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인은 서울 월계동 출신의 첫 번째 그래미 수상자다. 그가 부모님과 함께 미국으로 떠난 건 네 살 때. 여덟 살이 된 데이비드는 엄마를 졸라 레코드 숍에서 생애 첫 앨범을 손에 넣었다. 나스의 <It was Written>이었다. 그는 할리우드의 유명 실용음악 대학 뮤지션스 인스티튜트(MI)를 졸업하고 믹스 엔지니어가 됐다. 그는 켄드릭 라마의 <To Pimp a Butterfly>, 닙시 허슬의 <Racks in the Middle>에도 참여해 ‘그래미 어워드’를 수상했지만, 모든 곡을 믹스하지 않아 트로피가 아닌 상패만 받았다. 그리고 2021년, 데이비드 김은 마침내 첫 그래미 트로피를 손에 넣었다. 트로피 아래에는 ‘David Kim’과 더불어 특별한 이름이 하나 더 새겨져 있다. ‘Nas’. 영인은 어린 시절부터 그토록 열광하던 나스의 정규 앨범 <King’s Disease> 믹스 엔지니어로서 그래미에 이름을 올렸다. 그해 ‘베스트 랩 앨범’으로 선정된 <King’s Disease>는 나스의 첫 그래미 수상작이다.
“‘장비발’이 분명 있지만,
그게 모자란 실력에 대한 핑계가 될 수는 없어요.”
신혼여행을 한국으로 왔다고 들었어요. 한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 있어요?
제가 사는 LA에는 강이 없거든요. 한강 다리를 지나갈 때 기분이 정말 좋아요. 여기서 저기로 넘어간다는 느낌. 저 멀리 반대편까지 이어졌다는 느낌 때문에 한강 다리를 가장 좋아해요.
믹스 엔지니어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나요?
엔지니어는 크게 녹음 엔지니어, 믹스 엔지니어, 마스터링 엔지니어로 구분돼요. 녹음 엔지니어는 이름 그대로 어떤 녹음 장비를 어떻게 써야 좋은 소리를 녹음할 수 있을지 준비하고 진행하는 일을 합니다. 마스터링 엔지니어는 곡을 최종 파일로 만들기 전에 음량과 음질을 가다듬죠. 그 사이에 있는 게 믹스 엔지니어예요. 믹스 엔지니어는 녹음된 모든 사운드를 따로 받습니다. 보컬, 리드, 백그라운드, 하모니, 킥드럼, 스네어드럼 등을 따로 모아, 각 소리를 가다듬고 볼륨을 조절해서 밸런스를 맞추죠. 녹음이 끝나면 아티스트마다 머릿속으로 ‘이렇게 들렸으면 좋겠다’ 하는 사운드가 있을 텐데, 그걸 기술적으로 해내는 게 믹스 엔지니어의 일입니다.
셰프랑 비슷하네요. 같은 재료를 사용해 매운맛을 더 내거나, 감칠맛을 더하는 것처럼요.
정확해요. 그래서 저는 요리하는 것도 좋아합니다.(웃음)
한국에는 ‘장비발’이라는 표현이 있어요. 믹싱 엔지니어에게는 좋은 장비를 사용하는 것도 중요할 텐데, 장비와 실력의 비중은 몇 대 몇 정도 될까요?
좋은 장비가 확실히 도움이 되죠. 기술적으로 해낼 수 있는 영역이 더 넓어지니까요. 하지만 좋은 장비가 없다고 ‘저 못하겠는데요’ 할 수는 없잖아요. 안 좋은 장비로도 연습하는 게 중요해요. 그래야 좋은 장비가 생겼을 때 그만큼 더 좋은 소리를 낼 수 있으니까요. ‘장비발’이 분명 있지만, 그게 모자란 실력에 대한 핑계가 될 수는 없어요.
