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키가 훨씬 크시네요. 지금 키가 몇 살 때 키예요?
제 프로필에 나와 있는 키가 192cm인데요.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큰 것 같아요.
펜싱 선수 중에 키 큰 분들이 많잖아요. 펜싱이 키 크는 데 도움이 될까요?
저는 도움이 됐다고 생각해요. 펜싱 시작하고 키가 많이 컸거든요. 펜싱은 발을 강하게 딛는 동작이 많은데 그게 성장판에 자극을 주지 않았을까 싶어요. 사실 모를 일이죠.(웃음) 적어도 저는 펜싱하면서 본격적으로 키가 자랐어요.
올림픽 금메달을 딴 저녁은 무척 특별했을 것 같아요. 끝나고 뭐 드셨어요?
라면 끓여 먹고 바로 잤어요. 숙소에 들어갔을 때가 새벽 1시 반이었어요. 경기 끝나면 도핑 테스트 포함해서 이래저래 할 게 많거든요. 기뻐할 새도 없이 곧장 침대에 누웠습니다.
대한민국 세계 펜싱 선수권 대회 역사상 최다 우승자 기록을 갖고 계시죠. 그 많은 금메달은 어디에 보관하세요?
집에 메달 모아두는 장이 하나 있어요. 와인 보관함처럼 생겼는데요. 사실 크지는 않아서 중요한 메달들만 거기에 따로 모아둡니다.
개인적으로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메달이 있나요?
우선 올림픽에서 딴 메달 3개가 가장 중요하죠. 한 시즌을 랭킹 1등으로 마무리하면 메달을 줘요. 이번에 그 메달을 3개째 받는데 매우 중요하고요. 그다음으로는 세계 선수권 메달이 중요해요.
저는 펜싱 경기를 볼 때 상대 선수가 세리머니를 크게 하면 그렇게 얄밉더라고요. 경기 중에도 얄밉다는 생각을 합니까?
세리머니는 모든 선수가 하는 거라, 오히려 안 하면 이상해요. 사실 반자동으로 나오는 행동이거든요. 매너 없이 상대방 도발하려고 소리치는 경우는 거의 없어서 기분이 나쁘지는 않습니다.(웃음)
경기 전에는 어떤 음악을 들을지도 궁금했어요.
저는 경기 전에 노래를 잘 안 듣는 편이에요. 만약에 듣는다면 느린 노래를 선택할 것 같아요. 발라드처럼 차분한 노래. 지금 생각나는 건 존 박의 ‘밤새 서로 미루다’. 권미도 님이랑 같이 부른 노래인데요. 두 가수 목소리가 너무 잘 어울리고, 특히 화음이 맞물릴 때 좋더라고요. 평소에도 많이 듣습니다.
한국에서 펜싱은 대중적인 스포츠가 아니죠. 보통 선수들은 어떻게 펜싱을 처음 시작하나요?
제가 진학했던 중학교에 펜싱부가 있었어요. 펜싱을 하고 싶어서 그 학교에 간 건 아니고요. 보통 공부 잘 못하고 축구 좋아하는 친구들이 펜싱부에 들어가죠. 95%는 그렇게 펜싱부에 들어가는 것 같아요. 저도 그랬고요.
보통 펜싱부에서 먼저 제안이 오나요?
그런 경우도 있는데요. 저는 제가 먼저 지원했어요. 친형이 펜싱을 하고 있어서 익숙했거든요. 저는 운동을 좋아하긴 했는데, 뙤약볕 아래서 땀 흘리는 건 썩 좋아하지 않았어요. 축구할 때도 늘 그늘에서 뛰었거든요.(웃음) 펜싱은 실내 스포츠니까 훨씬 쾌적하게 운동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럼 플뢰레, 에페, 사브르 중에서 내게 어떤 종목이 맞는지는 언제 어떻게 알게 되나요?
체육고등학교가 아니면 보통 펜싱부에는 종목이 하나밖에 없어요. 저희 학교 펜싱부는 사브르였고요. 저는 다른 종목이 있는 것도 몰랐어요. 그냥 사브르가 펜싱인 줄 알고 시작했죠. 그렇게 운동하다 보면 코치님들이 권유하시죠. ‘얘는 에페가 더 낫겠다’ 하면, ‘다른 학교로 가서 종목을 바꿔보는 게 어떻겠냐’ 말씀해주세요.
“이기면 재미가 붙고, 재미있으니까 노력도 더 하게 되거든요.
결국 오랫동안 즐기려면 이기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뜬금없는 질문입니다만 칼은 몇 개나 가지고 계세요?
보통 시합 뛸 때 4개 정도 들고 가요. 4개 다 같은 칼입니다. 경기 도중 부러질 수도 있고, 휠 수도 있어요. 보통 ‘길이 든다’고 하죠. 칼이 한 번 휘면 다시 펴도 휜 방향으로만 계속 휘어요. 그럼 칼을 바꿉니다.
꼭 ‘이 칼로 경기를 뛰어야 된다’ 하는 강박은 없네요.
