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우리에게 조현철은 감독보다 배우로 익숙하다. 그는 우리가 익히 아는 작품에 출연하며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영화 <건축학개론>에서는 주인공 승민(이제훈)과 함께 학교를 다니던 ‘동구’ 역을 맡았고, <차이나타운> <터널> <마스터>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서도 조연을 맡았다. 조현철이 얼굴을 가장 크게 알린 작품은 넷플릭스 드라마 <D.P.>다. 그가 연기한 ‘조석봉’은 미술학원 강사 출신의 헌병대 일병으로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결국 탈영하고 만다. 조석봉 이후 조현철은 ‘한국의 호아킨 피닉스’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번 인터뷰에서 만난 인물은 영화감독 조현철이다. 그의 첫 장편영화 <너와 나>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후 큰 호평을 받았고, 10월 25일 일반 극장에서 개봉한다. 각본을 완성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5년. 많은 수정이 있었지만 영화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어제는 인터뷰를 앞두고 뭘 준비하면 좋을까 고민하다 <D.P.>를 한 번 더 봤습니다. 원래는 조석봉 역할을 거절하려고 했는데 사주를 듣고 마음을 바꿨다 들었어요.
제가 원래는 사주를 안 믿어요.(웃음) 그때는 심적으로 너무 힘들었던 때라 무슨 말이라도 듣고 싶었어요. 그 뒤로 사주 보러 간 적은 없습니다.
연기도 결국은 배우가 겪는 경험이잖아요. 그런 점에서 <D.P.> 촬영 이후에 후유증은 없으셨나요?
<D.P.>는 장르적인 이야기잖아요. 조석봉은 생각보다 거리감을 두고 그 상태를 유지하면서 연기한 캐릭터예요.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와는 별개로 거리감을 두고, 장르적으로 연기해야겠다는 생각을 처음부터 했어요. 정말 열심히 준비한 캐릭터지만 생각하시는 것만큼 제가 그 인물에 빠져서 연기하지는 않았어요.
촬영하시면서 ‘이 캐릭터는 주목 좀 받겠구나’ 어느 정도 예상하셨나요?
사실 찍을 때까지는 몰랐어요. 촬영을 다 마치고서 생각해보니까 ‘어쩌면 잘될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영화는 보는 시기와 회차에 따라 감상이 달라지기도 하잖아요. 어제는 <너와 나> 시사회가 있었는데 1년 전과 비교하면 어떠셨어요?
요즘은 슬슬 부끄러워지기 시작했어요. 처음 <너와 나>를 완성했을 때는 마냥 사랑스럽고 좋았어요. 스스로도 만족했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부족한 게 보이더라고요. 다음번에는 ‘이런 부분을 좀 더 잘해야지’ 하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너와 나>를 촬영하면서 배우들에게 요구한 게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일단 리허설을 많이 했어요. 배우들이 평소에 말하는 것처럼 대사를 할 수 있길 바랐거든요. 디렉션도 미리 준비했어요. 현장에 가면 이런 말을 해야지 속으로 생각했는데 막상 촬영을 시작하니 제가 할 말이 없더라고요. 다들 카메라 앞에서 날아다니듯 연기를 잘해줬어요.
영화를 만드는 동안 ‘관객이 이런 걸 느꼈으면 좋겠다’ 싶은 점이 있으셨겠어요.
각본을 쓰면서 ‘관객이 위로받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요즘 공개되는 콘텐츠들은 자극적인 편이잖아요. 조그만 위로가 되는 영화가 되길 바랐죠. 실제로 관객분들께서 감정적으로 깊이 있는 피드백을 많이 주셨어요. 저희 영화를 저마다의 삶과 엮어서 이야기해주시는 분들도 많았어요.
특히 기억에 남는 피드백이 있나요?
무주산골영화제에서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가진 적이 있어요. 그때 대구에서 오신 퀴어 활동가가 해주신 말씀이 아직까지 계속 생각나요. 활동하면서 주변의 많은 분들을 떠나보냈는데 이 영화를 보고 위로받았다고, 감사하다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저는 매달 기사를 쓰지만 늘 제목 붙이는 걸 어려워하는 편입니다. 이번 작품 제목은 어떻게 정하셨나요?
