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류희성
<재즈피플> 에디터·유튜브 채널 <재즈기자> 운영자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토니 베넷 노래’ 5곡만 꼽자면 어떤 곡을 고르시겠습니까?
첫 번째로는 ‘I Wanna Be Around’. 프랭크 시나트라의 일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곡입니다. 귀엽고 유치한 가사, 그리고 스윙감 넘치는 연주가 매력적이죠.
두 번째는 ‘Blue Velvet(with K.D. Lang)’. 케이디 랭과 함께 다시 부른 토니 베넷의 젊은 시절 명곡입니다. 제목 그대로 벨벳같이 부드럽고 아름다운 노래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듀엣곡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세 번째는 ‘Young and Foolish’. 1960년대에 최고 전성기를 보냈고, 1970년대 중반 암흑의 시기를 보냈던 토니 베넷과 빌 에반스의 듀엣 앨범 수록곡입니다. 결국 1979년 토니 베넷은 마약 과다 복용으로 사망 직전까지 갔었고, 빌 에반스는 마약으로 인해 건강이 망가져 결국 그 이듬해에 사망합니다.
네 번째는 ‘Mood Indigo’. 듀크 엘링턴이 작곡한 명곡으로, 동명의 영화로도 잘 알려졌죠. 2000년대 국내 힙합을 좋아하셨던 분들은 소울 컴퍼니의 ‘Soulful Christmas’의 샘플로도 기억하실 겁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로는 ‘The Good Life’. 가사와는 별개로 ‘좋은 인생’이라는 제목은 토니 베넷의 ‘잘 살았던 삶’을 상징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토니 베넷의 96세 생일 때 축하하며 올렸던 영상의 제목이 ‘Good Life’였던 이유도 그것 때문이고요.
토니 베넷을 모르는 이들에게 그를 소개한다면, 어떤 앨범을 가장 먼저 들어보라고 권하시겠습니까?
토니 베넷의 음악을 처음 접하는 젊은 청자라면 2006년작 <Duets: An American Classic>과 2011년작 <Duets II>를 추천합니다. 두 앨범 모두 토니 베넷이 슈퍼스타들과 함께한 듀엣 앨범입니다. 그의 대표곡들을 들어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유명한 가수들의 목소리가 더해져 친숙하게 감상할 수 있을 거예요.
나이에는 차이가 있지만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루이 암스트롱, 냇 킹 콜, 레이 찰스, 프랭크 시나트라 같은 동시대 뮤지션들과 비교했을 때 토니 베넷만의 특별한 점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말씀하신 가수들은 각자 특색이 강한 음악가입니다. 어찌 보면 그중에서 토니 베넷은 가장 자극적이지 않은 음성을 지닌 가수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동시에 그는 기본기가 탄탄한 가수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독일까지 입성했던 용사였고, 전후에는 참전 용사를 위한 장학금으로 음악학교에 진학해서 노래의 기본기를 배웠습니다. 이탈리아계 미국인이었던 그는 오페라를 불렀던 선배들의 ‘벨칸토 창법’도 그때 익혔습니다. 깊고 안정적이며 풍부하고 큰 성량을 얻었고, 이는 1990대 중반까지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죠.
재즈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시작한 장르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백인이 재즈 보컬리스트로 성공하기까지 한계나 편견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흑백 혼혈인 경우에 흑인으로 간주하는 ‘한 방울 규칙(one-drop rule)’ 때문에 흑인의 전유물로 시작한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사실 시작점에는 흑인, 백인, 흑백 혼혈인이 모두 있었습니다. 특히 스윙 시대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음악가 중에는 백인이 많았고, 그중에서도 특히 유대인이 많았죠. 이탈리아계 미국인인 프랭크 시나트라와 토니 베넷은 백인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미디어 노출에 유리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토니 베넷은 대중적인 음악 스타일인 스윙과 트래디셔널 팝을 주로 구사했기 때문에 인종으로 인한 어려움은 없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포스트 토니 베넷’에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토니 베넷은 일평생 ‘재즈 스탠더드’라 불리는 명곡들을 불렀습니다.
거의 안 부른 곡이 없을 정도죠. 그는 깊고 풍성한 음색으로 감동을 주는 가수였어요.
