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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너와 잘 지내는 법

오늘날의 20대가 털어놓는 섹스 파트너 이야기.

UpdatedOn July 10, 2024

“우리 무슨 관계야?” “이제 연애할까?” 같은 말이 침대에서 오가면 섹스 파트너와는 거의 끝이다. 보통 안 좋은 쪽으로. 섹스 파트너는 공통의 목표로 뭉친 관계다. 누군가 그렇게 하자고 능동적으로 정하기보다는 어쩌다 보니 수동적으로 그렇게 정해진다. 그러다 보니 ‘만나면 자는’ 이 관계에서는 해야 할 것보다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섹스 파트너는 무엇이고 연인은 무엇일까? 사귀자는 말만 없었을 뿐 연인과 크게 다를 거 없는 것 아닌가?’ 이런 질문을 또래에게 물었다. 역시 안 되는 게 많았다. ‘감정적인 교류’ ‘진솔한 대화’ ‘연인 같은 것’들이 있으면 안 된다고 내 친구들은 답했다. 이들은 모두 지금 파트너가 있거나 예전에 파트너가 있었다. 누군가는 상처를 받고 다른 누군가는 상처를 주었다. 누군가는 이제 그만하고 싶다고 했지만, 누군가는 아직도 즐겁고 흥미로운 관계라고 말하기도 했다.

파트너와 잘 지내는 법 1 - 선 넘지 않기

“선 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권수영(2000년생 / 통역사 / ENTP)은 “파트너와 잘 지내는 법이 있을까요?”라는 내 질문을 듣자마자 한탄했다. 나는 권수영의 ‘선’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했다. “꼭 자신이 남자친구인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있어요.” 예를 들면? “내가 올리는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일일이 답장하고, 궁금하지도 않은 자신의 일상을 제게 보고해요. 사진까지 찍어서.” 왜? “애인이 되고 싶은 것 같진 않지만, 이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겠죠. 그게 독이 된다는 사실을 왜 모를까요?”

“대개 친절했죠. 사실 그래야 어떤 관계든 시작할 수 있으니까. 근데 태도만, 예의만 바르면 돼요.” 권수영은 합리적이었다. 그는 합리적으로 나에게 여태 만난(섹스한) 남자들을 설명했다. 섹스의 태도와 예의는 무엇일까? “만나기 전에 깨끗하게 씻고, 필요한 대화를 하고, 취향을 강요하지 않고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정도.” 거기서 선을 넘는 건? “이 사람이 이렇게 해줬으면 한다는 기대죠. 적정 주기로 연락해주길 바란다거나. 나는 그 남자들의 애인이 아닌데 말이죠.”

듣다 보니 권수영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남자들은 왜 그런 기대를 했을까? “욕심 많은 남자들이었던 것 같아요. 여자친구가 있으면서 부족한 욕구를 채우기 위해 파트너를 찾은 것처럼, 파트너에게도 섹스 말고 다른 것까지 원했어요. 처음 본 날 바로 잤던 틴더남은 세 번째 섹스 이후 제 인스타그램 팔로잉을 염탐했어요. 보지 못했던 남자가 생기면 추궁했죠.” 연애를 하고 싶었을까? “그랬으면 고백을 했겠죠. 근데 고백은 없었어요. 돌이켜보면 소유욕이었던 것 같아요. ‘너는 나랑만 자야 한다’는.”

권수영은 내내 선이 분명했다. 내가 말을 편하게 하라고 해도 권수영은 끝까지 말을 놓지 않았다. “남자보다 어린 여자가 서로 반말을 하면 그 관계는 이미 잔 사이거나, 곧 잘 사이래요”라는 게 이유였다. 권수영의 선은 일견 특이했으나 들으면 들을수록 이해되는 것 같았다. 나도 그 선을 넘지 않기로 하고 말을 놓지 않았다. 권수영은 나와 헤어지며 말했다. “언젠가 말을 놓을 때도 오겠죠.”

파트너와 잘 지내는 법 2 - 잘 지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파트너와 잘 지낼 수가 있나요? ‘잘 지낸다’의 정의가 뭔데요?” 매번 내게 철학적 과제를 주는 이조현(2001년생 / 철학과 대학생 / INFP)은 주제에 대해 반문했다. 나도 답하기 모호해 마땅한 대답을 고민하던 중 이조현이 말했다. “언제든지 끝날 수 있는 관계잖아요. 그래서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고. ‘잘 지낸다’가 섹스만을 위한 관계를 ‘잘’ 지속할 수 있는지 묻는 건가요?” 그렇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감정이 생기면 끝나는 관계잖아요. 그런데 감정이 안 생길 수가 있냐는 거죠.”

