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보 촬영은 오랜만이죠. 오늘 촬영은 어땠어요?
사실 어제부터 무척 긴장했어요.(웃음) 일할 때는 최대한 티를 안 내려고 하는데, 카메라 앞에 서기 전까지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어요.
연기할 때는 특정한 상황이나 대사가 있잖아요. 그래서 사진 촬영을 할 때는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하더라고요.
오늘은 포토그래퍼 실장님께서 ‘무뚝뚝함’을 요구하셔서.(웃음) 무뚝뚝함도 종류가 다양하잖아요. 그저 차가워 보일 수도 있고, 생각에 빠진 것처럼 보일 수도 있고, 사실은 별다른 생각이 없을 수도 있고요. 옷을 바꿔 입을 때마다 계속 다양하게 상상했어요.
평소 성격은 어떤 편인가요?
무뚝뚝함이랑 거리가 멀어요. 대화 나누기 전에는 차가워 보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 그런 성격은 못 되는 것 같아요. 아, 평소에는 오늘처럼 예쁜 척 안 해요!(웃음)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고현정 배우가 연기했던 ‘미실’을 보고 연기자를 꿈꿨다고 들었어요.
<선덕여왕>은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 방영한 작품인데요. 뭐랄까, 연기에 압도되는 느낌이었어요. 그런 기분을 느낀 건 처음이었고 막연하게나마 ‘나도 저런 걸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 정도 나이라면 ‘고현정 연기 잘한다’보다 ‘미실 멋지다’ 생각할 것 같은데 그 반대였네요.
고현정 선배님이 연기를 즐겁게 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미실보다는 배우 고현정의 오라에 압도되는 느낌이었거든요. 연기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좋아하던 시기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그 에너지가 피부에 와닿았어요.
연기 입시를 남들보다 늦게 시작해서 연습을 정말 많이 했다고 들었어요. 보통 입시 준비는 언제 시작하나요?
빠르면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하는 친구도 있어요. 보통은 고등학교 2학년에서 3학년 초에는 시작하죠. 저는 3학년 5월부터 시작했어요.
그리고 다음 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에 입학했죠. 연기과 진학을 결심한 계기가 있나요?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 진로에 대해서 깊게 고민을 하잖아요. ‘성적에 맞춰서 대학을 가는 게 최선일까?’ ‘이게 나의 행복일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때도 연기를 계속하고 싶었거든요. 부모님은 반대하셨어요. 연기과에 진학한다고 배우가 된다는 보장은 없으니까요. 그런데 마음이 바뀌질 않더라고요.
곧 공개를 앞둔 <세작, 매혹된 자들>은 동희 님 커리어에서 두 번째 사극입니다. 아무래도 현대극보다 신경 써야 할 점이 더 많을 텐데요.
현대극이랑 화법이 다른 점이 있지만 그게 딱히 어렵거나 힘들지는 않았어요. 시대를 떠나서 작품 속 인물의 삶은 제가 겪어보지 못한 인생이잖아요. 사극이든 현대극이든 낯설기 때문에 ‘이 사람은 이 상황에서 어떤 말을 하고 싶었을까?’ 접근하는 방식은 같았어요. 다만 사극 촬영을 하면서 제 일상에서 바뀐 게 하나 있어요.
어떤 건가요?
탈모 샴푸요.(웃음) 사극 분장을 할 때 왁스를 너무 많이 쓰니까 모발이 상할 것 같더라고요. 목도 정말 불편해요. 요즘에는 가체가 많이 가벼워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꽤 무겁거든요. 자세도 늘 올곧게 취해야 하니까 목에 무리가 오거든요. 사극에 출연한 뒤로는 탈모랑 목 디스크를 늘 신경 쓰고 있어요.
요즘도 탈모 샴푸 쓰세요?
그럼요. 언제 또 사극을 할지 모르니까 대비해두면 좋겠죠. 사극 촬영 시작하는 동료 배우들이 조언을 구할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탈모 샴푸 꾸준히 쓰는 게 좋다는 이야기만 해요.(웃음)
이번 작품에서는 ‘홍장’ 역을 맡았어요. 본인이 이해하고 연기한 ‘홍장’은 어떤 사람인가요?
