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일찍부터 촬영했는데 식사는 하고 오셨어요?
사과 반쪽 먹었어요.(웃음) 얼굴이 잘 붓는 편이라 며칠 전부터 먹고 싶은 거 참았어요. 다행히 사진이 잘 나온 것 같아서 벌써 기대돼요.
고등학생 때 연극부에서 활동했다고 들었어요. 처음 연기를 하고 싶다고 생각한 시기가 궁금합니다.
사실 엄청난 계기나 일화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고등학교 들어가면 선배들이 동아리 홍보하잖아요. 그때 방송부, 댄스부, 연극부가 인기 많았는데 저는 친구 따라 연극부 면접 보러 간 거죠. 그게 시작이었어요.
면접 때 어떤 질문받았는지 기억나세요?
특별한 질문은 없었고 10명 정도가 보는 앞에서 즉석 연기했어요. 바닥에 종이가 여러 장 놓여 있었는데 거기에 대사가 서너 줄 적혀 있었거든요. 그걸 읽는 게 면접이었죠. 교복 재킷이 덜덜 떨릴 만큼 엄청 긴장했어요. 살면서 무대에 선 게 처음이었거든요. 그런데 그 떨림이 좋았어요. 어린 나이였지만 살면서 재미있는 긴장감을 느껴본 게 처음이었던 거죠.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나는 연기를 해야겠다’ 생각한 게 여기까지 온 거죠.
연극부에서는 어떤 역할 맡으셨어요?
1학년 때는 저희끼리 배우도 하고, 조명도 만지고, 세트도 꾸려야 됐어요. 저는 연기를 못해서 주인공은 안 됐어요. 아주 작은 배역만 맡았죠. 2학년 때는 더 큰 역할을 맡고 싶었는데 연기 잘하는 친구한테 또 밀려서 그 후로 조명만 잡았어요.(웃음)
연기 말고 다른 진로를 생각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한 번도 다른 진로를 생각한 적은 없어요. 저희 학교에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되게 많아서 공부하는 분위기가 강했어요. 그런데 저는 맨 뒷자리 앉아서 연극영화과만 생각했어요. 물론 다른 것에 흥미가 있었다면 진로를 바꿨을 수도 있겠죠. 그런데 연기만큼 재미있는 게 없었어요.
그래서 드리는 질문인데 평소 영화 취향은 어떤 편이에요?
로맨스 코미디부터 액션까지 고루 좋아하는데요. 제가 극장에서는 슬픈 영화를 못 봐요. 너무 울어서.(웃음) 극장에서 <신과 함께> 볼 때는 정말 대성통곡했어요. 그 후로 슬픈 영화는 마음먹고 집에서 보는 편이에요.
내가 관객으로서 좋아하는 작품과 출연하고 싶은 작품이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정말 맡고 싶었던 역할이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서 연기한 ‘민들레’예요. 사람 냄새 나는 캐릭터라고 해야 할까요? 누구나 느껴봤지만 잊고 지내는, 혹은 마음 깊이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 있잖아요. 그런 감정을 보여주는 역할을 많이 해보고 싶어요.
한껏 감정에 몰입해서 촬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도 그 감정이 남아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러면 우울하거나 힘들 것 같은데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하세요?
충분히 느껴요. 굳이 애써서 서둘러 벗어나려고 하지 않고요. 힘들면 힘든 대로 지내요. 그 시간이 다음 연기를 할 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기록해요. 촬영장에 갈 때면 늘 일기장을 챙기거든요. 오늘 내가 생각하기에 괜찮았던 점, 부족했던 점, 현장에서 선배님들 보고 느낀 점 등을 일기장에 적습니다.
작품 중간중간에는 어떻게 지내세요? 따로 연습을 하거나 몸을 만드는 기간이 있나요?
특별하게 뭘 한다기보다 생활 패턴을 최대한 규칙적으로 유지하려고 해요. 운동 시간도 정해서 하고요. 제가 평소에 잠을 잘 못 자는 편인데 촬영 기간에는 더 심해지거든요.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인데 평소에 일상을 규칙적으로 만들면 도움이 되더라고요.