곧 프로듀싱 앨범도 발매할 예정이라고 들었어요. 앞서 창모, 폴 블랑코, 제씨, 카모, 소코도모 등 한국 뮤지션들과 함께한 곡을 발표했고요. 엔지니어가 아닌 프로듀서로서 앨범을 만든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늘 소리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었어요. 저희 어머니는 독학으로 피아노를 배우셨고, 교회에서 지휘를 하셨어요. 아버지는 집에서 기타, 아코디언, 플루트, 하프를 연주하셨고요. 그걸 보면서 ‘나도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자랐던 것 같아요. 믹스 엔지니어로 어느 정도 자리 잡고 나서 생각했죠. ‘이제 다음 단계는 뭐지?’ 한국에서 믹스 엔지니어는 인기가 별로 없어요. 한국에서 제 이름을 알리려면 프로듀싱을 하는 게 더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곡을 만들면서 함께 일했던 클라이언트들에게 DM을 보냈어요. 다들 흔쾌히 수락해줘서 빠르게 앨범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앨범 제목이 ‘DYK’죠.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제 이름 ‘David Yungin Kim’ 약자인데, ‘Did you know?’라는 뜻도 있어요. 파트 1은 올해 하반기, 파트 2는 내년에 나올 예정입니다. 파트 1은 힙합, 파트 2는 R&B 앨범이 될 거예요.
요즘 한국에서 힙합 인기가 시들해졌잖아요. 그럼에도 힙합에 초점을 맞춘 이유와 목표가 있을 텐데요.
제일 잘하는 게 힙합이니까요. 제가 미국에서 배운 것과 한국 뮤지션들이 잘하는 걸 합쳐보고 싶었어요. 첫 질문에 말씀드렸던 ‘다리’. 그 다리를 만들고 건너는 기분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물론 앨범이 잘 팔리면 좋겠지만, 안 되면 또 어때요. 저는 한국에서 태어났으니까 한국에서 음악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정확히 어느 동네 출신인가요?
월계동이요.(웃음) 네 살 때 미국으로 갔어요.
월계동 출신 첫 그래미 수상자겠네요. 한국과 미국에서 엔지니어들이 일하는 방식이 다른 점도 있습니까?
한국과 미국의 가장 큰 차이는 장비일 거예요. 미국은 차로 이동을 많이 하고, 큰 스피커로 음악을 들을 일이 훨씬 많잖아요. 반면 한국에서는 주로 버스나 지하철에서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요. 거기서 차이가 생기죠. 한국에서는 보컬 사운드를 훨씬 깨끗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어요. 미국은 베이스나 리듬감이 두드러지고요.
한동안 ‘지금 노래 뭐 들어?’ 묻는 릴스가 유행이었죠. 요즘 미국에서 ‘나 K-팝 들어’ 하면 어떤 느낌인가요?
3~4년 전만 해도 완전히 틀린 답변이었어요. 제가 미국 동료들한테 K-팝 노래 들려주면, “오케이” 하고 끝이었어요. 요즘은 다들 어떻게 하면 K-팝 신에 들어갈 수 있을지 고민하죠. 완전히 게임이 바뀐 거예요.
특히 좋아하는 K-팝 그룹이 있나요?
뉴진스! 저 청바지 삼촌이거든요.(웃음) 세상 모든 뮤지션 통틀어서 지금 제일 믹스 작업해보고 싶은 뮤지션이 뉴진스예요.
믹스 엔지니어 입장에서 본 뉴진스의 특별함은 뭔가요?
뉴진스는 K-팝 그룹이지만, 사운드는 K-팝이 아닌 것처럼 들려요. 보통 ‘K-팝’ 하면 EDM, 힙합, 래핑, 팝 장르의 사운드가 생각나잖아요. 뉴진스는 1980~90년대에 가장 좋았던 소리를 가져와서 ‘요즘의 느낌’을 내요. 프로듀서의 능력도 대단하고, 거기에 보컬을 얹는 뉴진스 멤버 개개인의 실력도 뛰어나죠. 노래를 듣다 보면 슬퍼졌다가 행복해졌다가 기분을 마구 헤집는 느낌이 들어요. 그게 손맛이거든요. 그런 점에서 뉴진스 음악은 수제품 같은 느낌이 있어요. 공산품이 아닌 수제품.
