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구석이 있었다.
함께한 자동차에는 모두 미쉐린의 최상위 타이어를 장착했으니까.”
“특별한 경험을 즐기세요.” 미쉐린 글로벌 마케팅 담당자가 말했다. 으레 행사에 가면 듣는 말이지만 사뭇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위를 보면 빛깔 다른 하늘이, 옆으로는 고급 요트가 정박한 항구가 보였으니까. 이곳은 모나코였다. 유럽의 도시 국가이자 부자들이 그렇게 많다는 모나코. 모터스포츠, 카지노, 요트로 이어지는 화려한 관광의 나라.
타이어 브랜드는 보통 서킷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타이어의 성능을 시험해야 하니까. 신제품 혹은 주력 제품을 각기 다른 차종에 장착하고 서킷을 달린다. 여러 차종을 함께 경험한다는 점. 그 차들이 고성능 타이어에 어울리는 스포츠카라는 점. 타이어 성능을 파악하기 위해 한껏 밀어붙일 장소를 제공한다는 점. 자연스레 아드레날린이 분출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타이어 브랜드 행사의 특별한 점이기도 하다.
이번에는 달랐다. 모나코니까. 모나코는 F1이나 WRC가 열리는 모터스포츠의 성지 같은 도시다. 하지만 그건 특정 기간, 도로를 통제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를 위해서 도로를 통제할 리 없다. 타이어 성능 시험 행사와는 결이 다를 거라는 점을 시사한다. 대신 모나코가 풍기는 화려함을 내세운 무언가가 있을 테다. 행사명도 ‘미쉐린 패션 익스피리언스’다. 여기서 패션은 옷이 아닌 열정(Passion). 미쉐린의 열정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화려하다. 호텔 앞에 도열한 차들의 면면이 그렇다. 평균 금액 3억~4억원대 슈퍼 스포츠카와 럭셔리 카가 줄지어 운전자를 기다렸다. 모나코 호텔 앞의 흔한 풍경이려나. 중요한 건 이 차들을 탈 사람이 우리라는 점이다. 중동의 부호가 된 것처럼 도열한 차들을 살펴봤다. 노란색 람보르기니 우루스 퍼포만테, 강렬하다. 빨간색 페라리 F8 스파이더, 섹시하다. 역시 빨간색 페라리 296 GTS, 자태가 곱다. 진주색 벤틀리 컨티넨탈 GTC, 우아하다. 벤틀리 벤테이가, 웅장하다. 포르쉐 911 카레라 GTS 카브리올레와 911 타르가도 대열에 속했다. 이걸 다 합치면 얼마야. 미쉐린의 열정은, 시작부터 화려했다.
운이 좋지 않았다. 내가 당첨된 모델은 포르쉐 911 카레라 GTS 카브리올레. 포르쉐를, 그것도 911 GTS를 타는데 운이 좋지 않다고 느끼다니. 역시 사람은 어디에 서 있느냐에 따라 풍경이 달라진다. 페라리, 람보르기니, 벤틀리 앞에서 포르쉐는 확실히 평범해 보였다. “911 GTS가 이렇게 소박하게 느껴지긴 처음이네요.” 동승자도 같은 마음이었나 보다. 자꾸 정서불안처럼 다른 차를 바라보는 횟수가 늘었다. 못내 아쉬웠지만 내심 안심하기도 했다. 지금부터 달려야 할 곳은 수많은 굽잇길이니까. 짐짓 부담스러운 페라리나 호화롭지만 덩치 큰 벤틀리보다 포르쉐가 부담도 달리기적고 민첩하다. 낯선 길을 처음 운전할 땐 포르쉐가 더 적응하기에 좋다. 더구나 기착지에서 다른 차로 바꿔 탈 기회도 있다. 역시 사람은 긍정적이어야 한다. 911 카레라 GTS 카브리올레가 행운이다 싶었다.
모나코를 벗어나자 금세 구불구불 길이 몸부림쳤다. 산을 끼고 도는 프랑스 남부의 산악 도로는 난이도가 높다. 좀처럼 속도를 내기 어렵다. 가속페달을 좀만 밟아도 이내 헤어핀 같은 코너가 나왔다. 이런 길에서 100여 년 동안 랠리를 펼치다니. 몬테카를로 랠리가 새삼 남다르게 다가왔다. 역사와 전통을 넘어, 일단 길이 어렵다. 무지막지한 출력을 품은 차들과 함께하지만 평균 속도는 높지 않았다. 대신 대부분 컨버터블이라는 점이 중요했다. 풍광을 즐기기엔 더없이 좋은 조건. 몬테카를로 랠리의 무대를 산책하듯 달렸다. “우와, 이야, 와아!” 너나 할 것 없이 탄성이 넘쳐흘렀다.