나이를 차치하더라도, 아직까지 ‘포스트 토니 베넷’이라는 수식을
쓸 정도의 활동이나 스타일을 보여준 음악가는 없습니다.”
오늘날 ‘포스트 토니 베넷’이라고 할 만한 뮤지션 혹은 재목으로는 누가 있을지 궁금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포스트 토니 베넷’에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토니 베넷은 일평생 ‘재즈 스탠더드’라 불리는 명곡들을 불렀습니다. 거의 안 부른 곡이 없을 정도죠. 그는 깊고 풍성한 음색으로 감동을 주는 가수였어요. 나이를 차치하더라도, 아직까지 ‘포스트 토니 베넷’이라는 수식을 쓸 정도의 활동이나 스타일을 보여준 음악가는 없습니다. 자신을 ‘포스트 토니 베넷’이라 지칭하려는 가수를 본 적은 있지만, 그들에게 과분하고 무거운 이름이라고 생각합니다.
토니 베넷은 아레사 프랭클린, 에이미 와인하우스, 레이디 가가와 함께 곡을 낸 것으로도 알려졌죠. 그의 커리어에서 큰 조력자가 있다면 누구일까요?
두 명을 꼽고 싶습니다. 첫 번째는 그의 선배이자 우상이자 동료였던 프랭크 시나트라입니다. 토니 베넷이 데뷔하기 전 초짜였던 시절뿐 아니라, 재즈, 스윙, 트래디셔널 팝이 인기를 잃고 토니 베넷이 무너질 때에도 조언을 건네며 그를 지탱해준 존재죠. 프랭크 시나트라가 없었다면 위대한 가수 토니 베넷은 존재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두 번째는 피아니스트 랄프 샤론입니다. 엄밀히 말해 1950년대에 토니 베넷은 재즈 가수가 아닌 팝 가수였습니다. 토니 베넷의 피아니스트이자 재즈 뮤지션이었던 랄프 샤론은 토니 베넷에게 재즈를 권했고, 그것이 현재 토니 베넷을 만들었습니다. 랄프 샤론이 토니 베넷에게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를 불러보라고 권했고, 그 후 역사적인 명곡으로 재탄생시킨 것도 랄프 샤론이었습니다.
좋은 재즈 뮤지션은 어떤 뮤지션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떤 스타일의 재즈를 하는지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보편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재즈의 전통을 간직하면서 자신의 음악 세계를 보여줄 수 있는 음악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추상적이지만 자신의 음악 세계를 잘 보여준다는 건, 자기 색깔이 뚜렷하면서도 충분한 설득력을 가진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니까요.
토니 베넷은 어떤 뮤지션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토니 베넷은 가난한 이탈리아계 미국인으로 태어나, 대공황 시대에 가정을 지탱한 청년 가장이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에는 징집되어 유럽 전장으로 떠난 참전 용사였습니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인기를 누렸지만 1970년대에 음악 시장의 변화로 몰락하며 마약중독자가 되었고, 이 때문에 사망할 뻔한 위기도 있었죠. 그 와중에도 토니 베넷은 자신의 스타일을 고집했습니다. 길고 외로운 터널에서 나왔을 때 젊은 세대는 그의 음악 스타일을 새로운 것이라 여기며 환호했고, 그렇게 1990년대부터 제2의 전성기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말년의 알츠하이머병까지 극복한 노래로 큰 감동을 주었죠. 정말 영화 같은 삶을 보여준 음악가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사연보다 탁월한 건 그가 ‘목소리만으로 감동을 주는 가수’라는 점입니다. 모두가 위대한 가수로 여기는 프랭크 시나트라도 토니 베넷을 두고 ‘내 생각에 토니 베넷은 이 업계 최고의 가수다’라고 말했을 정도였으니까요.
2 김유진
재즈 보컬리스트·‘2024 대중음악상
최우수 재즈 보컬 음반상’ 수상자
처음 토니 베넷의 음악을 들었을 때의 에피소드와 감상이 궁금합니다.
제가 처음 토니 베넷의 음악을 들었던 건 고등학생 때였어요. 저는 재즈 스탠더드 곡 중 ‘My Foolish Heart’를 좋아했는데, 그중에서도 재즈 피아니스트 빌 에반스 버전을 가장 좋아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토니 베넷과 빌 에반스가 함께 연주한 ‘My Foolish Heart’를 듣게 되었어요. 각 단어마다 다른 호흡과 감정을 담아내는 그의 해석에 매료되었죠.