아마도 이담 님은 그러지 않으실 텐데 배우라는 직업인으로서 ‘일 그만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가 있을 것 같아요. 어떠세요?
제가 배우로 일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런 고비는 없었어요. 다만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있었죠. 가능성이 너무 안 보이니까 ‘내가 연기를 계속 고집하는 게 맞나’ 고민했거든요. 지금도 가끔씩 촬영 앞두고 잡생각이 많아지면 머릿속이 하얘질 때가 있어요. 내가 ‘이 일을 왜 시작했더라?’ ‘나는 연기를 왜 좋아했더라?’ 싶어질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하세요?
제 나름의 솔루션인데요. 혼자 심야 영화 보러 가요. 영화를 두세 시간씩 보고 나면 엔딩크레딧이 올라가잖아요. 저는 그때 가슴이 막 뜨겁더라고요. ‘맞아, 내가 이런 걸 하고 싶어서 연기를 하려고 했었지’ 깨닫게 돼요. 늦은 시간에 나 혼자 큰 스크린을 보며 몇 시간 동안 몰입하고 나왔을 때의 기분이 너무 좋아요. 저도 누군가에게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싶고요.
좋아하는 일을 계속 좋아하려고 노력하는 거네요.
맞아요. 만일 다른 일을 찾아보려고 했더라도 결국 돌아왔을 거예요. 어렸을 때는 미술도 해보고 피아노도 배웠는데 하나같이 얼마 못 가서 그만뒀어요. 반대로 연기는 한 번도 지루한 적이 없었어요. 하는 것도 보는 것도요.
직업으로서 배우의 좋은 점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배우는 글 속에 있는 어떤 인물이 직접 돼보는 일이잖아요. 그러려면 정말 많은 질문을 해야 하더라고요. 배우가 아니었다면 한 번도 안 해봤을 질문도 하게 되고요. 그렇게 질문을 하다 보면 저에 대해서 몰랐던 것도 알게 되는 순간이 있어요. 그게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어떤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하나요?
비슷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항상 같은 답변을 드리는데요. 좋은 어른이 되고 싶어요. 촬영장에 나가면 만나는 어른들이 계시잖아요. 감독님, 선배 배우님들, 스태프분들. 저는 이 일을 하면서 정말 좋은 어른을 많이 만났고 행운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좋은 배우도 의미 있지만 좋은 어른이 되고 싶어요.
이이담의 인생 영화 5
<캐롤>, 토드 헤인스, 2015
제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가 케이트 블란쳇이거든요. 케이트 블란쳇은 고유의 중성적인 느낌이 있는데 정말 특별한 재능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그런 분위기와 연기를 지향하기도 하고요. 그 배우만의 매력이 잘 드러난 작품이에요.
<라라랜드>, 데이미언 셔젤, 2016
보는 내내 버릴 장면이 하나도 없는 영화. 오프닝 시퀀스를 보면서 ‘나도 저런 장면을 한 번쯤 꼭 찍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봐도 정말 어떻게 찍었나 싶어요.
<트루먼 쇼>, 피터 위어, 1998
마지막에 트루먼이 문을 열고 나가잖아요. ‘과연 이게 해피 엔딩일까?’ 싶었어요. 겉으로는 해피 엔딩이지만 어쩌면 쇼 안에서 평생을 살았던 트루먼은 밖에서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생각하게 한 영화예요.
<괴물>, 고레에다 히로카즈, 2023
별다른 대사 없이 눈빛만으로 하는 연기가 있잖아요. <괴물>을 보면서 두 아역 배우가 도대체 연기를 어떻게 한 걸까 싶었어요. 정말 길 가는 누구라도 붙잡고 꼭 보라고 말해주고 싶은 영화입니다.
<소년시절의 너>, 증국상, 2019
이 영화도 마찬가지로 엔딩 부분에 두 남녀 주인공이 눈으로만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거든요. 그걸 보는 동안 관객으로서 너무 행복했어요. 주동우 배우의 눈빛 연기는 정말 최고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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