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숨소리를 듣고 심장박동만 느끼면서 달리는 게 좋습니다.
조용하고 정적인 명상보다는 동적인 명상을 좋아하는데
마치 명상처럼 느껴져요.”
이태구의 요즘은 어떻습니까?
마음이 여유로워졌어요. 최근 종영한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은 사실 2년 반 전에 촬영한 작품이에요. 모두에게 소중한 작품이라 빨리 편성돼서 사람들을 만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오래 기다렸죠. 드디어 빛을 봤고, 낮은 시청률에서 시작해 점차 올라가면서 좋게 끝맺어서 기쁩니다. 모든 건 다 때가 있나 봐요. 러닝도 하고 작품도 찍고 그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요새 한창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네, 이번에 감사하게도 두 작품을 동시에 들어가면서 조금 바빠질 것 같습니다. 조금요.(웃음)
두 작품을 동시에 소화하면 맡은 역할의 전환이 어려울 것 같은데 그렇지는 않습니까?
여러 작품을 동시에 진행해본 경험은 있지만 비중이 있는 역할은 처음이라 조금 걱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장에 가면 저와 호흡을 나누는 상대가 다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돼요. 두 작품의 캐릭터가 상당히 대비되는 성격이기도 하고요.
체력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할 텐데요. 건강관리를 따로 하시나요?
러닝이 유행이잖아요. 저도 유행에 편승해서 열심히 달리고 있습니다. 2019년부터 달렸는데 그때는 지금처럼 정보가 많지 않았어요. 요새는 페이스가 어떻고, 케이던스가 어때야 하고 각종 용어도 많이 사용하죠. 하지만 제가 처음 시작할 때는 나이키 러닝 앱 하나 켜두고 아무것도 모른 채 달렸어요. 그러다 인대가 파열되는 바람에 한동안 쭉 쉬었는데 올해 초부터 다시 달리기 시작했어요. 이틀 전에 첫 대회를 다녀왔는데 무척 재밌더라고요.
어떤 대회에 참가하셨어요?
슈퍼블루마라톤이라고 장애인의 인식 개선을 위한 캠페인 마라톤이에요. 좋은 취지로 열리는 대회였고 마침 그날이 제 생일이었어요. ‘주말이고 생일인데 스케줄 없겠지?’ 하고 바로 신청했죠. 근데 전전날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 종방연을 해서 회식이 있었어요. 술을 진탕 마셨고 다음 날은 아침부터 다른 작품의 첫 촬영을 하고, 그다음 날이 마라톤대회였어요. 망했다고 생각했죠.(웃음) 그래도 끝까지 포기만 하지 말고 뛰자 했던 게 제일 좋은 기록이 나왔어요.
뜻하지 못한 때에 생일 선물 같은 결과를 얻었네요. 주로 혼자 달리시나요?
네, 저는 혼자 달려요. 음악도 안 듣고 스마트폰도 집에 두고 나가요. 그러니까 주변에서 ‘부모님 원수 갚냐’ 하시는데 제 숨소리를 듣고 심장박동만 느끼면서 달리는 게 좋더라고요. 조용하고 정적인 명상보다는 동적인 명상을 좋아하는데 마치 명상처럼 느껴져요. 달리고 나면 생각도 정리되고 어떻게 연기하면 좋을지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요.
최근 종영한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는 어떠셨나요?
우선 너무 좋았어요. 저에게 와줘서 고맙고 정말 잘하고 싶다는 마음. 가끔 주변 배우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 이걸로 잘될 것 같아’ 하는 작품은 느낌이 온다고 했거든요. 김희원 선배님도 영화 <아저씨>에서 만석 역할을 맡아서 ‘이거 방탄유리야!’ 하는 명대사를 남기셨잖아요. 그때 대본 받고 ‘나 이걸로 된다!’ 싶었다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저도 각본을 보자마자 깊게 인상을 남길 수 있는 역할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잘 준비해야겠다는 설렘과 각오가 있었죠.
만약 배우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 어떤 일을 하셨을 것 같나요?
