도전이라 불리는 <고잉 세븐틴>이다. 공동 대표 겸 PD인 김현석을 포함한 회사의 인원은 총 아홉 명으로 모두 비슷한 결을 지녔다. 입사 조건은 ‘광기’. 마이너한 유머에 함께 웃을 수 있는 캐릭터가 확실한 사람을 좋아한다.
이들의 콘텐츠는 기발하고 자유롭다. 학교에 방문해서 교생 실습을 하고 아바타 소개팅을 한다. 참신한 기획에 더해진 카더가든 특유의 입담과 재치는 정확하게 이 시대의 정서와 맞아떨어졌다. 풀영상만 따져보아도 조회수가 100만 넘는 영상이 스무 편 이상이다. <카더정원> 채널의 첫 번째 영상이 2024년 1월 게시됐으니 좋은 타율이다. 가장 빛을 발하는 건 쇼츠다. 카더가든이 툭툭 가볍게 던지는 말과 맛깔스러운 편집은 쇼츠를 빠르게 넘기던 이들의 손가락을 붙잡았다. 촬영 현장의 분위기 역시 화기애애했다. 현장에 있던 작가는 나에게 닭강정을 건넸다. 작가가 카더가든에게 운전 연수를 받는 영상을 본 터라 괜스레 친숙하게 느껴졌다. 카더가든이 스튜디오로 들어오고 뒤이어 유규선과 유병재, 조나단, 넉살 그리고 목사님이라 불리는 멤버가 등장했다. 오존은 당일 지각했다. 그 장면은 분명 방송에 나오겠다 싶었다.
자연스럽게 자리에 둘러앉은 이들은 대화를 시작했고 별도의 큐사인 없이 카메라는 돌아갔다. PD와 작가는 그들의 대화에 개입하지 않았다. 함께 듣다가 소리 내어 웃고 박수 쳤다. 어떠한 리드나 디렉션도 없었다. 아주 가끔 스케치북을 들어 다음으로 넘어갈 것을 요구할 뿐이었다. 분명 촬영하고 있지만 현장이라기보다는 다 함께 MT 온 기분이었다.
올드 미디어와 뉴 미디어
“가장 큰 차이는 자유도다. 결재 라인이 적다는 것 그리고 심의가 덜하다는 것. 거기에서 오는 자연스러움이 매력 아닐까. 웹 콘텐츠를 진행하는 PD들은 각자 개성이 있고 프로그램을 통해 확실하게 드러낸다. 나는 웬만하면 출연진에게 직접적인 지시를 하지 않는다. 사전에 ‘이번 기획은 이런 콘셉트다’ 하는 가이드라인을 주고 함께 이야기를 많이 주고받는다.
프로그램을 정교한 연출 아래 진행한다기보다는 출연진과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실제로 회식할 때마다 농담처럼 나오는 아이디어를 많이 활용한다. 뉴 미디어에서 출연진과 스태프진은 역할이 구분되지 않기 때문에 대표 출연진과의 커뮤니케이션이 굉장히 중요하다. 기존의 지상파 예능이 프로그램을 위해 출연진을 섭외하는 형식이었다면, 이젠 스태프가 방송에 출연하기도 하고 출연자가 방송을 연출하기도 하는 형태로 변화했다.”
출연자와 제작사의 케미스트리
“출연진의 텐션이 낮을 때는 정말 쉽지 않다. 기획과 상황, 모든 것이 딱 들어맞을 때도 있지만, 분명 그렇지 않은 날도 있기 마련이다. 보통 컨디션 문제다. 초창기에는 일부러 촬영 전 다 같이 맥주를 한 캔 마셨다. 함께 모여서 오늘 아이템에 대한 리딩을 하면서 맥주를 마셨다. 내가 하는 일은 출연자가 재밌게 놀 수 있는 판을 까는 것이다. 가이드가 많고 연출이 많으면 올드한 방송처럼 느껴진다. 장치를 더하기보다는 최대한 덜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이건 나와 같이 작업하는 팀원 모두 동일한 취향을 공유하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시청률을 대신하는 것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건 조회수. 기존 미디어에 비해 인기를 확인할 수 있는 지표가 훨씬 많아졌다. 소비자가 즉각적 의견을 낼 수 있는 시대다. <카더정원>은 아바타 소개팅이 조회수가 높다. 하지만 조회수가 적은 것들은 되레 진하게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많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 하나의 방송을 보는 것이 아니고 개인의 선호에 따라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택해 즐기는 시대지 않나.
