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는 건 무척 개인적인 일이에요.
저는 스스로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너무 완벽하려고 노력하지 않아요.”
촬영에 앞서 스튜디오 벽에 즉석으로 그림을 그렸어요. 옆에 서 있는 친구 소개 한번 부탁드립니다.
자화상이에요. 제 아바타죠. 저는 평소에도 저 자신을 많이 그려요.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페이퍼 피플’도 장 줄리앙들입니다. 관객이 전시를 보는 내내 제가 나란히 옆에 서서 내레이터로 함께한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지금까지 그린 장 줄리앙들이 정말 많잖아요. 혹시 각자 이름이 있나요?
아뇨, 따로 이름을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웃음)
어제는 <장 줄리앙의 종이 세상> 전시 프리뷰가 있었어요. 팬들이 사인을 요청할 때마다, 사인 대신 그림을 그려주던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어떤 그림을 그릴지는 즉석에서 정하나요?
사실 잘 생각하지 않아요. 아주 즉흥적으로 그립니다. 도무지 떠오르는 것이 없으면, 현장에서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를 유심히 들어요. 거기서 낚아챈 단어나 문장을 활용해 그림을 그립니다. 사람들은 예상치 못한 그림을 받을 때 즐거워해요. 한국 팬들에게 그림을 선물할 때 특히 즐거운 것도 바로 그 부분이에요. ‘어떤 그림을 그리겠구나’ 기대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더 기뻐해주시는 것 같아요.
이번 퍼블릭 가산에서 열리는 <장 줄리앙의 종이 세상>은 어떻게 준비하게 됐는지 궁금했어요.
사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는 데는 꽤 긴 시간이 걸렸어요. 제가 수년에 걸쳐 만들어온 이야기의 마지막 챕터거든요. 앞서 도쿄의 파르코 뮤지엄과 긴자 식스, 파리의 봉 마르셰에서 제 최신작을 보여주는 전시가 있었어요. 매번 제가 그린 ‘페이퍼 피플’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었지만, 각 이야기가 제가 원하는 순서대로 전달된다는 느낌은 부족했어요. 여러 이야기들 사이에 분명한 흐름이 있거든요. 전시를 준비할 때마다 ‘이 이야기를 어떻게 끝내야겠다’라고 늘 머릿속으로 정리했죠. 이번 전시에는 시각적으로 강력한 캐릭터들이 많은데요. 그만큼 충분히 시간을 들여 재정비해서 관객을 즐겁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제가 놀란 건 전시작 대부분이 미리 그려둔 게 아니라, 현장에서 그렸다는 점이에요.
사실 가장 큰 그림들은 도움을 받았어요. 제가 한국에 도착하기 전, 협업 작가들이 사전 작업을 도와줬죠. 내심 불안하기도 했지만 마감일을 지키려면 선택의 여지가 없었거든요. 하지만 현장에서 결과물을 보고 탁월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밖의 그림들은 프리뷰 당일까지 현장에서 그렸고요.
현장에서 즉석으로 그림 그리는 방식은 장 줄리앙과 다른 작가들의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 싶어요. 스스로 생각하는 자기 작품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그림을 그리는 건 무척 개인적인 일이에요. 저는 스스로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너무 완벽하려고 노력하지 않아요. 특정 리듬의 실수를 허용하려고 하죠. 음악처럼요. 음악은 강렬하다가도 잠시 멈칫했다가 더욱 강렬해지면서 계속 이어지잖아요. 그림도 마찬가지예요. 그림 그리는 건 오케스트라 연주와 아주 비슷합니다. 피아니시모와 포르테가 반복되는 것처럼요. 같은 이유로 그림을 그리는 데는 육체적인 즐거움도 있어요. 춤추는 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고요. 제가 디지털보다 아날로그 방식으로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실수가 걱정될 때는 없나요?
저는 실수를 많이 해요. 실수하는 걸 좋아하거든요.(웃음)
그럼에도 현장에서 바로 작품을 그리다 보면 신경 쓸 게 많을 것 같아요.
