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공개를 앞두고 있죠. 요즘 새롭게 시작하신 것이 있습니까?
최근에 러닝을 시작했어요. 7개월 정도 됐는데 좋더라고요. 처음에는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면서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너무 싫었어요. 이제는 익숙해지다 보니까 오히려 거기서 희열이 느껴지더라고요.
한 번 뛰는 거리는 얼마나 되나요?
8km는 꾸준히 뛰려고 합니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나가요. 처음 시작할 때는 2km만 뛰어도 지쳐 막판에는 걸었는데, 러닝이 참 신기한 게 어느 순간 실력이 훅 좋아지더라고요.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원작 웹툰이 있죠. 이번 드라마를 준비하시는 동안 원작을 보셨는지, 혹은 일부러 안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이번에는 일부러 안 봤습니다. 제가 맡은 캐릭터 ‘동고윤’은 되게 독특해요. 창의적인데 괴짜스러운 면도 있어요. 배우로서 표현할 수 있는 지점이 알록달록하다고 해야 할까요? 원작을 참고하기보다는 현장에서 감독님과 호흡하면서 자유롭게 캐릭터를 만들어 나가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작 소설이 있는 작품에도 출연했죠. 그때는 원작을 읽어보셨다고 들었습니다.
원작이 실존 인물을 다룬 작품이면 살펴보려고 하는 편입니다. 혹은 역사적 배경이나 사실이 중요한 작품일 때는 원작을 참고하려고 하죠. 반대로 원작 역시 픽션이라면 가급적 안 보려고 해요. 픽션에 픽션이 더해지면 되려 인물을 표현하는 데 한계가 생기는 느낌이라 그 점을 경계하는 편입니다.
그간 한국 의학 드라마의 주무대는 외과 병동이었죠. 그런 점에서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가 지닌 특별함이 있을 것 같습니다.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병을 다룬다는 점에서 특별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누구나 크고 작은 마음의 병을 갖고 있잖아요. 지금이 아닌 언제라도 겪을 수 있고요. 그럼에도 당사자가 직접 말하지 않으면 남이 먼저 알아채기는 쉽지 않죠. 어딘가에 부딪히면 멍이 들고 생채기가 나는데 마음의 병은 그렇지 않아요. 이번 작품에서는 감독님이 ‘보이지 않는 마음의 병’을 CG로 구현해낸 장면이 있어요. 그런 표현법 역시 기존 의학 드라마와 차별점이 되겠네요.
마음의 병을 다룬다는 점에서 기대되는 감동 포인트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목이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입니다만, 저는 항문외과 교수로 나옵니다. 사실 항문외과랑 정신과는 완전히 다른 분야라고 보실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비슷한 구석이 있어요. ‘남들에게 숨기는 병’을 치료하거든요. 그런 점에서 두 진료과는 환자를 대하는 마음과 질병에 접근하는 방법이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제가 연기한 동고윤도, 박보영 배우가 맡은 ‘정다은’ 간호사도 진심을 다해서 환자를 위로하거든요. 그 태도 자체가 이번 드라마의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다소 냉철하고 아픈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대사에 따뜻한 진심을 담았어요.
촬영장 분위기가 굉장히 훈훈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 따듯한 대사를 몇 달 동안 주고받다가 촬영이 끝나면 기분이 묘할 듯합니다.
말 그대로 사람 냄새가 나는 현장이었어요. 저는 배우의 큰 장점 중 하나는 동업인들의 아주 다양한 생각을 가까이서 경험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 경험에 매료될수록 작품 자체에 깊이 빠지게 되고, 배우나 스태프 간의 호흡도 짙어지거든요. 우리 모두 촬영이 잘 끝나기를 바라면서 달려왔지만 내심 끝나지 않기를 바라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좋았어요.
항문외과 전문의를 연기하면서 의료 지식도 새롭게 알게 됐겠네요.
이번 작품은 기본적으로 정신병동에 관한 이야기라 항문외과를 전문적으로 깊이 다루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런 건 있죠. 치핵, 치루, 치열은 제각각 다른 질병이고 그걸 모두 합쳐서 지칭하는 단어가 치질임을 알게 됐습니다.(웃음) 생각보다 많은 성인이 항문 질병을 앓고 있다는 것. 그 대부분은 식습관을 비롯한 생활 습관 때문이라는 것. 평상시 관리를 잘해야 한다는 것 등을 알게 됐습니다.
실제로 촬영 이후 바꾼 습관이 있습니까?
저는 아직까지 해당 질환을 겪어보지는 못했는데요. 드라마 촬영 이후에는 균형 있는 식단과 규칙적인 운동을 습관화하려고 노력합니다.
꼭 피해야 하는 음식이 있나요?