홍장은 양반집 딸이에요. 시대 상황 때문에 청나라로 갔다가 본국으로 귀환하는데, 그럼에도 가문의 수치로 여겨지고 손가락질 받아요. 그리고 기녀로 살아가죠. 사회적 신분이 곤두박질쳤지만 자신만의 신념과 지조를 꿋꿋이 지켜가는 사람이에요.
배우분들은 촬영하기 전에는 혼자만의 워밍업 같은 게 있나요?
배우마다 다를 텐데요. 저는 촬영 이틀 전부터는 사람을 안 만나요. 연기에 몰입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제가 그동안 준비했던 것들을 보완하고 점검하려고요. 일종의 시험기간 같은 거죠. 시험날 이틀 전에는 혼자서 복습하잖아요. 일도 그렇게 준비하는 편이에요.
본인 연기는 자주 보는 편이세요?
원래는 아예 안 봤어요. 못 보겠더라고요. 아무리 열심히 찍은 장면도 아쉬움이 남고 후회하게 되더라고요. 요즘은 그걸 이겨내려고 해요. 자기 실수를 들여다볼 줄 아는 것도, 아쉬운 마음을 잘 넘기는 것도 일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역할을 떠나서 앞으로 해보고 싶은 연기가 있을 것 같습니다.
<나의 해방일지>, <사랑의 이해> 본 적 있으세요? 그 드라마들 보면 캐릭터들이 하나같이 담담하고 담백하거든요. 배우분들이 감정을 많이 표출하지 않는데도 소용돌이치는 감정이 생생히 느껴져요. 저도 그런 연기를 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신인 배우에게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요?
촬영장에 가면 정말 많은 분들이 계시잖아요. 수많은 시선 속에서 상황에 몰입하고 캐릭터를 연기해야 하는데, 그때의 긴장감을 이겨내는 게 가장 어려워요.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이겨낼 텐데 그러려면 많은 경험이 쌓여야 되겠죠.
10년 뒤에 이 인터뷰를 볼 수도 있을 텐데, 그때는 어떤 배우가 되었으면 하나요?
10년 뒤면 거의 마흔이네요.(웃음) 일단 지금보다 마음이 더 건강하고 단단했으면 좋겠어요. 촬영장이 편하게 느껴질 만큼 경력과 실력이 쌓이면 그때 또 한 번 새롭게 보여줄 연기가 있을 테니까요. 지금은 촬영장에서 ‘나만 잘하면 돼’ 생각하거든요. 10년 뒤에는 저도 선배님들처럼 촬영장 안에서나 밖에서도 동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배우이자 어른이 되고 싶어요.
한동희의 인생 영화 5
<어바웃 타임>, 리처드 커티스, 2013
‘지금 이 순간은 결코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판타지를 통해서 보여주잖아요.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너무나 아름답고 설득력 있게 표현한 영화예요.
<미 비포 유>, 테아 샤록, 2016
한 번 본 영화는 다시 안 보는 편인데, <미 비포 유>는 정말 여러 번 봤어요. 에밀리아 클라크의 천진난만한 미소가 주는 에너지가 좋아요.
<노트북>, 닉 카사베츠, 2004
웃는 모습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배우들이 있죠. 레이첼 맥아담스가 그래요. 레이첼 맥아담스가 출연한 많은 영화 중에서도 그 미소를 가장 아름답게 담은 영화라고 생각해요.
<어벤져스: 엔드게임>, 앤서니 루소·조 루소, 2019
워낙 액션 영화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너무 충격이었어요. 극장에서 아이언맨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나라 잃은 사람처럼 슬퍼했던 게 기억나네요.
<해리 포터와 혼혈 왕자>, 데이비드 예이츠, 2009
<해리 포터> 시리즈는 판타지 영화로 시작했지만 사실은 사랑 영화라고 생각해요. 주인공은 단연 스네이프 교수죠. 8편의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도 스네이프의 이야기가 처음 시작되는 ‘혼혈 왕자’ 편을 가장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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