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 골프 GTI
사지는 않더라도 타봐야 하는 차
에디터 일을 처음 시작한 곳은 자동차 잡지였다. 선배 기자들은 차에 타자마자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특징을 귀신같이 알아챘다. 승차감이 단단하다, 코너링이 예리하다, 엔진 사운드를 부드럽게 다듬었다, 속도가 빨라질수록 차가 바닥에 착 달라붙는다 등등. 도로 주행도 겨우 해내던 어시스턴트에게는 뜬구름 같은 표현들이었다. 내 눈에는 그저 비싼 차와 예쁜 차만 보였다.
기준점을 찾고 싶었다. 이를테면 매운 음식을 주문할 때 ‘신라면 맵기 정도’ 처럼 말할 수 있는 자동차. 기자 생활을 10년 넘게 한 선배는 내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기준점이 되는 차들이 있지. 승차감, 실용성, 가속력 모두 ‘평균’에 가까운 차. 보통 그런 차들이 많이 팔려. 좋은 의미로 무난하니까. 골프가 딱 그런 차야.” 그날 이후로 폭스바겐 골프에 대한 생각이 자리 잡았다. 한 번은 꼭 타봐야 하는 차.
“아랫부분을 깎아 ‘D’ 모양으로 완성한 스티어링휠은 흔히 스포츠카에서 볼 수 있는 요소다.
실제 성능과 상관없이 얼마든지 적용할 수 있는 디자인이지만, GTI는 겉과 속이 일치하는 차였다.”
단점이 없는 게 장점
신형 8세대 골프 GTI의 첫인상은 명확했다. 이 차는 재밌으라고 만든 차구나. 실제로 골프 GTI는 폭스바겐 엔지니어들이 ‘내가 타고 싶은 차’를 목표로 만든 차다. 운전석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스티어링휠이었다. 아랫부분을 깎아 ‘D’ 모양으로 완성한 스티어링휠은 흔히 스포츠카에서 볼 수 있는 요소다. 실제 성능과 상관없이 얼마든지 적용할 수 있는 디자인이지만, GTI는 겉과 속이 일치하는 차였다. 시동을 걸고 스티어링휠을 돌리자 손끝에 묵직한 느낌이 전해졌다. 차체가 작으니 차선을 바꾸거나 코너링을 할 때도 뒤뚱거리는 느낌 없이 재빠르다. 서울의 좁은 골목을 다닐 때도 확실히 주차 부담이 적었다. 하루 종일 GTI를 타고 서울 곳곳을 누비는 동안, 7년 전 자리 잡았던 골프에 대한 생각은 이렇게 변해갔다. 한 번이라도 타보면 갖고 싶어지는 차.
그때가 맞다면 지금도 맞을까
1976년 처음 출시된 골프는 연비와 수납성을 앞세워 ‘유럽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자동차’가 됐다. 2년 뒤 나온 GTI는 기존 골프에 속도와 재미까지 더해 ‘핫해치’라는 장르를 열어젖혔다. 그로부터 약 50년이 지난 지금도 GTI는 폭스바겐에 여전히 가장 중요한 모델 중 하나다. 잘 팔리고 상징적이니까. 그럼에도 폭스바겐은 지난해 ‘전동화 전환 박차’를 이유로 골프 단종을 선언했다. 물론 전기차 후속 모델이 나올 예정이다. 기존 골프는 전기차로 바뀌어도 장점이었던 연비와 수납성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GTI는 사정이 다르다. 큰 배터리로 출력을 높인다 해도 4기통 엔진을 쥐어짜며 경쾌하게 달리는 감각을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즐거움을 한 번도 느끼지 못했다면 아쉬울 것도 없겠지만, GTI와 보낸 짧은 시간 때문에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됐다.