제목은 시나리오를 쓰기 전부터 정해뒀어요. 한 날은 친구가 <너와 나>라는 만화책을 소개해주더라고요. 듣자마자 ‘제목 참 좋다’ 생각했어요. 늘 마음 한편에서 신경 쓰였는데 이번 영화에도 잘 어울리겠다 싶었어요.
각본을 쓸 때도 늘 제목을 신경 쓰셨겠어요.
맞아요. <너와 나>라는 제목이 주는 느낌이 있거든요. 꼭 집어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 느낌을 종종 상기했어요.
만화책은 보셨나요?
아니요.(웃음)
영어 제목 <The Dream Songs>는 어떻게 정하셨어요?
미국 시인 존 베리먼이 쓴 시집 제목이에요. 친구가 빌려줘서 집에 한동안 그 책이 있었거든요. 때마침 영어 제목을 정해야 했는데 그 책이 계속 마음에 걸렸어요. 사실 제가 영어를 잘하진 못해서 소리 내어 한 번 읽어본 게 전부지만요. 시집을 자세히 파고들지는 않았지만 영화와 잘 붙는 제목이라고 생각했어요.
실례되는 말씀입니다만, <너와 나> 예고편을 보면서 30대 중반 남성이 어떻게 이런 감성과 감도의 영화를 기획하고 완성했을까 궁금했습니다. 각본을 쓰면서 따로 취재도 하셨습니까?
영화과 입시 학원에서 두 달 정도 아르바이트 강의를 했어요. 고등학생의 생각과 일상을 생생하게 담아내는 게 중요했거든요. 고등학생들이 하는 유튜브도 많이 찾아 봤어요.
당시 학생들과 주고받은 대화 중 실제로 영화에 반영한 것도 있나요?
그때 학생들한테 과제로 일기를 많이 쓰게 했어요. 자기가 기르는 앵무새한테 사랑한다는 말을 가르치는 내용을 써온 친구가 있었거든요. 그 일기를 반영한 장면이 이번 영화에 들어 있어요. 그 친구한테 허락을 받고 넣었습니다. 저도 그랬지만 일기를 자세히 쓰다 보면 주변에서 조금 색다르게 보이는 것들이 생겨나요. 그래서 낸 숙제였어요. 예전에는 저도 일기 많이 썼는데 요새는 거의 쓰지 못하네요.
고등학생을 주인공으로 삼아야겠다 생각하신 계기나 이유가 있나요?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저는 어떤 의지나 목적을 가지고 이런 이야기를 만들려고 하지는 않았어요. 그보다는 아이들이 저를 부르는 느낌이었어요. 모든 게 자연스럽게 흘러간 것 같아요.
처음 각본을 쓰기 시작한 건 언제쯤이었나요?
생각을 글로 옮기기 시작한 건 2016년 봄이었어요. 촬영을 시작한 건 2021년 봄. 촬영을 마치기까지는 한 달 조금 넘는 시간이 걸렸어요.
5년 동안 각본을 쓰신 셈이네요. 작업하는 동안 제일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이게 재미있나?’를 가장 많이 생각했어요. 일단은 많은 사람들이 봐야 하니까요. 그러려면 일단 제 눈에 재미있어야 하는데, 저 스스로도 납득이 안 가는 부분이 꽤 있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시나리오 수정을 많이 했어요.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은 처음부터 확실하게 정해뒀어요. 그 중간을 채우고 잇는 과정에서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중간 부분은 이렇게 저렇게 고쳐도 보고 뗐다 붙이기도 했지만 시작과 결말은 처음 시나리오를 쓸 때랑 똑같아요.
저는 <너와 나> 예고편을 보면서 ‘아주 잘 만든 뮤직비디오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음악과 촬영도 각본 쓸 때부터 미리 정해두셨나요?
