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작은 시계 축제
올해 8월 말 제네바에서 열린 작은 시계 축제에 왜 관심을 기울여야 할까? 하고 생각하는 당신에게.
제네바 워치 데이즈를 이해하려면 몇 가지 배경을 알 필요가 있다. ‘코비드-19가 한창이던 2020년은 시계 박람회도 혼란기였다. 세계 최고, 최장수 시계 박람회였던 바젤월드는 2019년을 마지막으로 사정상 열리지 않게 되었다. 바젤월드의 종말이 미친 영향은 생각보다 컸다. 매년 바젤월드에 고정으로 참가하며 신제품을 출시하던 회사들이 있었다. 롤렉스, 파텍필립, LVMH, 스와치그룹, 그리고 소규모 독립 브랜드들까지. 이들은 자신들의 신제품을 출품할 박람회가 없어졌다. 제네바 워치 데이즈는 그 대안 중 하나다.
제네바 워치 데이즈는 큰 행사가 아니다. 큰 회사들은 다들 금방 다른 방법을 찾았다. 롤렉스와 파텍필립은 리치몬트 그룹 위주의 SIHH에 합류했다. SIHH는 이들을 받아들이고 박람회 이름을 ‘워치스 앤 원더스’로 바꾸며 한층 대형화되었다. LVMH 그룹은 워치스 앤 원더스에 참가하거나 별도의 ‘LVMH 워치 위크’ 행사를 열었다. 스와치그룹은 브랜드별로 신제품을 출시하고, 오데마 피게는 이미 박람회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상태였다. 패션이 더 자주 쇼를 열 듯, 박람회를 통한 연간 1회 신제품 공개라는 패턴은 이미 많이 깨졌다.
제네바 워치 데이즈를 부러 소개하는 이유는 이런 전시가 스위스 시계임을 상징하는 면모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스위스 시계 업계가 크고 번쩍거리는 브랜드로만 구성된 건 아니다. 기계식 시계는 귀금속인 동시에 시간의 흐름을 시각화해 보여주는 공학적 방법론이기도 하다.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방법은 다양하고, 그 다양한 방법을 정밀하게 다듬어 소형화할 때 생기는 고유한 매력이 있다. 소형화, 정밀화, 공예적 요소, 창의성, 정확성,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직은 조금 남아 있다. 제네바 워치 데이즈는 그런 인디 브랜드가 모인 새로운 시계 박람회다.
그래서 제네바 워치 데이즈의 시계 중에는 ‘이게 시계라고?’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특이한 게 많다. 오늘날의 기계식 시계 시장은 그만큼 고도화되고 세분화되었다. 그런 특이한 시계들이 간혹 오늘날의 시계 게임을 바꾸기도 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리차드 밀이다. 제네바 워치 데이즈에 나온 시계들도 몇 년 뒤에 어떤 대세가 될지 모른다. 지금은 상대적으로 쉽게 구할 수 있는 유망주를 찾는 것도 제네바 워치 데이즈 같은 박람회의 재미다. 개념적으로는 소규모 영화제나 아트페어와 큰 차이가 없다. 이런 걸 알리는 게 미디어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올해 4회째를 맞은 제네바 워치 데이즈는 해가 갈수록 풍성해지고 있다. 이제 참가 브랜드는 40개에 가깝고, 이 전시에 맞춰 신제품을 출시하는 회사들도 있다. 놀라운 점은 들어본 적도 없는 인디 브랜드 사이 당당한 글로벌 브랜드들이 있다는 점이다. 불가리가 대표적이다. 불가리는 워치스 앤 원더스 기간에 별도 부스로 참여한 데 이어 제네바 워치 데이즈에도 해당 페스티벌 전용 신제품을 출시했다. 브라이틀링 CEO 조지 컨이나 전설적인 시계 마케터 장 클로드 비버 등도 이 페스티벌에 참여해 강연이나 콘퍼런스를 통해 지혜를 나눴다.
제네바에 시계공이 몰린 배경은 17세기부터 이어진다. 프랑스 왕 루이 14세가 비가톨릭교도에게도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낭트 칙령을 폐지했다. 당시 시계공은 개신교도인 위그노였다. 이들이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제네바 공국으로 오면서 오늘까지 시계 산업의 허브로 제네바와 인근 지역이 작동한다. 제네바 중심의 프랑스어권 스위스는 여전히 고급 시계 산업의 중심이 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태엽이 풀려나가는 힘을 이용해 시간의 흐름을 표시하는 장치인 기계식 시계가, 사람들의 동경과 감탄을 이끌어내는 공예품이자 귀금속이 되는 저력은 이런 박람회에서 온다.
1 숫자로 보는 제네바 워치 데이즈
참여 브랜드 39개
4일 동안의 방문자 수 8,000명
그중 업계 관계자 1,500명
시계 퀴즈에 참가한 애호가 수 100명
4일 동안 열린 심포지엄 수 6개
가이드 투어를 이용한 방문자 수 450명
이번에 열린 자선 경매의 총 낙찰액 110,000스위스프랑
2 제네바 워치 데이즈를 찾은 사람들의 말
“격식 없지만 프로페셔널하고, 탈중앙화되어 있지만 모두를 환영하는 이 쇼는 저희의 신제품을 보여주기에 완벽한 곳이었어요. 지라드 페리고와 율리스 나르당은 제네바 워치 데이즈의 창립 멤버로 이 쇼의 지속성에 기여할 수 있어 기쁩니다.”
