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향한 로에베의 집념
로에베 쇼장에 들어서자 런웨이 곳곳에 덩그러니 놓인 오브제들이 눈에 띄었다. 조너선 앤더슨이 이번 컬렉션의 영감을 얻은 작품들로, 수수께끼 같은 컬렉션의 힌트였다. 강렬하고 전위적인 깃털 헤드피스는 날렵한 테일러링이 돋보이는 수트부터 부드러운 드레이핑이 돋보이는 톱 등 거의 모든 룩에 함께했다. 또한 오묘한 빛깔의 자개로 만든 슬리브리스 톱, 메탈을 손목시계 스트랩처럼 엮어 만든 상의는 공예에 대한 조너선 앤더슨의 존중과 브랜드의 정교한 장인정신을 또렷하게 드러내는 아이템이었다. 마치 전시회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듯했던 로에베의 황홀한 쇼.
해변으로 향한 에르메스
에르메스의 2025 봄/여름 컬렉션에서 가장 인상 깊은 건 아래로 갈수록 옅어지는 패턴이었다. 마른 모래에 찍힌 발자국이 밀려오는 파도에 씻겨 내려가는 장면을 표현한 것이라는 설명을 듣고 여름의 낭만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생각했다. 발목 위에서 잘린 바지는 바닷물에 발을 담그기에 충분한 길이였고, 부드러운 바람이 휘날리는 해변가에서 입기 좋은 실키하고 유연한 소재로 만든 룩들은 여유로웠다. 살갗이 은은하게 비치는 얇은 소재의 수트, 깊게 파인 네크라인과 다양한 슬리브리스 또한 여름날의 서정을 담았다.
사카이와 제임스 딘
‘나의 존재 이유,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이유는 발견이라고 생각한다’는 제임스 딘의 말은 사카이의 컬렉션을 관통하는 주제였다. 쇼는 제임스 딘이 생전에 즐겨 입던 해링턴 재킷에 빈티지 카와 꽃 자수를 프린트하거나, 그의 초상을 프린트한 티셔츠로 자유로운 청춘의 이미지를 표현했다. 집의 형태를 본뜬 세트 디자인도 그가 어린 시절 집 앞에서 촬영한 사진에서 영감을 받았다. 해체된 집에서 성장하고 자아를 발견한다는 의미를 내포한 컬렉션은 한 편의 청춘 영화를 압축한 듯했다.
디올의 동물농장
디올 맨의 2025 봄/여름 컬렉션 현장엔 도예가 힐턴 넬의 작품에서 영감받아 만든 다섯 마리 거대한 고양이가 런웨이를 문지기처럼 지키고 있었다. 쇼장에서도 다양한 동물들을 모티브로 삼은 룩들이 가득했다. 모두 장난스럽고 유쾌한 모습이었지만 매우 정교하고 섬세한 방식으로 작업한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부드러운 테일러링 수트에 동물 모양의 단추나 브로치를 더하거나 가방과 신발에 촘촘하게 수놓은 스터드로 표현한 귀여운 아이디어가 특히 돋보였다.
드리스 반 노튼의 아름다운 이별
데이비드 보위의 나지막한 독백과 함께 시작한 드리스 반 노튼의 마지막 쇼. 그와 오랜 세월 함께한 모델들은 모두 이곳에 모였고, 은박 종이를 소복히 깔아둔 런웨이 위를 담담하게 걸어나왔다. 우아하고도 편안한 소재와 실루엣, 만개한 플로럴 프린트와 메탈릭한 임브로이더리 장식들이 인상적이었지만, 사실 그의 은퇴 쇼라는 아쉬움 때문에 옷이 눈에 들어올 리 만무했다. 쇼의 피날레에선 모두의 박수와 환호가 멈추질 않았는데 다들 속으로는 눈물을 삼키지 않았을까 싶다. 드리스 반 노튼의 퇴장과 함께 등장한 대형 미러볼이 애프터 파티의 시작을 알리자 비로소 아름답고 즐거운 이별의 끝이 다시금 시작됐다.
릭 오웬스가 전하는 연대의 장면
릭 오웬스는 이번 시즌 컬렉션 타이틀을 ‘할리우드’로 명명했다. 다채로운 문화와 개성이 뒤섞인 할리우드의 모습처럼 쇼에는 인종과 얼굴, 체형이 모두 다른 모델 200여 명이 등장했다. 같은 옷을 맞춰 입은 무리가 그룹을 지어 차례로 나왔는데, 마치 군대가 출격하는 모습 같기도, 신성한 제사 의식 같기도 했다. 특히 가장 놀라웠던 건 원뿔형 가마에 매달려 등장한 곡예사들이었다. 보는 사람 가슴을 졸이게 하는 아슬아슬한 모습이었지만, 릭 오웬스는 이를 통해 편협한 시대에 서로 의존하고 단합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NOW OPEN
SYSTEM IN PARIS
지난 6월 20일, 시스템이 파리 마레 지구에 첫 번째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했다. 서울의 역동적인 풍경과 다양한 문화를 드러내기 위해 국내외 유명 아티스트와 협업해 매장을 꾸몄다. 프랑스 그라피티 아티스트 TANC, 한국 단청 아티스트 김아라, 가구 디자이너 황현신의 감각적인 오브제와 아트워크로 구성한 매장은 한국 고유의 멋과 파리의 자유로운 감성을 한데 담았다. 7월부터 파리의 갤러리 라파예트에도 팝업스토어를 오픈한다고 하니, 한번쯤 들러보는 것도 좋겠다.
SECOND PLACE
2025 봄/여름 남성 패션위크 기간에 꾸레쥬가 파리의 중심부인 27번지 프랑수아 부르주아 거리에 두 번째 스토어를 오픈했다. 포스트모던 접근 방식을 반영해 천장을 높게 설계한 공간은 아치형 벽과 흰색 바닥, 거울로 뒤덮인 벽 등의 감각적인 인테리어가 특징이다. 브랜드의 코드와 철학을 고루 배치한 스토어 오픈을 기념하기 위해 꾸레쥬의 2025 S/S 남성 컬렉션과 여성 프리 컬렉션의 캠페인 사진을 촬영한 포토그래퍼 마크 보스윅이 사인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