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시스 G90
모시겠습니다
뒷자리가 좋은 차 선정 기준은 자연스레 각 브랜드 최상위 세단으로 좁혀진다. 흔히 말하는 ‘회장님 차’. 제네시스 G90을 받기 하루 전, 자동차 뒷자리에 타는 사람들을 떠올려봤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건 두 부류다. 운전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과 운전을 못하는 사람. 뒷자리에 타는 사람들에게 가속이나 토크는 덜 중요할 것 같았다. 시트 가죽이나 등받이가 젖혀지는 각도가 더 절실할지도 모른다.
그런 점이라면 차를 잘 모르는 사람의 평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29세 직장인 최민경 씨는 매일 블랙핑크 지수의 고향인 경기도 군포에서 서울 명동까지 지하철로 출퇴근한다. 그는 2년 전 운전면허를 획득한 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운전한 적이 없다. 나는 최민경 씨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회장님 체험 한번 해보시겠어요? 댁까지 모시겠습니다.’ 답장이 왔다. ‘저녁 7시 맞춰서 명동역 앞으로 오세요.’
자동차의 상석
국빈 만찬 자리저럼 자동차에도 상석이 있다. 상급자가 직접 운전할 때는 조수석이 상석이다. 반면 운전기사가 있을 때는 조수석 뒷자리 - 운전석 뒷자리 - 조수석 순이다. G90의 상석이 조수석 뒤라는 것도 바로 알 수 있다. 조수석 뒤편 발판이 스웨이드 커버인 반면, 운전석 뒤 발판은 플라스틱이기 때문이다. 명동으로 가는 길, 차는 신기할 정도로 조용했다. 3.5L V6 트윈 터보 엔진과 48V 일렉트릭 슈퍼차저가 실렸지만 컴포트 모드에서는 전기차만큼 정숙하다. 너무 심심해서 누군가에게는 단점으로 느껴지겠구나 싶을 정도로 조용하다. 그래서인지 G90에는 현대자동차가 개발한 액티브 사운드 디자인 ‘ESEV(Engine Sound by Engine Vibration)’가 적용된다. 차에 설치된 뱅앤올룹슨 스피커 시스템을 통해 엔진 회전수, 변속기 단수, 속도 등을 반영한 가상의 엔진 사운드를 내보낸다.
절대 월드 클래스 맞습니다
“출발합시다.” 최민경 씨는 약속 시간보다 20분 늦게 도착했다. 회장님 차 뒷자리 체험을 약속했을 뿐 일까지 해결해줄 수는 없었다. 남산3호터널에 들어섰을 때 최민경 씨에게 문에 있는 ‘REST’ 버튼을 눌러보라고 했다. “어머 이게 왜 이래.” 룸미러에 비친 최민경 씨가 점점 시야에서 사라졌다. G90 시승차의 옵션인 퍼스트 클래스 VIP 시트가 작동한 것이다. 의자가 완전히 누우면 호텔 수영장 선베드에 누운 자세가 완성된다. 최민경 씨가 천장의 스웨이드를 쓸어내리며 물었다. “이거 어느 나라 차예요?” 그는 엠블럼이 아닌 손에 만져지고 눈에 보이는 것들로 차를 판단했다. 군포로 돌아가는 길목에는 이번 기사에 실린 두 독일 차가 서 있는 주차장에 들러 비교를 부탁했다. 한참을 둘러본 최민경 씨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무조건 처음 탄 흰색 차. 퇴근하고 누워 갈 수 있잖아요. 이런 거는 얼마씩 해요?” 이번 시승차의 가격은 1억4250만원이다.
첫 출시 연도 2018년 시승차 G90 3.5 터보 48V 일렉트릭 슈퍼차저 AWD 시작 가격 1억384만원 전장×전폭×전고 5275×1930×1490mm 공차중량 2240kg 복합연비 8.3km/L(21인치 휠 기준) 파워트레인 3.5L V6 가솔린 트윈 터보 엔진 + 48V 일렉트릭 슈퍼차저 최고출력 415마력 최대토크 56.0kgf·m
아우디 A8 L
제이슨 스타뎀과 앙겔라 메르켈
“조심해. 새로 뽑은 차거든.” 인적 드문 주차장. M자 탈모가 오기 시작한 수트 차림의 과묵한 남자가 운전석에 앉아 있다. 가죽 장갑을 끼고 시동을 거는 순간 아까 도움을 청한 낯선 여자가 다짜고짜 총구를 들이민다. 약 1분 뒤. 여자는 총을 버린 채 도망가고, 차 주변에는 거구의 남자 넷이 쓰러져 있다. 영화 <트랜스포터-엑스트림>의 오프닝 시퀀스는 자동차 광고로 써도 손색없을 장면이다.
제이슨 스타뎀이 흠집이 날까 걱정했던 차는 A8이다. 아우디 A8은 1994년 첫 출시됐다. 다소 늦은 출발이었지만, 브랜드 최초로 W12 6.0L 엔진을 얹는 등의 시도로 자신만의 팬덤을 쌓아갔다. 독일 연방총리를 역임한 앙겔라 메르켈도 A8을 탔다. 메르켈 총리가 A8을 총리 관용차로 선택했을 때, 현지 언론 매체는 ‘연방경찰청이 아우디의 높은 보안과 첨단 기술력을 인정했다’고 보도했다.