첫 출시 연도 1976년 시작 가격 4970만원 전장×전폭×전고 4290×1790×1450mm 파워트레인 2.0L 직렬 4기통 가솔린 터보 엔진 최고출력 245ps 최대토크 37.7kgf·m 공차중량 1496kg CO₂ 배출량 149g/km 복합 연비 11.5km/L
BMW M3 컴페티션 투어링 M x드라이브
아빠가 만든 자동차
M3 투어링은 한 아버지의 고민에서 시작됐다. 1984년 막스 라이스뵉은 뮌헨에서 BMW 프로토타입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었다. 두 아이의 아빠인 막스 라이스뵉에게는 가족을 모두 태울 수 있는 차가 필요했다. 가장 쉬운 해결 방법은 큰 차를 사는 것일 테지만 막스는 달랐다. 그는 중고 3시리즈를 구입해 회사 몰래 개조를 시작했다. 단면도는 없었다. 머릿속에 있는 모습대로 C필러를 뒤로 옮겨 지붕을 연장하고 문을 달아 공간을 추가했다. 막스 라이스뵉이 만든 왜건은 완벽했다. 문제는 외부에 있었다. 근로계약서에 회사에서 승인하지 않은 차를 만들면 안 된다는 내용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문제가 커지기 전 자신이 개조한 차를 회사에 보여줬고, 차를 다시 가져갈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1987년, BMW에서 3시리즈 투어링이 정식 출시됐다.
“M3는 고성능, 투어링은 실용성을 의미한다.
그 조합이 근사한 테일러 수트에 운동화를 신은 것처럼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대체할 수 없는 매력이 되기도 한다.”
못생긴 차 중에 제일 잘생긴 차
왜건은 한국에서 정말 인기가 없다. 출시되는 종류만 봐도 알 수 있다. 지금 한국에서 살 수 있는 국산 왜건은 딱 한 대다. 제네시스 G70 슈팅 브레이크. 그마저도 처음에는 유럽 시장 전략 모델로 나왔다 뒤늦게 한국에 들어왔다. 왜건은 실용성으로 타는 차다. 세단의 정숙함과 SUV의 실용성을 모두 갖췄으니까. 이동 수단으로서만 생각해본다면 안 살 이유가 없는 차다. 하지만 한국은 실용성보다 럭셔리가 통하는 시장이다. 게다가 왜건은 한국에서 ‘못생긴 차’라는 오명까지 썼다. 그걸 벗겨보고 싶었다. 그래서 고른 차가 M3 컴페티션 투어링 M이다. 시승차를 받기로 한 날. 저 멀리 다가오는 M3 투어링을 보며 생각했다. 예쁘잖아? 앞쪽으로 바짝 눕힌 C필러는 살찐 스포츠카라기보다, 날렵하게 근육을 가다듬은 SUV에 가까웠다. 뒷바퀴 사이에 달린 원형 테일 파이프 4개 역시 눈에 띄는 요소다.
무덤으로 돌아오라
M3 투어링. 공생할 수 없을 듯한 두 단어를 합쳐 만든 차다. M3는 고성능, 투어링은 실용성을 의미한다. 그 조합이 근사한 테일러 수트에 운동화를 신은 것처럼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대체할 수 없는 매력이 되기도 한다. 앞서 M3를 탔을 때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잘생기고 빠르지만 내게는 과한 차. M3를 타고 꽉 막힌 테헤란로에 서 있을 때는 마치 턱시도를 입고 지하철에 탄 기분이었다. 반면 M3 투어링은 왜건이 주는 공간과 디자인 때문에 화려한 인상이 확실하게 덜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 ‘왜건의 무덤’이라 불리는 한국에서 BMW가 이 차를 언제까지 팔지는 모르겠다. 때마침 기사를 쓰던 중 왜건과 관련된 중고차 뉴스가 떴다. 인기가 적은 왜건은 감가도 커서 합리적인 가격으로 중고차를 살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첫 출시 연도 1987년 시작 가격 1억3820만원 전장×전폭×전고 4800×1905×1445mmmm 파워트레인 3.0L 직렬 6기통 가솔린 트윈파워 터보 엔진 최고출력 510ps 최대토크 66.3kgf·m 공차중량 1890kg CO₂ 배출량 213g/km 복합 연비 8.1km/L
제네시스 GV80 가솔린 3.5 터보
공중에 떠오른 남자
미국 LA 남서부에 있는 롤링힐스 에스테이트. 40대 중반 남성이 홀로 GV80을 몰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그는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 대신 가속페달을 밟았다. 시속 100km를 넘긴 차는 통제력을 잃었고, 나무에 부딪힌 차는 공중으로 떠오른 뒤 그대로 전복됐다. 남자는 오른쪽 다리뼈가 산산조각 났고 정강이에 철심을 꽂아 넣었다. 심각한 부상이었지만, 망가진 차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되려 그가 살아 있는 것을 기적으로 여겼다. 내가 3년 전 미국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를 자세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다. 운전자 이름이 타이거 우즈이기 때문이다. 사실 타이거 우즈가 살아남은 건 운 때문만이 아니다. GV80은 지난해 미국 고속도로안전보험협회가 발표한 충동평가에서 최고 등급을 획득했다.