아무래도 기름지고(웃음) 자극적인 음식은 좋지 않습니다. 아, 생각보다 변 보는 습관이 아주 중요합니다. 변기에 너무 오래 앉아 있지 않고 짧은 시간 안에 큰 힘 들이지 않고 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짜 의사와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의학 드라마는 특히 대사 외우기 어려운 장르라고 합니다. 촬영하면서 기술적으로 어려웠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사실 기술적으로 특별히 더 어려운 점은 없었어요. 물론 항문외과와 관련된 문헌을 찾아보긴 했습니다만 그보다 환자분들에 대한 공부를 했어요. 환자의 마음을 다루는 드라마니까요.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환자, 말 못할 고통을 안고 있는 환자분들의 인터뷰를 찾아봤죠. 무엇보다 그런 질환을 겪을 때의 심리 상태를 살펴봤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의사로서의 태도가 나오게 되더라고요. 그게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중점을 둔 점이고 덕분에 좀 더 만족스러운 작업이 됐어요.
배우는 배역에 따라 여러 인생을 살아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배우님께서 생각하는 연기자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입니까?
지금 말씀해주신 부분이 정말 큰 장점이죠. 다양한 인물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배우 개인적으로 성찰하고 성장한다고 생각합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다양한 생각을 지닌 사람들과 짧게 만나고 헤어지는 게 오히려 장점인 것 같아요. 촬영장에서는 한 가지 분야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내잖아요. 그 자체로 엄청난 동기부여가 되죠. 그 과정 속에서 맞다 틀리다가 아닌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게 되고요. 스위치를 켰다 끄는 게 아니라, 새로운 스위치를 계속 켜면서 인생을 살아가는 느낌입니다. 그런 점에서 참 감사하면서 연기 인생을 보내고 있어요.
영화 <친구 사이?> 이후로 서른 편 넘는 작품에 출연하셨죠. 러닝 이야기를 하기도 했습니다만 배우님 연기 커리어에서 ‘러너스 하이’가 되어준 작품이 있습니까?
비교적 최근 작품인데요. 드라마 <서른, 아홉>입니다. 때마침 제가 서른아홉이 되던 해에 찍은 작품이에요. 당시 저는 ‘앞으로 어떤 생각과 가치관을 갖고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정답 없는 질문을 계속 던졌어요. 그 스트레스가 작품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촬영장에서 정말 열심히 했어요. 매 순간 1분 1초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책임감 있게 노력했거든요. 그렇게 <서른, 아홉>을 찍었고 이번에 <정신병동에 아침이 와요>를 만났죠. 큰 고민이 지나고 나니까 현장이 너무 즐겁더라고요. 연기를 잘했든 못했든 내가 치열하게 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 그런 생각과 태도를 지니게 돼서 기쁩니다.
쓸 수 있는 에너지의 한계치가 높아진 느낌이네요.
역치가 올라간 느낌이 있죠. 마흔이 되어서 바뀐 점이라기보다, 언젠가 해결해야 될 고민을 잘해내서 얻은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언젠가 파내야 할 우물이 있다면 그 우물을 잘 팠다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조금 더 깊은 그릇이 생기지 않았나 싶네요.
데뷔작을 비롯해 필모그래피 대부분에서 주연을 맡으셨어요. 그런 점에서 느끼는 부담감은 없습니까?
배우도 결국 직업이잖아요. 저는 연기를 일로서 대하는 태도를 고수하니 되려 부담감에 따른 스트레스는 덜한 편이에요. 지금도 좋은 연기자가 되는 것이 꿈이죠. 하지만 인생을 거시적으로 봤을 때 그 꿈 역시 전체가 아닌 일부더라고요. 연기를 적당히 일로서 대할 때 오히려 책임감은 강해지고 버려야 할 감정들은 빨리 털어낼 수 있는 거 같아요. 그러다 보면 제 인생을 열렬히 사랑하면서도 다시 좋은 연기를 할 수 있는 순환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예명으로 활동하시는 배우는 주변 가족, 친구들이 어떤 이름으로 부를까 궁금했습니다.
본명 부릅니다.(웃음) 일할 때는 철저하게 연예인 연우진으로 생활하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편한 김봉회로 지내는 거죠. 요즘 회사들도 서로 닉네임 부른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주는 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원래의 나라면 해보지 못할 시도를 할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이 생기기도 하니까요.
그런 점에서 연우진과 김봉회는 얼마나 닮았나요?
제 입으로 얘기하기에는 쑥스럽지만 둘 다 책임감 있게 살아온 것 같아요. 잘하지는 못했어도 책임감 있게 매 순간을 보냈다고 생각하거든요. 배우는 대중에게 다양한 문화예술을 연기로 제공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걸 사명감으로 삼고 책임감 있게 일하려 노력해왔어요. 인간 김봉회도 마찬가지예요. 가족의 소중함을 중심에 두고 언제나 감사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오늘 촬영은 아버님이 생전에 그려두신 그림과 함께했죠. 저는 제목이 가장 먼저 궁금했습니다.
‘자작나무가 있는 풍경’입니다. 아버님이 찍어두신 사진을 작업실에서 그림으로 옮긴 작품이에요. 사실 아버님은 대부분 실제 풍경을 보며 그림을 그리셨어요. 저는 아버지 그림을 볼 때마다 풍경 밖에서 뛰어놀고 있을 저와 동생, 그리고 어머님의 모습이 떠오르죠.