그건 아니에요. 처음에는 음악을 아예 안 쓸 생각이었어요. 스태프분들을 만나고 여러 이야기를 나누면서 생각을 바꿨죠. 저 혼자서 다 완성하는 것보다는 다른 분들의 손을 빌리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와 나>에는 오혁 님이 음악감독으로 참여했죠. 서로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으셨는지 가늠이 안 됩니다.
둘 다 말이 없는 사람이라.(웃음) 처음 만났을 때 제가 생각하는 중요한 요소 몇 가지만 말씀드렸어요. 그다음에는 감독님이 알아서 뚝딱 만들어주셨어요.
그 ‘중요한 요소 몇 가지’는 무엇이었나요?
슬픈데 그냥 슬픈 느낌 말고, 이상한데 슬픈 느낌. 저희끼리는 ‘K-사이키델릭’이라고 하는데, 한국적인 사이키델릭 느낌이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카메라의 시선은 영화 자체를 바라보는 시선이기도 하잖아요. 그런 점에서 촬영감독님께 ‘이것만큼은 이랬으면 좋겠다’ 하신 게 있나요?
작품 속 대상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봤으면 좋겠다. 이 생각이 가장 컸죠. 촬영은 정다운 감독님께 부탁드렸어요. 평소에도 제 생각과 요구를 워낙 잘 아시는 분이라 이 부분에 대해서는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도 않았어요. 극 중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호흡이 느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서 핸드헬드를 많이 사용했습니다. 다운 감독님은 다큐멘터리 촬영을 오랫동안 해오신 분이라 워낙 핸드헬드 촬영을 잘하시기도 하고요.
<너와 나>의 명대사 하나만 소개 부탁드립니다.
하은 역을 맡은 김시은 배우가 애드리브로 한 대사인데요. 세미(박혜수)가 “왜 다 죽는 거지?”라고 물어보면 하은이 “정답, 다들 늙고 병드니까”라고 답해요. 여기서 “정답”만 애드리브인데 이 대사를 좋아해요. 사실 시은 배우가 처음 오디션을 볼 때 이 애드리브를 했거든요. 그게 마음에 들어서 실제 촬영 때도 넣었어요.
가장 아끼는 장면이 있다면요?
혜수 배우가 키가 작거든요. 세미가 꽃들 사이에서 휴대폰 들고 펄쩍펄쩍 뛰는 장면이 있어요. 그 장면을 가장 좋아해요.
요즘도 영화 많이 보세요?
잘 못 봐요. 학교 다닐 때는 정말 질릴 만큼 봤어요. 그때는 어리니까 뭐든지 다 새로웠던 것 같아요. 요즘에는 나무 보면서 앉아 있어요. 제가 시골에 살거든요.
배우 박정민 씨는 감독님이 연출한 단편영화를 보고 재능의 벽을 느꼈다고 했죠. 그 후로 연출을 포기하고 연기에 전념했다고 말해서 화제가 됐는데, 그에 대한 감독님 생각이 궁금합니다.
정민이가 약간 과장해서 말한 게 아닐까 싶어요.(웃음) 따로 그 이야기에 대해서 둘이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어요. 여기저기서 제 이야기해주니까 고맙죠. 모든 친구들이 그렇겠지만 서로 한두 가지는 부러워하는 게 있을 수 있잖아요. 저도 나름대로 정민이한테 질투를 느끼는 게 있을 수도 있고요.
우위를 따질 수는 없겠지만, 내가 출연한 작품이 호평받는 것과 내가 연출한 작품이 호평받을 때의 기분이 다를 것 같기도 합니다. 어떠세요?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제 이야기를 할 때의 성취감이 훨씬 크죠. 배우로서 관객한테 말을 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느낌이에요. 그만큼 부담감도 크고 감수해야 되는 것도 많지만요. 온전히 제 이야기를 한다는 점에서 만족도가 다르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각본과 연출을 함께하는 걸 지향하시나요?