“주행 모드를 컴포트에서 스포츠로 바꾸면 영락없는 고성능 SUV의 주행 질감도 누릴 수 있다.
GV80을 모는 내내 잘생기고 인성도 좋은 운동선수를 만나는 느낌이었다.”
제네시스의 기대치
지금 보고 있는 차는 타이거 우즈가 탔던 GV80의 페이스리프트 버전이다. 신형 GV80은 두 가지 파워트레인으로 출시된다. 가솔린 2.5 터보와 3.5 가솔린 터보. 내가 받은 시승차는 3.5 가솔린 터보 모델로, 출력은 2.5 터보 버전보다 76마력 더 높은 380마력의 힘을 낸다. 이번 기사에 이 차를 섭외한 것도 GV80이 아닌 ‘가솔린 3.5 터보’라서다. 우리가 제네시스에 기대하는 것은 정숙한 승차감과 호사스러운 실내 인테리어, 그리고 안정성이다. GV80 웹사이트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문구도 ‘역동적인 우아함과 정교한 럭셔리 디테일’이다. 역동적인 우아함과 정교한 럭셔리가 목적이라면 2.5 가솔린 터보도 충분하다. 그럼에도 제네시스는 전동화 시대의 문턱에 선 지금, 멸종위기종처럼 여겨지는 3.5L V6 가솔린 터보 엔진을 얹었다. 그 이유를 느껴보고 싶었다.
전기차의 길목에서
GV80은 힘이 넘쳤다. 가파른 오르막길에서도 내가 원하는 속도에 늘 예상보다 한 템포 빨리 도달했다. 충분히 ‘스포츠카답다’고 느낄 수 있는 정도다. 하지만 GV80의 넘치는 힘도 역시 럭셔리의 한 종류다. 럭셔리는 결국 여유가 있을 때 누릴 수 있다. 식사 한 끼에 똑같은 10만원을 쓰더라도 전 재산이 10만원인 사람과 100만원인 사람이 쓸 때의 기분은 다르다. GV80 3.5 가솔린 터보는 출력이 넘치니 똑같은 시속 100km로 달려도 운전자 입장은 ‘더 달리면 달리지’ 식으로 여유를 느낄 수 있다. 동시에 주행 모드를 컴포트에서 스포츠로 바꾸면 영락없는 고성능 SUV의 주행 질감도 누릴 수 있다. GV80을 모는 내내 잘생기고 인성도 좋은 운동선수를 만나는 느낌이었다. 이런 GV80을 볼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제네시스는 2030년부터 모든 내연기관 모델 판매를 중단한다.
첫 출시 연도 2020년 시작 가격 7480만원 전장×전폭×전고 4940×1975×1715mm 파워트레인 3.5L V6 가솔린 터보 엔진 최고출력 380ps 최대토크 54.0kgf·m 공차중량 2225kg CO₂ 배출량 223g/km 복합 연비 7.7k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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