여러 작품 중에서 ‘자작나무가 있는 풍경’을 고르신 이유가 있습니까?
제가 좋아하는 보라색과 푸른색이 많아요. 아버님 그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색인데 그래서 더 애착이 가는 작품입니다. 액자는 예스러운 면이 있어요. 그림 역시 오래될수록 질감과 색감에서 빈티지함이 묻어나는데 그걸 지켜보는 즐거움이 있죠.
내년 1월에는 아버님 그림들로 전시를 열 계획이라고 들었어요. 회고전을 열어야겠다고 생각하신 계기가 있습니까?
아버님께서 살아생전에는 전시회를 많이 하셨어요. 아버님이 돌아가신 지 10년 가까이 됐는데요. 문득 돌이켜보니 제가 아버지가 그림을 한창 그리시던 나이에 가까워졌더라고요. <서른, 아홉> 찍을 때 그 생각을 처음 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 인생에서 어디쯤 있는 걸까 생각했어요. 그럴 때마다 아버님 그림 앞으로 갔고요. 아버님에 대한 그리움도 있지만, ‘지금 내 인생은 어디쯤 와 있느냐’ 하는 질문을 하다 보니 이번 전시를 준비하게 됐습니다.
전시 제목은 정하셨나요?
아직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신선한 질문이네요. 가제로 생각해둔 문장은 있습니다. ‘아버지의 풍경을 마음에 담다’. 작품은 마흔 점 정도로 추렸어요. 아버님은 풍경화를 많이 그리셨는데 제가 기억해낼 수 있는 풍경과 그리움이 있는 작품들 위주로 골랐습니다.
다른 질문입니다만 강릉 출신인데 롯데 자이언츠 팬으로 알려졌어요. 사실인가요?
사실입니다. 요즘은 간간이 순위 정도만 체크하는데요. 롯데 경기를 한창 본 때는 로이스터 감독 시절이죠. 그때는 야구를 보는 게 하루의 중요한 일과였어요.
롯데 팬이 된 계기가 있습니까?
롯데를 처음 응원하기 시작한 건 1992년이에요. 당시 저는 초등학생이었는데 TV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그 새파란 유니폼을 본 거죠. 야구가 뭔지도 잘 모르는 때였는데 그날 이후로 롯데 경기가 있으면 채널을 멈추고 보게 되더라고요. 때마침 그해에 롯데가 우승을 했어요. 어린 마음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죠.
당시가 롯데 마지막 우승이죠?
그렇죠. 그렇습니다.(웃음)
영화 보는 걸 좋아해서 연기를 시작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연기를 하는 것과 보는 것 중 무엇이 더 즐거우신가요?
볼 때가 즐겁습니다.(웃음)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저는 연기를 일로서 대하는 사람이어서요.
영화 취향은 어떤 편이세요?
특별히 어떤 장르를 선호하지는 않습니다. 영화를 비롯한 다른 예술 장르도 마찬가지인데요.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저의 경험과 맞닿았을 때. 공감하는 동시에 내 생각의 틀이 깨졌을 때 희열을 느끼는 편입니다.
‘넷플릭스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영화 고르는 데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많아요. 배우님은 어떤 기준으로 영화를 고르시는지 궁금합니다.
예전에는 웬만한 영화제에 나온 작품들은 일부러 찾아보고 다녔어요. 상을 탄 작품이라면 꼭 봐야겠다는 강박도 있었고요. 그게 쌓이다 보니 피곤해지더라고요. 요즘에는 주변 동료분들이 추천해주시는 작품을 봅니다. 늘 영화나 드라마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매번 좋은 작품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지금 나이의 두 배가 됐을 때 연우진은 어떤 사람이고 싶은가요?
지금 나이의 두 배면 여든 살이네요?(웃음) 저는 그냥 무던했으면 좋겠어요. ‘저 친구는 참 성실하게 살아온 눈빛이 보여’라고 생각됐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먼 미래다 보니 제가 이 일을 계속하고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그때는 지금의 저처럼 젊은 배우들이 있을 텐데요. 그분들의 연기를 보면서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후배님들의 연기를 보면서 젊은 시절의 나에게 아쉬움이 남지 않는 사람. 그 정도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 된다면 좋겠네요.
지금의 연우진이 추천하는 영화 3
<타인의 삶>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2006
<드라이브 마이 카>
하마구치 류스케, 2021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케네스 로너건, 2016
“요즘은 버텨내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굉장히 제 마음을 울리더라고요. 어렵게 버텨내고 결국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 우리 모두에게는 인생에서 밝고 아름다운 것만 추구하려고 하는 관성이 있죠. 그 반대편에 어둡고 외롭고 쓸쓸한 것들, 내 안의 결핍을 가만히 지켜봐주는 시간이 오히려 삶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됩니다. 불씨는 밝은 곳이 아니라 어두운 곳에 있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세 영화를 추천드리고 싶네요. 지금 제 인생의 변곡점과도 닮아 있는 영화들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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