- 패트릭 프루르니오, 지라드 페리고와 율리스 나르당 CEO
“이번 쇼의 성공은 참여 브랜드와 우리의 파트너 덕분입니다. 제네바주, 스위스 상공부, 제네바 관광청, 고급 시계 재단, 제네바 고급 시계 그랑프리, 제네바 고급 시계 학교, 워치 라이브러리, 월드템푸스, GMT 매거진, 레볼루션 매거진의 가치 있는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 앙투안 핀, 제네바 워치 데이즈 협회 대표이자 불가리 시계 디렉터, 참여한 단체의 면면을 알 수 있다.
“이 위원회에서 저의 역할을 하고 이 현장의 증인이 될 수 있어서 자랑스럽고 기쁩니다. 3년 만에 이 협업의 장이 꾸준히 커온 것도요. (이 쇼는) 문화적인 순간이고, 하나가 되는 이벤트이며 시계 산업의 플랫폼이 될 겁니다.”
- 조지 컨, 브라이틀링 CEO, 전 IWC CEO
제네바 워치 데이즈를 빛낸 32개의 시계들
인디 브랜드부터 글로벌 브랜드까지, 제네바 워치 데이즈에 참가한 브랜드의 새로운 시계들을 모았다. 순서는 알파벳 순. 한국에 들어오지 않은 브랜드가 훨씬 많다. ‘이런 시계도 있구나’라고 생각하고 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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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토 피니씨모 카본골드 퍼페추얼 캘린더
레퍼런스 넘버 103778
케이스 지름 40mm
케이스 두께 7.6mm
케이스 소재 카본
방수 100m
브레이슬릿 카본
무브먼트 BVL 305
구동 방식 오토매틱
시간당 진동수 21,600vph
기능 시, 분, 레트로그레이드 날짜, 요일, 윤년 표시 -
옥토 피니씨모 카본골드 오토
레퍼런스 넘버 103779
케이스 지름 40mm
케이스 두께 6.9mm
케이스 소재 카본
방수 100m
브레이슬릿 카본
무브먼트 BVL 138
구동 방식 오토매틱
시간당 진동수 21,600vph
기능 시, 분, 초 표시
카본의 파격, 골드의 품격
파격과 품격을 동시에 선보이는 데 있어 불가리 이상의 브랜드는 없다. 이들은 올해 제네바 워치 데이즈에서도 파격과 품격을 버무린 시계를 선보였다. 재료는 카본과 골드다.
불가리는 올해 제네바 워치 데이즈에서 크게 세 가지 신제품을 선보였다. 그중 가장 남자들의 눈에 띄는 건 남성 시계인 옥토 피니씨모 카본골드다. 이름처럼 카본으로 케이스를 만들고 핸즈와 무브먼트 브리지는 로즈 골드로 마무리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단순히 카본과 골드를 섞었다는 게 아니라 카본의 어떤 면모를 강조하고 골드의 어떤 요소를 표현했는가다. 그 면에서 불가리 옥토 피니씨모 카본골드는 다양한 면을 음미해볼 가치가 있다.
불가리는 2018년 이미 카본 케이스 시계를 출시했다. 그때는 카본 케이스로 미닛 리피터를 출시했다. 2023년의 옥토 피니씨모 카본골드는 그때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카본 케이스는 질감과 무늬가 달라졌다. 2018년의 옥토 피니씨모 미닛 리피터는 무늬가 덜하고 색조도 덜한, 상대적으로 ‘매트’한 느낌이었다.
2023년 옥토 피니씨모 카본골드의 카본은 대리석이나 소고기의 ‘마블링’이라 할 만한 무늬가 조금 더 도드라진다. 같은 소재라도 접근법에 따라 얼마나 달라지는지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재미있다. 다이얼 역시 마블링이 도드라지는 카본으로 만들었다.
카본 케이스에 방점을 찍는 건 화려한 골드 부품이다. 옥토 피니씨모 카본골드는 인덱스와 시침 및 분침, 크라운에 골드 소재를 썼다. 로즈 골드지만 톤이 적당히 다운되어 분홍빛이 도드라지지 않고, 전체적인 검은색 기조에 적절히 잘 어울린다. 시계 뒤로 보이는 무브먼트 브리지 역시 로즈 골드로 마무리했다. 마이크로 로터는 보통 비중이 높은 금속을 쓰는데, 불가리는 색을 맞추기 위해 비중이 높은 플래티넘 로터에 로즈 골드를 도금해 마무리했다. 불가리의 가치인 ‘기계적 미학(L’Estetica della Meccanica)’을 잘 드러낸 수작이다.
2023년의 옥토 피니씨모 카본골드는 두 가지 모델로 발매된다. 시간만 보여주는 ‘타임 온리’와 윤년 달력까지 보여주는 ‘퍼페추얼 캘린더’다. 무브먼트의 성능 및 지표, 버클 타입 등 스펙은 기존 모델과 같다. 이 대단한 시계는 한국에도 순차적으로 들어올 예정이다.
문의 불가리 코리아(02-6105-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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