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고속철도가 다니기 시작한 건 20년 전 일이다. KTX 개통을 이틀 앞둔 2004년 3월 30일. 헬기를 타고 광명역사 상공에 떠 있던 한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고속철은 지방과 서울, 지방과 세계를 잇는 초고속 물류 혈관이 될 전망입니다. 나아가 북한과 시베리아철도 등과 연계되면 유럽과 철의 실크로드가 완성됩니다. 고속철 사업에는 지금까지 12년이라는 세월과 12조70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갔습니다.” 20년이 흐른 지금. 유럽까지 이어지는 ‘철의 실크로드’는 여전히 기약이 없지만, KTX는 동해부터 여수, 포항, 땅끝마을로 철길을 넓혀가며 여행객을 실어 나르고 있다.
여름이면 말복에 삼계탕 챙겨 먹듯 보는 영화가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바닷마을 다이어리>.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가 대개 그렇듯 <바닷마을 다이어리>도 극적인 이야기를 그리진 않는다. 세 자매가 15년 전 집을 떠난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이복 여동생을 만나고, 네 사람이 작은 바다 마을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 줄거리의 전부다. 일본 최고의 인기 여배우 4인이 등장했다는 것만으로 추천할 만하지만, 이 영화가 유독 여름마다 생각나는 건 여름 바다를 아름답게 담아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바다에 가고 싶어진다. 정확히는 기차와 바다가 있는 시골 마을. 네 자매가 처음 함께 살기로 결심한 곳도 기차역 인근이었다. 바다 마을에서 재회한 주인공들은 아침마다 열차에 올라 일터로 향하고, 점심이면 땀을 뻘뻘 흘리며 잔멸치덮밥을 먹고, 밤에는 바닷가에서 불꽃놀이를 지켜본다. 아주 잘 만든 기차 홍보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실제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일본 신칸센의 규슈 개통을 알리는 홍보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이 그 영화다. 서로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기차가 스쳐 가는 순간,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여행을 떠나는 아이들의 이야기.
서울에서도 당일치기로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쓸 수 있는 곳이 있다. 광화문에서 정동 쪽에 나루터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이름 붙은 곳, 바로 정동진이다. 서울에서 정동진으로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KTX를 타는 것이다.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강릉선 KTX는 정동진을 거쳐 동해까지 이어진다. 정동진역에 KTX가 다니기 시작한 건 2020년. 그 후로 정동진역은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동해 바닷가’가 됐다고 한다. 아, 정동진역은 우리나라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기차역이기도 하다.
“정동진역 역사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일출 시간을 알리는 표시판이 있다. 8월 6일 정동진에는 5시 32분에 해가 떴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바다에서 가장 가까운 기차역
서울에서 정동진으로 가는 첫 KTX는 매일 아침 7시 1분에 출발한다. 나는 열차 출발 시간보다 30분 일찍 서울역 광장에 도착했다. 아직 푸르스름한 하늘 아래서 신동훈 사진가가 손을 흔들며 반겼다. 이 시간에 기차 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었지만, 서울역 맥도날드는 이미 만석이었다. 열차에 올라타자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거문고인지 가야금인지 모를 국악 연주. 시트에 몸을 파묻고 잠시 후, 스피커에서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서울역을 출발해 동해로 가는 열차입니다. 열차가 곧 출발합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 열차는 이미 평창역을 지나고 있었다. 옆자리에는 5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앉았다. 그는 수첩 케이스를 끼운 갤럭시로 시종일관 풍경을 담았다. 나는 사진을 찍는 대신 인터넷 검색창에 정동진을 검색했다. 그제야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KTX가 개통하기 9년 전인 1995년, 드라마 한 편이 방영됐다. 제목은 <모래시계>. 지금은 <오징어 게임> 속 ‘성기훈’으로 익숙한 이정재의 출세작이다. <모래시계>는 20세기의 <오징어 게임>이었다. 방영 시간이 되면 서울 시내 교통량은 평소보다 21%나 감소했고, 역대 최고 시청률은 64.5%를 기록했다. 그런 <모래시계>에 정동진역이 등장한다.
정동진역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소나무 한 그루가 눈길을 끌었다. 소나무 아래 작은 비석에는 ‘모래시계 소나무’라고 새겨져 있었다. <모래시계> 8화에서 주인공 윤혜린(고현정)은 기차를 타고 떠나려 하지만 경찰에게 붙잡히고 만다. 이때 고현정의 뒤로 보이던 나무가 바로 이 소나무다. 정동진역의 소나무는 한때 ‘고현정 소나무’로 불리다, 고현정이 결혼한 후 ‘모래시계 소나무’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정동진역 역사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일출 시간을 알리는 표시판이 있다. 8월 6일 정동진에는 5시 32분에 해가 떴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모래시계>를 보고 정동진에 왔던 연인이 중년 부부가 되어 서로에게 남긴 편지를 확인할 수도 있겠구나. 이것이 동해 바다의 낭만이구나.”