이조현은 감정에 영향을 받는 사람이었다. 섹스만을 위한 관계를 시도했다가도 실패했다. 대부분 감정 때문이었다. “서로 비슷한 크기의 감정이 생기는 게 제일 좋다고 생각해요. 근데 그런 경우는 거의 없었어요. 한 명이 감정이 커져서 그걸 끝끝내 토로하거나, 감정을 말하는 동시에 이 관계가 끝날 걸 알아서 묵인하고 ‘어쩔 수 없이’ 파트너로라도 지내거나.” 이조현은 하얀 얼굴로 조곤조곤 촌철살인의 대화를 계속했다.

“저는 집이 엄했어요. 그래서 저한테 섹스는 ‘금기’였죠.” 그러다 이조현은 대학 진학 후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다. 새로운 일상이 그에게는 매일 일탈이었다. “남들은 언제든 섹스를 할 수 있어서 오는 기회를 잡는 정도라면, 저는 섹스 기회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아 이래서 애들을 엄하게 키우면 안 된다니까.” 이 말처럼 이조현은 파트너를 만드는 데 거침없었다. 이조현에게 섹스 파트너는 섹스를 위한 것이라기보단, 언제 찾아올지 모를 이 기회를 완전히 장악하게 해줄 도구였다. “그래서 상처도 더 받았어요. 감정이 생길 거라는 걸 간과했던 거죠.”

파트너 사이에 감정이 안 생길 수는 없을까? “외적 요건이 어느 정도 합격했으니 성적 매력을 느낄 테고, 그런 관계에서 감정이 생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말도 안 되죠. 애초에 ‘잘 지낸다’는 전제에 감정이 들어 있는 것 같아요. 파트너 둘 다 연애하더라도 그건 마찬가지일 거예요.” 이조현의 말이 맞았다. 섹스 파트너도 관계다. 모든 관계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그 관계를 위해 시간을 투자하고 에너지를 써야 한다. 이조현도 에너지를 많이 쓴 것 같았다. “이젠 좀 지쳤어요. 섹스도 예전처럼 못 할 것 같고, 파트너랑 잘 지내기도 힘들 것 같아요. 그러니 저와 나누는 이야기의 제목을 바꿔야 될 것 같아요. ‘파트너와 잘 지내는 법’에서 ‘파트너와 감정 절제하는 법’으로.”

“커피 마시고 싶으면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마시거나 배달을 시켜요. 요즘 배달이 얼마나 잘되는데. 무슨 커피 마시러 서촌까지 가.” 김이재가 말하는 이상적인 섹스 파트너는 정말 섹스‘만’ 잘하면 되는 거였다.”

파트너와 잘 지내는 법 3 - 섹스만 하기

“섹스하려고 만났으면 섹스만 하는 게 맞지 않나요?” 김이재(1998년생 / 광고대행사 근무 / ESTP)는 섹스 파트너의 의미를 분명히 했다. “쓸데없는 다정함은 섹스만 하는 관계에선 쥐약이죠.” 그게 뭔지 물었다. “애무나 섹스 말고 다른 스킨쉽. 손깍지를 낀다거나, 볼 뽀뽀를 한다거나, 손등을 부비면서 하는 필로토크 같은 것들요. 저는 그런 거 필요 없거든요. 섹스만 하려고 만났는데.” 남자들도 나름 배려한 것 아닐까? “그거 자기 마음 편하려고 하는 거 같아요. ‘나 너랑 섹스 파트너로 만났지만, ‘파트너’다운 모멘트만 있는 게 아니라 스위트한 면모도 있다’고. 그게 더 느끼해요.”

김이재는 그럼 정말 섹스 파트너와 섹스만 할까? “지금보다 조금 더 어렸을 땐 섹스만 하지 않았죠. 한남동에서 피자를 먹기도 하고, 을지로에서 노가리에 맥주를 마시기도 했어요.” 그것도 나름 좋은 추억이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말하자면 연애를 해버렸죠. 그 남자들은 약속된 섹스 파트너가 생겨서 좋아했죠. 나는 연인을 바랐고, 남자들은 내가 조금 더 다정한 섹스 파트너가 되어주길 바랐죠.” 김이재가 말하는 섹스 파트너와 잘 지내는 법은 현실적이었고, 그 현실 인식 뒤에는 자아 성찰과 고뇌가 있었다. “욕구로 뭉친 관계일수록 더 본능적이어야 할 것 같아요. 이성적일 필요 없어요. 물론 예의는 갖춰야겠지만.” 권수영이 말하는 예의를 김이재도 말했다. 둘의 MBTI가 비슷해서일까?