제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많은 실수가 있어요. 저는 그 실수가 제가 그림 그리는 모든 순간을 증명한다고 생각해요. 마치 기념품처럼요. 물감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튀어도 그것 나름대로 멋지거든요. 그걸 연장선 삼아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도 있고요. 때로는 많은 실수를 할 때도 있지만, 보통 실수는 작품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라고 믿습니다.
작품을 준비할 때 가장 먼저 뭐부터 그리나요?
상황에 따라 달라요. 일반적으로 캐릭터를 그릴 때는 코를 가장 먼저 그립니다. 그리고 눈, 얼굴, 귀, 머리카락 순서로 이어지죠. 입은 일종의 마침표고요. 다음은 몸을 그릴 차례인데요. 몸은 얼굴보다 훨씬 다채롭게 그릴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이번 전시에 ‘THE SNAKE’라는 작품이 있어요. 아주 커다란 뱀의 몸통에 인류의 역사 전체를 새겨 넣었죠. 춤을 추듯 머릿속 아이디어를 즉흥적으로 그려낸 작품이에요.
개인적으로 이번 전시에서 ‘THE SNAKE’가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저도 그 작품을 가장 좋아합니다.(웃음)
말씀하셨듯 ‘THE SNAKE’에는 지구의 역사가 순서대로 그려져 있잖아요. 그중 작품을 그리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어느 시점이었나요?
두 가지가 떠오르네요. 첫 번째는 공룡의 종말. 두 번째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중세 시대로 넘어가는 시기. 저는 역사에 관심이 많은데요. 그림 그리면서 시간의 길이를 직관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단위가 필요했어요. 실제로 짧은 시간에 일어난 역사라면, 그만큼 뱀의 몸에서 짧은 부분을 차지해야 했죠. 마음속으로 수백 년 혹은 수천 년에 걸친 역사를 끊임없이 계산하고, 각 시간대가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림 그릴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은 무엇인가요?
사실 저는 어렵다는 생각을 잘 안 해요. 기대가 없기 때문이에요. 한국 관객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예요. 한국 팬들이 제게 사인을 부탁할 때 어떤 기대도 없이, 제가 건넨 그림을 있는 그대로 즐긴다고 말씀드렸는데요. 그림을 그릴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즐기면 돼요. 물론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앞설 수 있죠. 하지만 저만의 방식, 즉 정말 필요한 최소한의 요소만 활용하고자 노력한다면 작품은 완성될 수 있어요. 저는 보통 5~10개의 시각적 요소만으로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제게는 모든 걸 세밀하게 묘사하려는 노력보다, 과정 자체에 몰입하는 게 중요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스스로 너무 많은 압박을 부여하지 않습니다.
좋아하던 일을 직업으로 삼으면, 그 일에 싫증이 날 때도 있을 것 같아요.
일하다 보면 스트레스 받을 때가 있죠. 하지만 그림 그리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던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제가 힘든 건 마감일을 맞추거나, 일정이 지연되는 것처럼 사무적인 부분이에요.
한 번도 그림 그리는 게 지루하다고 느낀 적은 없네요.
전혀요. 제가 허재영 디렉터와 함께 브랜드 누누를 운영하고 전시를 기획하면서 좋은 점도 그 부분이에요. 저희는 대학생 시절부터 친구고, 운이 좋게도 줄곧 함께해오던 프로젝트를 직업으로 삼게 됐어요. 제 역할은 그저 그림을 그리기만 하면 돼요. 쉬운 부분을 맡았죠. 그래서 지루한 족도, 스트레스를 받은 적도 없어요. 친구를 잘 둔 덕분입니다.
요즘도 하루도 빠짐없이 그림을 그리나요?
그럼요.
하루에 최대 몇 시간까지 그림 그려봤어요?
아이를 갖기 전까지는 하루 종일 그림만 그렸어요. 한 번은 저희 아버지께서 “현실로 돌아와”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답했죠. “이미 여기 있어요”라고요.(웃음) 제가 말하고 행동하고 느끼는 모든 것을 그림으로 그렸어요.