맞아요. 반면 엄청 예민한 선수들도 있어요. 무조건 연습할 때 쓰던 칼로 경기 뛰어야 되는 선수들도 있죠. 저는 장비에 예민한 편은 아닙니다. 신발도 그래요. 시합 앞두고 새 신발을 받으면 ‘한번 신어볼까?’ 하면서 쓰는 식입니다.
본인만이 느꼈던 도쿄 올림픽과 파리 올림픽의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부담은 도쿄가 더 컸어요. 부담 주는 사람들이 더 많았거든요.(웃음) 미디어 데이를 하면 기자분들이 여쭤보세요. 목표가 어떻게 되냐고. 저는 “최선을 다하고 싶다. 후회 없는 경기를 하고 싶다” 답하는데, 꼭 유도 질문을 계속하세요. 무조건 금메달이라고 얘기하게끔. 도쿄 때 유독 심했어요. 그때 랭킹이 높은 편이었거든요. 제 입에서 “목표는 금메달”이 나올 때까지 질문하세요. 파리 올림픽 때는 그걸 아니까 누가 목표를 물으면 바로 “금메달이 목표입니다”라고 했거든요. 그만큼 기자회견도 빨리 끝나더라고요.
본인 예상으로는 어떤 대회가 더 자신 있었나요?
파리 올림픽이 훨씬 자신 있었죠. 도쿄 올림픽 때는 코로나에 심하게 걸려서 준비를 제대로 못 했거든요. 반면 이번 대회에는 아픈 데 없이 잘 준비했고 마음도 편했어요. 그만큼 ‘할 수 있겠다’는 확신도 컸고요.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 한편, ‘프로 선수라면 결코 즐길 수 없다’는 말도 있습니다. 선수님은 어떤 편이세요?
저는 ‘이기면 재미있다’인데요. 우리가 ‘즐기는 사람은 이길 수 없다’고 하는데, 사실 이기는 사람이 재미있고 즐기는 거잖아요. 순서가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이기면 재미가 붙고, 재미있으니까 노력도 더 하게 되거든요. 결국 오랫동안 즐기려면 이기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일종의 징크스나 루틴이 있습니까?
저는 그런 게 진짜 없어요. 물론 심한 선수도 엄청 많아요. 예를 들면 경기 전에 국물 건더기 안 먹는 선수도 있어요. 몸이 무거워질 것 같아서. 혹은 아침에 달걀을 꼭 먹고 시합에 가야 한다거나, 경기 전에는 꼭 화장실을 들러야 한다거나 하는 식이죠. 저는 이렇다 할 징크스도 루틴도 없습니다.
펜싱은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나요?
모든 운동이 그렇지만, 펜싱도 처음 시작할 때 기본기 연습부터 해요. 그 기본기 연습이 정말 재미없거든요. 그걸 열심히 할 필요가 있어요. 재미없는 걸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하죠. 어느 정도 기본기를 탄탄하게 다졌다 싶으면 이미지 트레이닝을 많이 하는 게 중요합니다. 내가 시합 중에 어떤 동작을 반사적으로 했다면 그걸 왜 했는지, 그때 상대방이 어떻게 느꼈는지를 스스로 생각하고 분석하는 과정이 중요해요. 그래서 저는 평소에 연습하는 상대 선수에게 질문도 많이 해요.
펜싱은 개인 스포츠고 포인트를 쌓아가는 종목이다 보니 긴장감이 무척 클 것 같습니다. 그 긴장감은 어떻게 다루나요?
사실 요즘에는 긴장을 거의 안 해요.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에요. 한 번은 저 스스로도 ‘왜 긴장을 안 할까?’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요. 시합이 너무 많아서 그런 것 같아요. 1년에 보통 국내·국제 대회 모두 합쳐서 17개 정도 대회에 나가요. 한 달에 대회에 한 번 이상 나가는 거죠. 시합이 너무 많다 보니까 결국은 익숙해지더라고요. 경기 전에도 ‘이번 시합에는 정말 잘해야 돼’보다는, ‘시합은 다음에 또 있고, 난 그저 준비한 걸 하면 된다’ 생각하면 훨씬 도움이 돼요. 올림픽 경기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치렀어요.
익숙해질 때까지 많이 해보는 수밖에 없겠네요.
그렇죠. 달리 방법이 없어요.
여전히 펜싱이 좋아서 펜싱 선수로 활동하실 텐데 펜싱이 좋은 개인적인 이유가 궁금해요.
내가 아무리 잘해도 유독 어떤 선수한테는 기술이 안 통할 때가 있어요. 분명 컨디션도 좋고, 기술적으로도 완벽한데 이상하게 막히는 상대가 있죠. 그럴 때는 빨리 전략을 바꿔요. 그렇게 해서 이기면 내가 머리 써서 이긴 게 되잖아요. 그 과정에 빠지는 것 같아요. 단순히 몸만 쓰는 게 아니라 전략이나 기술을 계속 머릿속으로 생각하니까 재밌는 종목이라고 생각해요.
오늘 준비한 마지막 질문입니다.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하나요?
‘대한민국 운동선수’ 하면 종목과 무관하게 떠오르는 분들이 있잖아요. 박세리 감독님, 박찬호 감독님, 손흥민 선수처럼요. 저도 펜싱을 떠나서 우리나라에서 ‘운동선수’ 하면 떠오르는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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