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보르기니를 갖는다는 건 어린 소년의 꿈이 현실로 이루어진다는 뜻이죠.” 여름의 문턱에 선 5월 어느 날. 용인 스피드웨이 브리핑 룸에서는 한 사내가 마이크를 잡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프란체스코 스카르다오니. 그는 현재 오토모빌리 람보르기니의 아시아 태평양 지역 총괄을 맡고 있다. 이날은 람보르기니 우라칸을 트랙에서 탈 수 있는 ‘람보르기니 서울 미디어 트랙데이’가 열렸다. 시승에 앞서 프란체스코 총괄은 ‘람보르기니를 갖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하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람보르기니 오너가 된다는 것은 브랜드가 쌓아온 오랜 역사의 일부가 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람보르기니를 둘러싼 커뮤니티와 라이프스타일의 일환이 된다는 것도 의미가 깊죠. 그 안에서 만난 고객들끼리 비즈니스 관계를 맺기도 하고요. 람보르기니의 플랫폼으로 합류하는 겁니다.”
프란체스코 총괄과의 인터뷰가 끝나자 이창우 선수가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이창우는 람보르기니 서울 치프 인스트럭터이자 ‘2024 슈퍼 트로페오 아시아’ 출전 선수다. 한국에서 람보르기니에 대해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 중 하나라는 뜻이다. 그는 트랙에서 지켜야 할 안전 수칙을 소개한 뒤 들뜬 목소리로 이렇게 말을 이어나갔다. “오늘 타실 차는 희귀종입니다. 지구상에 자연흡기 V10 엔진을 얹은 차는 이제 몇 대 남지 않았어요.” 오늘날 모든 자동차 브랜드는 전동화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람보르기니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람보르기니는 브랜드 최초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 ‘레부엘토’를 공개했다. 전동화 시대에도 람보르기니의 특징은 여전하겠지만, 자연흡기 V10 엔진은 황소 로고처럼 람보르기니를 대표하는 상징이다. 자연흡기 엔진 시대의 끝자락에서 우라칸을 타는 건 누구에게나 의미 있는 경험일 것이다.
이날 준비된 차는 우라칸 에보 스파이더, 테크니카, STO. 세 모델에는 모두 5.2L V10 엔진이 올라간다. 최고출력도 640마력으로 같다. 람보르기니는 출력이 같더라도 세 개의 차는 완전히 다를 거라고 설명했다. 우선 달리는 방식이 다르다. 에보 스파이더는 사륜구동, 테크니카와 STO는 후륜구동이다. 공차 중량도 각각 1750kg,1585kg,1510kg으로 다르고, 외관 디자인도 달라서 공기역학 성능도 차이가 난다. 세 차를 번갈아 타며 각 우라칸의 성능이 어떻게 다른지 오감으로 느껴보기로 했다. 람보르기니 오너도 쉽게 누릴 수 없는 호사다.
처음 탄 차는 우라칸 에보 스파이더. 인스트럭터가 탑승한 우루스 퍼포만테가 선두를 이끌었고, 다른 기자는 STO, 나는 에보 스파이더로 후미를 지켰다. 딱딱한 시트에 몸을 우겨 넣고 핸들을 잡자 2인용 제트기에 올라탄 기분이 들었다. 선두의 우루스가 무서운 속도로 코너를 빠져나갔다. 뒤를 쫓기 위해 가속페달을 밟는 순간, 운전석 뒤편의 V10 엔진이 고막을 찢을 기세로 굉음을 쏟아냈다. 코너를 탈출해 직진 구간으로 접어들자 페달을 끝까지 밟았다. 당장이라도 페달에서 발을 떼야 할 것 같은 충동이 들었지만, 앞의 STO를 쫓아가기엔 역부족이었다.
다음 STO를 타고 처음 속도를 올리는 순간 느꼈다. 이건 완전히 다른 차다. 분명 출력이 같은데도 STO는 에보 스파이더보다 훨씬 빨리 선두를 쫓아갔다. 아까 그 코너에서 비슷한 힘으로 페달을 밟자 널뛰는 힘을 주체하지 못해 뒷바퀴가 날아갔다. 급하게 스티어링휠을 반대로 돌려 중심을 잡았지만 이미 정신은 혼미했다. 나중에 보니 람보르기니는 우라칸 STO에 대해 이미 경고를 해두었다. ‘엔진 시동을 거는 순간부터, 우라칸 STO의 실내외 모든 부분은 레이싱 드라이버의 영혼을 뒤흔든다.’
마지막으로 탑승한 우라칸 테크니카는 짐카나 세션에 준비되어 있었다. 현장 인스트럭터는 테크니카를 ‘가장 밸런스가 뛰어난 우라칸’이라고 말했다. 우라칸 라인업 중 가장 빠르지는 않아도 공도와 트랙을 모두 즐기기에 적합한 차라는 뜻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테크니카는 겉과 속은 모두 영락없는 레이싱카인데도 애플 카플레이와 안드로이드 오토 기능을 제공한다. 아울러 테크니카는 여러 대의 우라칸 행렬 속에서도 단숨에 찾아낼 수 있다. 우라칸 최초로 특유의 ‘Y’자 모양 에어커튼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모든 프로그램이 끝나고 차에서 내리자 손바닥이 땀으로 흥건했다. 람보르기니는 터무니없이 빨랐다. 나는 모든 말초신경을 곤두세워 차를 몰았다. 하지만 타는 내내 차의 성능을 10%도 채 사용하지 못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허무할 정도의 고성능 차를 트랙이 아닌 도산대로에서 타는 건 실례가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아무렴 어떤가. 람보르기니 오너라면 꽉 막힌 서울 시내에서도 위안을 얻을지도 모른다. 마음만 먹으면 이 차는 이곳의 어떤 차보다 빠르고 신나게 달릴 수 있으니.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프란체스코 총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람보르기니는 이동 수단이 아닌 꿈을 파는 브랜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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