토니 베넷의 음악은 멜로디, 보컬, 서정적인 가사로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런 그의 커리어에서 가장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식지 않는 열정과 시대를 초월한 감각입니다.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변함없는 열정으로 무대에 서며 다양한 장르와 협업해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습은 많은 뮤지션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클래식, 재즈뿐만 아니라 최신 트렌드도 수용해 다양한 세대의 청중과 소통하는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열린 시각과 마음으로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이를 음악적으로 표현하는 모습은 진정한 예술가로서의 면모를 잘 나타낸다고 생각해요.
장르에 따라 ‘노래를 잘 부른다’의 기준이 다를 것도 같습니다. 재즈에서 ‘노래 잘한다’에는 어떤 기준이 적용될까요?
보컬리스트에게 음정의 정확함과 기술적인 부분은 기본입니다. 그러나 재즈에서 ‘노래를 잘한다’는 것은 단순한 음정의 정확함이나 기술적인 완벽함만을 뜻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일 먼저 곡이 다루는 감정을 깊이 이해하고 표현하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즉흥적으로 음악을 표현할 수 있는 창의력과 음악적 센스도 중요하고요. 마지막으로 청중과의 소통 능력도 중요합니다. 곡에 담긴 이야기나 감정을 전달하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힘이죠.
“한 가지 일을 80년이나 하려면 단순히 다짐만으로는 힘들 거라고 생각해요.
토니 베넷은 늘 무대 위에서 청중과 교감하며 노래하는 가수였어요.
단순히 노래를 잘하는 것과는 또 다른 영역이죠.”
미국 재즈 음악과 구분되는 한국 재즈 음악만의 특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한국 재즈 음악은 한국인의 고유한 정서와 전통을 반영한 섬세함과 감수성이 특징입니다. 미국 재즈가 스윙과 블루스의 감성을 바탕으로 한다면, 한국 재즈는 한국인의 정서와 국악의 정서를 담고 있습니다. 윤석철 트리오의 ‘한국전래동화’ ‘도사님 펑크’ 등이 대표적이죠. 최근 젊은 한국 재즈 뮤지션의 음악을 들어보면 현대의 시대상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용리와 돌아온 탕자들’의 <Shell>, ‘김예찬’의 <Loving my blackdog> 앨범을 들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이분들의 음악을 듣고 있자면, 한국 재즈가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면서도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며 발전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유진 님께서는 젊은 뮤지션이시지만 궁금한 마음에 여쭙습니다. 80년 가까이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세요?
타고난 성대도 중요하지만, 엄청난 열정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일단 건강하려면 꾸준한 자기 관리가 필요하죠. 끊임없이 연습하고 연구해야 할 테고요.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려면 음악에 대한 깊은 사랑이 필수적이고요. 한 가지 일을 80년이나 하려면 단순히 다짐만으로는 힘들 거라고 생각해요. 토니 베넷은 늘 무대 위에서 청중과 교감하며 노래하는 가수였어요. 단순히 노래를 잘하는 것과는 또 다른 영역이죠. 저도 토니 베넷처럼 오랜 시간 사람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주는 뮤지션이 되고 싶습니다.
만일 살아생전 토니 베넷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다면 어떤 질문을 건네시겠습니까?
그가 보내온 음악 여정, 그리고 영감의 원천에 대해 물어보고 싶습니다. 특히 수십 년 동안 어떻게 변함없는 열정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 다양한 장르와 협업하며 얻은 교훈이나 에피소드는 무엇인지 묻고 싶네요. 삶 속에서 음악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젊은 뮤지션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지도 듣고 싶습니다.
오늘날 젊은 재즈 보컬리스트 중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뮤지션을 꼽자면 누구를 고르시겠습니까?