가장 처음 그린 그림 기억나세요?
그럼요. 저희 부모님께서 아직도 그 그림을 갖고 계신데요. 폼보드 위에 공룡을 사냥하는 동굴 탐험가를 그린 그림이에요. ‘THE SNAKE’에 그린 그림들과 꽤 비슷한데요. 지금까지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 중 하나예요.
그때가 몇 살이었나요?
아마 네 살 정도였을 거예요. 제가 다섯 살 때 처음 스파이더맨을 봤거든요. 스파이더맨을 본 후로는 그림을 다르게 그리기 시작했어요. 동굴 탐험가 그림과 다섯 살때 그린 그림이 다른 걸 보면, 아마 네 살 때 그린 그림이었을 겁니다.
어쩌다 처음 그림을 그리게 됐는지도 궁금해요.
말을 못하는 어린아이들은 손짓으로 대신하잖아요. 손에 잡히는 걸로 뭐든 그려서 표현하기도 하고요. 저도 그렇게 그림을 시작했어요.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그림을 권유한 적은 없었어요. 물론 말을 잘하게 된 후로도 늘 그림을 그렸고요.(웃음)
그럼 화가가 아닌 다른 직업은 생각해본 적도 없겠네요.
사실 꿈도 아니었어요. 한 번도 ‘나는 커서 화가가 되어야겠다’ 고민한 적도 없고요. 다만 어떤 식으로든 그림을 계속 그릴 거라는 건 알고 있었죠. 애니메이션이나 그래픽 노블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어요. 하지만 저는 학교 생활을 매우 못했고, 예술 학교에도 들어가지 못했어요. 그저 계속 그림 찾는 방법을 모색하다 지금의 일을 하게 된 거예요.
만일 어린 시절의 장 줄리앙을 만나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가요?
‘계속 그림을 그리렴.’ 하지만 돌이켜보면 아무 말도 안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어요. 과거의 무언가 바뀔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지금 근사한 삶을 살고 있어요. 매일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으니까요. 다만 지금의 삶을 살 수 있는 건 스스로 의심하고, 실패하고, 길을 잃은 시간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그 순간들이 없었다면 지금과는 영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도 몰라요. 그래서 실패를 피하기 위한 조언이라면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저는 좋은 조언자가 될 수 없어요.
그림 그리는 방법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거든요.
기술적인 기반이 없죠. 다만 주변의 상황을 잘 관찰하라고,
그리고 매일 그림을 그리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저는 동그라미 하나도 제대로 못 그리거든요. 만일 제가 내일부터 그림을 시작한다면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요?
저는 좋은 조언자가 될 수 없어요. 그림 그리는 방법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거든요. 기술적인 기반이 없죠. 다만 주변의 상황을 잘 관찰하라고, 그리고 매일 그림을 그리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근육은 쓸수록 더 커지잖아요. 그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면 매일 그려보세요.
작가마다 선호하는 재료나 도구가 다를 텐데요. 가장 좋아하는 도구가 궁금합니다.
저는 붓을 가장 좋아해요. 손의 힘을 다르게 할 때마다 새로운 일이 일어나요. 반면 볼펜은 선의 굵기가 규칙적이잖아요. 저한테는 펜의 일관성이 정적으로 느껴져요. 붓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마치 문어랑 그림을 그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야생마를 타는 것 같기도 하고요. 붓이 제가 생각한 방향으로 나아가게끔 노력하다 보면 꼭 고삐를 쥐고 말을 타는 것 같거든요.
볼펜보다 붓이 더 자유롭게 느껴지는 거네요.
맞아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붓이 볼펜보다 실수에 더 관대한 도구예요. 실수는 얼마든지 해도 괜찮아요. 실수를 했다는 건 곧 목표에 도달할 거라는 뜻이거든요.
그림 그리기 가장 좋은 장소는 어디인가요?