현실적인 김이재는 섹스 파트너와의 다른 관계 가이드도 현실적이었다. “보는 장소를 정해두는 거죠. 이번엔 내 집이면 다음엔 네 집. 커피 마시고 싶으면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마시거나 배달을 시켜요. 요즘 배달이 얼마나 잘되는데. 무슨 커피 마시러 서촌까지 가.” 김이재가 말하는 이상적인 섹스 파트너는 정말 섹스‘만’ 잘하면 되는 거였다. 어쩌면 이게 가장 맞는 말일지도 몰랐다. 러닝 크루라면 같이 잘 뛰면 되고, 등산 동호회라면 트레킹만 잘해주면 된다. 어차피 그들 사이에서도 눈이 맞아 섹스를 한다고 하지만. “어후, 섹스만 잘하면 됐지 뭘 더 바라나요?” 김이재는 과유불급이라는 단어를 두 번이나 말했다.

파트너와 잘 지내는 법 4 - 밸런스 있는 삶 유지하기

“제 삶이 있어야죠.” 유성혁(1999년생 / 레코딩 엔지니어 / INTJ)은 섹스 파트너와 잘 지내려면 우선 자신부터 잘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운동도 하고, 건강해야 하고, 정신도 맑게. 물론 파트너만을 위한 건 아니지만, 그게 파트너한테도 더 좋겠죠. 우선 내가 건강해야(잘 서야) 여자도 나와의 관계를 지속하니까요.” 본능과 욕구로 뭉친 관계이기 때문에 그걸 실현시켜줄 건강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유성혁은 정말 ‘T’ 같았다.

“개인적으로 하는 일 없이 ‘섹파’만 만나는 삶은 여자든 남자든 섹시하지 않은 거 같아요. 저는 하는 일이 뚜렷한 사람과 자는 게 더 즐겁습니다. 섹스할 때 여자가 일하는 모습을 생각하면 더 야릇해요. 하는 일 없이 섹스만 하는 여자와의 관계는 부담됩니다” 유성혁은 초반엔 ‘F’처럼 얘기하는 것 같았지만 역시나 ‘T’로 끝났다. 그는 자신한테 의지하는 여자가 싫다고 했다. 3년 동안 연애 없이 파트너만 만나고 섹스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기대하면서 만나는 건 파트너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파트너에게)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 유성혁은 역시 T답게 자신도 파트너에게 의지하거나 기대할 만한 상황이 생기는 것을 크게 경계했다. “엄청난 테크닉을 원치 않습니다. 저를 기분 좋게 해주는 말을 굳이 해주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하지 말아야 될 것이 분명 있습니다. 낮에 하는 ‘보고 싶다’는 연락이나, 미래를 고민한다거나, 섹스의 피드백이 아닌, 내 태도에 대한 피드백이요. 조금 더 다정하게 행동해달라고 하거나, 저의 행동에 서운해하는 일들 말입니다.”

그에게는 섹스 파트너의 긍정 규칙이 없는 대신 ‘이러면 안 된다’는 무언의 약속이 확고했다. 그런 걸 왜 하지 말아야 할까? “내 일을 열심히 해야, 하지 말아야 될 것을 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하지 말아야 될 걸 안 하는 원동력은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할 때 온다고 생각합니다.” 해야 할 일은 무엇이길래? “규칙적인 삶. 아침에 먹는 영양제와 유산소운동, 적절한 상식, 성병 검사 같은 것들.” 유성혁의 생각은 워낙 뚜렷해서 그의 생각이 이 시대의 섹스에 대한 생각일까 싶었다. 무엇보다 그에게는 나름의 원칙이 있었고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았다. ‘감정 절제하는 법’을 알고 싶어 하는 이조현을 소개해주고 싶었다. 그는 내가 생각하는 동안 한마디 더했다. “유비무환 아니겠습니까?” 뭘 준비해야 한다는 것인지는 묻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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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Words 백윤준(칼럼니스트)

2024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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