믹스 작업은 선택의 반복일 텐데요. 지금 내가 내린 선택이 좋은 결정인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처음 믹스를 시작했을 때는 저도 고집이 셌어요.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크니까. 버전 10까지 수정해서 클라이언트한테 보냈죠. 그럼 답장이 와요. ‘근데 이거는 내가 원하는 게 아닌데?’ 믹스 엔지니어는 결국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걸 해줘야 돼요. 제 직업도 일종의 서비스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자기만의 특색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특색이 강점이 되려면 결국 남들에게 인정받아야죠. 그래서 소통이 중요합니다. 최종 목적지까지 함께 가야하니까요.
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형성하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그래야 서로에게 더 솔직할 수 있으니까요.
맞아요. 좋은 관계를 위해선 ‘Yes’가 중요할 것 같지만, 진짜 중요한 건 ‘No’라고 생각해요. 미국에 이런 말이 있어요. 사전에 있는 단어 중에 가장 강력한 단어는 ‘No’라고. ‘No’를 할 수 있어야 나도 내 에너지를 관리할 수 있고, 상대방도 나를 더 원하게 된다고.
“저는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는 것보다,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일하면서 여전히 어려운 것이 있다면요?
가격 이야기하는 게 제일 어렵죠.(웃음) 친구끼리 작업비 이야기하는 건 매번 어려워요. 기술적으로는 보컬 깨끗하게 만드는 것. 한국 발라드 들어보면 ‘이건 똑같은 장비로 녹음했는데 왜 이렇게 좋지?’ 싶을 때가 있어요. 단순히 목소리가 깨끗이 들리는 달라요. 모든 밸런스가 딱 맞는 느낌. 그걸 더 잘하고 싶어요.
한 인터뷰에서 ‘그래미 상을 탔지만 성공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고 했어요. 영인 님이 생각하는 ‘성공의 기준’이 궁금합니다.
말씀하신 인터뷰를 할 때랑 바뀐 점이 있는데요. 옛날에 저는 스스로를 깎아내렸어요. 제가 정직하게 노력해서 얻은 성과인 만큼, 스스로 노력을 깎아내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요즘은 스스로 편 들어주는 연습을 해요. 교육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해요. 다음 세대 엔지니어가 어떻게 하면 더 쉽게 일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
성공했다고 모든 뮤지션이 다음 세대까지 고민하지는 않을 텐데요.
저는 멘토가 없었어요. 도움이 필요할 때 부탁할 사람이 없었죠. 너무 외롭고 힘들었어요. 그럴 때마다 언젠가 내가 멘토의 위치에 올라가면, 내게 필요했던 그 사람이 되어야겠다 생각했어요. 작은 도움만 있어도 성공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한 사람이라도 저 때문에 포기하지 않는다면, 행복할 거예요.
사회 초년생에게는 이력이랄 게 없는데 이력서를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 있잖아요. 영인 님도 비슷한 시기가 있었을 텐데, 그때는 어떻게 넘겼나요?
저는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는 것보다,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면 ‘쟤는 복도 청소도 저렇게 열심히 하네? 그럼 믹싱도 어련히 잘하겠구나’ 생각하게 돼요. 그게 쌓이면 기회가 오죠. 그 기회가 내가 원하지 않은 기회일 수도 있어요. 그때 그냥 해보는 것도 필요해요. 그 기회를 잡고 열심히 하다 보면, 내가 원했던 기회가 올 수도 있으니까요. ‘그냥 해보자’는 태도가 중요해요. 많은 생각 대신.
실제로 스튜디오에서 인턴 1년간 청소만 했다고 들었어요. 그 후 3년 동안 최저 시급 받고 믹싱은 하지도 못했고요. 그때 어떤 생각을 제일 많이 했어요?