저 자신을 추천해도 괜찮을까요?(웃음) 저는 2016년부터 재즈 클럽을 비롯해 다양한 무대에서 공연을 해왔어요. 2022년에는 첫 번째 정규 앨범 <한 조각 그리고 전체>를 발매했고, 지난해에는 두 번째 정규 앨범 <Extraordinary>를 냈어요. 감사하게도 두 앨범으로 2년 연속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재즈 보컬 음반상을 수상했어요. 물론 수록곡을 모두 직접 작사, 작곡했습니다. <한 조각 그리고 전체>는 코로나19 시기에 사람들과 연결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고, <Extraordinary>는 차별과 갈등을 겪는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앞서 말씀드린 공감과 위로를 주는 뮤지션이 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해외 재즈 보컬리스트 중에서는 세실 맥로린 살반트를 추천합니다. 그녀는 아이티인과 프랑스인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다양한 음악, 언어, 문화를 접하며 자랐어요. 그녀의 음악은 소울, 클래식, 재즈, 가스펠, 쿠바 음악 등 스펙트럼이 다양하죠. 특히 작년 발매한 앨범 <Mélusine>는 꼭 한번 들어보세요. 유럽 민속 전설을 소재로 삼은 앨범이에요. 프랑스어와 아이티 크리올어로 부른 노래들이 담겨 있는데, 그녀만의 섬세한 목소리와 표현력을 엿볼 수 있습니다.
“토니 베넷 음악에는 따뜻한 면이 있어요. 늘 진솔하면서도 청중과 깊이 소통하는 힘이 있죠.
새롭게 변화하고 도전하면서도, 음악적 정체성을 잃지 않는 뮤지션이었고요.”
만일 다음 앨범에서 토니 베넷의 커버곡을 수록한다면 어떤 곡을 부르시겠습니까?
‘My Foolish Heart’를 부르고 싶습니다. 제가 토니 베넷을 처음 접한 곡이라 특별한 의미가 있어요. 덕분에 더 몰입해서 부를 것 같아요.
만일 토니 베넷을 모르는 이에게 앨범 하나로 그를 추천한다면, 어떤 앨범을 소개하시겠습니까?
<Duets: An American Classic>. 유명한 재즈곡을 다양한 아티스트와 협업해서 만든 앨범이에요. 토니 베넷의 클래식한 스타일과 현대적인 감각이 조화를 이루죠. 특히 토니 베넷 특유의 섬세한 보컬과 표현력이 돋보이는 앨범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앨범이기도 하고요.
토니 베넷은 어떤 뮤지션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진정한 예술가이자 세대를 초월한 레전드입니다. 토니 베넷 음악에는 따뜻한 면이 있어요. 늘 진솔하면서도 청중과 깊이 소통하는 힘이 있죠. 새롭게 변화하고 도전하면서도, 음악적 정체성을 잃지 않는 뮤지션이었고요. 이제 커리어를 한창 쌓는 중인 저에게도 큰 영감을 주는 아티스트입니다. 앞으로 뮤지션으로서 제 모습을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가르쳐주는 스승과도 같은 분입니다.
3 황덕호
재즈 평론가
토니 베넷 음악의 특징과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보통 토니 베넷은 ‘크루너 가수’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비슷한 부류의 가수들과 달리 성량이 엄청난 가수였습니다. 마이크에 의존하기보다는 자신의 발성을 마음껏 활용하는 가수였죠. 그것이 토니 베넷의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프랭크 시나트라는 한 인터뷰에서 토니 베넷에 대해 “작곡가가 생각하는 것을 이해하는 가수”라고 말했습니다. ‘곡 해석 능력’이라는 표현이 있듯, 같은 곡도 가수에 따라 완전히 다른 곡이 되기도 하고요. 그런 점에서 토니 베넷이 탁월했던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토니 베넷이 부른 스탠더드 넘버에는 늘 서민적인 맛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프랭크 시나트라와 다른 점이었죠. 그는 유명인이 된 후에도 이탈리아계 노동 계급 출신이란 점을 늘 잊지 않았어요. 무슨 곡이든 그러한 태도를 바탕으로 해석했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토니 베넷의 앨범을 하나만 꼽는다면 어떤 앨범을 고르시겠습니까?
2004년작 <The Art of Romance>를 가장 좋아합니다. 그는 조니 맨델 작품의 최고 해석자였고 더욱이 맨델은 이 앨범에서 편곡과 오케스트라 지휘를 맡았어요. 베테랑과 베테랑이 만나 진짜 예술을 들려준 앨범입니다.
“토니 베넷처럼 대중적으로 크게 성공한 선배 재즈 뮤지션이 있었기에
21세기에도 여전히 제롬 컨, 조지 거슈윈, 콜 포터의 앨범이 나올 수 있었어요.