꼭 그렇지는 않아요. 연기도 그렇지만 이야기를 다룰 때도 거리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다루는 이야기와 가깝게 관련되어 있다 보면 객관적인 시선을 잃을 수도 있잖아요. 간혹 그 좁은 거리감이 작품의 완성도를 해칠 수도 있고요.
앞으로 자신의 작품에 꼭 출연시켜보고 싶은 배우가 있나요?
한국 배우 중에서는 김태리 씨가 가장 먼저 생각나네요. 저뿐만 아니라 모든 감독들이 그러지 않을까요? 너무 잘하시니까.(웃음) 저는 김태리 배우님 출연작은 다 좋아해요.
촬영장에서는 배우와 감독 중 어떤 쪽이 심적으로 더 편하세요?
연출할 때가 훨씬 편해요. 계속해서 집중하다 보면 제가 사라진 느낌이 들 때가 있거든요. 그 몰입감이 마음을 편하게 해요. 배우일 때는 대기 시간이 길다 보니까 잡생각이 많아지더라고요. 감독과 배우가 지니는 역할의 무게감 때문은 전혀 아니고요.
제가 얼마나 지속적으로 집중할 수 있느냐는 점에서 연출이 더 편하게 느껴지는 편이에요.
<너와 나>는 이야기가 감독님을 끌어당겨서 만든 작품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런 점에서 본인이 느꼈던 이 작품과의 거리감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세요?
너무 가깝죠.(너무) 그래서 오히려 부끄러움을 많이 느끼는 거 같아요.
조현철에게 좋은 배우는 어떤 배우입니까?
일단 제가 좋은 배우가 되지 못해서.(웃음) 모든 배우가 좋은 배우죠. 다만 특정 산업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모두 다치지 않고 스스로를 잘 지키면서 일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심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아, 그리고 웃긴 사람. 저는 웃긴 사람이 좋아요. 너무 진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같은 말이지만 너무 진지해지지 않고 인물과 거리를 두면서 자신을 잘 지키는 배우가 좋은 배우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어떤 칭찬을 받을 때 제일 좋은가요?
저는 칭찬은 잘 안 들으려고 해요. 그냥 그 순간을 못 견디겠어요.(웃음) 제가 칭찬하는 것도 잘 안 돼요.
감독님께 원동력 혹은 동기부여가 되는 것이 있나요?
그게 제 숙제예요. 뭔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에 꽂히면 열심히 하거든요. 문제는 그 무언가를 나이를 먹을수록 찾을 수 없다는 거예요. 중요한 게 하나도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더러 있고요. 새로운 동력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요즘 들어 많이 해요.
말씀하신 ‘꽂혔던 무언가’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면요?
미안해하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그런 이야기를 쫓아다녔어요.
조현철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하나요?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좋아한 것도 많았고 애정을 쏟은 것도 많았어요. 그것들을 전부 추려보니까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 할머니더라고요. 작가, 감독, 화가 모두 할머니예요. 그래서 저도 좋은 할머니가 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웃음)
좋아하는 할머니 몇 분만 소개해주세요.
제가 요즘 가장 좋아하는 분은 린 마굴리스라는 생물학자. 영화감독 아녜스 바르다도 좋아하고요. 화가 아그네스 마틴도 정말 좋아합니다.
관객들이 영화관에서 <너와 나>를 보고 나올 때 어떤 기분을 느꼈으면 하나요?
저희가 어렸을 때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던 느낌이 있잖아요. 다 같이 모여서 웃고 울고 했을 때의 느낌. 뭔지 모를 무언가가 마음을 관통하는 느낌. 그런 기분을 이 영화를 보고 느끼신다면 행복할 것 같습니다.
조현철의 인생 영화와 인생 책
<벌집의 정령> - 빅토르 에리세, 1973
“좋아하는 영화 이야기를 할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영화. 요즘은 ‘내가 <벌집의 정령> 같은 영화를 하고 싶어 하는 건가?’ 종종 생각한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 에드워드 양, 1991
“내게는 엄청나게 공포스러우면서도 이상했던 영화. 동시에 애정을 품을 수밖에 없었던 영화.”