그만하고 싶다.(웃음)
계속해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나요?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100% 노력한 적 있었나?’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알잖아요. 이게 내 노력의 전부인지 아닌지. 저 어렸을 때 풋볼 했거든요. 대학에 갈 만큼 실력이 괜찮았는데, 사실 그때도 제 모든 걸 쏟아붓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생각했죠. 음악이 내 마지막 기회다. 여기서 100% 쏟지 못하면 나는 계속 실패할 거다. 그래서 매일 열심히 음식 배달하고, 걸레질하고, 주차장 담배꽁초 주웠어요. 그렇게 몇 년 하다 보니까 기회가 오더라고요.
지금까지 성공한 뮤지션들과도 많이 작업했는데, 그중 특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나 조언이 있습니까?
한 번은 닙시 허슬이 스튜디오에 왔어요. 스튜디오에 9~10명 정도 있었는데 닙시 허슬이 갑자기 혼자 나갔어요. 잠시 후에 자기 티셔츠에 생수병을 한가득 담아와서 하나씩 건네더라고요. 그 방에서 제일 유명하고 성공한 사람이었는데도요. 그걸 보면서 ‘나도 저렇게 해야겠다’ 생각했어요. 항상 내가 먼저 친절하고 예의 있게 행동하자. 그랬더니 일상이 더 편해지더라고요. 내가 친절해지니까 일도 쉬워지고, 사람들도 더 도와주고. 그게 저한테는 되게 중요한 사건이었어요.
음악 작업할 때 꼭 하거나 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까?
남들 일하는 시간에는 일이 없어도 스튜디오에 가는 것. 뮤지션은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 없잖아요. 그래도 무조건 스튜디오에 가요. 일단 가면 일은 늘 있어요. 연습을 할 수도 있고, 청소를 할 수도 있고, 메일을 보낼 수도 있고. 일하는 시간이 되면 무조건 스튜디오에 간다. 나는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된다. 그 생각을 꼭 합니다.
영인 님이 여덟 살 무렵 미국에서 어머니가 나스의 <Illmatic> <It was Written> 앨범을 사주셨다고 들었어요. 만일 아이가 생기면 어떤 앨범을 처음 사주고 싶으세요?
듣고 싶어 하는 걸 사줘야죠. 저희 엄마도 제가 <It was Written> 갖고 싶어 하니까 사주셨던 거예요. 처음에는 ‘이거 욕 많이 나오는데 괜찮니?’ 하고 반대하셨거든요. 학교에서 짝꿍이 워크맨으로 뭘 열심히 듣고 있었는데 그게 <It was Written>이었어요. 그날 듣자마자 엄마 졸라서 샀거든요. 저는 가사가 무슨 뜻인지도 몰랐어요. 랩도 처음이었고요. 그런데도 마냥 좋았어요.
모든 예술이 그렇듯, 음악도 좋은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울 때가 있죠. 그럼에도 스스로 생각하는 좋은 음악의 기준이 있다면 궁금합니다.
움직이게 하는 음악. 그게 감정일 수도 행동일 수도 있어요. 춤추고 싶을 때는 듣기만 해도 자리에서 일어나게 하는 음악이 좋은 음악일 거고, 슬플 때는 눈물 흘리게 하는 음악이 좋은 음악이죠. 믹스 공부하고 싶을 때는 깔끔하고 좋은 소리로 채운 음악일 테고요. 각자 마음에 있는 무언가를 흔들고 움직이게 하는 음악이 좋은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믹스 엔지니어는 어떤 엔지니어라고 생각하세요?
모호한 답변일 수 있는데요. ‘좋은 느낌’을 만들 수 있는 엔지니어라고 생각해요. 모든 소리가 그저 깨끗하거나 볼륨 밸런스가 잘 맞는다고 해서 좋은 노래가 되는 건 아니거든요. 기술적으로는 완벽해도 ‘계속 듣고 싶은 음악’이 아닐 수 있어요. 그 느낌을 잘 캐치하고 감동을 주는 엔지니어가 좋은 엔지니어죠.
마지막 질문입니다.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요?
세상을 조금 더 낫게 만든 사람. 제 음악이든, 지금 하고 있는 인터뷰든, 뭐든 좋아요. 저 때문에 조금이라도 용기를 얻고 삶이 나아진 사람이 있다면 행복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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