조회수가 무조건 잘 나오는 걸 시도하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걸 지속하려고 노력한다. 오만함일 수도 있지만 스스로 재미없다고 느끼면 안 하려고 한다. 우리가 재미없는데 조회수가 높다고 해도 어차피 영상에서는 티가 나더라. 반대로 좋아하지만 조회수가 안 나오는 것도 있다. 그래도 우리한테 의미 있으니까 괜찮다. ‘재미있는 걸 하자’는 게 나와 회사의 기조다.”
앞으로의 뉴 미디어
“앞으로의 방향은 모르겠다. 정말로 모르겠다. 많은 사람이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분야가 점차 세분화되고 있다. 하나의 방향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니 점점 더 모를 수밖에 없다. 당장 내 채널 안에서도 좋아할 거라 생각한 것이 의외로 반응이 안 좋을 때도 있고 그 반대일 때도 흔하다.
그래서 더욱 나의 기조에 충실하려고 한다. 재미있는 걸 하자. 나의 목표와 방향에 대해 얘기한다면, 단순히 재밌는 걸 하자고 모인 사람들인데 6년의 세월이 쌓이다 보니 나름의 색깔이 만들어졌다. 앞으로 그 색깔이 더욱 깊고 확실하게 드러나면 좋겠다.”
02
솔파 스튜디오 윤성원 감독
"6이 나오길 기대하면서 주사위를 굴리면 안 되고 최소 5 이상 나올 수 있게 장치를 세팅하고 굴려야 한다.
그래야 운이 좋으면 6이 나오는 거다. 출연진이 몰입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줘야 한다.”
자유로운 플랫폼이지만 모든 촬영 현장이 이와 같은 것은 아니다. 콘텐츠 제작사 솔파 스튜디오의 유튜브 채널은 체계적이다. 대표이자 총괄 프로듀서인 윤성원 감독의 지휘하에 스태프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솔파 스튜디오는 <ODG> <HUP!> <존이냐 박이냐> <Film94> <Solfa> 채널을 운영한다. 2014년 12월에 올라온 영상이 <Solfa>의 첫 번째 영상이니 웹 예능의 시조 격이다.
<ODG>는 솔파 스튜디오의 대표 채널로 아이들과 함께한 프로그램이다. ‘당신도 한때 어린아이였다’는 슬로건 아래 여러 시리즈를 선보였다. 연예인과 월드 스타를 초대한 후 그들을 모르는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을 함께 담았는데 총 조회수 8억 회를 넘는다. ‘절대 노래를 멈추지 말 것’은 현대자동차그룹과 함께하는 콘텐츠로, 드라이빙 서킷을 250km로 달리는 차 안에서 노래를 부르는 획기적인 연출이다. 빠른 속도에서 고음과 비명을 내지르는 밴드 FT아일랜드 이홍기의 모습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날은 칠성 사이다와 함께하는 ‘사이 라이브’ 촬영이었다. 가수와 함께 아티스트의 콘셉트에 맞는 관객을 초대해 무대를 선보인다. 이날은 싱어송라이터 적재의 무대에 기타 치는 관객 70명이 함께했다. 사이다를 든 관객들은 들떠 보였고 수많은 카메라와 360도 레일, 여러 대의 모니터로 중무장한 현장은 쉴 틈 없이 돌아갔다. 들리진 않아도 인터컴(무선 수신기)을 통해 바삐 오가는 디렉팅과 사인에 맞춰 움직이는 스태프들은 프로페셔널해 보였다. 상업 촬영 현장인 탓도 있겠지만 내가 생각해온 유튜브 프로그램의 제작 현장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윤성원 감독 역시 대학교 때부터 사 모은 장비들로 현장을 꾸리던 때가 있었지만 이제는 일종의 대기업이 되어버린 셈. 그럼에도 꾸준히 새로운 포맷을 실험해 나가는 것이 성공 비결 아닐까.
