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야구장에 간 게 화제였어요. 한국 야구장은 어땠나요?
저, 휴 잭맨, 라이언 레이놀즈 셋이 프레스 투어를 시작하면서 규칙을 하나 만들었어요. 도시마다 한 명씩 계획을 짜고 그대로 해보자. 휴는 상하이 일정을 짰고, 저는 서울을 맡게 됐죠. ‘서울에서 뭘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야구장에 가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훌륭한 야구선수를 많이 배출한 나라니까요. 그래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고척돔으로 향했습니다.
저는 야구장 가면 야구 안 보고 음식만 먹습니다. 기억나는 음식 있나요?
제 앞자리에 한 신사분이 앉아 계셨거든요. 그분이 여섯 칸으로 꾸려진 스낵 박스를 들고 있더라고요. 미국에서는 그런 걸 한 번도 본 적 없어요. 칸마다 다른 음식이 들어 있었어요. 저는 워낙 정리된 걸 좋아하고, 음식이 서로 닿지 않는 것도 선호하거든요. 아주 체계적인 디자인이었죠. 제 꿈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웃음)
2년 전 라이언의 유튜브 채널에서 처음 <데드풀과 울버린> 티저 영상을 본 게 기억납니다. 그때부터 반응이 무척 뜨거웠는데, 지금의 기대감은 어떠세요?
저도 말씀하신 유튜브 티저 영상 촬영할 때가 기억나요. 보통은 보도자료를 내거나, 스튜디오 측에서 입장 발표를 하잖아요. 저희는 새롭게 해보고 싶었고 라이언 집으로 모였죠. 라이언이 소파에 앉아 있고 그 뒤로 휴가 지나가는 장면이 있는데 그것만으로도 반응이 엄청났어요. 두 배우의 만남이 인기를 끌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번이 첫 한국 방문이거든요. 그럼에도 서울에서 그 기대감을 여실히 체감하고 있어요. 야구장에서도, 기자간담회에서도요.
<데드풀과 울버린>이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다른 세계관의 두 히어로가 만난다는 사실일 텐데요. 이전 시리즈가 쌓아온 세계관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걸 보여주어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바로 그 점이 제가 감독으로서 해결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두 세계관이 지닌 유산과 캐릭터의 정체성을 그대로 보존하는 거요. 사실 서로 상극인 캐릭터를 억지로 모아놓은 거니까요. 분명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것 자체가 기회였다고도 생각합니다. 그 어려움을 극복해낸 것에 대한 보상은 관객이 극장에서 느끼실 재미와 즐거움이라고 자신합니다.
말씀하셨듯 워낙 상징적인 캐릭터다 보니, 저는 라이언 레이놀즈와 휴 잭맨을 보면 다른 어떤 캐릭터보다도 데드풀과 울버린이 먼저 생각나요. 실제로 두 배우는 각 캐릭터와 성격이 얼마나 비슷한가요?
휴는 완전히 달라요. 굉장히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이거든요. 자기 감정과 생각을 잘 표현하고요. 반면 로건은 늘 혼자 싸우고, 고독하고, 화가 많은 캐릭터잖아요? 라이언은 웨이드랑 굉장히 닮았어요. 생각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굉장히 빠르죠. 전원 꺼짐 버튼이 없는 사람 같달까요? 다른 점도 있어요. 웨이드는 자신이 속한 세계 안에서 자기가 누구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몰라 방황합니다. 하지만 라이언은 확실하게 알고 있어요. 가정과 일에 충실한 사람이고요. <데드풀> 시리즈를 만들 때는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프로였고요. 그런 라이언과 일한 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즐거운 점 중 하나였어요.
감독님도 연기자로 활동하셨죠. 직접 데드풀과 울버린 중 한 명을 연기해야 한다면 어떤 역할을 고르시겠어요?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는 제가 연기를 안 하는 이유를 말씀드려야 할 것 같은데요.(웃음) 저는 스스로 ‘카메라 뒤에 서 있을 때의 자유’를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한 번 울버린 클로를 껴봤는데 강력해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데드풀 수트도 입어봤는데 그때는 <토이 스토리>의 ‘우디’가 데드풀 복장을 한 것처럼 어색하고 이상했어요. 이건 아니다 싶었죠. 그게 제 마지막 슈퍼히어로 역할이었습니다.
만일 오늘 하루 동안 서울에서 자유 시간이 주어진다면 두 주인공 누구와 함께하시겠어요?
두 명 다 즐거울 것 같은데요. 그래도 한 명만 고르자면 데드풀을 선택하겠어요. 얼굴이 가려져 있으니까 좀 더 자유롭게 다닐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포스터에서 들고 있는 총은 빼고요.
이번 작품을 연출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습니까?
비주얼을 만드는 일이었죠. 저희가 상상한 장면은 많은데, 그렇다고 CGI로 뒤덮인 영화를 만들고 싶진 않았거든요. 액션 규모가 크고 화려하면서도 현실적이길 바랐어요. 히어로 영화를 만들 때는 블루 스크린에서 촬영할 일이 많아요. 저희는 최대한 세트를 새롭게 짓고 로케이션을 가서 촬영하려고 했습니다. 그 과정을 조율하고 실행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었어요.
저는 마블 촬영 비하인드 신을 보면서 배우들이 정말 힘들겠다 싶었어요. 아무것도 없는 블루 스크린 앞에서 어떻게 몰입해서 연기하나 신기했거든요.