27년 된 방명록
정동진에서는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물회를 먹고, 바다에 들어가고, 커피를 마시고, 모래시계공원을 산책하는 것 정도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걸 다 해보기로 했다. 서울로 돌아가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뭘 할지 정 모르겠다면 관광안내지도가 도움이 된다. 정동진에는 어딜 가든 ‘강릉 여행 관광안내지도’가 꽂혀 있다. 그중 가장 집중해서 본 건 먹거리 부분이다.
강릉이 소개하는 대표 먹거리는 아홉 가지다. 물회, 장칼국수, 감자옹심이, 짬뽕순두부 등등. 그중 의외였던 건 커피다. 강릉의 일곱 번째 대표 먹거리로 소개된 ‘커피’ 아래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카페들이 모여 커피 거리를 형성할 정도로 강릉은 커피 도시로 유명하며 옥수수커피, 감자커피 등 특별한 커피도 즐길 수 있다.’ 감자커피라니. 구황작물로 만든 커피는 무슨 맛일까. 정동진역에서 가장 가까운 카페는 이디야지만, 15m만 더 걸으면 로컬 카페에 갈 수 있다.
우리가 찾은 카페 이름은 ‘썬카페’다. 2층 오두막으로 지어진 썬카페에서는 오래된 나무 냄새와 커피 볶는 냄새가 났다. 감자커피는 없었다. 대신 핸드드립 커피가 아홉 가지나 준비되어 있었다. 나와 신동훈 사진가는 ‘콜롬비아’ ‘과테말라’, 그리고 ‘토스트’를 시켰다. 부부처럼 보이는 두 사장님이 커피를 준비하는 동안, 가게 곳곳에 붙어 있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정동진 썬카페는 1997년 문을 연 이래로 지금까지 손님이 기록한 방명록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기억하시는 연도와 월을 알려주시면 추억의 글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토스트에 블루베리잼을 바르며 생각했다. <모래시계>를 보고 정동진에 왔던 연인이 중년 부부가 되어 서로에게 남긴 편지를 확인할 수도 있겠구나. 이것이 동해 바다의 낭만이구나.
이날 정동진 해수욕장은 파도가 거셌다. 별 생각 없이 바다에 뛰어들려던 찰나, 팔다리가 과테말라산 커피만큼 새카맣게 탄 라이프가드가 나를 막아세웠다. “오늘은 파도가 너무 세요. 구명조끼 없이는 못 들어갑니다. 없으면 빌리셔야 해요.” 구명조끼 얼만데요? “1만원이요. 계좌이체하세요?” 나와 신동훈 사진가는 구명조끼 하나를 빌려 번갈아 착용했다. LA에서 사진을 공부한 신동훈은 바다와 모래사장을 오가더니 이렇게 말했다. “여기가 한국의 샌타모니카네요.” 정동진 해수욕장 인근의 식당에서는 거의 물회를 팔았고, 우리는 모래사장에서 가장 가까운 식당에 들어가 물회와 회덮밥을 하나씩 시켰다.
“정동진에서 심곡항을 거쳐 금진항으로 가는 편도 15분 도로에는 정동심곡바다부채길이 있다. 왼쪽에는 바다가, 오른쪽에는 머리 위로 절벽이 펼쳐진다.”
시속 300km의 즐거움
정동진 해수욕장 옆에는 모래시계공원이 있다. ‘또 <모래시계>야?’ 싶었지만 이곳에는 진짜 모래시계가 있다. 이름은 ‘밀레니엄 모래시계’. 2000년 1월 1일부터 가동된 밀레니엄 모래시계 안에는 모래 8톤이 들어 있다. 모든 모래가 떨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1년. 매년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자정이 되면 시계를 반 바퀴 돌려 새로운 1년을 시작한다고 한다. 이건 <바닷마을 다이어리>에도 없는 디테일이다. 이 모든 걸 하고도 시간이 남았다면, 그리고 운전을 할 수 있다면 서너 시간 차를 빌려보는 것도 좋다. 정동진에서 심곡항을 거쳐 금진항으로 가는 편도 15분 도로에는 정동심곡바다 부채길이 있다. 왼쪽에는 바다가, 오른쪽에는 머리 위로 쏟아질 듯 절벽이 펼쳐진다.
서울로 돌아가는 기차 시간은 저녁 7시 31분.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해안선은 노을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역에 있는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카메라를 꺼내 서로의 모습을 풍경에 담았다. 짧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처음 KTX를 타던 날이 생각났다. 나는 수능을 앞둔 지방의 고등학교 3학년이었고, 친구들과 가고 싶은 ‘인서울’ 대학교를 견학하기 위해 KTX를 탔다. 다음으로 KTX를 탔을 때는 군복을 입고 있었다. 열아홉 살 때 찾아갔던 대학교에는 입학하지 못했고, 수없이 상상했던 군대 휴가는 내 예상처럼 즐겁지만은 않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기차를 탈 때면 기분 좋은 설렘으로 가득하다. 창문 밖에서 시속 300km로 바뀌는 풍경, 새로운 역에 도착할 때마다 바뀌는 옆자리의 얼굴들. 각자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여행객들 속에 묻혀 몇 시간 뒤 보게 될 장면을 상상하는 건 기차에서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다. 그 즐거움은 앞으로 20년이 지나도 여전할 것 같다.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