저는 해변에서 그림 그리는 걸 가장 좋아해요.
왜 바다인가요?
이유는 간단해요. 바다 옆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거든요. 저는 바닷가에서 반쯤 벗고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요. 여름이면 캔버스를 들고 해변에 나가요. 햇빛 때문에 눈을 가늘게 뜨고 그림을 그립니다. 사실 그림을 그리기에 좋은 환경은 아니에요. 햇빛 때문에 물감이 너무 빨리 말라서 색이 좋게 남지 않거든요. 하지만 집으로 돌아와서 그림을 만져보면 그 순간 느꼈던 온기, 소리, 색깔들이 느껴져요. 태양도 재료가 되는 거죠. 저는 붓과 바다가 아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멀리서 보면 한 덩어리 같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파도와 수많은 털들로 가득하잖아요. 항상 유연하게 움직이고요.
“제가 서퍼들과 해변을 그리기 시작한 이유는, 서핑과 바다를 좋아해서였어요.
저는 사람들이 인스타그램에 각자 좋아하는 순간을
사진으로 찍어 올리는 것처럼 그림을 그립니다.”
이번 ‘프리즈 서울 2024’에서 작가님의 서핑 그림을 봤어요. 작가들도 ‘팔리는 그림’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을 텐데요. 그런 점에서 고민하는 부분도 있나요?
그 부분이 참 묘해요. 이제는 어떤 작품이 잘 팔리는지 예상할 수 있지만, 처음부터 그걸 위해서 작품을 그리지 않거든요. 제가 서퍼들과 해변을 그리기 시작한 이유는, 서핑과 바다를 좋아해서였어요. 저는 사람들이 인스타그램에 각자 좋아하는 순간을 사진으로 찍어 올리는 것처럼 그림을 그립니다. 그 순간을 기억하고 간직하려고요. 그렇게 그린 그림은 대부분 아내, 아이들, 부모님처럼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낸 순간이거든요. 제 사적인 순간들이 모르는 사람에게 팔린다는 점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해요. 하지만 그게 제 그림이 바뀌어야 할 이유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저 그림 그리는 순간이 즐거워서 그리는 거니까요.
장 줄리앙 작품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건 사람과 자연이었어요. 지금 가장 몰두하는 주제는 무엇인가요?
지금 파리의 서점 이봉 랑베르에서도 제 전시가 열리고 있는데요. 푸른 나뭇잎을 그린 작품이 많아요. 저는 바다를 그리는 것도 좋아하지만, 최근에는 녹음에 둘러싸여 작업하는 것에 빠져 있습니다.
아주 단순한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어떤 색을 가장 좋아하세요?
지금은 코럴색을 가장 좋아해요. 코럴은 종류가 무척 다양하지만,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따뜻함이 마음에 들어요. 코럴에는 약 200가지 색조가 있어요. 보는 사람에 따라서 오렌지, 핑크, 복숭아색이라고 말하는 아주 이상한 색이죠. 그 점도 마음에 들어요.
옷을 고를 때도 비슷한가요?
제 친구 재영이 코럴과 화이트색 리버서블 재킷을 만들어준 적이 있어요. 제가 아주 좋아하는 재킷인데요. 그 재킷 입고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요. 사실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아지는 재킷이에요. 흔히 볼 수 없는 컬러 조합인데 아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핑크를 좋아하니까요. 다만 사람들이 핑크색 재킷을 입은 모습을 보고 쿨하다고 느낄지는 모르겠네요.(웃음)
2년 전 DDP에서 첫 회고전 <그러면 거기>를 열었고, 전시 기간이 연장될 만큼 인기가 대단했어요. 사람들이 장 줄리앙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러면, 거기> 전시회가 주목받은 이유 중 하나는 제가 지난 8년 정도 한국 관객을 꾸준히 만나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제게는 전시장에서 관객을 직접 만나는 게 큰 의미거든요. 다른 곳에서는 한 번도 보여드리지 않은 작품들도 선보였어요. 제 스케치북과 스케치를 포함해서요. 거만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저는 관객에게 단순히 제품을 보여준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전하고 싶은 것들을 자유롭게 보여드리려고 하죠. 그게 누군가에게는 난해하거나 지나치게 개인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다행히 관객께서도 제 진심을 알아봐주셔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식으로든 사람들을 놀라게 만드는 작품.