그런 점에서 토니 베넷의 영향력과 성과는 여전히 우리 시대의 재즈에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
토니 베넷은 대중적으로 대단히 성공한 가수지만, 재즈 장르에서도 그가 세운 성과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한 평론가님의 견해가 궁금합니다.
사실 토니 베넷이 인기를 끈 1960년대는 스탠더드 팝이 로큰롤의 위세에 밀려나던 시기였습니다. 재즈는 급진적인 모습으로 대중음악과 점점 멀어지고 있었거든요. 만일 토니 베넷 같은 인물이 등장하지 않았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 다이애나 크롤, 마이클 부블레 같은 슈퍼스타가 등장할 수 있는 토양은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토니 베넷처럼 대중적으로 크게 성공한 선배 재즈 뮤지션이 있었기에 21세기에도 여전히 제롬 컨, 조지 거슈윈, 콜 포터의 앨범이 나올 수 있었어요. 그런 점에서 토니 베넷의 영향력과 성과는 여전히 우리 시대의 재즈에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토니 베넷은 살아생전 ‘올해의 레코드상’부터 ‘평생 공로상’까지 총 20개의 그래미 어워드를 수상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뜻깊은 수상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1963년 ‘올해의 레코드’로 선정된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와 1995년 ‘올해의 앨범’이 된 <MTV Unplugged>를 꼽고 싶습니다. 수많은 곡들이 있지만, 이 곡과 앨범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기억하는 토니 베넷의 음악 인생은 없었을 것입니다.
토니 베넷은 1950년대부터 70년 넘는 세월 동안 무대에 섰습니다. 그가 선 수많은 무대 중 개인적으로 가장 특별하다고 느꼈던 무대 하나만 소개해주세요.
앞서 언급한 1994년 MTV 언플러그드 무대입니다. 이 무대 덕분에 토니는 20세기뿐만 아니라, 21세기에도 인기 있는 가수가 될 수 있었습니다.
토니 베넷의 라이벌이라고 할 만한 뮤지션은 누구인지 궁금합니다.
굳이 꼽자면 프랭크 시나트라와 조니 매티스를 고를 수 있겠네요.
‘토니 베넷 음악’이 오늘날의 젊은 뮤지션에게 미친 영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미국 음악에서 트래디셔널 팝과 재즈의 존재를 후대 뮤지션에게 전한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평론가께서 바라본 토니 베넷은 어떤 아티스트입니까?
노래하는 것을 진정으로 사랑했던 가수. 직접 만나본 적은 없지만, 그의 음악과 인터뷰를 통해 경험한 토니 베넷은 마지막 순간까지 성실했던 가수였습니다.
토니 베넷과 샌프란시스코와 그래미
토니 베넷은 미국 뉴욕 퀸스에서 태어났다. 의문이 들 수 있다. 뉴욕 출신의 가수 대표곡이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니까. 1962년 발표한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는 원래 토니 베넷을 위해 만들어진 곡이 아니었다. 조지 코리와 더글러스 크로스가 각각 작곡과 작사를 맡아 당시 오페라 가수로 활동하던 클라라메 터너를 위해 만들었지만, 원래 점지해두었던 주인에게 가지 못하고 토니 베넷이 부르게 된다. 토니 베넷은 이 곡을 페어몬트 샌프란시스코 호텔에서 처음 불렀고, 지금은 호텔 앞에 토니 베넷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토니 베넷은 가수로 활동하는 동안 20개의 그래미 어워드를 거머쥐었다. 그에게 첫 그래미 트로피를 안겨준 곡 역시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 그는 2001년 거장에게만 주어지는 그래미 어워드 평생 공로상을 수상했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받은 그래미 어워드 중 17개가 예순을 넘긴 나이에 수상했다는 사실이다. 토니 베넷은 2014년 무려 60세나 차이 나는 후배 레이디 가가와 첫 번째 협업 앨범 <Cheek To Cheek>를 발매했다. 이 앨범은 제57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베스트 트래디셔널 팝 보컬 앨범’을 수상한다. 그리고 7년 뒤, 두 사람은 다시 마지막 협업 앨범 <Love For Sale>을 선보인다. 토니 베넷이 95세가 되던 해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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