자동차다운 자동차
A8이 세대교체를 거치는 동안 세상도 변했다. 제이슨 스타뎀은 <트랜스포터> 시리즈에서의 경호원 생활을 청산하고 바다로 향해 거대 상어와 싸웠고, 메르켈 총리는 퇴임 후에도 1년 8개월간 정부자금으로 미용비 약 8000만원을 써 논란에 올랐다. A8은? 지금 운용되는 4세대 A8에는 3.0L V6 가솔린 직분사 터보차저 엔진이 들어간다. W12 6.0L 엔진과 비교하면 반토막이다. 하지만 내연기관이 흔적 기관처럼 줄어드는 A8은 이번 기사로 모은 세 자동차 중 가장 자동차 같았다. 다른 두 대에 비해 단단한 승차감은 오히려 좋았다. 어댑티브 에어 서스펜션은 도로 위 요철을 꼼꼼히 걸러내면서도, 물컹이는 느낌 없이 아스팔트를 꽉 움켜쥐고 달리는 기분을 주었다. 올라가는 속도에 따라 고조되는 엔진 사운드 역시 돋보였다.
진짜 럭셔리
A8은 동행한 사진가와 번갈아 운전했다. 우리의 소감은 비슷했다. 옛날 차 같다. 1억6070만원이라는 가격을 생각하면, 실내 디자인이 한 세대 전 모델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A8은 실제로 오래됐다. 지금 소개하는 4세대 A8은 2017년 처음 출시됐다. 페이스리프트로 차 안팎을 다듬었지만 한계가 있다. 2020년대 출시된 G90의 호사스러운 비즈니스 시트나 2022년에 출시된 i7의 대형 디스플레이는 없다. 그래서 A8 차주의 안목이 더 궁금해졌다. 아우디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장점들로 스마트한 소비자를 설득했다. 세계 최초로 알루미늄 차체로 양산 승용차를 만든 것도, 풀타임 사륜구동 시스템을 승용차에 적용한 것도 아우디였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장점을 알아채고 그 장점을 향유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럭셔리가 아닐까. A8을 타면서 든 생각이다.
첫 출시 연도 1994년 시승차 A8 L 55 TFSI 콰트로 프리미엄 시작 가격 1억6070만원 전장×전폭×전고 5320×1945×1500mm 공차중량 2165kg 복합연비 8.3km/L 파워트레인 3.0L V6 가솔린 직분사 터보차저 엔진 최고출력 340마력 최대토크 50.99kgf·m
BMW i7
돈보다 중요한 것
칼 라거펠트, 투팍, 삼성그룹 사장의 공통점은 BMW 7시리즈를 탄다는 점이다. 시대와 직업을 불문하고 많은 유명인이 7시리즈를 탄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일단 역사가 길다. 7시리즈는 1977년 처음 출시된 이후 50년 가까이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와 경쟁하며 대형 프리미엄 세단의 한 축을 차지했다. 2022년 7세대 7시리즈가 공개되었고, 사진 속 i7은 7시리즈 최초의 전기차 버전이다. i7 출시는 한국에서도 화제였다. 삼성 이재용 회장이 국내 출고 1호 차량을 주문했기 때문이다. 1호차를 포함한 총 10대의 i7은 삼성그룹 대표이사진에게 업무 차량으로 지급됐다. 대기업 총수의 차량 선택에는 명분도 일정 부분 작용한다. i7에 들어가는 105.7kWh 배터리는 삼성SDI에서 생산한다.
다섯 번째 BMW
이번에 받은 시승차는 ‘i7 xDrive60 M 스포츠’다. 시작 가격은 2억1590만원. 현재 국내 출시되는 BMW 모델 중 다섯 번째로 비싸다. 자동차 가격이 2억원을 넘어가면 장점보다 단점을 먼저 찾게 된다. 도대체 2억원이 넘는 차는 얼마나 좋을까? 정말 2억원만큼 가치가 있을까? i7에는 당장 눈에 띄는 수치 지표들이 있다. 최고출력은 544마력이다. 배터리 무게 덕에 공차중량은 9인승 기아 카니발보다 599kg이나 더 무거운 2750kg에 달한다. 그럼에도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걸리는 시간은 4.7초. 포르쉐의 스포츠 세단 파나메라 4보다도 빠르다. 2억원 넘는 세단을 구입한 사람이 직접 전기차 충전소에 들를지는 모르겠지만, 1회 충전 주행거리 438km 역시 돋보이는 장점 중 하나다.
진짜 자동차 극장
i7 뒷자리에 앉자 BMW 시어터 스크린이 눈에 들어왔다. 보통 자동차의 2열 디스플레이는 운전석과 조수석 헤드레스트 뒤편에 있다. i7의 스크린은 천장에 달렸다. 지붕 전체에 파노라마 글라스 루프를 적용한 탓에 마치 허공에서 스크린이 등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유튜브 재생을 비롯한 시어터 스크린의 모든 기능을 작동하려면 손을 뻗을 필요도 없다. 2열 도어의 5.5인치 터치스크린 패널로 모두 조작할 수 있다. 소리도 좋다. 바워스 & 윌킨스의 사운드 시스템은 전 좌석 헤드레스트 스피커를 포함한 35개 스피커로 울려 퍼진다. 뒷자리에 앉아 뭘 보면 좋을까 잠깐 고민하다 유튜브 <침착맨> 채널의 ‘어르신은 모르는 MZ 음식 월드컵’을 틀었다. 2억원이 넘는 차에 앉아 사무실 모니터보다 더 큰 화면으로 바라보는 MZ 음식 월드컵. 새삼 ‘2020년대는 무엇일까’ 싶어졌다.
첫 출시 연도 1977년 시승차 i7 xDrive60 M 스포츠 시작 가격 2억1590만원 전장×전폭×전고 5390×1950×1545mm 공차중량 2750kg 복합연비 1회 충전 주행 거리 438km 파워트레인 105.7kWh 배터리 최고출력 544마력 최대토크 75.96kgf·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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