뉴 미디어의 시청자
“올드 미디어와 큰 차이를 보이는 건 시청자와 제작사의 관계다. 뉴 미디어 예능은 시청자의 요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무엇보다 시청자의 상황이 중요하다. 시청자가 소파에 앉아서 한 시간을 쓰는지 집에 가는 버스에서 짧게 보는지, 어떤 영상을 볼 상태인지를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이제는 유튜브 채널의 풀영상마저 잘 보지 않는다. 30초 미만의 쇼츠나 릴스를 본다.
드라마나 영화도 요약본을 보는 시대 아닌가. 그러면 나는 <존이냐 박이냐> 같은 채널로 쇼츠를 만들어낸다. 근본적인 얘기지만 플랫폼을 떠나서 미디어는 사람들이 봐야 지속할 수 있다.”
초 단위의 시대
“<ODG>를 운영할 때는 기승전결을 만들려고 했다. ODG 영상을 보면 1000만 뷰 넘는 게 꽤 많다. 당시에는 그게 먹혔다. 1000만 뷰 넘는 영상을 서른 개가량 만든 것 같은데 그때의 흐름과 지금은 또 다르다. 이제는 15분가량의 시간조차 쓰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예전에는 바이럴될 만한 영상을 만들면 일부분이 ‘짤’로 돌아다니고 그걸 접한 시청자가 원본 영상을 보러 왔다.
지금은 이미 영상의 재밌는 부분을 쪼개서 만들어둔 쇼츠를 소비한다. 굳이 긴 원본 영상을 보지 않는 것이다. 유튜브뿐만 아니라 영화는 더욱 심하다. ‘어떤 영상을 재밌어 할까, 어떤 영상을 오래 볼까’를 염두에 두고 계속 고심한다.”
재미는 전략으로부터
“나는 모든 상황을 감독하는 편이다. 멘트부터 시작해서 톤까지 기획한 대본을 만든다. 물론 그걸 바탕으로 풀어내는 건 출연진 몫이지만. <존이냐 박이냐>에서 애드리브는 거의 없다. 상황이나 행동 가이드를 모두 정한 후 시작한다. 출연자의 텐션이 높기를 기대하고 촬영하면 망한다. 나는 주사위를 던진다고 표현하는데 6이 나오길 기대하면서 주사위를 굴리면 안 되고 최소 5 이상 나올 수 있게 장치를 세팅하고 굴려야 한다. 그래야 운이 좋으면 6이 나오는 거다. 출연진이 몰입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리고 그다음
“이제 외부적인 평가는 사실 실감이 잘 안 난다. 숏폼 형태의 영상은 100만, 200만 뷰 만드는 게 어렵지 않고 제작 기간도 짧다. 시청자도 휙 보고 지나치니 영상이 휘발된다고 느낀다. 그렇다 보니 외부적인 지표가 중요한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긴 호흡의 영상을 만드는 감독은 더욱 진득하게 느낄지도 모른다. 이제 단순하게 외부 평가가 높은 콘텐츠는 의미 없다고 느낀다. 새로운 걸 만드는 게 중요하다. 나는 연예인과 일반인, 아이부터 노인까지 다 해봤다. 숏폼도 해봤고 미드폼도 해봤고. 시대에 맞지 않을 수 있지만, 이제는 도리어 호흡이 길고 공이 많이 들어간 영상을 만들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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