물론 잠깐씩 슈퍼 스포츠카다운 출력을 만끽하기도 했다. 명검을 찼는데 휘둘러보긴 해야지. 휘두르기에 좋은 환경은 아니다. 일단 노면 상태가 좋지 않다. 오래된 길 특유의 울퉁불퉁한 요철이 많다. 급격한 코너도 퍼레이드처럼 이어진다. 그럼에도 믿는 구석이 있었다. 함께한 자동차에는 모두 미쉐린의 최상위 타이어를 장착했으니까. 스포츠카는 파일럿 스포츠 4S, SUV에는 파일럿 스포츠 4. 파일럿 스포츠 4S는 파일럿 슈퍼 스포츠의 후속 모델이다. 슈퍼 스포츠카와 고성능 프리미엄 차량을 위한 고성능 타이어. 개발할 때부터 페라리, 포르쉐 등 스포츠카 제조사가 함께해 완성도를 높였다. 무엇보다 레이싱 타이어 기술을 접목한 부분이 특징이다. 타이어 바깥 부분과 안쪽 부분에 두 가지 다른 콤파운드를 사용했다. ‘바이-콤파운드 기술’이라 부른다. 각기 다른 콤파운드가 다양한 노면에서 접지력을 높인다. 아라미드와 나일론 하이브리드 소재를 사용한 ‘다이내믹 리스폰스’ 기술도 적용했다. 조향의 민첩함과 정확도를 높인다. 미쉐린에선 이렇게 평했다. “새로운 슈퍼 스포츠 타이어의 제왕입니다.”
타이어의 성능에 집중해 달리진 못했다. 애초 그럴 상황도 아니었다. 그러라고 부르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수많은 굽잇길에서 마음 편하게 스티어링휠을 돌렸다. 어떤 불안감도 없었다. 원래 타이어는 알게 모르게 운전을 즐기게 해야 한다. 그러면 족하다. 파일럿 스포츠 4S는 온전히 운전과 풍광을 즐기게 했다. 포르쉐 911 카레라 GTS 카브리올레를 탈 때도, 이후 페라리 F8 스파이더를 탈 때도.
인솔하는 차가 더 높은 곳으로 내달렸다. 길은 점점 좁아졌다. 반대편에서 차가 오면 어느 지점에서 멈춰 지나가길 기다려야 할 정도로 좁았다. 로드바이크를 타는 사람도 자주 보였다. 유명한 길이라는 뜻이다.
그렇게 라 리기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해발 800m, 산꼭대기에 있는 레스토랑. 바다와 산, 굽잇길이 한눈에 담겼다. 소박한 전통 음식을 내는 레스토랑이다. 예상보다 맛이 훌륭했다. 놀라운 경치를 눈에, 맛깔스러운 음식을 입에 담으며 문득 미쉐린이 말한 열정이 떠올랐다. 어딘가로 안전하게 가면서 인상적인 경험을 쌓는 일. 최상위 타이어를 장착한 고성능 자동차를 타고 왔지만,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믿음직한 타이어는 그 특별한 여정의 기본 조건이다.
미쉐린이 <미쉐린 가이드>를 만든 이유도 마찬가지다. <미쉐린 가이드>는 여정에 들를 만한 식당을 소개하려는 의도로 만들었다. 타이어 소비량을 늘리려는 마케팅 전략이지만, 여정의 재미를 배가하는 계기가 된다. 미쉐린의 열정은 이동하는 즐거움 아닐까. 분명히 즐겼다.
랠리 카 타고 절벽 달리기적고
미쉐린은 시닉 드라이브 외에 동승 체험도 준비했다. 랠리 카를 타고 몬테카를로 랠리의 한 구간을 달리는 ‘핫랩’ 이벤트다. 아우디 RS3 LMS 랠리 카를 타고 짧고 굵게 달렸다. 랠리 카에는 미쉐린 파일럿 스포츠 5를 장착했다. SUV 대응 고성능 타이어다. 고출력에 대응하고, 꾸준한 성능을 발휘하며, 탁월한 접지력을 보장한다. 험로 달리는 랠리 카에도 알맞다. 케이지에 몸을 구겨 넣자 백발이 성성한 랠리 드라이버가 씨익, 웃었다. 사람 좋은 웃음이 사라지자 절벽 위 질주가 펼쳐졌다. 그동안 수많은 택시 드라이브를 경험해봤다. 서킷을 드리프트로만 달리는 차도 타봤다. 그럼에도 좁은 산길을 빠르게 달리는 랠리 카는 사뭇 짜릿했다. 흥분한 나와 다르게 미쉐린 타이어는 차분하게 노면을 붙잡았다. 과연, 미쉐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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