아마 취직해서 회사에 다닐 것 같은데요. 제가 학부에서 연출을 전공해서 친구나 동기가 제작사나 투자사 쪽으로 많이 취업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저도 방송고시, 언론고시를 준비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친구 중 한 명은 PD를 하고 있는데 제가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고르는 입장이고 저는 선택당하는 입장이니까요.(웃음)
연출로 시작해서 연기를 하고 있는 현재가 자연스러운 흐름과 계획대로 일궈온 성취 중 어떤 쪽에 가깝습니까?
저는 절대 계획형 인간이 아니에요. MBTI도 ‘P’ 성향이고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정교하게 계획을 세우고 노력하는 성향이 아니거든요. 물론 지향점이나 목표는 막연하게 있지만 성취하기 위해 무언가를 하기보다는 저에게 주어지는 미션을 성실하게 수행하려고만 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흘러온 것 같습니다.
그 흐름 속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도 했지만 실패의 순간도 분명히 있었을 텐데요. 그런 순간에는 어떻게 대응하셨나요?
보통 우리가 실패라고 느끼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오디션에서 떨어지거나 원하는 역할을 맡지 못하거나, 생각하지 못한 반응을 얻는 순간이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게 과연 실패일까? 실패는 아닌 듯한데’ 싶어요. 스스로에게 실망하거나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순간은 분명히 있죠. 그럴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떠올려본다면 부정적인 감정은 덮어두는 편입니다. 아예 쳐다보지 않고 괜찮아질 때까지 오래 놔뒀다가 감정에서 완전히 빠져나오면 그때 다시 봐요. 그러면 ‘그래서 이때 그랬던 거구나. 돌아보니까 사실 별것 아니네’ 하는 순간이 오더라고요.
배우라는 직업은 스크린을 통해 끊임없이 자기를 노출하는 직업이잖아요. 대중의 시선을 통해 자기 얼굴을 보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자신의 얼굴 중 어떤 얼굴이 가장 마음에 듭니까?
저는 화면이나 사진을 통해 봤을 때 제 얼굴이 마음에 든 적이 아직 없어요. 굉장히 이질적으로 느껴지고 늘 부족한 점만 보여요. 평소 생활을 하거나 거울을 볼 때 좋아하는 얼굴은 있는데, 그걸 아직 보여주지 못한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보여드리고 싶어요.
만 36세를 3일째 살고 있는 이태구의 인생 음악 다섯 곡
Radiohead – Creep
중학교 때 처음 알게 됐어요. 저 스스로가 많이 컸다고 생각한 시기였는데 가사를 보면서 되게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한동안 안 듣다가 서른 넘어서 다시 들었을 때도 여전히 좋더라고요. 36세에 들어도 좋으니 46세에 들어도 좋지 않을까 싶어요.
Coldplay - The Scientist
원래 밴드 음악을 즐겨 듣는데 콜드플레이 음악은 정말 다 좋아해요. 대표곡이 워낙 많지만, 이 음악이 지금은 제일 좋아요. 이유는 없습니다. 그냥 좋아요.
Rosa Walton & Hallie Coggins - I Really Want To Stay At Your House
게임 ‘사이버펑크 2077’에 삽입된 음악이었는데, 게임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면서 OST로 더욱 유명해졌어요. 주인공이 망가져가면서 폭주하는 장면에 이 노래가 흘러나와요. 한동안 빠져서 계속 듣는데 친한 친구 우창이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노래와 애니메이션 속 장면이 저의 감정과 뒤섞이더라고요. 너무 힘들어서 한참 동안 못 들었는데 이제야 조금 들을 수 있어요. 그 친구가 생각나는 의미 있는 음악입니다.
강백수 - 타임머신
담담한 듯 진한 여운을 남기는 노래입니다. 노래 가사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다면 부모님에게 무슨 말을 전할까 하는 내용인데요. 저는 이 노래를 들으면 바로 수도꼭지를 틀듯이 눈물이 쏟아져요. 들어보시면 모두가 공감할 거예요.
브로콜리 너마저 – 앵콜요청금지
앵콜요청금지는 보컬 계피의 탈퇴로 더 이상 초기 버전으로는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들을 수 없어요. 제목도 하필 앵콜요청금지고요. ‘그래. 한 번 지나간 건 또 돌아오지 않지’ 하는 감회가 들어서 골랐습니다. 36세 3일째를 살고 있는 제 생각과 맞닿은 노래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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