매번 큰 감동을 줄 필요는 없지만,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작품.
그게 좋은 작품이죠.”
그림 그리는 것만큼 보는 것도 좋아하실 것 같아요. 작가님 그림을 볼 때마다 장 줄리앙은 어떤 작가를 좋아할까 궁금했어요.
저는 인상파 화가를 무척 좋아해요. 알베르 마르케, 피에르 보나르, 앙리 마티스의 팬이죠. 현재 살아 있는 작가들 중에서는 데이비드 호크니를 가장 좋아하고요. 저와 비슷한 방식으로 바라보고 접근하는 작가들을 좋아해요. 그 방식은 우리가 겪는 일상과 눈앞의 풍경을 간략하게 그려내는 거겠죠.
일러스트레이터 외에 다른 일을 해볼 계획은 없나요?
너무 많죠. 우선 그래픽 노블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늘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었고, 실제로 지금 작업 중이에요. 극장에서 공연도 하고 싶어요. 무대를 디자인하고 거대한 인형도 만들어보고 싶거든요. 사실 해보고 싶은 일은 끝이 없어요. 다만 그게 무엇이든 관객들이 직접 참여하고 즐길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런 점에서 저는 이번 <장 줄리앙의 종이 세상>처럼 규모가 큰 몰입형 전시 방식이 마음에 들어요. 관객이 그저 벽만 바라보면서 걸음을 옮기는 전시가 아니니까요. 공간 전체를 둘러보고 다른 사람들과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경험을 만들고 싶어요.
좋은 작품은 어떤 작품이라고 생각하세요?
어떤 식으로든 사람들을 놀라게 만드는 작품. 매번 큰 감동을 줄 필요는 없지만,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작품. 그게 좋은 작품이죠. 우리가 만화책을 보거나 노래를 들을 때도 순간 멈칫할 때가 있잖아요. 그 ‘멈춤’이야말로 성공적인 작품임을 뜻해요. 그 방식이 아주 공격적일 수도, 어두울 수도 있어요. 혹은 즐거울 수도, 단순할 수도 복잡할 수도 있죠. 다만 어떤 식으로든 사람들을 놀라게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말씀하신 ‘좋은 작품’은 어떻게 하면 그릴 수 있을까요?
저만의 방식을 말씀드려볼게요. 제가 그림이나 포스터를 그릴 때는 전체적인 구성을 떠올려봐요. 넓은 표면 위에 작은 점을 찍어둔 형태로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합니다. 해 질 녘을 예로 들어볼게요. 일몰이 되면 단순한 배경 위에 아름다운 점 하나가 있는 풍경을 감상하게 돼요.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을 간단한 요소만으로 표현하다 보면 그림에 놀라움이 깃들어요. 매번 억지로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할 필요는 없지만, 저는 실험하고 시도해보고 싶은 것들이 많거든요. 처음에는 관객들이 제 작품을 보고 ‘이게 뭘까?’ 의아해했지만, 지금은 제 작품에서 일관성을 보고 좋아해주세요.
오늘 준비한 마지막 질문입니다. 어떤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하나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 이따금 관객들께서도 그렇게 말씀해주실 때가 있어요. 제 그림을 보면 행복하다고. 너무 감사한 일이죠. 사람들은 현재에 충실하지 못하고, 유행의 함정에 빠질 때 지루함을 느낀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사람들이 제 작품을 보고 싶어 할 때 살아 있는 기분을 느껴요. 제가 그린 그림을 통해서 관객을 만나고, 서로에게 힘과 기쁨이 되는 관계를 이어나가고 싶어요. 아주 오랫동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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