<생명이란 무엇인가> - 린 마굴리스·도리언 세이건
“린 마굴리스가 쓴 책은 전부 좋아한다.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굉장히 매혹적인 방법으로 쓰는 작가. 독자를 사로잡는 면이 너무나도 많은 책이다.”
<오버스토리> - 리처드 파워스
“내게는 성경 같은 책. 삼나무 숲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인간 중심적인 관점이 아닌 나무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 책을 읽고 미국 레드우드 국립공원에 여행을 다녀왔다.”
<아우스터리츠> - W. G. 제발트
“살면서 책을 읽고 여행을 간 적이 딱 두 번 있다. 하나는 <오버스토리>, 다른 하나가 <아우스터리츠>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 책을 읽고 벨기에의 안트베르펜에 다녀왔다. W. G. 제발트의 작품은 다 좋아한다.”
조현철의 애장품
인터뷰를 앞두고 조현철 감독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너와 나>를 촬영하면서 자주 사용했거나 애정이 담긴 물건을 가져와 달라고. 화보 촬영장에서 만난 조현철 감독은 검은색 백팩에서 준비해온 네 가지 물건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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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스킨 노트
조현철 감독이 늘 들고 다니는 몰스킨 노트. 이번 촬영을 하는 동안 조현철 감독은 노트와 펜을 쥐고 무언가 그리고 있었다. 나중에 무얼 그렸느냐고 물어보니, 그는 “뭔가 불안할 때면 이렇게 패턴을 그리곤 하는데 뭔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라고 답했다. 그 모습이 신기해 카메라에 담았다. 노트는 구겨지는 느낌을 좋아해 하드커버가 아닌 소프트커버를 쓴다. 노트에 적힌 내용은 볼 수 없었지만 조현철 감독은 “글도 쓰고 낙서도 하고” 하면서 애용한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1년에 노트를 3권 정도 썼지만 최근에는 아이패드를 써서 1권으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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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고리
열쇠고리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초록색 앵무새였다. 영화 소품으로 여러 개 제작했지만 조현철 감독이 갖고 있는 건 이 두 개가 전부다. 영화에서는 세미와 하은이 하나씩 나눠 가졌고, 열쇠고리 곳곳에는 손때가 묻어 있었다. 조현철 감독은 ‘부적 같은 존재’라며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만 들고 다닌다고 했다. 1년 전 ‘백상예술대상’ 남자 조연상 시상식에서 조현철 감독이 오른손에 쥐고 있던 열쇠고리가 이 앵무새 열쇠고리다. 두 개의 열쇠고리에는 각각 ‘HE’ ‘SM’이 새겨져 있다.
액자 속 그림
액자 속 그림은 <너와 나>에서 주인공 ‘세미’를 연기한 박혜수 배우가 그렸다. 최근 그림을 배우고 있는데 뭘 그릴까 고민하다 그린 그림을 조현철 감독에게 선물했다고 한다. 그림 가운데 있는 편지는 영화에서 세미(박혜수)가 하은(김시은)에게 쓴 편지 내용이다. 조현철 감독은 이 그림을 현재 살고 있는 집에 걸어둔다.
오버스토리
조현철 감독은 2021년 겨울에 <오버스토리>를 처음 읽었다. 그는 “지금은 나에게 성경 같은 책”이라고 설명했다. 책에는 모서리를 접어둔 페이지가 많았다. 연달아 세 장이 조금씩 다른 크기로 접혀 있는 구간도 있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조현철 감독은 작은 목소리로 “세 장 다 좋았어요”라고 답했다. 페이지 전체가 세로로 접힌 곳도 있었다. 그럴 때는 좋아하는 페이지가 안쪽으로 오도록 접는다. 조현철 감독은 난독이 있어 책을 많이 읽지 않았는데 5~6년 전부터 페이지를 접으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 페이지를 접는 데 특별한 이유는 없고, 이렇게 읽을 때 마음이 끌어당겨지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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