말씀하신 것에 대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어요. 제가 <리얼 스틸> 촬영할 때의 일인데요. 제작을 맡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저한테 로봇을 만들라고 하셨어요. 왜 그래야 하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그게 배우들이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되니까’라고 답하셨어요. 그 후로 저는 최대한 실제 상황에 가깝도록 촬영 환경을 만들거나 소품을 준비합니다. 물론 CGI만으로도 완성도를 높일 수는 있지만, CGI로 모든 걸 대체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데드풀>은 ‘데드풀답다’라고 할 수 있는 특별한 지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독님이 생각하는 ‘데드풀답다’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자기 인식이라고 생각해요. 주인공 웨이드는 영화 속에서 자신이 등장하는 장면에 대해서 끊임없이 코멘트를 하잖아요. 제4의 벽을 계속해서 부수죠. 보통 ‘데드풀답다’라고 하면 재미있는 말장난이나, 고어물처럼 느껴지는 액션 장면을 떠올릴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데드풀>만이 지닌 코미디의 뿌리는 스스로에게조차 이야기를 건넬 수 있는 자기 인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영화는 어떤 영화라고 생각하세요?
일단 자신감 있는 톤이 있어야겠죠. 캐릭터는 아주 복잡하지만, 동시에 관객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요. 무엇보다 좋은 영화는 관객에게 감정적으로도 개념적으로도 공감을 불러일으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다양한 영화 제작자와 감독을 존경하고 좋아해요. 어제는 저희 스태프들과 봉준호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봉준호, 웨스 앤더슨,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제가 결코 따라 할 수 없는 독창적인 영화를 만들고 있잖아요. 제가 만든 영화 스타일의 핵심은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공감을 줄 수 있는 점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의 많은 관객도 제가 영화를 만든 의도대로 즐기신다는 걸 느껴서 행복해요.
“단순히 영화적 추억이 아닌 삶의 한 조각으로
제 영화들이 기억됐으면 합니다.
그런 영화를 많이 만든 사람으로 남고 싶어요.”
말씀하신 대로 감독의 수만큼, 좋은 영화를 만드는 방법도 다양할 텐데요. 감독님의 방법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영화를 만들 때 가장 먼저 이야기의 톤을 정합니다. 거기서부터 스타일을 이끌어내요. <프리 가이>와 <리얼 스틸>은 둘 다 제가 연출한 작품이지만 느낌이 굉장히 달라요. 이야기의 톤이 다르거든요. 그 때문에 영화가 지닌 스타일과 미학도 다르죠. 어떤 감독님은 영화의 미학적인 부분을 먼저 생각하고 스토리를 전개해나가기도 하지만, 저는 반대로 스토리에서 출발해 미장센으로 뻗어나갑니다.
감독님께서는 라이언 레이놀즈, 휴 잭맨, 애덤 드라이버, 마크 러팔로 등 세계적인 배우들과 호흡을 맞춰오셨죠. 연출자 입장에서 바라본 좋은 배우의 기준이 궁금했습니다.
먼저 ‘훌륭한 배우’와 ‘무비 스타’는 다르다는 점을 짚고 싶어요. 물론 훌륭한 배우이면서 무비 스타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있어요. 제가 생각하는 ‘훌륭한 배우’는 장면 안에서 자기만의 자유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무비 스타’는 남들에게 없는 무언가가 있고, 그 무언가 때문에 계속 보고 싶어지는 사람이고요.
제가 느낀 훌륭한 배우들의 공통점은 굉장히 똑똑하다는 겁니다. 단순히 머리가 좋고, 공부를 잘하는 것과는 달리요. 감정적으로 아주 똑똑한 사람들입니다. 본인만의 감정선이 있고, 그걸 굉장히 잘 이해하는 것이 그들만의 초능력이 아닐까 싶네요. 신인 배우, 무비 스타 할 것 없이 모든 배우들은 감독에게 명확성과 리더십을 요구한다고 생각해요. ‘이 감독은 나의 리더가 되어줄 거다’라는 신뢰가 있을 때 배우도 최고의 연기를 끌어낼 수 있죠. 이를테면 ‘내가 조금 별로인 연기를 하더라도 감독은 이 장면을 쓰지 않고 다른 방안을 찾겠구나’ 하는 신뢰요. 그래야 배우도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길 테니까요. 배우가 마음 놓고 연기할 수 있는 믿음과 자유를 주는 것이 감독 몫이라고도 생각합니다.
감독님은 영화 보는 걸 좋아해서 영화감독이 되셨을 텐데요. 영화가 일이 된 지금도 여전히 영화가 즐거우신가요?
저는 영화를 보는 것도 만드는 것도 여전히 즐거워요. 지금도 시간만 나면 영화를 봅니다. 그냥 너무 좋아요. 좋은 영화를 볼 때면 현실은 싹 잊은 채로 새로운 세상 안에 들어갈 수 있잖아요. 그게 영화의 힘이고요. 그런 영화의 특징 때문에 지금도 제 일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굉장한 행운아죠. 내가 가장 좋아하던 걸 일로 삼으면서도 계속 좋아할 수 있으니까요.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하나요?
제가 만든 영화가 누군가에게 삶의 일부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어릴 때 본 영화, 가족이랑 본 영화, 어른이 돼서 누군가와 즐겁게 본 영화. 단순히 영화적 추억이 아닌 삶의 한 조각으로 제 영화들이 기억됐으면 합니다. 그런 영화를 많이 만든 사람으로 남고 싶어요.
한국에는 영화를 보고 나면 ‘한 줄 관람평’을 남기는 문화가 있어요. 마지막으로 <데드풀과 울버린> 한 줄 소개 부탁드립니다.
‘엄청난 액션, 엄청난 웃음, 엄청난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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